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8월호

1950년대 별장, 욍베르 & 포예의 손길로 다시 태어나다

1950년대 이탈리아 거장 건축가 루이지 카차 도미니오니가 설계한 유서 깊은 빌라가 욍베르 & 포예Humbert & Poyet의 손을 거쳐 새로운 시간을 맞이했다. 역사와 가족의 기억을 존중하면서도 오늘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낸 이 레노베이션은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EDITOR 김민지

테라스에서 바라본 카프마르탱의 풍경.


(왼쪽부터) 크리스토프 포예와 에밀 욍베르.


욍베르 & 포예Humbert & Poyet 프랑스 출신 건축가 에밀 욍베르Emil Humbert와 모나코 출신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포예Christophe Poyet가 설립한 인테리어 아키텍처 및 디자인 스튜디오. 최고급 주거 공간과 호텔, 레스토랑, 리테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현재 세계적인 럭셔리 디자인 스튜디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2021년 문을 연 서울 강남조선 팰리스 호텔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했다.


프랑스 남부의 고급 휴양지 코트다쥐르Côte d'Azur. 그중에서도 카프마르탱Cap-Martin은 19세기 후반부터 화가 클로드 모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와 아일린 그레이,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외제니 황후와 시시 황후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예술가와 귀족들이 휴양차 즐겨 찾던 유서 깊은 지역이다. 덕분에 이 지역은 지금까지도 아름답고 특별한 곳으로 남아 있다. 올리브나무와 선인장, 야자수가 우거진 이곳에 위치한 한 가족 별장을 인테리어 스튜디오 ‘욍베르 & 포예’가 새롭게 리모델링했다. 1950년대에 지어진 이 별장을 처음 설계한 인물은 이탈리아의 거장 건축가 루이지 카차 도미니오니Luigi Caccia Dominioni다. 전후 이탈리아 모던 디자인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1947년 가구 브랜드 ‘아주체나 Azucena’를 공동 설립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의자와 조명을 다수 남겼으며, 이탈리아 디자인 최고 권위상인 콤파소 도로를 여러 차례 수상했다. 그가 1950년대에 설계한 이 별장이 바로 ‘빌라 피네다Villa Pineda’다. 두 개 층, 약 450m2 규모로 지어진 이 저택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한 세대가 지난 뒤, 이 집을 물려받은 주인 아들 리카르도 지로디Riccardo Giraudi가 새 생명을 불어넣기로 결심한다. 그가 리모델링을 맡긴 사람은 건축가 에밀 욍베르였는데, 사실 에밀은 그의 파트너로 부모님의 별장을 직접 리모델링한 셈이다. 에밀은 이 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저에게 빌라 피네다는 ‘가족의 집’이에요. 제 파트너의 부모님과 자녀들, 손주들에게 늘 소중한 안식처였던 곳이죠. 저는 제 파트너와 가족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이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어요. 동시에 원래 이 집을 설계한 도미니오니에게도 경의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를 정말 존경하고, 그가 만든 아주체나 가구도 직접 수집하고 있거든요.”


아주체나 소파와 암체어, 욍베르 & 포예가 디자인한 테이블이 함께 놓인 아늑한 응접실 풍경.


커스터마이징한 침대를 놓은 침실. 루이지 카차 도미니오니가 아주체나를 위해 디자인한 래커 사이드 테이블을 함께 배치했다.


부클레, 벨벳 등 아늑한 소재를 사용해 편안한 분위기로 꾸민 거실.


유산 위에 완성한 새로운 삶

리모델링을 위해 에밀은 먼저 파사드의 창문과 문틀을 트래버틴 석재와 브론즈로 새로 디자인해 한층 고급스럽게 다듬었다. 또한 정원을 주변 자연 풍경 쪽으로 열어놓고, 내부 공간 배치도 새롭게 정리해 좀 더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동선과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공간의 대담한 재배치다. 원래 위층에 있던 부엌과 다이닝룸을 지상층으로 옮겼고, 다이닝 공간은 현관 홀이던 자리로 옮겼다. 에밀이 목표로 삼은 것은 특유의 스타일을 살리면서도 ‘지금 살아 숨 쉬는’ 집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동시에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느낌도 함께 담고 싶어 했다. 그 예가 메인 계단 양옆에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야누스’ 흉상 두 점을 배치한 것이다. 정원에 있던 조각상을 아치형 천장 아래로 옮겨와 새롭게 살린 것. 이런 고전적인 느낌은 욕실을 비롯해 부조 조각, 플루티드 기둥, 그리고 대리석 오브제 같은 다른 장식 요소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번 리모델링은 도미니오니가 남긴 예술적 유산에 경의를 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다이닝룸 바닥은 그가 1950년 밀라노의 한 쇼핑 갤러리를 위해 만들었던 디자인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 외에도 ‘아주체나’의 오리지널 가구 여러 점을 복원해서 사용했고, 나머지 필요한 가구들은 새로 구해 채워 넣었다. 또한 도미니오니가 이 집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했던 맞춤 제작 소품들도 그가 작업했던 이탈리아의 공방에서 정성껏 복원했다.

