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9월호

로해 서울 대표 김동현: 조상의 유산과 문화를 잇는 공간

‘로해 서울’은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김동현 대표는 선대의 철학을 이어받아 차 문화와 고미술, 더 나아가 우리 문화를 연구하고 현대적 미감을 입힌 새 이야기를 들려준다.

EDITOR 김혜원 PHOTOGRAPHER 김연제

김동현 조선 초기 문인 매월당 김시습의 18대손이자 ‘로해 서울’의 대표. 미국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뒤 한국에서 선인의 헤리티지와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 힘쓰는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큐레이터’라는 자기소개가 인상적이에요. 해외에서 20대 대부분을 보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미술사학을 연구하고 전시를 구성했죠. 여러 상황이 맞물려 한국에 돌아오게 된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한국사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차 문화와 관련된 미술사를 파고들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좀 더 상업적이거나 혹은 대중 친화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고 싶었고요. 대중의 언어로 친근하게 풀어내는 기획자라는 점에서 ‘큐레이터’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차와 한국사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차는 저희 가족에게는 아주 친숙하고 당연한 문화입니다.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어떻게 보면 우리 문화를 외부인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안목이나 시선이 생겼달까요? 그러다 보니 우리 문화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외국인들에게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차가 좋은 매개체다 싶었죠. 차는 맛도 맛이지만 돌이켜보면 세계 역사 전반에 영향을 미쳤을 만큼 힘이 있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그럼 로해 서울은 찻집 이상의 공간이겠네요. SNS 상에서는 티 하우스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최근에는 청담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요. 기획 공간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죠. 전시도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차를 통해 사람들이 마음을 표현했던 방법을 조명하는 자리를 구상 중입니다. 저희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매월당집>에서 출발한 것인데요. 김시습 어른의 시문집이자 차 생활의 전반을 다룬 최초의 기록이 담겨 있죠. 내용을 보면 특히 문인 서거정과 교류한 부분을 볼 수 있는데, 마음을 담아서 차 선물을 보냈을 때의 포장법이 굉장히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이를 재현한 기프트도 디자인할 예정입니다.


향교에서 사용하던 조선 후기 찻종茶鍾과 백자 향로.


말씀하신 것처럼 선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시습 18대손’이라는 수식어가 어떻게 다가오나요? 솔직히 부담스러운 면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주변의 관심도 크고요. 선인의 것을 제 언어나 행동으로 다시금 보여줄 때 오해가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기까지가 조심스럽고 한 번 더 고민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도 하죠. 지금 시대에 혈통을 따지는 것이 큰 의미는 없지만 누군가를 만났을 때 “김시습 18대손이고 <매월당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 선대의 철학을 연구하고 해석하며 이어나가는 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500여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느끼고 있어요.


고미술과의 인연이 깊은 데에도 영향이 있나요? 고미술품을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한 지는 막상 몇 년 안 되었습니다. 한 4~5년 전쯤일 거예요. 오히려 저희 외할머니께서 많이 가지고 계셨죠. 저에게 물려주신 것도 몇 점 있고요. 되돌아보면 가족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미술을 접했던 것 같네요.


사오기 나무로 만든 판재 위에 올린 귀얄 사발.


차나 골동처럼 대표님의 취향을 이루는 많은 것이 가족으로부터 비롯된 듯합니다. 미감이나 취향은 확실히 외갓집의 영향을 받은 게 커요. 특히 할머니께서는 억지로 장식을 넣거나 화려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데, 현대의 미니멀리즘과 비슷하죠. 간결함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저희 가족과 제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조선의 미학도 마찬가지인데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 공간에 불러들이는 철학을 존중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꽃꽂이를 예로 들자면 억지로 가지를 구부러뜨리거나 꺾기보다 땅에 떨어진 꽃을 주워서 엮는 것처럼요.


