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로 담은 2027년 S/S 시즌 파리 패션위크

패션위크 출장길, 디지털 카메라 한 대를 챙겼다. 특유의 빈티지한 톤으로 기록한 2027년 S/S 시즌 파리 패션위크의 생생한 풍경.

EDITOR 이수연 PHOTO 이수연

처음으로 혼자 떠난 출장이 파리 패션위크라니. 지난 2026년 F/W 시즌에는 선배와 함께였기에 쇼와 프레젠테이션 일정을 나눠 다니고, 거리를 둘러보거나 빵집에 들를 여유도 있었다. 이번에도 ‘빵 먹을 시간은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혼자 일정을 소화하려니 제대로 된 밥 한 끼 챙겨 먹을 틈조차 없었다. 프레젠테이션 현장의 케이터링과 생수 한 병도 감지덕지. 그럼에도 베뉴 사이를 바쁘게 걸어 다니며 부지런히 현장을 담았다. 앞으로도 수없이 찾을 파리겠지만, 오늘의 파리가 지닌 공기는 또 다를 테니까.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아이폰 X와 SE를 번갈아 쓰고, 수동과 자동 필름 카메라도 아끼지만, 이번 여정에는 가벼운 디지털카메라를 골랐다. 작은 렌즈로 포착한 장면들과 런웨이 너머의 일화들을 풀어놓는다.


릭 오웬스의 2027년 S/S 컬렉션 쇼 시작 전 풍경.


릭 오웬스의 2027년 S/S 컬렉션은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야외 분수 광장에서 펼쳐졌다. 늘 건물 안에서만 쇼를 보았던 터라 이런 광장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다행히 파리에 머무는 동안 단 하루를 제외하곤 내내 맑았고 이날 역시 날씨가 맑았다. 문득 ‘릭 오웬스의 무대라면 비가 왔어도 근사한 장관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 런웨이를 걷는 릭 오웬스 모델들. (아래) 프레스 앞을 스쳐 지나가는 모델의 모습.


평지를 걷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의상을 입고 아찔한 플랫폼 슈즈를 신은 채, 단상을 오르내리며 프레스 앞을 지나 다시 계단 너머로 퇴장하는 동선. 모델들은 높은 단상을 오를 때마다 스태프의 손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발을 디뎠다. 모델들의 집중력도 대단했지만, 그 모든 워킹을 묵묵히 혼자 보조하던 단 한 명의 스태프에게도 절로 감탄이 나왔다.


분수대 물이 튀어 런웨이 바닥은 젖어 있었지만 다행히 미끄러진 모델은 없었다. 이 또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연출이었을까. 산업용 나일론 웨빙 스트랩에서 착안한 더블 듀셰스duchesse 소재가 물기에 젖어 바닥에 착 달라붙었다가, 용수철처럼 모델의 걸음을 따라 탄성 있게 튕겨 올라왔다. 마치 살아 있는 문어 다리처럼 역동적이었다.


로에베의 2027년 S/S 컬렉션 쇼장 앞 포토존.


로에베의 2027년 S/S 컬렉션 베뉴.


로에베의 쇼는 파리 동쪽 외곽 뱅센 숲 가장자리에 자리한 뱅센성Château de Vincennes에서 열렸다. 중심가를 벗어난 외곽이라 이동 시간만 넉넉히 1시간을 잡아야 했다. 다행히 앞뒤로 다른 프레젠테이션이나 리씨re-see 일정이 겹치지 않았다. 만약 다른 스케줄이 있었다면 로에베를 위해 과감히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베뉴로 향하는 길은 울퉁불퉁한 돌바닥이었다. 펌프스를 신은 게스트들은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어딜 가나 그렇듯 시작 직전에야 도착한 이들은 뛰지도 걷지도 못하는 애매하고 다급한 걸음걸이로 쇼장 문을 통과했다.


끌로에의 2027년 S/S 컬렉션 리씨 현장에서 만난 쇼 피스들.


이번 시즌 끌로에에서는 유독 가벼운 소재가 눈에 띄었다. 유연한 시폰과 투명한 레이스 사이로 조개와 소라를 형상화한 백을 마주쳤다. 오묘한 그러데이션 컬러 위로 골드 메탈 프레임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동화 속 인어공주의 소지품을 엿본 듯 신비로운 모양새였다.


발렌시아가의 2027년 S/S 컬렉션 리씨에서 마주한 쇼 피스들.


이번 2027년 S/S 시즌 전반을 관통한 키워드는 단연 시스루와 가벼운 물성이었다. 오간자·시폰·레이스처럼 투명한 소재들을 겹겹이 중첩해 입체적인 구조를 만들고, 투명과 불투명의 경계를 오갔다. 발렌시아가의 리씨 쇼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약하고 얇은 패브릭을 종이접기 하듯 섬세한 주름으로 접어 올리고 이어 붙여, 조각처럼 풍성한 볼륨을 지닌 톱을 만들었다.


출국 날, 공항행 택시를 기다리며 담은 파리의 거리.


혼자서도 잘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던 출장의 마무리. 전쟁 같던 일주일이 고작 하루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고단함과 긴장이 단숨에 풀리고 나니 놀랍게도 다음 패션위크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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