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하며 '나'를 돌아보는 김창옥과 배헤윰

덜어내고, 물러서고, 다시 바라보는 일. 예술을 통해 마음의 자리를 조금씩 찾아가는 김창옥과 배헤윰의 이야기.

EDITOR 박이현

김창옥 삶을 살아낼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하는 소통 전문가. 김창옥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소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옻칠을 통해 위로받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김창옥의 위로>가 9월 3일부터 27일까지 청담 MCM 하우스에서 개최된다. Ⓒ 이우경


김창옥의 ‘망’ 시리즈 중 일부.


위로를 칠하는 시간
말을 벗 삼아 일한 지 25년이 넘었다. 무대 위에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으로 돌려준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서인지 언젠가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젊을 때는 앞날만 불안했는데, 나이가 드니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까지 생기더라.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끝난 장면을 되짚을수록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던 와중 옻을 만났다. 우연이었다. 10년쯤 된 것 같다. 요리는 하지 않으면서 그릇 가게를 돌아다니는 일이 취미가 됐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놓인 낡은 샐러드 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겉은 빛이 바랬지만, 안쪽에는 묘한 민트색이 남아 있었다. 가게 주인은 “그게 옻칠”이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옻칠을 검색하다가 칠예가 전용복 선생님의 영상을 발견했다.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락처를 수소문해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옻칠을 배우고 싶습니다.” 전용복 선생님은 옻이 어디에서 나오고, 어떻게 정제하며, 어떤 온도와 습도에서 굳는지 처음부터 알려주셨다. 그리고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진 노하우를 모두 줄 테니, 창옥은 네가 되어라.” 기술은 남김없이 전하되, 선생님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아버지 세대의 남자와 이토록 깊은 관계를 맺어본 적 없던 내게 선생님의 말은 기술을 넘어 살아갈 기준까지 건넸다.

옻칠은 퍽 고되다. 판을 만들고 삼베를 붙인 뒤 칠하고 말리고 갈아내는 걸 반복해야 한다. 검은 바탕 하나 만드는 데 두 달이 걸릴 때도 있다. 딴생각을 할 틈도 없다. 큰 판을 들기 위해선 몸의 균형을 살펴야 하고, 롤러를 미는 동안에는 옻의 양과 손의 속도에 집중해야 한다. 혹여 마지막 동작이 어긋나면 앞서 들인 수고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누군가는 내 작품을 보고 단색화의 연장선이냐고 묻는다. 고백건대 나는 단색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다만 작업을 거듭하면서 내가 원한 건 ‘단색’보다 ‘단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 가지 걱정이 서너 가지로 줄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던 마음이 현재로 돌아오는 상태. 내게 위로는 “수고했다”라는 말을 듣는 것만이 아니었다. 머릿속을 차지하던 근심과 후회가 옅어지는 것, 그것이 옻이 가져온 변화이며 진정한 위로였다.

옻은 나무껍질에 낸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이다. 피부에 닿으면 염증을 일으킬 수 있지만 여러 겹 굳힌 막은 물건을 보호하고 오래 지킨다. 나는 그 성질이 사람과 닮았다고 느낀다. 우리도 다치면 자신을 지키려 무덤덤해지거나 혹은 날카로워지지 않던가. 그런 태도가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상처를 서둘러 지우지 않고 오래 바라보며 다룬다면, 삶을 버티게 하는 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이는 작업실로도 이어진다. 작업실에서도 뜻대로 되지 않은 흔적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색을 걷어내다 생긴 자국과 먼지를 떼어내다 우연히 나타난 무늬가 남은 판들을 모아 ‘망’ 시리즈라 명명했다. 내 눈에는 망친 과정이 먼저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되레 망 앞에 오래 머물렀다. 그제야 내가 끝났다고 여긴 일이 정말 마지막인지는 누구도 모른다는 걸 알아챘다.

미술이 내 상처를 온전히 아물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걱정은 또 찾아오고 마음은 여전히 흔들린다. 하지만 옻을 칠하는 동안에는 흩어졌던 생각이 정돈되고, 실패했다고 여긴 자리에서 새로운 표정을 만난다. 내게 치유란 나를 괴롭히던 열 가지 고뇌가 두세 가지로 줄어드는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요를 마주하고자 다시 작업실로 간다.