고미술을 수집하는 것에 대한 태도는 어떤가요? 한때는 ‘이런 걸 왜 모아? 깨끗하지도 않은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마음가짐이 좀 다른데요. 나뿐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위해 내가 잘 보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니까 오래된 것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더라고요. 또 한 가지 매력적인 점은 고미술이 품은 시간까지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길어야 100년 남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물건은 여러 시대를 거치죠. 그런 관점으로 보면 고미술이 더 가치 있어 보이고 다소 불완전해도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고미술품을 단순히 오브제로 소유하는 욕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기에 시간을 더 쌓아서 다음 세대에 하나의 코드로 전달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오랜 시간이 깃든 물건을 보며 누가 어떤 생각을 갖고, 또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만들었을까 깊이 들여다본다면 골동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매화나무를 꽂은 초항아리와 사용의 흔적이 세월을 말해주는 등잔대. 김동현 대표의 외조부모가 실제로 쓰시던 것들이다.


골동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저는 완벽한 모양이나 직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해에서 사용하는 물건들도 완벽하지 않아요. 조금씩은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고요. 같은 의미에서 금이 간 찻잔을 사용하기도 하고, 은 기물이 변색되어도 굳이 닦지 않습니다. 반짝반짝할 때보다는 시간과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을 때 나오는 아름다움이 저에게는 더 큰 울림이 있기 때문인데요. 무작위로 나타나는 것, 자연스러움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고미술품 역시 그러한 시선으로 고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분들도 그저 유행이라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고미술의 세계에 접근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주로 어떤 고미술품에 관심을 두나요? 사람의 손길이 묻은 티가 나거나 사치스럽지 않은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아무래도 차와 관련된 기물이 주로 눈에 들어오고요. 조선 초기에 간장이나 반찬 등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자기를 찻잔으로 쓰기도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면 도자기만 하더라도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어딘가 일그러졌거나 이가 나간 것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대로 모두 소중하게 여기고 있죠. 집에도 골동품을 두고 있는데 목가구나 떡살, 놋그릇 같은 것들이 떠오르네요.


초가에서 영감받아 조성한 흙벽과 봉창. 조선 시대 보부상의 짚풀 띠를 매달았다. 그 밑에 둔 것은 백자 개구리 연적.


가족이 사용하던 옛 물건도 궁금합니다. 외할머니께서 실제로 사용하시던 초항아리와 외할아버지의 등잔대를 매장에 나란히 두었어요. 초항아리는 말 그대로 식초를 보관하던 일상 속 물건이죠. 등잔대는 외할아버지께서 나무랑 양철 깡통을 툭 잘라 만드신 거예요. 보통의 등잔대는 꽤 화려한 디자인이 많은데 이건 투박한 맛이 있습니다. 밑에 성냥을 끈 자국도 그대로 다 남아 있고요. 이런 점들이 진정한 골동의 매력 아닐까요?


가장 좋아하는 기물을 하나 꼽는다면요? 로해 서울 한쪽에 작품처럼 전시해둔 고려청자를 소개하고 싶어요. 위에는 잔, 아래는 잔탁으로 구성되어 있는, 천 년 정도 된 고려청자 다완으로 당시에는 차를 저어서 마셨기 때문에 입구가 넓게 만들어진 형태입니다. 저에게 더 특별한 이유도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반출된 뒤로 긴 여정을 지나 다시 이곳에 온 작품이에요.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가 한국에서 사갔다가 20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도예가 루시 리에게 넘겨졌고, 이후 도쿄 갤러리에 팔렸던 것을 제가 직접 환수해왔죠. 살짝 금이 가 있긴 하지만 보존 상태가 좋고, 또 이 찻잔을 사용하던 당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차 문화가 번성했던 때라 제겐 의미가 남다릅니다.


나무에 걸어둔 것은 액막이 명태 목조각품. 아래는 김동현 대표가 발견한 느티나무 밑동을 그대로 가져와 작품처럼 활용한 것이다. 전시된 골동은 왼쪽부터 마당등, 지함紙函, 채독(채소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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