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카와이이 문화와 혼종성을 결합해 현대인의 내면을 위트 있게 포착한 히로유키 스튜디오Hiro Yuki Studio의 ‘Not backing down 3’(2022).
작품을 소장하는 것을 넘어 현장의 VIP 패스, 도록, 작은 에코백 하나까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술적 자산으로 보존하는 영리한 여행자. 국경을 넘어 특유의 기분 좋은 에너지happy vibe로 사람과 예술을 잇는 그녀의 레이더는 언제나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자전거 타는 커플의 모습을 통해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하는 데이비드 걸스타인David Gerstein의 ‘Quality Time’(2008) 앞에 앉은 컬렉터 홍마리.
홍마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동시대 미술 컬렉터. 패션 디자인과 마케팅을 전공했으며, 미술관 건립이나 아트 프로젝트 기획과 개발을 위한 리서치 디렉터로도 활동 중이다.
1년 중 많은 시간을 아트 행사가 개최되는 도시에 머물고, 아침부터 밤까지 프라이빗 행사를 빠짐없이 찾아서 누비는 아트 러버로 잘 알려졌어요. 그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저에게는 제 부모님이 컬렉팅 스승이신데, 어릴 때는 작품을 볼 줄도 모른 채 부모님을 따라 아트페어장에 가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제 역할은 라운지 자리를 선점하거나 커피 심부름을 하는 ‘대기조’였어요.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운 적도 있지만, 당시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열정이 제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저에게 주어지는 예술적 경험과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라도 더 흡수하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부모님 세대와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과거에는 컬렉터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갤러리와 일대일로 밀접하게 교류하며 고급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었지만, 정보가 범람하는 오늘날은 컬렉터들의 ‘무한 경쟁 시대’가 되었습니다. 방대한 정보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자신만의 리서치 노하우, 그리고 세계 각지의 예술계 사람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적극적인 네트워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방문하는 아트 행사에서도 금방 친구를 만드시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기술보다는 ‘기분 좋은 에너지(happy vibe)’ 덕분인 것 같아요. 제가 이 멋진 자리에 함께한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좋은 표정이 나오고, 상대방도 그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예술이 주는 감동은 서로 공유할 때 더 커진다고 믿어요. 마치 세포가 증식하는 것처럼요.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고 듣기만 하려고 하면 분위기가 조용해지죠.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이번 전시에서 이런 점이 좋다”고 솔직하게 제 생각을 먼저 건네면 어색한 침묵 속에서 듣기만 하던 사람들도 마음의 빗장을 풀고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편하고 수다스러운 공감의 장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다녀오신 아트 여행은 어디였나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지난 2월, ‘아트 바젤 카타르’를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알룰라의 ‘데저트 엑스 알룰라Desert X AlUla’,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베스텍 케이프타운 아트페어’를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편도 항공만 24시간이 소요되는 대장정으로 잊을 수 없는 여정이었죠. 도시 자체가 거대한 미술관 같던 카타르의 방대한 공공 미술 컬렉션과 건축물,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캔버스 위에 조각처럼 놓인 알룰라의 바위들, 그리고 남아공 여름 해변에서 마주한 미니 펭귄 군락까지, 자연과 예술이 결합된 모든 장면이 새롭고 경이로웠습니다. 특히 알룰라에서는 영화 같은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모든 출입구가 통제되어 사람들의 발이 묶였는데, 제가 예약한 호텔 관계자가 통제선을 뚫고 나와 제 짐을 들고 경찰 라인을 함께 통과시켜주더군요. 왜 그런지 나중에 알고 보니, 올해 10월 정식 오픈을 앞두고 가오픈 상태이던 그 호텔에 그날 외국에서 온 왕자가 투숙할 예정이었어요. 마침 제가 왕자보다 30분 먼저 도착해 체크인하는 모습을 본 직원들이 저를 ‘한국에서 온 비밀스러운 VIP’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덕분에 24시간 퍼스널 버틀러 서비스와 상상을 초월하는 환대를 받았습니다.(웃음)

아트 여행지에서 수집한 도록과 다양한 굿즈
그리고 작은 사이즈의 작품 (가와우치 리카코
Kawauchi Rikako, 이시 우드Issy Wood,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료코 아오키Ryoko Aoki, 자코포 만디치Jacopo Mandich 등)을 전시하는 아카이브 공간.

