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DREAM CAR

매년 한 해가 시작되면 부푼 꿈을 품는다. 달성하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목표 그 자체만으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왕이면 최고를 꿈꾸면 어떨까. 지금 각 영역에서 최고라 불리는 4대의 자동차를 모았다.

GUEST EDITOR 김종훈

대형 세단의 새로운 기준

고정된 인식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대형 세단하면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가 떠오르는 것처럼. 단단한 인식을 뒤엎으려면 결정적 변화가 필요하다. ‘더 7’으로 명명한 신형 7시리즈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일단 차체 비율이 달라졌다. 더 7을 보면 과격해진 전면 인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파격적인데 어딘가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요한 건 전면 인상이 아니다. 전면 인상을 품은 전체 비율이다. 그 전에는 굴곡이 돋보이는 차체였다. BMW의 달리기 성능을 대변하는 실루엣이랄까. 신형은 성처럼 단단하고 견고한 실루엣으로 빚었다. 그만큼 차체가 커지고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대형 세단다운 웅장함을 강조한 결과다. 그런 점에서 과감한 전면 인상은 견고하게 쌓은 성의 철문 역할을 한다. 성의 위용을 화려한 문양으로 표현한 철문처럼. 이전과 다른 점은 차체 형태만이 아니다. 성을 쌓았으니실내 역시 성에 걸맞게 꾸몄다. 특히 시트 가죽 질감에 공들였다. 원래도 고급스러웠지만, 신형은 더없이 부드럽고 고급스럽다. 질감과 두께에서 티가 난다. 무엇보다 대형 세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뒷좌석 공간이 호화롭다. 세계 최초로 적용한 31.3인치 시어터 스크린은 ‘럭셔리’의 상징이다. 거대한 스크린은 격벽 역할도 한다. 덕분에 고급 리무진의 뒷좌석처럼 아늑함을 형성한다. 종아리 받침까지 올라오는 뒷좌석에서 느긋하게 눕듯이 앉아 화면을 바라보면 다른 어떤 대형 세단도 줄 수 없는 감흥이 차오른다. 한마디로 더 7은 대형 세단의 체급을 한 단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더 7이 주도하는 새로운 판을 짰달까. 완전히 새롭고, 더없이 호사스러운 대형 세단을 완성했다. 이 정도 파격이면 단단한 인식도 흔들린다.


고급 SUV의 절대 강자

럭셔리 SUV의 대명사는 ‘레인지로버’다. 1970년 첫선을 보인 이후 줄곧 최고를 상징했다. ‘사막의 롤스로이스’란 별명이 말해준다. 럭셔리와 SUV의 조합으로서 레인지로버의 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근에는 조금 달라지긴 했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SUV를 여럿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열었으니까. 자연스레 레인지로버는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게 된 상황. 일단 그랬다. 5세대 신형 레인지로버가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강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50여 년 동안 럭셔리 SUV로서 쌓아온 내공이 어디 갈 리 없다. 디자인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전히 박스형 차체를 고수하면서도 첨단 느낌이 진하다. 외관의 각 부분이 매끈하게 차체 표면에 스며들었다. 마치 각 요소가 그래픽으로 보일 만큼. 덕분에 누가 봐도 레인지로버인데 전과는 또 확연히 다르다. 헤리티지에 첨단을 절묘하게 녹인 디자인이다. 뼈대도 새로 짰다. MLA-플렉스 플랫폼을 처음으로 적용했다. 알루미늄과 특수 합금으로 강도를 높인 플랫폼이다. 덕분에 기존 모델 대비 비틀림 강성이 50% 증가했다. 더불어 소음과 진동도 24% 감소했다. 신형인 만큼 몸놀림도 단련했다. 덩치는 커졌지만 후륜 조향으로 한층 민첩해졌다. 거기에 전자식 롤 컨트롤을 더해 덩치를 다부지게 다잡았다. 새로운 골격과 그동안 쌓아온 하체 만드는 솜씨는 레인지로버의 가치를 한층 빛나게 한다. 신형으로서 기대할 만한 편의 장치도 대거 개선했다. 실내는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첨단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러면서 메탈 소재를 얇게 상감한 ‘마이크로 메탈 인레이’ 같은 고급 요소 역시 빼놓지 않았다. 3열을 처음 적용한 것도 특이점이다. 쟁쟁한 경쟁자 사이에서 활동 범위를 넓힌 셈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더욱 정교하게 빚은 결과물’. 신형 레인지로버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더 이상 뭐가 좋아질까 싶었는데 또 진화했다. 덕분에 상징성은 여전히 빛난다.