거실은 아치형 천장과 트래버틴 소재로 만든 코너 벽난로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미니오니가 디자인한 소파를 복원해놓고, 그 옆에는 에밀이 디자인한 안락의자를 배치해 두 사람의 디자인 언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또한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다락 공간을 전면 리모델링해 새롭게 침실을 조성했다. 정원과 수영장을 비롯한 야외 공간은 기존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변화를 더했다. 벤치와 수영장 벽면은 건물 정면과 동일한 티타늄 트래버틴으로 마감했으며, 야외 가구는 맞춤 제작했다. 건축가이자 이 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에밀은 빌라 피네다의 리모델링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과거와 현재, 편안함과 우아함을 하나의 일관된 비전으로 연결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함께 시간을 나누고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가는 삶이 자리하지요.”


대리석 카운터와 빈티지 샹들리에가 멋스럽게 어우러지는 프라이빗 바 룸.


욍베르 & 포예가 디자인한 다이닝 테이블과 무라노 글라스 소재 빈티지 이탈리아 펜던트 조명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다이닝룸.


욍베르 & 포예의 에밀 욍베르와의 대화


이곳에 들어서면 프렌치 리비에라 특유의 분위기가 잘 느껴집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담고 싶었던 감각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빛’이었습니다. 지중해 바다에 반사되는 빛과 빌라를 둘러싼 소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이곳만의 가장 큰 매력이니까요. 실내 역시 부드러운 색감과 천연석, 은은한 광택을 지닌 마감재를 사용해 자연광이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채우도록 설계했습니다. 질감도 중요한 요소였어요. 리넨과 라피아, 원목, 벨벳을 겹겹이 사용해 세련되면서도 해안가 특유의 편안함을 표현했고, 무엇보다 바람 소리와 자연의 기척이 공간의 일부가 되도록 의도했습니다.


이 집이 자리한 카프마르탱의 역사와 문화는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카프마르탱은 아일린 그레이와 르코르뷔지에, 그리고 1950년대 제트셋 문화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건축적 유산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절제미와 균형감, 그리고 지중해 특유의 여유는 저희 디자인 언어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기존 건물의 형태를 복원하면서 이탈리아적인 감각을 더한 이유 역시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화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리비에라의 특성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중요한 것은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노베이션 과정에서 꼭 지키고 싶었던 기억이나 요소가 있었나요? 이곳은 배우자의 부모님이 살던 집입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 가족이 오랫동안 쌓아온 분위기를 이어가는 일이 더 중요했어요. 루이지 카차 도미니오니의 가구와 조명은 정성껏 복원해 다시 사용했고, 집의 넓은 개방감과 정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 구성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5000m2 규모의 정원 역시 인상적입니다. 조경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셨나요? 저희는 정원을 건축의 연장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기존 자생식물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지중해 특유의 자연스러운 풍경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죠. 라벤더와 로즈메리, 소나무, 시트러스가 만들어내는 향과 질감이 하나의 감각적인 경험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야외 풍경이 그럼처럼 펼쳐지는 아웃도어 라운지.


수영장 벽면은 티타늄 트래버틴 소재로 마감해 고급스러움을 더했으며, 셰즈 롱그에는 욍베르 & 포예가 직접 디자인한 비치 클럽 패브릭을 씌웠다.


공간을 완성하는 소재와 가구는 어떻게 선택하셨나요? 트래버틴과 백색 대리석, 브러시드 오크, 패티나 처리한 황동이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는 소재였어요. 마감재 대부분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이탈리아 장인들과 제작했는데, 저희 디자인 철학이자 이 집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적 감성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아주체나의 오리지널 가구 역시 부모님께서 직접 고르신 것들이기에 정성껏 복원했습니다. 이는 가족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과정이기도 했죠.


공간 곳곳에 놓인 예술 작품도 눈에 띕니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어요. 거실에는 시몽 뷔레의 ‘고요한 유성 A Quiet Meteor’을 걸었고, 물려받은 이탈리아 미드센추리 조각과 아주체나 조명도 함께 배치했습니다. 새로운 작품과 오래된 컬렉션이 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지금의 빌라 피네다가 어떤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시나요? 아름답기만 한 공간이 아니라 실제 삶이 이어지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어요. 아침에는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상처럼 모든 공간이 자연스럽게 삶을 품도록 설계했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변해도 이 집의 중심에는 늘 ‘체험된 삶으로서의 아름다움’이라는 가치가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COOPERATION 욍베르 & 포예(humbertpoyet.com) PHOTOGRAPHER 루도비크 발레Ludovic Ba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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