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ART

LUXURY WEEK x 아티스트 권아람

오랫동안 천착해온 ‘스크린’ 위에 까르띠에의 신제품 ‘산토스 뒤몽 스켈레톤’ 워치를 형상화한 
권아람 작가의 작품 세계와 멈추지 않는 도전에 대하여.

EDITOR 김수진

지난해, 비정형적인 형태의 스크린 위에 붉고 푸른빛이 점멸하는 작품 ‘월스Walls’로 제21회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한 권아람 작가. 건국대학교에서 디자인조형대학 광고영상디자인 학사와 UCL 런던대학교 슬레이드 미술대학 파인아트-미디어 석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 전공 박사를 거친 그는 현대사회에서 세상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언어와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미디어 설치 작품을 선보여왔다. 매일 들여다보는 휴대폰 액정, TV 스크린, 컴퓨터 모니터 등을 통해 송출되는 수많은 정보는 누가 만들어내며, 그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인지하게 될까? 다양한 매체 이면에는 인간의 어떤 욕망이 도사리고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되는 작가의 작업은 충분한 사유와 고찰의 시간을 거쳐 또렷한 형상의 스크린 조각과 미디어 아트로 구현된다. 괴테의 <파우스트> 속 글귀들을 번역기로 송출해 언어의 의미가 전달되는 과정을 고찰한 ‘말 없는 말’, 거울과 스크린의 물성을 활용해 실재와 비실재, 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 ‘납작한 세계’, 단순히 이미지를 운반하는 매체를 넘어 욕망이 순환하는 통로로서 스크린을 조명한 ‘월스’ 등이 그의 대표작. 이번 전시에서는 거울과 스크린을 주요 매체로 활용해온 근작을 변주해 ‘산토스 뒤몽 스켈레톤 마이크로 로터’ 워치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형상화한 미디어 아트 작품을 선보인다.



미디어에 관한 고민과 개인적 사유를 이미지와 사운드, 설치로 구현해왔습니다. 이런 작업의 맥락이 잘 드러나는 주요 전시와 작품의 소개를 부탁드려요.

주로 스크린을 이용해 이미지 시대가 불러온 사회적 현상과 미디어가 관계하는 맥락 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런 방법론의 시작은 2018년 원앤제이 플러스원에서 진행한 개인전 <납작한 세계Flat Matters>부터였어요. 하나가 된 스크린과 거울이 서로를 반사하는 구조를 활용해 이미지로 조작된 허구의 세계를 조명했죠. 이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기획전 출품작 ‘유령 월Ghost Wall’ 등을 통해 휘발하는 디지털 이미지와, 이를 매개하는 물리적 스크린의 관계를 다루며 자본과 상품,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고민해왔습니다. 2021년 송은미술대상에서 선보인 ‘월스’에서는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작업 형식을 확장하면서 동시에 미디어의 양면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어요. 물질이면서 비물질이기도 하고, 공간이면서 입자가 되기도 하는 스크린이 인간의 허상을 투영하는 대상이라는 걸 이야기했죠.


2009년 이후 10년 이상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왔고, 지난해에는 작품 ‘월스’로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작가로서 또 한번 성장하고 도약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근래 변화나 새로운 관심사가 있나요?

상황에 따라 작품을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공간에 크고 작게 반응하며 때로는 고정적이고, 때로는 일시적으로 지속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이와 함께 최근 화두인 인공지능 알고리즘 같은 무형의 개념과 원리에 접근하는 방법론도 찾고 있어요.


전시 참여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는 주요한 매체에 대한 고민, 주변의 사회·문화적인 현상에 대한 사고를 중심으로 작업의 맥락을 이어왔어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브랜드’라는 장치가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조건부 단서로 개입하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더군요. 새로운 작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환기가 된다고 생각했고, 특히 하이엔드 브랜드가 오랜 시간 구축해온 견고한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졌어요.


이번 전시에서 까르띠에의 ‘산토스 뒤몽 스켈레톤’ 워치를 모티프로 한 신작을 선보일 텐데요.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구상 중인가요?

까르띠에 시계의 다른 라인들과 달리 시계의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점이 메커니컬한 남성성과 투명한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이미지로 비춰졌어요. 흥미롭게도 송은미술대상에서 선보인 ‘월스’ 역시 평평하고 매끈한 스크린 뒤로 거친 뒷면을 그대로 노출해 기계적인 물성을 드러낸 작업이어서 시계와 상당히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전시에서는 스켈레톤 워치의 조각 같은 물성, 정교한 무브먼트를 스크린과 이미지 영상으로 표현해보려 합니다.


기존 작업과 이번 신작의 접점, 혹은 차이점에 대해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물리적으로는 기존 매체인 스크린과 거울의 형식을 차용할 생각입니다. 다만 전시 공간의 특성에 맞춰 사이즈나 형태 등은 변주할 예정이에요. 스크린 내부에는 그동안 미디어 너머의 다양한 현상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담아왔지만, 이번에는 ‘시간성’에 더 초점을 두려 합니다. 재미있게도 ‘시간’의 흐름은 유한한데, ‘시계’라는 매체의 메커니즘은 처음과 끝이 반복되는 순환성을 지닙니다. 시간 자체는 공기처럼 잡을 수 없는데도 인간은 이를 시계의 정밀한 메커니즘으로 담아내지요. 스크린에 투영하는 이미지 역시 잡을 수 없는 ‘디지털 입자’입니다. 전원이 차단되었을 때는 그저 벽이지만, 켜는 순간 인간의 욕망을 투영시키는 통로가 돼죠.


전시 공간의 특징을 살펴 작품의 형태나 스케일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모이소 A’는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와 상당히 다른 공간인데,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작품을 위해 공간과 호흡하면 작업의 물리적인 방향성과 이미지가 잘 구체화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송은은 스위스 건축가 헤르초크 & 드 뫼롱이 설계한, 스케일이 크고 투박하면서도 날렵한 요소들이 깃든 공간이었는데 작업의 규모를 확장시키며 사운드를 다루기에 적합했어요. 이번 공간은 창, 계단, 천장 등 분절된 요소들이 시선을 끄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매트릭스 같은 사각 이미지가 잔상을 남기는데 작품 역시 이와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될 것 같아요.


의 주제는 ‘시간’입니다. 작가님께 ‘시간’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시간이란 추상적이기도, 수학적이기도 한 대상입니다. 특히 경험적인 측면에선 우리 모두가 각자 다르게 시간을 체화하죠. 모든 것이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기본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서 공평하면서도, 경험하는 바는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영상을 주로 다뤘던 작업 초창기에는 시간의 범위 안에서 이야기를 전달했어요. 하지만 현재 작업에서 시간은 여러 요소 중 일부로 작용합니다. 시간을 하나의 재료처럼 다룰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앞으로 어떤 작가로 나아가고 싶은가요? 새롭게 구상하고 있거나, 더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현재의 맥락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작업의 방법론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이제는 새로운 시도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시점인데, 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반갑습니다. 작가에게는 작업 자체의 일관성과 발전 못지않게 다양한 상황과 목적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25년 송은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는데, 3개 층의 큰 규모를 온전히 다뤄야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그 전까지는 주제와 형식을 다채롭게 변주해보고 싶어요. 다양한 협업은 물론, 기회가 된다면 건축적 설계로 작업을 확장하는 시도도 해보았으면 합니다.



PHOTORAPHER 이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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