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샤텔주의 쥐라산맥 자락에 자리한 르 로클은 인구 1만여 명의 작은 도시다. 그러나 이 도시는 인접한 라쇼드퐁과 함께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심장부다. 한때 대형 화재로 도시 대부분이 잿더미가 됐을 때, 르 로클은 길과 평행하게 집과 워크숍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재건됐다. 효율과 실용, 시계 산업을 향한 집착이 도시의 뼈대에 새겨진 셈.
그리고 이 유서 깊은 시계의 도시에 붉은 외벽의 건물이 이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2018년 첫 삽을 떠, 단 3년 만인 2021년 완공해 2023년 3월 공식 개관한 튜더의 첫 번째 자체 생산 시설이자 100년이 넘는 브랜드 역사에서 오로지 튜더 시계만을 위해 지은 첫 시설이다.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탄생한 튜더의 타임피스들은 무결점을 지향한다.
대담함을 품은 붉은 외벽 안으로
제네바에 위치하던 몽트르 튜더 SA의 조립 파트를 쥐라산맥에 자리한 계열사들이나 공급업체와 가깝게 이전하겠다는 목표로 완성한 이 매뉴팩처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것은 브랜드의 철학, ‘본 투 데어Born To Dare’다. 투어를 이끈 튜더 매뉴팩처 디렉터가 방문객들에게 당부한 것은 단 하나. 직원들의 초상권을 지킨다는 조건 아래 무엇이든 녹음하고 촬영해도 좋다는 것. 이 얼마나 튜더다운지. 자신만만하게 시작된 투어는 지하에서 출발했다. 매뉴팩처 디렉터는 “이곳의 건축은 일반 공장과는 다릅니다. 돌과 목재 같은 자연 소재를 주로 사용했고, 공간 전체를 우리 브랜드의 상징처럼 만들고자 했습니다.” 건물 지하에서 지상 전체에 이르는 계단 벽면에 스위스 스트리트 아티스트 릴시Rylsee가 제작한 대형 페인팅이 펼쳐져 있다. 르 로클 지역의 스트리트 컬처와 튜더의 브랜드 스토리를 결합한 이 작품은 단 4일 만에 완성됐다고. 매뉴팩처의 디렉터는 벽화 속 상징에 특별한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 보이는 하트 모양은 스위스 전통 문화인 ‘포야Poya’를 상징합니다. 겨울 동안 농부들이 산에서 내려와 시계 부품을 조립하던 역사와 연결되어 있죠. 우리는 이런 민속적 스토리를 통해 제네바에서 르 로클로 이어지는 브랜드 여정을 표현했습니다.” 이곳은 공장이라기보다 튜더의 정신으로 지어 올린 공간처럼 느껴진다. 또한 공장의 가장 아래인 지하는 지하임에도 공기가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5500m², 5개 층 규모의 시설을 시계로부터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지하에 자리한 대형 공기 조화 기술(HVAC) 시스템이 건물 전체에 걸쳐 지속적인 양압Positive Pressure 환경을 만들어낸다. 천장에서 바닥 방향으로 꾸준히 공기가 흐르도록 설계되어, 먼지가 워크숍 안을 부유하지 못하게 막는 구조다.
건물 구조 자체도 흥미롭다. 무브먼트 생산 시설이자 독립성을 지닌 제조사 케니시Kenissi 건물과 물리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립에서 무브먼트 생산까지, 한 지붕 아래에서 이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튜더가 추구하는 수직 통합의 상징이기도 한 이 구조에는 핵심 부품의 생산부터 최종 조립, 테스트까지 모든 공정을 스스로 통제함으로써, 품질의 변수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안내를 맡은 매뉴팩처 디렉터는 이 건물이 단기적인 계획으로 지어진 것이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우리는 단순히 10년을 위한 공장을 만든 게 아닙니다. 향후 두세 번의 성장 사이클까지 고려했습니다. 필요하다면 옆으로 두 번째, 세 번째 건물도 지을 수 있도록 말이죠.” 지금의 규모로도 충분해 보이는 이 공간이, 미래를 위한 여백을 넉넉히 품고 있는 것이다.
튜더 매뉴팩처의 큰 틀을 이루는 것은 건물 내부에 구축된 자동화 물류 시스템이다. 부품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어느 작업대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이 시스템은 워치메이커들이 오직 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필요한 부품을 찾아 헤매거나, 재고를 확인하러 자리를 비울 필요가 없다. 시스템이 작업 흐름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정밀함에만 집중한다. 조립 워크숍에 들어서면 빛은 균일하고, 소음은 낮으며, 움직임은 절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현재 약 160명이 근무하는 이 공간의 주인은 여전히 사람들이다. 디렉터는 이 건물로 이전할 때를 회고한다. “제네바에서 이전해올 때, 워치메이커들에게 함께 오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단 한 명만 빼고 모두 그러겠다고 했어요.”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삶의 터전을 바꿔 튜더의 여정을 따른 것이다. 이 워치메이커들의 작업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다이얼 장착, 시곗바늘 장착, 그리고 케이스 장착이 차례로 이어진다. 특히 시곗바늘 장착은 가장 얇고 작은 부품을 다루는 과정으로,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다이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각 단계마다 자체 품질 검사를 거치고, 최종 단계에서 다시 한번 전수 점검이 진행된다. 완성된 시계를 창고에 쌓아두지 않는다는 것도 튜더의 특징이다. 생산된 시계는 곧바로 고객에게 향한다.