럭셔리 브랜드의 첫 전기차

등장하자마자 최고라는 칭호를 획득할 수 있을까. 럭셔리 브랜드라면 가능하다. 언제나 최고 중 최고를 만들어온 만큼 신모델이 바로 꼭짓점에 도달할 수 있다. ‘스펙터’가 좋은 본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첫 번째 전기차. 존재 자체만으로 특별한 위치에 선다. 전기차는 모든 자동차 브랜드의 화두다. 럭셔리 브랜드는 이런 흐름에 느긋하게 반응할 줄 알았다. 생산 대수가 워낙 적고 전통적 가치에 집중하니까. 롤스로이스는 예상을 깼다. 스펙터는 럭셔리 브랜드의 첫 전기차로서 일찌감치 위상을 세웠다. 단지 가장 먼저 등장했다고 특별한 건 아니다. 브랜드만의 전통적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전기 파워트레인과 디지털 기능을 적극 대입했다. 외관은 영락없이 롤스로이스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영감받은 판테온 그릴이 여전히 전면 인상을 책임진다. 반듯한 차체 크기가 웅장함을 돋보이게 하는 점도 그대로다. ‘팬텀 쿠페’를 떠올리게 하는 쿠페 형태라 차체 실루엣으로 스타일을 표현했다. 거기에 롤스로이스 2도어 모델 최초로 적용한 23인치 휠이 비례를 완성한다. 실내의 비스포크 옵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코치 도어 안쪽에 반짝이는 별 같은 장식을 4796개나 심었다. 대시보드에는 영롱한 별무리를 새겨놓았다. 반짝이는 별이 무려 5500개다. 두툼한 가죽으로 둘러싼 실내의 면면 또한 롤스로이스답다. 전기차다운 면모는 디지털 기능으로 구현했다. 앱과 연동해 자동차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전기 파워트레인에 걸맞은 뼈대도 새로 짰다. 덕분에 700kg이나 나가는 배터리를 품고도 여전히 ‘마법의 양탄자’라고 칭하는 승차감을 유지한다. 당연히 서스펜션도 새로 개발했다. 여전히 롤스로이스 같으면서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완전히 새로워진 롤스로이스. 스펙터가 등장하자마자 최고가 된 이유다.


현존하는 그란 투리스모의 정점

럭셔리 SUV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SUV 전성시대의 마지막 챕터였다. 최고급 세단과 호화로운 그란 투리스모, 슈퍼 스포츠카만 만들던 브랜드들이 선보인 SUV는 그 자체로 화제를 모았다. 럭셔리 SUV는 성공이 보장된 신모델이었다. 페라리는 그 시장에 마지막으로 뛰어들었다. ‘푸로산게’의 탄생 배경이다. 그렇다고 푸로산게가 SUV냐 하면 아니다. 전고와 지상고가 낮아 스포츠성을 놓지 않았다. 뒷좌석에 공들인 크로스오버 형태에 가깝다. 흙길도 고려한 4인승 그란 투리스모랄까. 럭셔리 SUV 역할을 하면서도 여전히 페라리다움을 잃지 않은 최적의 형태. 페라리는 푸로산게를 최초의 4인승, 4도어 스포츠카라고 설명한다. 여럿이 함께 타는 공간성을 확보하면서도 스포츠카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는 모델이란 얘기다. 일단 엔진을 최대한 뒤로 밀어 49:51의 무게 배분을 이뤘다. 무게 배분이 50:50에 가까울수록 몸놀림이 가뿐하다. 심장으로는 6.5리터 V12 자연 흡기 엔진을 품었다. 터보엔진도, 전기모터 조합도 아닌 고배기량 자연 흡기 엔진이다. 새로운 콘셉트이기에 더 전통적인 방식의 고성능을 구현했달까. 커다란 덩치가 노면을 바싹 붙들고 달리도록 서스펜션도 새로 설계했다. 매순간 서스펜션이 가속도와 위치를 파악해 코너링 성능을 최적화한다. 그동안 갈고닦은 네 바퀴 굴림 시스템과 후륜 조향 기술도 푸로산게에 맞춰 발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뒷좌석이다. GT라도 운전석 중심인 기존 모델과 달리 뒷좌석에 공들였다. 일단 푸로산게는 코치 도어를 적용했다. 특별한 자동차라는 표식이자 뒷좌석에 앉는 사람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다. 심지어 뒷좌석 시트의 각도와 위치도 조절할 수 있다. 뒷좌석이 가장 유용한 페라리라는 점만으로도 확장성이 생긴다. 럭셔리 SUV의 장점을 페라리도 획득한 셈이다. 여전히 페라리의 화술을 선명히 유지하면서. 그 섬세한 조율이 지금 가장 탐스러운 페라리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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