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옥의 정서를 품은 LA 저택

셀럽들이 사랑하는 디자인 듀오, 하우스 오브 롤리슨House of Rolison에게 로스앤젤레스 벨에어의 저택은 여느 프로젝트와는 결이 달랐다.

EDITOR 김민지 PHOTOGRAPHER 개빈 카터Gavin Cater

높은 층고의 박공 지붕 덕에 개방감 있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메인 거실 풍경.


(왼쪽부터) 어맨다 리와 테일러 한.


HOUSE OF ROLISON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디자인·개발 스튜디오로, 2022년 어맨다 리와 테일러 한이 설립했다. 빈티지한 디자인 감성과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해 세련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집 본연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 이들의 스타일이다.


LA에서 가장 배타적인 고급 주거 지역으로 꼽히는 벨에어 로드. 약 3m 높이의 게이트를 지나 긴 사설 진입로 끝에 이르면 ‘스트라다 베키아Strada Vecchia’가 있다. 3개의 독립된 건물로 이루어진 이 저택은 침실 6개, 욕실 10개 규모로 태평양 바다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 전망을 갖췄다. 원래 한 일본인 가족을 위해 지어졌던 이 집의 리모델링을 맡은 건 하우스 오브 롤리슨. 어맨다 리Amanda Leigh와 테일러 한Taylor Hahn이 2022년 설립한 이 스튜디오의 작업 방식은 조금 색다르다. 클라이언트를 기다리는 대신, 낡고 잊힌 집을 직접 사들여 되살린 뒤 다시 시장에 내놓는다. 건축을 공부한 테일러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어맨다. 두 사람이 주목한 건 오래된 집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었다. 겉모습만 그럴듯하고 속은 부실하거나, 기능은 멀쩡한데 영혼이 없거나. 그 중간 지점을 채우는 게 이들의 일이 됐다.

훌륭한 결과물은 셀럽들의 선택을 받았다. 블랙핑크 리사는 하우스 오브 롤리슨이 되살린 베벌리힐스의 100년 된 저택을 구매했고, 사브리나 카펜터도 이들이 손본 할리우드 힐스의 집에 정착했다. ‘셀럽이 사랑하는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붙었지만, 두 사람을 지금 자리에 세운 건 매매가나 유명 바이어 명단이 아닌 집을 다루는 방식이다. 낡은 걸 걷어내기 전에 그 안에 남은 이야기부터 읽는 것. 스트라다 베키아는 그 방식이 특히 까다롭게 시험대에 오른 프로젝트였다. 일본계 혈통을 지닌 테일러 한에게, 일본인 가족의 정서를 담아 지어진 이 집은 낯설지 않았다. 목표는 하나였다. 처음 지어졌을 때의 정신은 잃지 않으면서 지금 이 시대의 삶을 자연스럽게 얹는 것.



손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바 형태로 만든 메인 주방.


야외 수영장 옆에 마련한 야외 목욕 공간.


빛과 침묵이 남긴 자리

손을 댄 건 눈에 잘 띄지 않는 지점부터였다. 전통 일본 가옥에는 신발을 벗고 한 단 올라서서 거실로 들어가는 전환의 순간이 있다. 두 사람은 이 감각을 현관으로 옮겨왔다. 현관 바닥을 낮춰 집에 들어설 때 한 단 오르도록 만든 것. 이 집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감각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5m에 가까운 천장과 대형 천창이 자연광을 집 안 깊숙이 들이고, 곳곳에 있는 커다란 창문이 그 빛을 다시 한 번 걸러낸다. 또한 야외 목욕 공간까지 마련해 몸을 씻는 행위를 사적인 의식처럼 경험하게 만드는 등 집 곳곳에 사색할 수 있는 ‘네스팅nesting’ 공간을 마련했다. 소재 또한 석회암과 천연 점토, 손으로 깎은 대리석 등 시간이 흐를수록 멋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들만 고르고 골랐다.