튜더 매뉴팩처에서 워치메이커와 기계 공정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테스트로 증명하는 자신감
조립을 마친 시계는 튜더가 모든 시계에 적용하는 자체 성능 기준, ‘튜더 퍼포먼스 컨트롤’을 통과해야 한다. 자체 제작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는 하루 오차 범위 -2/+4초 이내, 외부 무브먼트를 탑재한 모델은 -4/+6초 이내여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예외 없이 모든 시계는 고압력 물탱크에서 방수 기능 테스트를 거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튜더는 모든 시계의 METAS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 획득을 목표로 삼고 있다. 조립 완성된 시계 기준으로 하루 평균 오차가 0~+5초 이내여야 한다. COSC 기준(-4/+6초)보다 5초, 튜더 자체 기준(-2/+4초)보다 1초 더 엄격하다. 거기에 더해 1만 5000가우스의 강한 자기장 속에 노출되어도 정확도를 유지해야 하며, 방수 성능과 파워 리저브 역시 ISO 국제 표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 모든 관문을 통과한 시계에만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 마크가 찍힌다.

튜더의 시계는 모두 혹독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전체 과정은 자동화되어 있다.
독립된 듯 연결된 케니시
튜더 매뉴팩처와 건물 한쪽을 통해 물리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연결된 또 다른 시설 케니시의 방문도 이번 여정에 포함됐다.
케니시는 2010년 설립된 튜더의 무브먼트 생산 전문 법인이다. 연구 개발부터 최종 조립까지 자체 제작 무브먼트에 관한 모든 과정이 이곳에서 이루어지지만 케니시는 튜더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초기 고객사로 브라이틀링이 함께했고, 2018년에는 샤넬과 협업을 맺었다. 현재는 노르케인, 포티스, 태그호이어, 벨앤로스, 울트라마린 등 여러 브랜드가 이곳의 무브먼트를 사용한다. 케니시의 시스템은 튜더의 효율적이고 고도화된 기술력을 공유해 동반 성장하고 있다. 케니시의 조립 라인은 하이테크와 장인의 손이 교차하는 공간이며, 이 조립 라인을 통과한 모든 무브먼트는 COSC 인증을 거친 뒤 튜더로 넘어와 시계에 장착된다.

튜더와 물리적으로 빈틈없이
연결된 무브먼트 제조사
케니시는 튜더와
동반 성장하고 있다.
르 로클을 떠나며 붉은 건물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매뉴팩처 디렉터는 “브랜드 자체보다도 팀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튜더의 여정에 기꺼이 함께해온 워치메이커들, 새로 합류한 25명의 신규 인력, 지역 출신 85%의 장인들. 붉은 건물은 시계를 만드는 공장이기 전에,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튜더의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의 명제는 단순했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버티는 합리적인 가격의 시계. 그 명제는 이 안에서 매일 실현되고 있다. ‘본 투 데어’. 감히 도전한 사람들이 만든 시계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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