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김이라는 이름의 전초기지

여기, 안전한 문법 대신 낯선 불협화음을 택한 자동차들이 있다. 출시 당시 혹평을 받았으나 가치를 인정받은 과거의 유산부터, 조형적 논란 속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최신 모델까지. 이들이 선사하는 시각적 충격은 파격을 넘어 미래의 표준을 정립하는 진화의 과정이다.

EDITOR 박이현 WRITER 이정훈

페라리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


아름다움은 주관적인가, 객관적인가. 디자이너 슈테판 자크마이스터Stefan Sagmeister는 2018년 오스트리아 빈을 시작으로 세계 전역을 순회한 전시 <자크마이스터 & 월시: 뷰티>를 통해 아름다움의 객관성을 주장했다. 대칭 구조, 황금 비율, 유기적 곡선처럼 인류의 뇌가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조형적 규칙이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이 문법은 형태와 비율이 엄격한 자동차 디자인에서도 유효하다. 대중은 균형 잡힌 비례를 마주할 때 직관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제조사는 시장에서 검증된 디자인을 반복한다. 이러한 로직을 뒤집으면 새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아름다움이 객관적이고 안전한 규칙의 영역이라면, 반대로 ‘못생김’은 획일화된 객관성을 깨부수고 진화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전초기지가 된다.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서 못생김은 종종 ‘익숙하지 않음’의 다른 이름이었다. 익숙한 비례를 걷어내는 순간 시장은 즉각 거부 반응을 보이지만, 일부는 시간이 흐른 뒤 선구자로 재평가받는다. 조형적 미를 타협하면서까지 구조적 필연성과 기능주의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1998년 출시 직후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차’로 선정된 피아트 ‘멀티플라’.


피아트 ‘멀티플라’는 실내 거주성과 공간 효율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심미성을 타협한 기능주의의 산물이다.


기능주의의 역설, 피아트 멀티플라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자동차를 꼽으라면 피아트 ‘멀티플라Multipla’가 첫손에 꼽힐 것이다. 1998년 출시 직후 글로벌 매체들은 이 차량을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차’로 선정했다. 전면 유리 하단에 조명 단을 배치한 2단 구조와 곤충의 눈을 연상시키는 하이빔 램프는 전형적인 자동차 비례를 파괴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외형은 실내 거주성과 공간 효율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심미성을 타협한 기능주의의 산물이다. 멀티플라의 전장은 3994mm로 소형 해치백 수준이다. 디자이너는 한정된 전장 안에서 거주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폭을 1871mm까지 넓히는 파격을 택했다. 이 비례를 통해 1열과 2열에 각각 독립 시트 3개씩을 배치하는 3+3 시트 구조를 구현했다. 탑승자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측면 유리는 지면과 수직에 가깝게 세워졌고, 전면 유리는 하단부까지 확장되었다. 대량생산 자동차 중 유례가 없는 면적의 유리창을 갖춘 구조였다.

대중은 이 낯선 비례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외모에 대한 혹평과 판매 부진이 이어지자 피아트는 2004년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2세대 모델을 선보였다. 전면부의 2단 구조를 지우고 평범한 사각형 그릴과 헤드램프로 외관을 수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결국 2010년 단종됐다. 하지만 디자인계의 시선은 대중과 사뭇 달랐다. 차량의 구조적 혁신성에 주목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멀티플라를 처음 출시한 이듬해인 1999년, 기획전 를 통해 이 차량을 전시했다. 미술관은 21세기 초 자동차 산업과 소비자가 직면할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조건에 맞선 혁신적인 차량 9대 중 하나로 멀티플라를 선정했다. 혹평 속에서도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라는 디자인 원칙과 아키텍처의 혁신성을 인정한 결과였다.

최근 멀티플라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피아트가 스텔란티스의 차세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멀티플라의 이름을 계승한 패밀리형 순수 전기차 출시를 예고했기 때문. 과거의 기능주의 아이콘이 전동화 시대에 어떤 조형적 혁신으로 부활할지 이목이 쏠린다.



포르쉐 ‘911(996)’의 헤드라이트는 생존과 생산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추구한 비즈니스 전략의 결과물이다. 방향 지시등을 포함한 앞쪽 조명 장치들을 하나의 모듈로 통합해 조립 공정을 단순화하는 동시에, 보급형 로드스터인 ‘박스터’와 전면부 구조 및 부품을 공유하도록 했다.


생존을 위한 헤드라이트 디자인, 포르쉐 911(996)
자동차 전면부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입이라면 두 눈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헤드라이트다. 헤드라이트 디자인이 차량 전체의 인상과 정체성을 좌우하는 이유다. 특히 포르쉐 ‘911’ 계보에서 헤드라이트가 지니는 상징성은 절대적이었다. 1963년 1세대 모델 출시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지해온 독립된 원형 헤드라이트는 911의 정체성이자 대체 불가능한 기호였다.

