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3월호

아시아 미술의 다층적 지도를 그리는, 정도련

뉴욕 현대미술관 최초의 한국인 큐레이터에서 홍콩 M+ 뮤지엄의 예술감독까지. 정도련은 서구 중심의 미술 담론을 넘어, 아시아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동시대 미술의 경계를 확장하며 그가 그리고 있는 아시아 미술의 지도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EDITOR 박이현


Photo: Dan Leung, Image courtesy of M+ Hong Kong

정도련  홍콩 M+의 예술감독 겸 수석 큐레이터. 2013년 초대 수석 큐레이터로 임명됐으며,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부관장을 겸직했다. 10년 이상 M+의 컬렉션, 전시, 교육 및 학문적 방향을 총괄하면서 아시아적 관점에서 글로벌 비주얼 문화의 초문화적·초국가적 서사를 조명해왔다.



2017년 처음으로 영국 <아트리뷰>가 선정하는 파워 100에 뽑힌 이후 지속적으로 순위가 상승하고 있는데요. 한국인 큐레이터로서, 그리고 M+ 예술감독으로서 소감은 어떤가요?

해마다 <아트리뷰>의 ‘파워 100’ 리스트가 발표될 무렵이면, 한국 미디어가 뜨거워집니다. 몇 명의 한국인이 포함되었는지, 어떤 인물이 선정되었는지를 기사화하죠. 하지만 이 순위는 <아트리뷰>가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구성한 리스트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샤르자 아트 재단 설립자이자 샤르자 비엔날레 디렉터인 셰이카 후르 알 카시미Sheikha Hoor Al Qasimi는 2023년 36위에서 2024년 1위로 급상승했는데, 중동 현대미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2023년 1위를 차지한 사진작가 낸 골딘Nan Goldin은 자신의 약물중독 경험과 그 약물을 제작한 ‘예술계의 주요 후원자’ 새클러Sackler 가문에 맞선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 사태>가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점이 선정 계기가 된 듯하고요. 그렇기에 파워 100은 영향력을 수치로 환산하는 것이 아닌, 특정 지역이나 이슈를 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내가 정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의문이 들지만(웃음) M+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M+를 이끄는 일원으로서 기관의 어떤 부분이 어필했다고 분석하시나요?

큐레이션과 콘텐츠 관점에서 기존 서구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준과 어젠다를 재정의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M+는 개관 전부터 뉴욕 현대미술관(MoMA), 파리 퐁피두 센터, 런던 테이트 모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서구권의 현대 시각 문화 뮤지엄을 이룩하고자 했는데, 현재 그 목표를 실현했다고 확신해요. 지역사회와 글로벌 전문가들의 긍정적 목소리가 이를 방증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M+는 현대미술관을 넘어 ‘글로벌 현대 시각 문화 뮤지엄’을 표방합니다. 이는 순수 미술은 물론 건축, 디자인, 만화, 영상 등 보는 행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이죠.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기존 미술관 시스템과 어떻게 차별화되나요?

M+는 현대 시각 문화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기관으로, 순수 미술과 대중문화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시각적 요소에 통합적으로 다가갑니다. MoMA의 경우 개관 초기에는 회화와 조각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건축, 사진, 영화 등 여러 분야를 포괄하며 현대 예술의 진화 과정을 반영했습니다. 그러나 MoMA는 여전히 매체별로 부서를 나눠 운영하기에 각 부서 간 경쟁과 분리가 일어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어요. M+는 MoMA의 유산을 어느 정도 계승하되, 매체media라는 개념을 넘어 보다 확장된 ‘예술 분야/영역discipline’이란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예술을 유기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겠다는 의미로, 저희가 설정한 3개의 핵심 분야/영역인 ‘비주얼 아트’, ‘디자인 & 아키텍처’, ‘무빙 이미지’가 서로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 부서의 명칭을 에듀케이션education이 아닌, 러닝learning으로 명명해 수직적 구조를 탈피한 수평적 협업 환경도 조성했어요. 이처럼 전시, 출판, 디지털 콘텐츠 등 모든 콘텐츠 제작자가 동등한 수준에서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융합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M+의 핵심입니다.


