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ART

LUXURY WEEK x 아티스트 윤종주

눕힌 캔버스에 색색의 물감을 쌓아 올려 작업하는 회화 작가 윤종주와 피아제 ‘라임라이트 갈라’ 워치의 푸른빛 공명. 직관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색이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DITOR 정송

시시각각 흘러가는 시간에 색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윤종주 작가는 무형의 시간이 발하는 빛깔을 목도하고, 이를 캔버스에 옮겨 담는 작업을 펼쳐왔다. 1997년 계명대학교 대학원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고향인 대구에 작업실을 마련해 쭉 그곳에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02년 스페이스129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대구와 서울, 울산, 뉴욕, 일본 등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개최하며 회화 작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꾸준히 쌓아왔다. 많은 이가 색 면으로만 채워진 캔버스를 보고 포스트 단색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는 회화 재료가 가진 물성에 좀 더 집중한 작업을 펼친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 공정이 무척 세심하다. 이물질 하나 없는 화면을 만들기 위해 먼저 캔버스에 밑칠을 하고 샌드페이퍼로 문질러 고운 표면을 만든다. 그리고 캔버스를 눕힌 다음 아크릴물감, 잉크 등을 섞어 물감을 만들고 거름망에 걸러 그 위에 부은 뒤 말린다. 이 과정을 약 10회에서 30회 이상 반복하는데, 다 마른 표면에 올라온 색을 본 후 다음에 얹을 색을 찾아내는 일에는 작가의 직관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게 색을 쌓아 올린 화면에는 평면 회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깊이, 즉 공간감이 생긴다. 작업에서 시간의 흐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윤종주 작가는 2023년 ‘럭셔리위크’에서 피아제의 ‘라임라이트 갈라’ 워치에 영감을 받은 오묘한 푸른빛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 세계와 직관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요소인 ‘색’으로 접점을 찾은 피아제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님께서는 대중에 ‘단색 화가’로 소개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하나의 색 면이 아닌 다채로운 색채가 한순간 함께 일렁이는 듯합니다. 직접 작품에 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단색 화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저 제 작업을 할 뿐이죠. 아무래도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때문에 많은 분께서 단색 화가라고 부르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색 면이 두드러진 작업을 약 15년 전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었습니다. 회화 작업을 통해 색의 깊이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화면을 채우는 재료의 물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가 만나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하나의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지, 캔버스의 크기와 형태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한 연구를 해왔죠. 그리고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에 작업하기도 하지만, 화면을 모듈화하고 각각의 모듈에서 색 면을 맞춰가는 작업도 전개합니다. 화면에 이미 한데 뒤섞인 색이 또 한번 다른 조각의 캔버스와 이리저리 섞이면서 색의 경계가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실험인 셈이죠. 결국 작업의 코어는 색깔을 중심으로 깊이감, 공간감,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빛과 선 등 조형 요소의 탐구라고 볼 수 있겠네요.


처음 색에 빠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가님께 색채는 어떠한 의미인가요?

색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지만, 우리가 이름 지어 부르는 것들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똑같이 ‘빨간색’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장미의 빨강과 사과의 빨강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색은 또 느낌 혹은 감정과도 연결되어 있죠. 공간에서도 색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 있고, 반면에 차분해지는 공간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체 공간이 자아내는 분위기와 느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얘긴데,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보면 조명이라든지, 내부 벽과 바닥, 가구의 색 조합 등이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죠. 이러한 것들을 관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많은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색채에 관심을 두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색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우리가 태초부터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색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빛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계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응축되고 또 발현되는 에너지 같아요. 예를 들어 새로운 생명이 태동하는 초봄의 여린 잎사귀는 아주 연한 녹색입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햇살을 많이 받으면서 점점 짙은 녹색이 되어가죠. 또 일몰을 떠올려봅시다. 붉은 태양이 지는데 단순히 빨간색 스펙트럼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등 형용할 수 없이 많은 색이 뒤엉키다가 어둠이 내려앉습니다. 그런 색을 보면 감탄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의 색을 캔버스에 계속해서 얹으면서 사람들을 매혹해보고 싶었어요.


빈 캔버스를 빈틈없이 채우는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제 작업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캔버스를 세워 붓을 사용해 물감을 얹는 대신, 이를 눕히고, 그 위에 물감을 붓는 방식으로 작업하죠. 예전에는 붓을 사용해 화면을 채웠는데,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들 때면 무척 부담됐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캔버스를 누이고 물감을 부어 완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변했는데, 작가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우연적인 요소들도 작업의 일부가 되는 것을 보며 조금 편안해졌다고 할까요? 그렇게 캔버스에 부은 물감은 말라서 제 색깔을 내는 데 꼬박 12시간에서 18시간이 걸리죠. 이러한 작업을 최소 열 번, 많게는 서른 번 정도 반복하면서 ‘완성’의 순간을 찾아갑니다. 제 작업은 물감이 마르기 전과 후 발현하는 색이 다르기 때문에 그 변화의 과정을 보면서 다음 색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뤄진 수많은 선택이 집약된 결과가 마침내 작품으로 완성되는 겁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입니다. 시간은 작가님이 지금까지 말씀하신 작업과 일맥상통하는 주제죠. 작가님께 시간은 어떠한 의미인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저는 작업에 ‘Cherish the Time’이라는 제목을 붙여오고 있습니다. 국문으로는 ‘시간을 머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사실 원제는 ‘아주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다룬다’는 의미가 있어요. 벌써 작가로 작업한 지 20여 년이 되어갑니다. 어릴 때는 결과물을 통해 빠르게 인정받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 일이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잖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동시에 예술을 온전히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캔버스 위에 시간을 켜켜이 쌓아가며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지속해서 상기하게 된 것 같아요. 전시 제목 이 ‘적절한 때’를 의미하잖아요. 작업을 통해서 진정으로 인정받은 ‘그때’가 분명히 있을 테니, 쉼 없이 정진하고자 하는 그동안 저의 마음가짐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피아제의 ‘라임라이트 갈라’ 워치와 함께하셨습니다. 저는 시계 전체를 감싸는 곡선에서 ‘은은함’과 ‘우아함’이라는 키워드로 작가님과의 작업 사이 연관성을 떠올려봤습니다. 작가님은 이에 어떠한 영향을 받았고, 신작에 어떻게 드러내고 있나요? 아무래도 저는 색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잖아요. 피아제의 ‘라임라이트 갈라’ 워치에서 직관적으로 푸른빛의 색을 차용해 작업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조합해 사용한 색이라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또 피아제의 보석이 반짝이는 부분에서 빛의 유연함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빛이 반사되어 자아내는 또 다른 분위기도 캔버스에 살포시 더해보기도 했어요. 사실 브랜드와의 협업은 어떤 면에서 작가에게 도전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유지하던 작업 패턴이나 재료 사용에 새로움을 얹어야 하거든요. 시간과 시계는 저의 작업과 꽤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단번에 공감하는 부분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공감의 메시지를 작가만의 언어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이번 전시에서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보면 좋을까요? 작가는 말 대신 시각적 이미지로 대화를 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글보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좀 더 직관적이고 감성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죠. 관람객이 작품을 직접 봐야 비로소 완전한 소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제 작품은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을 담고 있기 때문에 꼭 전시 현장에서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화면에서 발현되는 색을 통해서 피아제의 ‘라임라이트 갈라’ 워치와 제 작업의 공통된 감각을 오롯이 느끼기를 바랍니다.



photographer 이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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