과일의 숙성과 부패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를 불빛으로 치환해 물질의 순환을 시각화한 모리 유코Mohri Yuko의 ‘Decomposition’(2024).
수많은 작품 중 ‘이건 반드시 소장하겠다’고 느끼는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특정 작품을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하기보다는, ‘오랜 기다림과 교감’ 속에서 소장을 결정합니다. 비엔날레나 아트페어에서 관심 있는 작가가 생기면, 우선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갤러리를 꾸준히 방문해 전시 소식을 챙겨봐요.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모리 유코Mohri Yuko 작가입니다. 광주비엔날레에서 처음 작품을 접한 뒤 흥미를 느꼈고, 이후 ‘아트위크 도쿄’ 프로그램 중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작가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작업실의 공기를 체감하다 보니, 작가의 삶과 작품이 얼마나 깊이 닮아 있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 세계를 후원하고 싶은 확신이 생겼어요. 평소 곰돌이 모티프를 좋아하는 저의 취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갤러리 덕분에 이시 우드Issy Wood 작가의 페인팅과 오타니 워크숍Otani Workshop의 세라믹 커미션 작업을 소장하게 된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 컬렉팅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수집한 도록과 굿즈까지 아카이브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이런 수집과 기록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는 그 모든 것이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전 세계 아트 현장의 숨결을 그대로 담은 ‘또 하나의 예술적 자산’으로 생각합니다. 특정 도시나 페어에서 받은 에코백과 출입증은 제가 그 생생한 예술의 타임라인 속에 함께 존재했다는 ‘일종의 증서’와도 같아요. 특히 현장에서 어렵게 구한 도록이나 한정판 굿즈들은 세월이 흘러 다시 펼쳐보았을 때 당시 작가 또는 큐레이터와 나눴던 대화, 전시가 주던 압도적인 감동을 고스란히 복원해줍니다. 제가 지나온 컬렉팅 여행의 기념품들을 소중히 아카이브하는 이유는 이 콘텐츠들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의 가치를 갖기 때문이에요. 언젠가 이 생생한 현장의 아카이브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저만의 독창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사적인 순간을
관찰하듯 담아낸
시시 필립스Cece Philips의
‘Reflections’(2023),
고흐의 명화를 위트 있게
재해석한 사이먼 후지와라
Simon Fujiwara의 ‘Who’s in
Bloom?[Neurotic Sunflower
Panic Attack]’(2022).

(왼쪽부터)
구즈만 파즈 Guzmán Paz의
‘Ascensores (Elevators)’
(2024), 마르치아
밀리오라Marzia Migliora의
‘Quis contra nos #2’
(2017~2018), 그레이스
위버Grace Weaver의
‘Flowers’(2024).
아트위크 이벤트 일정 속에서 스타일과 활동성을 모두 잡는 스타일링 노하우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아트위크 기간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일정이 빼곡해 중간에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려함보다는 깔끔하고 실용적인 의상을 지향합니다. 지난 6월, 런던 갤러리 위크엔드를 시작으로 취리히 갤러리 위크엔드,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그리고 파리로 이어진 긴 유럽 투어는 기후변화 탓에 사계절 옷이 모두 필요한 여행이었어요. 출국 당시 화창하던 런던은 다음 날 이내 비가 쏟아지며 18℃의 초봄 같은 꽃샘추위를 보였고, 스위스와 파리로 넘어갔을 때는 섭씨 40℃를 웃도는, 30년 만의 이례적인 폭염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토록 널뛰는 날씨와 전시장 안팎의 기온 차에 대응하기 위해 저는 ‘레이어링’이 가능한 아이템을 활용합니다. 짐을 줄여야 하니 매일 다른 옷을 입을 수는 없지만, 같은 옷도 날씨와 분위기에 맞춰 ‘스카프’ 하나만 다르게 매치해도 완전히 새로운 무드를 연출할 수 있어요. 신발은 오래 걸어도 발이 편안하면서도, 장식성이 있어 포멀한 룩에도 어울리는 로퍼나 스니커즈를 선택하죠. 그리고 저만의 여행 짐 싸기 팁이라면 공항 검색대 통과가 자유롭고 기내에서도 쓰기 편한 고체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음 아트 여행 행선지는 어디이며, 어떤 경험을 기대하고 계신가요? 무엇보다 다가오는 9월,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케이프타운 여행에서 ‘왓이프더월드WHATIFTHEWORLD’ 갤러리의 미아 채플린Mia Chaplin 작가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프리즈 서울을 통해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된다더군요. 이미 글로벌 컬렉터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작가인 만큼, 한국 관객들이 그녀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어떻게 마주할지 무척 기대됩니다. 프리즈 서울을 마친 뒤에는 10월 중 런던의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 스페인 마요르카의 ‘닛 데 라르트Nit de l’Art’, 그리고 파리의 ‘아트바젤 파리 Art Basel Paris'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각 도시의 갤러리스트들과 다시 만나 현장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면서 저만의 아카이브를 확장해갈 생각이에요. 늘 그래왔듯, 현장과 소통하며 글로벌 아트 피플들에게 한국의 아트 신을 전하는 여정도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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