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밀 에르메스의 사위인 로베르 뒤마가 선보인 최초의 실크 스카프 ‘주 데 옴니뷔스 에 담 블랑슈Jeu des omnibus et dames blanches’. Scarf 화사한 패턴과 부드러운 촉감으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스카프. 하나의 패션 아이템을 넘어 시대의 미감과 문화를 품어온 스카프의 기원부터 현재까지, 그 길고도 우아한 여정을 따라가본다.
목에 가볍게 두르는 것만으로도 스타일에 변주를 더하고, 때로는 머리를 감싸거나 가방에 묶어 다채로운 스타일을 연출하는 스카프. 오늘날 스카프는 활용도 높은 패션 액세서리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그 시작은 의외로 화려하지 않았다. 추위와 햇빛을 막고 땀과 먼지를 닦기 위해 몸에 둘렀던 한 장의 천. 스카프의 역사는 어쩌면 인간이 천을 몸에 걸치기 시작한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능을 위해 탄생한 천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신분을 드러내는 표식이 되었고, 우아함을 완성하는 장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마침내 브랜드의 미학과 장인 정신을 담아내는 스타일 아이콘으로 진화했다.

2003년 크로아티아
풀라 아레나를 감싼
세계 최대 크기의 크라바트.
스카프, 시대를 두른 아이콘
17세기 초 유럽을 휩쓴 30년 전쟁은 스카프의 역사에도 흥미로운 전환점을 남겼다. 당시 합스부르크 군대에 소속된 크로아티아 병사들은 목에 천을 둘렀는데, 이는 목을 보호하고 땀을 흡수하는 실용적인 목적과 함께 군복을 장식하는 역할도 했다. 또한 계급에 따라 실크부터 거친 직물까지 다양한 소재가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독특한 목 장식은 곧 프랑스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크로아티아인을 ‘크로아트Croate’라 불렀고, 크로아티아식 목 장식을 일컬어 ‘아 라 크로아트à la croate’라고 불렀는데 시간이 흐르며 이것이 변형되어 오늘날 프랑스어로 넥타이를 의미하는 ‘크라바트cravate’의 어원이 되었다. 이후 크라바트는 군인의 실용적인 복장을 넘어 프랑스 귀족 사회를 상징하는 세련된 남성 액세서리로 자리 잡았다.
스카프는 정치적 메세지를 전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목에 두른 스카프의 색상으로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는데,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색의 스카프를 착용하며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의 가치를 지지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표현했다. 프랑스 궁정에서 시작된 스카프의 유행은 곧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집트 원정 당시 현지의 화려한 숄과 스카프에 매료되어 아내 조제핀에게 선물했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스카프 수집에 빠진 조제핀 황후는 약 3년 동안 400여 점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스카프는 전쟁터에서 탄생한 실용적인 목 장식에서 출발해 군인의 계급과 소속을 드러내는 표식이 되었고, 나아가 정치적 신념과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의미를 확장해갔다. 이후 크라바트는 더욱 정교한 소재와 다양한 매듭법을 갖춘 남성복의 핵심 액세서리로 발전하며, 오늘날 넥타이의 기원이 되는 중요한 계보를 형성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반 옐라치치 광장에 자리한 요시프 옐라치치 장군의 기마 동상.

1962년 에르메스의 타이 광고 이미지. Advertisement for ties, 1962, © Draeger
패션을 넘어 예술이 되다
스카프가 오늘날과 같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20세기 패션 하우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스카프를 하나의 독립적인 패션 상품이자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매개체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에르메스다. 1937년, 에르메스는 첫 실크 스카프인 ‘주 데 옴니뷔스 에 담 블랑슈Jeu des omnibus et dames blanches(승합 마차와 담 블랑슈 보드 게임)’를 선보이며 스카프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파리 최초의 대중교통 운수 회사를 소재로 한 19세기 보드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섬세한 실크 프린트와 풍부한 색채로 스카프를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렸다. 에르메스의 스카프는 단순히 목에 두르는 천에 머물지 않았다. 마차와 승마, 자연과 여행 등 메종의 헤리티지를 상징하는 다양한 모티프를 담아내며 브랜드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캔버스 역할을 했다. 특히 실크 트윌 특유의 탄탄한 조직감과 선명한 발색은 에르메스 스카프만의 독보적인 매력을 자아냈고, 수십 가지 색상을 여러 차례에 걸쳐 인쇄하는 정교한 공정을 통해 높은 완성도를 구현했다. 그렇게 탄생한 스카프는 패션 액세서리를 넘어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과 미학을 응축한 상징적인 오브제로 자리매김했다.
시대를 초월한 패션 오브제
스카프의 가장 큰 매력은 정해진 사용법이 없다는 데 있다. 목에 두르거나 머리를 감싸는 전통적인 방식은 물론, 벨트처럼 허리에 연출하거나 가방에 묶고, 때로는 탱크 톱처럼 활용하는 등 착용자의 취향에 따라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하다. 하나의 스카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은 실용성과 장식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며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여기에 계절과 유행을 초월해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타임리스한 매력까지 더해지면서 스카프는 단순한 유행품을 넘어 수집할 가치가 있는 컬렉터블 아이템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에르메스의 성공 이후 스카프는 각 패션 하우스의 정체성과 미학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매체로 발전했으며, 오늘날에는 액세서리라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 브랜드의 역사와 장인 정신, 예술적 감각을 한눈에 보여주는 패션 오브제로 진화했다.
WAYS TO WEAR A SCARF
스카프 하나로 완성하는 다채로운 스타일링 활용법.

