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24개의 다이아몬드를
밴드에 세팅한 ‘LV 다이아몬드 솔리테르’ 링,
0.3캐럿의 모노그램 스타 컷 중앙 스톤이
빛을 발하는 ‘LV 다이아몬드 펜던트’ 네크리스,
1캐럿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영롱한 ‘LV 다이아몬드 파베 솔리테르’ 링,
1캐럿의 모노그램 스타 컷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는 ‘LV 다이아몬드 스터드’ 이어링
모두 LOUIS VUITTON.
지난 5월 말 라스베이거스 주얼리 박람회장. 한 부스의 직원이 스마트폰을 다이아몬드에 가까이 대자 몇 초 만에 등급과 대략의 가격대가 화면에 떴다. 카메라로 스캔한 이미지를 AI가 분석한 결과였다. 나는 습관처럼 루페loupe를 왼쪽 눈가에 대고 방금 기계가 스캔한 그 보석을 처음부터 다시 살폈다. 몸으로 익힌 감각을 기계가 순식간에 대신하는 장면이 낯설어서였을까, 한동안 루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스를 나와 쇼장을 둘러보는데, 조명 아래 끝없이 늘어선 다이아몬드 사이에서 사람들은 AI를 새로운 화두로 주고받고 있었다. 세미나에서는 테크놀로지를 별도 주제로 다루었고, 전시장 곳곳은 AI 디자인 도구와 블록체인 추적 시스템으로 채워져 있었다.
감정을 학습하는 기계
보석을 감정하는 일은 오랫동안 인간의 영역이었다. 현미경 너머로 내포물의 위치와 종류를 식별하고 연마 상태와 빛의 반사를 살피는 데에는 숙련된 안목이 필수적이었다. 그 과정을 AI가 빠르게 넘겨받고 있다. 미국보석학연구소(GIA)는 IBM과 손잡고 다이아몬드 클래리티clarity 자동 판정 기술을 도입하는가 하면, 스위스 귀벨린Gübelin 감정원은 ‘젬텔리전스’ 시스템으로 에메랄드와 루비, 사파이어의 원산지를 가려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인간의 역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보기 드문 내포물이나 경계에 놓인 까다로운 스톤은 결국 인간 감정사의 눈을 거쳐야 등급이 최종 확정된다. 귀벨린은 AI의 판정이 일정 신뢰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복수의 시니어 감정사가 참여하는 정밀 재분석을 진행하고, 모든 보석은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의 검증을 통과하도록 설계했다. 수억 년의 지질학적 형성 과정이 원석마다 남긴 고유한 특성을 학습 데이터만으로 결론짓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 감정 현장에서는 산지나 처리 여부를 확정하지 못해 ‘판정 불가’로 남기는 스톤도 있다. 하이엔드 컬렉터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원산지 프리미엄 역시 AI의 확률 수치만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감정사의 직관과 현미경 관찰, 그리고 시장이 오랜 세월 쌓아온 신뢰 위에서 형성되는 가치다.

불가리와 미디어 아티스트 레피크 아나돌Refik
Anadol의 협업 다큐멘터리 영화
럭셔리 메종이 AI를 다루는 방식
AI는 감정원에만 머물지 않고 메종의 제작과 마케팅 현장까지 들어서고 있다. 럭셔리 하우스들은 창작의 영감을 얻는 과정과 이를 실용적으로 검증하는 단계에서 기술을 영리하게 접목한다. 지난해 불가리가 푸른 뱀의 해를 기념해 미디어 아티스트 레피크 아나돌과 함께 선보인 대형 미디어 아트 ‘인피니토: AI 데이터 스컬프처Infinito: AI Data Sculpture’가 좋은 예다. 기계 학습을 거친 알고리즘이 메종의 아이콘인 세르펜티의 형상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며 유서 깊은 아카이브의 생명력을 현대적인 시각언어로 풀어낸 미디어 작품이다.
부쉐론은 감정 영역에서 사린 테크놀로지와 손잡았다. 브라이들 라인 ‘에투알 드 파리’의 4C 감정은 물론, 원석rough의 채굴 산지부터 가공을 거쳐 나석loose stone이 되기까지 전 여정을 투명하게 추적한다. 적용 범위도 점차 메종의 모든 다이아몬드로 넓혀가고 있다. 인간의 주관적 견해나 환경에 따른 미세한 오차를 배제하고, 보석의 이동 경로까지 메종 명의의 감정서에 담아내는 방식이다. 브랜드의 서사를 확장할 때는 기술로 시각적 몰입감을 끌어올리고, 고객의 신뢰가 걸린 단계에서는 기계의 객관적인 데이터를 활용한다.

