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클린 케네디와 구찌 재키백

재키라는 이름의 가방

한 여성의 취향이 때론 패션사에 전설을 남기는데, 재클린 케네디와 구찌의 만남이 그러했다. 시대마다 새로운 해석을 입으며 구찌 하우스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재키 백’의 우아한 여정

EDITOR 이수연

(왼쪽) 1960년대에 제작된 ‘재키’ 아카이브 백.

(오른쪽) 1960년대 오리지널 ‘재키’ 백의 조형미를 담은 스케치.


BECOMING JACKIE

1950년대 백악관의 영부인들은 ‘대통령을 보조하는 조용한 아내’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 레이스를 겹겹이 덧댄 드레스에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보수적인 스타일은 당시 영부인의 전형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답답한 관습을 단숨에 깨뜨린 인물이 바로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다. 백악관에 입성한 그녀는 고루한 하이넥 대신 쇄골이 드러나는 보트넥을, 화려한 자수 대신 간결한 컬러 블로킹을 선택했다. 특히 샤넬 트위드를 즐겨 입으며 프랑스 오트 쿠튀르의 정교한 실루엣에 미국식 실용성을 접목해 젊고 현대적인 국가 이미지를 구축했다. 또한 해외 순방 때마다 방문국의 문화와 전통을 반영한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패션을 하나의 외교적 언어로 활용했다.

얼굴을 가득 덮는 오버사이즈 라운드 프레임 선글라스와 실크 스카프, 그리고 구찌의 ‘재키’ 백은 그녀를 상징하는 시그너처 아이템이었다. 1961년 처음 세상에 등장한 이 백의 원래 이름은 ‘콘스탄스Constance’였다. 승마용 안장에서 착안한 부드러운 실루엣이 특징으로, 1960년대 상류층 휴양 문화를 대표한 ‘제트셋Jet-Set’ 룩의 상징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재클린은 구찌 부티크에서 이 가방을 한 번에 6개나 구입했을 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백악관을 떠난 뒤 바이킹 프레스Viking Press의 편집자로 일하며 보다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그녀는 뉴욕 거리를 걷거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 가방을 즐겨 들었다. 때로는 파파라치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어깨에 자연스럽게 걸쳐지는 부드러운 실루엣과 피스톤 잠금장치는 훗날 ‘재키 룩’이라 불리는 그녀의 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파파라치 사진에 포착된 그녀의 어깨에는 늘 서로 다른 버전의 콘스탄스 백이 걸려 있었고, 이 모습은 전 세계 매체를 장식했다. 매장에 들어선 고객들 역시 더 이상 콘스탄스를 찾지 않았다. 대신 ‘재키가 들던 그 가방’을 찾기 시작했다. 고객들이 계속해서 ‘재키의 가방’이라고 부르자, 구찌는 결국 백의 이름을 ‘재키’로 공식 변경했다. 한 인물의 취향과 스타일이 럭셔리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제품명을 바꿔놓은 것이다. 패션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이례적인 순간이었다.


2014년 F/W 캠페인 영상 속 케이트 모스와 함께 등장한 ‘재키 소프트’ 백.


상큼한 라이트 핑크 컬러를 입은 ‘재키 1961’ 미니 호보백.


오래 착용한 듯한 외관의 ‘재키 1961’ 미디엄 숄더백.


JACKIE, REIMAGINED

이후 ‘재키’ 백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거쳐가는 필수 관문 같은 아이템이 되었다. 1990년대 톰 포드는 피스톤 자물쇠를 각진 셰이프로 교체해 날렵한 관능미를 더했고, 2009년 프리다 잔니니는 오리지널 피스톤 자물쇠 장식을 되살려 ‘뉴 재키’를 세상에 내놓았다. 뒤이어 케이트 모스와 함께한 캠페인에서는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재키 소프트’를 선보였다. 2020년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크기와 컬러에 변화를 주어 ‘재키 1961’로 재탄생시켰다. 크로스 보디 연출이 가능한 탈부착식 스트랩을 추가하고 미니부터 미디엄까지 선택의 폭을 넓혔다. 최근에는 톰 포드 시절 고혹적인 무드와 스트리트 감성을 결합한 대담한 변주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는 가죽 표면에 스크래치를 내고, 신체 라인에 붙는 슬림한 실루엣을 출시하며 형태적 한계를 허물었다. ‘재키’ 백은 시대 흐름을 흡수하며 늘 당대 전위적인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우스 시그너처 아이템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밀라노에서 열린 2026년 S/S 시즌 구찌 패션쇼에 참석한 방탄소년단 멤버 진.


‘재키’ 백을 메고 뉴욕 거리를 걷는 재클린 케네디. © Getty Images



COOPERATION 구찌(1577-1921), © LAUNCHMETRICS/SPOT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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