2006년 M+ 설립이 확정된 이후, 2021년 11월 11일 공식 개관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관장님은 2013년에 합류하셨는데, 긴 여정 동안 부딪힌 난관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처음에는 홍콩의 예술가들과 전문가들이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어요.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 미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존재했고, 지역사회 내에서는 자국 중심적인 시각(쇼비니즘)이 강해 M+가 홍콩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회의적 반응도 있었죠. 하지만 다양한 전시와 심포지엄이 열리면서 이러한 인식이 바뀌었고, M+가 홍콩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후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 코로나 19라는 거대한 변수와 맞닥뜨렸지만, 잘 극복하고 2021년 성공적으로 개관했습니다.




M+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 1949년’을 현대 시각 문화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와, 이러한 시각이 M+의 컬렉션과 전시 프로그램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서구 미술사에서는 모던modern과 컨템퍼러리contemporary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지만, 아시아는 다소 애매해요. 한국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을 기준점으로 삼는 것과 달리, 중화권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고 국민당이 대만으로 이동한 1949년을 전환점으로 여깁니다. M+는 1949년을 중심으로 하되, 주요 수집 및 연구 범위를 20세기 후반~21세기로 설정했어요. 20세기 초반을 포함하면 컬렉션이 지나치게 방대해질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혹자는 획일성을 우려하지만, M+ 수장고에는 1920~1930년대 작품도 존재합니다. 오는 3월 15일 개막하는 전시 에서 20세기 초반 탄생한 피카소의 작품과 M+ 컬렉션 작품을 같이 선보일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M+ 설립 관련 기사에 “서구 중심의 미술관 시스템”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글로벌 현대 시각 문화 뮤지엄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내부적으로 자주 논의된 내용은 무엇인가요? 가령, 컬렉션 구성 과정에서 어떤 문화적·역사적 논쟁이 있었는지 같은.

지난 10~20년 동안 서구 미술관들은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심포지엄, 아시아 미술 컬렉션 등)을 기울여왔어요. 그 변화 속에서 M+는 이들과 협력하면서 아시아적 시각을 기반으로 한 담론을 생성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죠. 그러나 이러한 시각이 기존 서구 중심주의를 아시아 중심주의로 전환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중심을 다른 중심으로 대체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중심주의와 권력 구조를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M+는 서구적 정전canon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보다 이를 다층적으로 해석하고자 해요. 앞서 말한 을 재차 언급하면, 이 전시는 피카소의 작품과 아시아 현대미술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발생하는지를 모색하고자 기획됐습니다.


개관 이후 열린 전시를 살펴보면, 서구와 아시아 현대미술을 균형감 있게 다루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아시아 작가들에게 다소 무게 추가 기울어진 듯한 인상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M+가 컬렉션한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글로벌한 시야를 지향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지역을 동일한 비율로 조망할 수는 없어요. 서구 미술관들이 글로벌을 표방하면서 여전히 서구 중심성에 머무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죠. M+ 컬렉션 내 아시아 작품 비율이 75% 정도 되는데, MoMA는 75%를 유럽과 북미 작품이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홍콩의 역사적·지정학적 배경을 고려할 때 M+는 현대미술의 요충지anchor로 작동할 최적의 장소예요. 홍콩은 명·청 시대에도 국제 교역이 가능했고, 19세기에는 유럽과 미국으로 차와 도자기를 수출했으니까요. 말씀하신 장영혜중공업은 1990년대 태동한 네트 아트Net Art의 선구자로 불리는데요. M+는 이들이 한국이라는 국적을 떠나 디지털 아트에서 긴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확신했기에 컬렉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개인적인 질문을 드릴게요. 2009년 MoMA 80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큐레이터로 선임돼 화제가 됐었죠. 그런데 2013년 M+ 부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이 들려와 놀랐어요.