인공지능과 미디어를 활용해 시각화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레피크 아나돌의 작업 과정.
진짜보다 정교한 가짜
한때 판매자의 전유물이던 정보가 소비자에게도 열리면서 매장의 풍경 역시 달라졌다. 생성형 AI와 주얼리 앱으로 정보를 미리 학습한 젊은 소비자들이 늘면서, 매장을 찾기 전부터 유색 보석의 특정 산지나 컬러, 컷을 꼼꼼하게 지정해 문의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실제로 하이엔드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구매 과정에서 AI를 비서처럼 활용하며 제품을 탐색하고 수치를 비교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스크롤 몇 번으로 손쉽게 얻은 정보가 곧 안목의 깊이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가짜 서사 사이에서 소비자가 가려내야 할 혼선이 늘어났다. 고도화된 생성형 AI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짜 아카이브 도안을 그려내고 날조된 서사까지 정교하게 꾸며낸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거치지 않고 AI 플랫폼에서 직접 정보를 소비할수록, 메종이 쌓아온 고유한 내러티브는 왜곡되기 쉽다. 진짜임을 증명하는 부담은 메종의 몫이 되었다. 프라다는 파인 주얼리 ‘이터널 골드’의 전 생산 과정을 아우라Aura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통상 0.5캐럿 이상에서만 가능하던 다이아몬드 산지 추적을 최소 사이즈의 스톤까지 넓혔다. 메종들은 이런 디지털 보증 체계를 물리적 아카이브 원본, 그리고 장인의 구술 기록과 연동하며 방어막을 두텁게 쌓는다. 하지만 철저한 검증을 거치는 메종의 시스템과 달리, 일반 소비자용 감정 앱의 정확도는 전문 장비에 미치지 못한다. 가벼운 데이터 몇 줄로 보석의 가치를 서둘러 재단할 일이 아니다.

동일한 형태지만 각기 다른 노하우로 인간의 개성을
비유한 ‘까르뜨 블랑슈’ 하이 주얼리 컬렉션
‘휴먼 빙Human Being’ 네크리스 BOUCHERON.
아틀리에의 시간
AI만이 아니다. 아틀리에의 풍경도 디지털 기술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메종들은 수십 년치 아카이브를 디지털화해 옛 도안에서 영감을 얻는 스케치북으로 활용하는 한편, 스톤 커팅 설계 단계부터 고도화된 연산 프로그램을 투입한다. 최적의 빛 반사를 찾아내는 작업에는 수개월의 시뮬레이션이 걸리기도 한다. 루이 비통의 상징적인 모노그램 플라워 문양을 특허받은 53면 커팅 기술로 재해석한 ‘LV 모노그램 스타 컷’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 별 모양 꽃잎 하나하나의 대칭을 잡는 데만 수년이 걸리고, 완성까지는 소수의 장인만이 해낼 수 있는 정밀한 세공이 더해진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이 내놓는 완벽한 수치는 시작점일 뿐이다. 이를 해석해 실제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감각이다.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메종일수록 사람이 직접 완성하는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수백 년 동안 장인들의 손끝을 거쳐온 에나멜링과 세밀화, 젬스톤 카빙 같은 공예 기법들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부쉐론이 서로 다른 분야 장인들의 노하우를 하나로 엮어 ‘인간Human Being’ 자체를 주제로 삼은 ‘까르뜨 블랑슈Carte Blanche’ 컬렉션을 선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인의 기량은 완성품보다 제작 과정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하이 주얼리 제작은 시뮬레이션 화면 속의 완벽함이 현실의 공방에서 물리적 한계와 끊임없이 부딪치며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하이 주얼리 한 점에는 수천, 수만 시간에 이르는 장인의 공력이 고스란히 쌓인다. 착용했을 때 피부에 닿는 미세한 무게감, 몸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각도 같은 섬세한 디테일은 기계의 연산만으로 포착할 수 없다. 현장의 숙련된 경험으로 조율하고 보정해야 하는 영역이다.

18K 화이트 골드의 기하학적 패턴과 33개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가 맞물린
‘콰트로 레디언트 그로그랭’ 웨딩 밴드, 화이트 세라믹 패턴에 33개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진 ‘콰트로 더블 화이트 다이아몬드’ 웨딩 밴드, 18K 옐로 골드의
입체적인 패턴과 화이트 골드 그리고 33개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를 정교하게 세공한
‘콰트로 레디언트 클루 드 파리’ 웨딩 밴드 모두 BOUCHERON.

뱀의 비늘을 모티프로 머리와 꼬리에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한 ‘세르펜티 바이퍼’ 네크리스,
로즈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풀 파베 세팅한
‘세르펜티 바이퍼’ 네크리스 모두 BVLGARI.

모노그램을 오마주한 V 라인 안에 모노그램 스타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LV 다이아몬드 파베 더블’ 링 LOUIS VUITTON.
뱀의 비늘을 형상화한 모듈식 구조 위로 다이아몬드를 풀 파베 세팅한
‘세르펜티 바이퍼’ 네크리스 BVLGARI.
다면체 구조 플래티넘 밴드에 3개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를 장식한
‘파셋 플래티늄 다이아몬드’ 웨딩 밴드 BOUCHERON.
WRITER 윤성원 주얼리 히스토리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등을 집필했으며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등 모든 분야를 융합적으로 다루고, 나아가 보석업계의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COOPERATION 루이 비통(3432-1854), 부쉐론(080-822-0250), 불가리(6105-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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