2023년 5월호

프랑수아 알라르의 사적인 방문

남산 피크닉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Visite Privée>는 명사들의 공간을 포착해온 프랑스 출신 포토그래퍼 프랑수아 알라르François Halard의 시선을 목격할 수 있는 자리. 이브 생 로랑의 파리 저택부터 코코 샤넬의 화려한 아파트, 드리스 반 노튼의 아름다운 정원까지.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의 취향과 일상, 세월이 응축된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 속으로.

EDITOR 김수진

이브 생 로랑의 파리 저택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그의 연인이자 파트너였던 피에르 페르제Pierre Berge의 공간. 1982년, 21세에 촬영을 위해 파리 바빌론가에 위치한 두 사람의 저택에 처음 방문한 프랑수아 알라르는 지성과 교양을 두루 갖춘 커플의 심미안에 큰 감명을 받았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품은 물론 바로크 시대의 청동 오브제, 골동품 은식기, 고대 조각상, 아프리카 보물에 이르기까지 뮤지엄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컬렉션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 알라르는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폭넓은 취향과 이를 아우르는 독특하면서도 감각적인 배치를 통해 생 로랑 특유의 자유로움과 독창성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드리스 반 노튼의 정원

‘패션계의 낭만주의자’로 통하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영감을 받은 이국적이고 다채로운 패턴과 컬러를 조합하는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튼과 그의 파트너 패트릭 반겔루위Patrick Vangheluwe가 함께 살고 있는 1840년대 신고전주의 저택에 초대받은 알라르는 무성한 식물과 맑은 호수, 전 세계에서 수집한 빈티지와 골동품으로 꾸민 공간에 빠져들었다. 특히 노튼이 작업을 하지 않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30년 이상 가꾼 정원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여기저기 자연스럽게 흩어진 풀과 꽃에는 삶을 이루는 작은 생명에 감탄할 줄 아는 노튼의 여유와 평화로운 마음이 깃들어 있다.



피터 린드버그의 아파트

별다른 보정과 기교가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현대 패션 사진을 정의한 포토그래퍼 피터 린드버그Peter Lindbergh.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크리스티 털링턴 등의 슈퍼 모델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린드버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파트를 촬영한 알라르는 공간 가득 묻어나는 일을 향한 열정에 감탄했다. 벽을 가득 채운 사진과 포스터, 곳곳에 놓인 사진집 등에서 린드버그가 포착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느낀 것. 알라르는 말한다. “나는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이 작업은 린드버그를 향한 오마주다. 그는 언제나 내게 용기를 북돋워준 사람이었다.”



코코 샤넬의 아파트

“단순함simplicity은 모든 진정한 우아함의 기본”이라는 말을 남긴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파리 캉봉가,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 위층에 자리한 그의 아파트에서 알라르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깃든 개인 공간을 마주하는 특별하고 독특한 경험을 했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중국,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가구와 인도산 흑단류로 만든 병풍인 코로만델 스크린, 샹들리에 같은 아이템이 코코 샤넬의 생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 오랜 시간 샤넬을 상징해온 ‘우아한 취향’과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이 트웜블리의 집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주의 화가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는 프랑수아 알라르가 오랫동안 동경해온 ‘롤 모델’이었다. 첫 월급으로 트웜블리의 ‘로만 노트Roman Notes’ 시리즈 석판화를 장만했고, 동료 사진가 데버라 터브빌이 촬영한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트웜블리 집에 감명받아 프랑스 아를에 비슷한 무드의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트웜블리를 만나기까지는 무려 15년의 세월이 걸렸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첫 회고전을 앞두고 <배니티 페어Vanity Fair> 촬영을 위해 마침내 그의 집을 방문한 알라르는 카르티에 브레송이 촬영한 마티스의 초상화, 침실에 놓인 루이 15세의 의자, 로마 시대의 흉상 등이 가득한 공간에서 작가의 영감의 원천을 목격했다. 트웜블리가 말년에 즐겨 사용한 폴라로이드로 촬영한 사진에는 자신의 우상을 향한 진심 어린 존경이 스며 있다.



조르조 모란디의 스튜디오

꽃병, 그릇, 도자기 등 일상적인 사물을 캔버스에 담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업실은 이탈리아 볼로냐에 자리한다. 집이자 4평 남짓한 공간에서 오롯이 작업에 몰두한 작가는 평생 약 1350여 점의 유화와 133점의 에칭을 남겼다. 2017년 알라르는 모란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공간을 찾았다. 금욕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무던한 공간에서 그는 오히려 누구보다 치열하고 뜨겁게 작업에 매진한 열정적인 아티스트의 흔적을 발견했다. 먼지가 쌓인 소박한 도구들 위에는 사물의 배열과 거리, 빛, 색 등을 세심하게 조절하며 매일 수련에 가까운 작업에 천착한 작가의 면모가 깃들어 있었다고. 알라르는 모란디 작품의 색과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드는 후반 작업을 거쳤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현존하는 아티스트 중 대중적으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특유의 선명한 색감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수영장’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잡지 촬영을 위해 호크니의 미국 캘리포니아 집을 방문한 알라르는 인물과 공간 사진을 촬영했는데, 특히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된 수영장에 매료됐다. LA의 눈부신 태양을 머금은 채 반짝이는 물과 선명한 푸른빛의 수영장이 어우러진 풍경은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이때의 경험은 당시 프랑스 밖으로 나가본 적 없던 알라르에게 당대 예술가들이 사는 세상을 목격하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폴 세잔의 아틀리에

프랑스 남부의 아름답고 부유한 도시, 엑상프로방스에 위치한 폴 세잔Paul Cézanne의 아틀리에. 1886년 파리를 떠난 세잔은 조용하고 볕이 잘 드는 이 공간에서 20여 년을 보내며 많은 걸작을 남겼다. 세잔의 정물화를 오마주해 오토크롬 스타일의 폴라로이드로 작업한 알라르의 사진에는 정물화, 초상화, 풍경화의 근본적 구조를 탐구하며 다양한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작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천장을 향하 높게 솟은 사다리, 탁자 위의 사과와 물병, 낡은 정물화용 도구 등이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작업에 몰두했던 작가의 삶을 잘 보여준다.




<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Visite Privée> 196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0대의 이른 나이에 잡지 사진을 찍는 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한 프랑수아 알라르. 1980년대부터 <보그>, <배니티 페어>, <하우스 & 가든> 등의 표지와 화보를 촬영하며 상업사진가로서 명성을 높인 그는 동시에 개인적인 관심사가 담긴 작업도 병행했는데, 자신의 삶과 사진에 큰 영향을 미친 예술가와 작가, 컬렉터 등의 사적인 공간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었다. 1982년 21세에 촬영한 이브 생 로랑의 파리 저택을 시작으로 지난 40여 년간 수많은 명사의 공간을 포착해온 그의 사진전이 7월 30일까지 남산 피크닉에서 열린다. 프랑스어로 ‘사적인 방문’을 뜻하는 전시 제목처럼 알라르가 주목한 비밀스러운 공간과 그 이면에 담긴 인물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도널드 저드의 기념관, 뮤지션 레니 크래비츠의 아파트, 작가 자신에게 휴식이자 영감의 장소인 아를의 저택에 이르기까지 200여 점의 다채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COOPERATION  피크닉piknic(318-3233)  REFERENCE  <비지트 프리베> 전시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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