하지만 1997년 등장한 5세대 ‘911(996)’은 이 관습을 탈피했다. 포르쉐는 전통적인 원형 램프 대신 방향 지시등과 안개등을 하나의 모듈로 묶어 전면 펜더 흐름에 통합한 일체형 헤드라이트를 채택했다. 이 시도의 배경에는 브랜드의 재정적 위기가 자리했다. 당시 포르쉐는 복잡한 생산 라인과 수작업 공정의 비효율성, 여기에 경기 침체와 환율 악재가 겹치며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생산 최적화와 원가절감이 절실했던 포르쉐는 전례 없는 결단을 내렸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은 방향 지시등을 포함한 앞쪽 조명 장치들을 하나의 모듈로 통합해 조립 공정을 단순화하는 동시에, 보급형 로드스터인 ‘박스터’와 전면부 구조 및 부품을 공유하도록 했다. 달리 말해, 996의 헤드라이트는 생존과 생산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추구한 비즈니스 전략의 결과물이었던 셈.

경영상의 당위성과 달리, 시장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마니아들과 평단은 고유의 인상을 잃어버린 전면부에 혹평을 쏟아냈다. 그들은 일체형 램프의 형태를 비하하며 ‘달걀프라이 램프Fried-egg headlights’라는 별명을 붙였고, 전통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이어갔다. 저항에 직면한 포르쉐는 결국 2002년 헤드라이트 하단부 끝을 날카롭게 다듬어 형태를 수정해야 했다. 나아가 다음 세대인 ‘997’에 이르러서는 다시 전통적인 원형 헤드라이트로 회귀했다. 새로운 시도는 지속되지 못했고, 결국 과거의 문법으로 되돌아갔으나, 996의 실험을 디자인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 일체형 헤드라이트가 상징하는 원가절감 노력과, 공랭식에서 수랭식으로의 엔진 패러다임 전환이 맞물리며 포르쉐가 재정 위기를 극복하는 결정적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현재, 996의 헤드라이트는 현대적 스포츠카 제조 공정의 효율성을 정립한 이정표로도 인정받는다. 911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대담했던 미학적 시도로 재평가받는 이유다.



BMW ‘더 뉴 iX3’는 전동화에 따라 내연기관 특유의 배열 구조가 필요 없어지자 입체적인 그릴을 지우고 매끄러운 평면 패널을 전면에 배치했다.


그릴에서 인터페이스로, BMW 더 뉴 iX3

BMW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노이어 클라쎄’의 첫 번째 양산형 모델 ‘더 뉴 iX3’의 등장은 자동차 디자인에서 브랜드 계보를 규정해온 ‘키드니 그릴’에 균열을 냈다. 콩팥을 닮아 이름 붙은 키드니 그릴은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BMW 전면부 중심을 지켜온 상징물이다. 엔진 열을 식히는 공기 흡입구라는 기술적 기능을 넘어 브랜드를 단번에 식별하게 하는 ‘얼굴’이자 역동성을 증명하는 시각적 헤리티지였다. 더 뉴 iX3는 이 얼굴의 문법을 재정의한다. BMW는 전동화에 따라 내연기관 특유의 배열 구조가 필요 없어지자 입체적인 그릴을 지우고 매끄러운 평면 패널을 전면에 배치했다. 작년에 외형이 처음 공개되자 시장에서는 브랜드 특유의 입체감과 역동성이 반감되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전통적인 흡기 구조가 사라진 전면부는 마니아들에게 생경함과 이질감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 파격은 내연기관 아키텍처를 전기차 시대로 이식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필연적인 도약이다. 더 뉴 iX3의 전면부는 디자이너의 돌출된 변주가 아니라, 1960년대 브랜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던 노이어 클라쎄의 그릴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결실이다. 물리적 구멍을 디지털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패턴으로 치환하고, 크롬 장식 대신 정교한 조명 라인을 배치해 전기차 시대에 걸맞은 인터페이스 역할을 부여했다. 얼굴을 파괴했다는 초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더 뉴 iX3가 제안한 조형은 물리적 부품이 사라진 자리를 디지털 조명과 정돈된 면으로 재정의하는 이정표에 가깝다. 이 시도가 전동화 시대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지, 시장은 유보적인 태도로 그 가능성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삼각형과 직선, 평평한 면으로만 차체를 구성하며 픽업트럭이라는 세그먼트의 경계를 완전히 허문 테슬라 ‘사이버트럭’.