‘MoMA 최초의 한국인 큐레이터’라는 수식어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특별히 ‘최초’라는 점을 의식하며 일하지는 않았어요. 여러 기회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덕분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믿습니다. 미니애폴리스의 워커 아트 센터에서 활동한 7년의 시간이 괜찮은 평가를 받아 MoMA로 옮길 수 있었고, MoMA에서도 비교적 짧은 기간에 큰 인정을 받았기에 M+로 향할 수 있었죠. 돌아보면 참 유복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와 경험이 각 기관이 원하던 지점과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진 것을 보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꼽자면?

MoMA에서 뜻깊은 경험 중 하나는 전후 일본 미술의 실험적 시도를 조명하고자 2012년 기획한 전시예요. 1960년대 남미, 인도, 일본, 터키 등 다양한 지역을 조명한 MoMA는 1970년대 베트남전쟁과 오일쇼크를 겪은 미국 내 분위기 탓인지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회귀했다가, 냉전이 끝난 1990년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와 함께 글로벌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다시 주창했는데요. 이러한 흐름 속에서 MoMA의 국제적 시각을 재확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그런지 기억에 남습니다.




미국, 홍콩,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예술 생태계를 경험하셨습니다. 미술관 운영 방식, 작가와 관객의 관계, 혹은 미술이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점이 있나요?

과거 홍콩은 금융과 경제 중심지로만 알려졌습니다. 현지에선 ‘문화의 불모지’란 표현이 자주 사용됐고요. 저에게 홍콩은 캔터팝, 영화 등 강한 문화적 로망을 불러일으킨 도시였는데···. 그러나 최근 대형 문화 기관과 갤러리 활성화, 아트바젤 홍콩의 성장 등으로 인해 홍콩이 문화적으로 빈약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한국도 홍콩과 유사해요. 과거 국제 미술계의 변방으로 여겨졌지만, 서구 주요 미술관들이 한국 미술을 조명하며 시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현대카드·현대자동차 같은 기업의 후원과 이불·양혜규·이미래 등의 작가가 활약하면서 한국 미술이 글로벌 미술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죠. 중심과 변방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각국의 문화 생태계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디지털과 미술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입니다. 디지털 시대 미술관의 기능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M+의 사례가 궁금합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미술관은 더는 물리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디지털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관람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콘텐츠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일례로, 코로나 19 시기 버추얼 뮤지엄이 뉴 노멀이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사람들은 다시 오프라인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돌렸으니까요. 그렇다고 디지털 콘텐츠의 무게감이 줄어든 것은 아니에요. M+는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디지털 콘텐츠 전담 팀을 운영하며, 큐레이터 및 러닝 팀과 협업하는 체계를 갖췄습니다. 그중 하나가 컬렉션 데이터를 오픈 소스로 공개한 거예요. M+에선 연구자와 관람객 모두 저희 컬렉션을 쉽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담론의 부재 혹은 답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작금의 큐레이팅은 과거 학문적이고 연구 중심적인 것에서 엔터테인먼트 성격으로 변해가는 듯해요. 마지막으로 감독님께서 정의하는 큐레이팅이란?

지금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미술관과 큐레이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으로 느껴집니다.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몰입형 경험도 중요하지만, 큐레이팅은 단순히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아직 의식하지 못한 무언가를 찾아내 제안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큐레이팅을 선택selection과 돌봄care의 영역에서 접근합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맥락을 부여할지 결정하는 동시에, 예술을 통해 불확실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정신적·감성적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뜻이죠. 세계가 다시 정치적·사회적 단층선을 드러내고 있는 오늘날, 어떤 가치와 담론을 공유할지 고민하며 예술과 삶의 연결을 탐구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소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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