배헤윰 언어적·비언어적 소통과 일상 속 복잡한 상호작용을 추상적이고 강렬한 색채로 탐구한다. 그의 신작은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서촌의 한옥 공간 ‘막집’(더일마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8월 28일부터 9월 5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 작가 및 마시모데카를로 제공, Ⓒ 김연제


배헤윰, ‘Milk of Bitcoiner – Mother’, 2026 사진: 작가 및 마시모데카를로 제공, Ⓒ 김연제


발걸음과 인사

작업실 건물의 현관을 열고 몇 걸음 걸어가면 항상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건물 경비원 선생님 중 내가 기억하는 한 분의 목소리였다. 이분은 늘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인사를 해주셨다. 처음엔 드나들 일이 많은 내가 괜한 수고로움을 드리나 싶어 가능하면 뒷문으로 다녔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마주칠 때마다 감사히 인사하는 정도로 용기를 냈다.

지금은 이사를 해서 뵐 수 없지만 종종 이분의 성의를 생각한다. 단정한 목소리, 살며시 움직이는 몸짓, 좋은 태도가 만들어내는 다름에 대해서. 그 모든 것이 과도하지 않고 그저 적절할 때 생기는 안정감에 대해서도. 한번은 짧은 문의를 드렸는데 정작 나라는 입주자를 특정해 인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그 이상의 말은 굳이 하지 않는 것이 이분에게는 적절한 거리인 듯했다. 왠지 모르게 그것이 더욱 좋았다.

‘나’라는 개인이 특별하지 않다는 건 때로는 편안함을 준다. 어쩌면 그것은 ‘나’라는 대상을 향한 적절한 거리감 덕분 아닐까? 타인과의 친분 관계에서도 뭔가 편치 않다면, 그건 꼭 어느 한 편이 틀려서 그런 게 아닐지 모른다. 각자가 선호하는 거리감이 달라서, 혹은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위치가 꽤나 달라서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당신도 나도 틀린 건 아닐 거예요. 둘 사이에 서로 편안할 수 있는 거리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혼자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의 불편함을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말이다.

인사를 나누며 얻은 좋은 거리감에 대한 단서는 내가 몰두하는 추상에서의 개념을 환기한다. 추상은 세상의 어떤 가치에 대해서 내가 가졌던 인식을 흔든다. 여기에도 거리감이라는 척도가 있다. 내가 찾는 그것은 눈에서 멀어지며 다른 점을 보여주니까.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음은 여전히 믿어지니까.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번민과 갈등 뒤에는 추상적 가치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논리를 갖는다. 직장에서, 공공장소에서, 집 안에서 개인들이 접하는 수사는 다르다.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되면 가치를 다루기 어려운 데서 오는 서투름과 바라지 않는 것을 피하려는 방어막도 함께 보이게 될까? 그 다종다양함을 식별할 수 있다면, 불완전하고 이질적인 화법으로 가득한 세계가 드러날 것이다.

그걸 잘 분별하고 직시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인지 나를 포함한 여러 개인들은 불가해한 상태를 감내하기도 하며, 오인하고 단정 짓기도 한다. 일단은 잠정적 결론이 마음 편할지라도, 한 번 반문하기를 택해본다. 그 생각만이 맞는 것일까? 어쩌면 같은 일을 두고도 수십 가지 다른 가정이 가능할 수 있는 건 아닐까? 그에 따라 생겨나는 감정도 수십 가지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여보는 것이 괜찮다면, 첨예한 마음이 잦아들지도 모른다.

추상이 제안하는 거리감을 따라가면 어떤 것의 온전하고 독자적인 자리가 나온다. 나를 가리키는 단어들, 혹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의 속성으로부터 멀어진 아무도 아닌 누군가가 그곳에 자리한다. 놀랍게도 그건 고립의 자리가 아니다. 경비원 선생님의 목소리처럼, 그게 여전히 힘이 되는 것처럼, 그것이 꼭 세상으로부터 벽을 높이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아무도 아닌 ‘나’를 볼 수 있다면, 옆에 잠시 있는 다른 대상에도 이른 앎을 청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중에 ‘나’임을 알려준 사람들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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