소재가 만든 새로운 아키텍처, 테슬라 사이버트럭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픽업트럭은 가장 보수적이고 전형적인 문법을 유지해온 영역이다. 대형 그릴과 분할된 적재함이라는 전통적 비례는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규칙이었다. 테슬라 ‘사이버트럭Cybertruck’은 이 완고한 관습을 배반하며 등장했다. 기존 트럭의 비례를 완전히 지워내고 오직 거대한 삼각형과 직선, 평평한 면으로만 차체를 구성하며 픽업트럭이라는 세그먼트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다. 이처럼 생경하고 독특한 외형은 디자이너의 미학적 독단이 아닌, 외장 소재의 물리적 특성에서 도출된 귀결이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선 ‘스타십’에 사용되는 초고경도 스테인리스 스틸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소재는 일반적인 자동차 제조 공정에서 쓰는 프레스 기계로 가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압력을 가하면 금형이 파손되거나 소재 자체가 찢어지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결국 디자이너들은 강철판에 홈을 파고 직선으로 접어서 형태를 만드는 ‘오리가미’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 재료의 단단함이 차량의 외관 형태를 규정하게 만든 것이다. 스타일링이 소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의 한계가 역으로 새로운 형태를 창조한 셈.

이는 자동차 소재가 단순히 표면을 감싸는 것을 넘어, 차량의 형태와 정체성을 규정하는 아키텍처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디자인을 통해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우주선 소재와 종이접기 구조에서 탄생한 이 파격은 디자인 평단을 넘어 실제 자동차 시장에서도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투박하고 전통적인 노동의 도구로 인식되던 픽업트럭을 미래지향적인 하이테크 디바이스이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스타일링의 규칙을 완전히 수정한 이 시도가 미래 트럭 디자인의 진일보를 이끌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페라리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는 디지털 화면으로만 가득 찬 실내 구성을 거부했다. 디스플레이를 지원하되, 운전자가 조작할 때 손맛을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정교하게 가공한 물리적 버튼과 촉각 피드백 시스템을 유지했다.


유산과 미래의 충돌, 페라리 루체

페라리 ‘루체 Luce’는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다. 페라리는 전동화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아 애플 전 최고 디자인 책임자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 에이전시 ‘러브프롬’과 손을 잡았다. 루체의 외형이 공개되자 시장과 팬덤인 ‘페라리스티’는 당혹감을 나타냈다. 보닛이 길고 차체 후면이 짧은 전통적인 스포츠카 비례가 사라졌기 때문. 일부 마니아들은 긴장감이 지워진 전면부를 두고 “지루한 덩어리”라며 비판했다. 페라리 전 회장 루카 디 몬테제몰로 역시 “적어도 저 차에서는 페라리 로고를 빼야 한다”라고 혹평했다.

혹평의 이면에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라는 구조적 필연성이 자리한다. 거대한 12기통 엔진과 배기 시스템이 사라진 자리에 배터리와 모터를 배치하면서 기존 슈퍼카 레이아웃을 고수할 필요가 없어졌다. 엔진 룸 제약에서 벗어난 루체는 보닛이 짧아지고 실내 공간이 앞뒤로 확장된 일체형 구조를 띤다. 조너선 아이브는 이 구조적 자유를 바탕으로 내부 효율성을 극대화해 4도어 5인승 레이아웃을 구현했다. 플랫폼의 변화는 고스란히 시각적 변화로 드러난다. 과거 페라리가 엔진을 과시하기 위해 보닛 위 공기 흡입구와 입체적인 슬릿을 지향했다면, 루체는 전면부터 후면까지 하나의 유리로 이어지는 캐노피 구조를 채택하고 외관 접합선을 숨겼다. 겉모습이 정돈된 전자 기기 같은 인상을 주는 이유다.

외관과 달리 실내는 또 다른 반전을 선사한다. 디지털 화면으로만 가득 찬 구성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디스플레이를 지원하되, 운전자가 조작할 때 손맛을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정교하게 가공한 물리적 버튼과 촉각 피드백 시스템을 고수했다. 외형에서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구현하면서도, 내부에는 아날로그 방식을 남겨두어 스포츠카 본연의 물리적인 조작감과 페라리 특유의 운전 환경을 고수했다. 루체가 제시한 새로운 문법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비판과 전동화 시대에 걸맞은 이동 공간의 진일보라는 찬사가 공존한다. 이탈리아어로 ‘빛’을 뜻하는 루체가 그 이름처럼 페라리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을 비출 수 있을까. 유산과 기술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이 생경한 비례가 새로운 럭셔리의 표준이 될 수 있을지, 시장은 이제 막 그 답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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