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2월호

[THE FACE OF 2024] 국보급 보물의 발견 전민철

갓 스무 살의 나이로 세계 최고 발레단 입단 소식을 알리며 뜨거운 화제를 모은 발레리노 전민철. 그의 등장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쏟아지는 관심과 찬사에도 섣불리 취하지 않고 오직 무대 위에서 우뚝 빛난다는 것이다.

EDITOR 이연우


2024년 무용계의 이슈는 단연 발레리노 전민철의 발견이다. 유난히 무덥던 지난여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재학생 신분인 전민철이 클래식 발레의 최고봉인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한국인 남성 무용수로서는 사상 두 번째로 입성하게 됐다는 ‘핫 뉴스’에 공연계가 떠들썩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스무 살 대학생이라 믿기지 않는 탄탄한 실력과 타고난 피지컬에서 우러나오는 우아함이 마치 발레를 위해 태어난 듯하니, 세계적인 발레단이 파격적인 ‘솔리스트 입단’을 거론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전민철을 처음 만난 건 지난 6월 초 대한민국발레축제 메인 공연인 <발레 레이어> 무대에서다. 국내 대표적인 발레 안무가 김용걸 한예종 교수가 총연출한 갈라 형식의 공연이었는데, 피아노 연주와 함께 서정적인 파 드 되pas de deux(2인무) ‘산책’에 등장한 앳된 얼굴의 발레리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184cm인 실제 키보다 훨씬 커 보이는 서구적인 비율과 우유 빛깔 피부, 긴 팔다리로 나비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게 흐르는 춤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깔끔한 회전과 부드럽고 유연한 점프까지. 이제껏 파워와 역동성에 포커스를 맞춰 봐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남성 발레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다. 잠시 후 이어진 ‘볼레로’의 솔로 탭댄서도 시선을 강탈했다. 선글라스에 슈트 착장이라 느낌은 전혀 달랐지만, 독보적인 실루엣과 빈틈없는 퍼포먼스는 다른 사람일 수 없었다. 커튼콜에서 살짝 보여준 ‘들리브 모음곡’의 파 드 되는 또 어떤가. 빠르게 회전하며 무대를 대각선으로 가르는 그의 셰네chaînés 동작은 스포츠라면 세계신기록 점수를 매겼을 만큼 빠르고 정확했으며, 아름다웠다. 그의 팔색조 매력에 빠진 관객은 새로운 발레계 히어로 탄생을 목도했다. 함께 관람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도 “국보급이다”, “대한민국의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호기심이 발동해 무대 뒤로 찾아가니 뽀얀 얼굴의 소년이 있었다. “곧 마린스키 입단 오디션을 보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스타 발레리노의 탄생을 직감하며 일단 인터뷰 예약부터 해놓고 검색해보니 맙소사, 소년은 구면이었다. 7년 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 도전하는 소년들이 훈련받는 ‘빌리스쿨’을 취재할 때 만났던 최종 후보 중 한 명이 전민철이었다.

이는 대중의 기억에도 남아 있다. 당시 SBS <영재발굴단>이 최종 오디션을 앞둔 7명의 소년을 조명해 매스컴을 탄 것. 아이러니하게도 최종 합격한 빌리들보다 불합격한 전민철이 기억에 더 남는다. “남자가 뭔 발레냐”던 아버지의 반대에 눈물을 그렁거리면서도 당차게 맞서던 ‘완성형 빌리’가 웃자란 키 탓에 고배를 마시니, 시청자들도 소년의 슬픔에 공감하며 안타까워했었다. 당시 객석에서 ‘앵그리 댄스’ 장면(빌리가 분노를 춤으로 발산하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다는 그는 잠시 발레를 포기하고 방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빌리스쿨 안무 선생님(노지현 <빌리 엘리어트> 안무 감독)의 격려로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고, 결국 ‘국보급’ 예술가로 훌쩍 성장했다.

얼마 후 실제 마린스키 합격 소식과 함께 이런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스타 탄생에 목말라 있던 발레계가 들썩였다. 그가 속한 한예종 공연도 순식간에 매진됐다. 졸업 후 러시아로 떠나버리면 ‘유출된 국보’를 쉽게 볼 수 없게 되기 때문. 그가 캐스팅된 유니버설발레단의 대작 <라 바야데르>는 발레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티켓 오픈 4분 만에 매진됐다. <라 바야데르>의 전사 ‘솔로르’는 발레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남성 역할 중 하나다. 기술적 난이도와 극적 표현, 파트너와의 호흡까지 도전적인 역할이다. 대형 점프와 빠른 회전을 포함해 안무 전반에 걸쳐 높은 수준의 체력이 필요한데다, 삼각관계의 복잡한 감정 표현과 아편에 취한 듯한 몽환적인 상태까지 연기해야 한다. 9월 29일, 전막 데뷔를 하는 전민철도 수월할 리 없었겠지만, 소년의 도전을 지켜보는 팬심이 더 조마조마했던 것 같다. 다소 긴장한 기색도 읽혔지만, 특유의 유연함과 깃털처럼 가벼운 점프로 오라를 뿜어내니 객석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전막 발레의 아름다운 전사로 성공적인 도약을 한 셈이다.

검증을 마친 후에도 민철은 종횡무진 다양한 무대를 누비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경복궁에서 열린 궁중문화축전 <발레X수제천> 공연에 나섰다. 국악과 발레의 컬래버레이션 무대였는데, 통상적인 발레에서는 보지 못한 요염함이 느껴졌다. 전민철은 발레 이전에 한국무용을 배웠다는데, 두 장르의 이상적인 결합을 봤다. 11월 초, 미국 ABT 무용수 초청 갈라 공연 <더 나잇 인 뉴욕>에서는 세계 최고 기량의 무용수들 사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 무대를 보며 “너는 발레를 해야 빛날 것 같다”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안무 감독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만일 그때 그가 발레를 포기했다면, 우리가 이런 ‘국보’를 갖지 못했을 것 아닌가. ‘K’의 시대, 세계 속에 ‘K-발레 르네상스’를 이끌어갈 전민철의 미래가 눈에 선하다.



유주현  <중앙SUNDAY> 기자.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 예술과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많다. 그중에서도 무용 등 대중이 멀게 느끼는 공연 예술과 예술가들의 생생한 모습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WRITER  유주현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