(왼쪽) 스카프를 셔츠 안으로 연출한 빌리 아일리시. @billieeilish (오른쪽) 프라다의 프린티드 실크 트윌 스키니 스카프.
SCARF STYLE 1. INSTEAD OF A TIE
타이의 격식이 부담스럽다면 스카프가 좋은 대안이 된다.
셔츠 칼라 아래에 가볍게 둘러 자연스럽게 매듭짓거나 셔츠 안으로
살짝 넣어 연출하면 포멀함과 여유로움을 동시에 갖춘 스타일이
완성된다. 특히 선명한 컬러나 개성 있는 패턴의 스카프는 룩에
세련된 포인트를 더하며 한층 감각적인 무드를 연출한다.

(왼쪽) 루이 비통의 ‘프롬 더 클라우드 스퀘어 90’ 스카프. (오른쪽) 스카프를 두건으로 활용한 리사. @lalalalisa_m
SCARF STYLE 2. SCARF ON THE HEAD
스카프는 흔히 보온과 보호를 위한 실용적인 아이템으로 여겨지지만, 머리에 두르는 순간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리사처럼 넉넉한 사이즈의 스카프를 우아한 헤드 스카프로 연출하거나, 머리를 땋을 때 트윌리를 자연스럽게 함께 엮어 감각적인 헤어 액세서리로 활용해보자. 또한 무심하게 묶어 올린 머리에 짧은 길이의 트윌리를 가볍게 더하는 것만으로도 큰 노력 없이 세련된 포인트를 완성할 수 있다.

(왼쪽) 페라가모 2026년 프리폴 컬렉션. (가운데) 샤넬 2026년 가을·겨울 프리 컬렉션. (오른쪽) 페라가모의 프린지 장식 롱 스카프.
SCARF STYLE 3. BELT ACCENT
몇 시즌 전부터 다양한 디자인의 벨트가 잇달아 등장하며 허리 장식의
존재감이 한층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카프 역시
새로운 벨트 스타일링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페라가모는 2026년 프리폴
컬렉션에서 롱 스카프를 허리에 둘러 벨트처럼 연출한 룩을 선보였는데,
이는 단순히 허리를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스카프가 뒤로 길게 흩날리며 우아하고 유려한 실루엣을 자아냈다.
샤넬 역시 2025/26년 가을·겨울 프리 컬렉션을 통해 트라이앵글 셰이프의
램스킨 반다나를 선보이며 새로운 스카프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스카프는 더 이상 목에 두르는 액세서리에 머물지 않는다.
허리 위에 가볍게 두르는 것만으로도 실루엣에 리듬감을 더한다.

(왼쪽) 트윌리를 가방의 톱 핸들에 감아 연출한 레오니 하네. @leoniehanne (위) 에르메스의 ‘부클 에 마이용’ 트윌리.
SCARF STYLE 4. WITH A BAG
스카프는 가방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가장 손쉬운 스타일링 도구이기도 하다. 톱 핸들에 가볍게 묶어 길게 늘어뜨리면 움직일 때마다 유려한 움직임이 더해져 한층 우아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특히 선명한 컬러나 개성 있는 패턴의 스카프를 활용하면 클래식한 가방에 신선한 포인트를 더할 수 있으며, 익숙한 디자인마저 전혀 다른 매력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COOPERATION 루이 비통(3432-1854), 샤넬(080-805-9628), 에르메스(542-6622), 페라가모(3430-7854), 프라다(3442-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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