집의 흐름은 실내에서 끝나지 않는다. 풀 테라스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 가파른 언덕을 따라 400m 남짓한 산책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목적지로 직행하기보다 걷는 행위 자체를 위한 길이다. 그 길 끝에는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수영장과 프라이빗 사우나, 손님을 맞기 위한 아웃도어 키친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실내 주방 역시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 특징. 공간을 완성한 어맨다와 테일러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차분하고 아늑한 메인 침실. 집 안에 놓인 아트 작품들은 스튜디오Studio CT가 큐레이션을 맡았다.


하우스 오브 롤리슨과의 대화


원래 이 집에는 고요한 일본풍의 정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성격을 지키며 확장한다는 게 실제로는 어떤 작업이었나요? 제게 이 작업은 일본식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 안에 담긴 사고방식을 존중하는 일이었죠. 가장 마음에 드는 예가 현관입니다. 전통 일본 가옥에는 신발을 벗고 한 단 올라서서 거실로 들어가는 전환의 순간이 있잖아요. 저희는 그 개념을 재해석해서 현관 바닥을 낮추고, 집 안으로 들어설 때 한 단 올라서게 만들었어요. 아주 사소한 변화지만, 집에 들어서는 경험 자체를 완전히 바꿔 놓더라고요.


오래된 집을 다루다 보면 원래의 정취를 지키고 싶어도 구조적 제약에 부딪히기 마련이죠. 정말 제약이 끊임없이 있었어요. 가장 큰 숙제는 이 집만의 고유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지금의 생활 방식에 맞게 만드는 거였죠. 무언가를 바꿀 때마다 저희끼리 꼭 물었어요. 이게 이 집을 더 이 집답게 만드는 변화인지, 그 반대인지. 그 질문 하나가 거의 모든 결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내 . 외부의 경계를 지워 탁 트인 개방감을 주는 풀 테라스.


‘네스팅’ 공간 같은 웰니스 디테일은 어디서 나온 아이디어인가요? 저희는 디벨로퍼라서 이런 결정을 내려줄 클라이언트가 따로 없어요. 저희 스스로 정하는 거죠. 모든 요소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이게 누군가의 일상을 정말로 더 낫게 만들어줄까?” 저희는 자신이 진짜 살고 싶은 집을 만들려고 해요. 스스로 그 공간을 쓰는 게 설렌다면, 다른 사람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집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의식들에 대해 많은 시간을 고민하죠. 누군가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어디에 자연스럽게 앉게 될까? 어디에서 책을 읽게 될까? 샤워가 그저 서둘러 해버리는 일이 아니라 잠시 멈춰가는 시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욕실이 단순히 기능적인 공간이 아니라 회복의 공간처럼 느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풀 테라스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언덕 지형을 잘 살렸더라고요. 산책로의 경사가 워낙 가팔라서 모든 선택 하나하나가 의도적으로 느껴져야 했습니다. 조경이 ‘설계된’ 티가 나기보다 ‘발견되는’ 느낌이길 바랐거든요. 걷다 보면 잠시 멈춰 서는 지점들과 프레임처럼 담기는 풍경, 오래된 나무들, 건축물이 풍경 속으로 슬며시 사라지는 순간들이 나오죠. 그 산책길 자체가 집 안의 방만큼이나 중요했습니다.


400m 남짓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야외 수영장과 프라이빗 사우나.


이번에 함께한 브랜드 중 이 집의 정체성과 특히 맞닿아 있다고 느끼는 곳이 있다면요? 하나만 고르기는 어렵지만, 굳이 꼽자면 아르하우스 Arhaus와 보치 Bocci일 것 같아요. 스트라다 형태의 집은 가장 큰 난제가 스케일이에요. 아르하우스는 존재감은 확실하면서도 결코 둔탁하거나 과해 보이지 않는 가구를 만들어요. 보치는 부드러움과 움직임이 있어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조명을 만듭니다. 결국 두 브랜드 모두 건축과 경쟁하지 않아요. 그저 집이 더 집다워지도록 도와줄 뿐이죠.


앞으로 하우스 오브 롤리슨이 탐구해 나가고 싶은 방향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잊힌 집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계속 찾아내고 싶어요. 오래된 집은 저마다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건 한눈에 보이고, 어떤 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 보이죠. 저희는 집이 사진에 얼마나 잘 담기는지보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람들이 정말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집을 계속 만들 수 있다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COOPERATION 하우스 오브 롤리슨(houseofrolison.com)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