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8월호

한남동으로 이사하는 글래드스톤, 3인이 바라본 서울 미술 생태계

2022년 서울에 진출한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올가을 한남동으로 확장 이전한다. 파트너 폴라 차이와 정원·정지웅 디렉터가 말하는 서울 미술 생태계의 변화, 한국 컬렉터의 안목, 그리고 아시아 거점으로서의 전략.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전의철

8월 말 이전하는 한남동 새 공간에 선 글래드스톤 파트너 폴라 차이, 글래드스톤 서울 디렉터 정원 & 정지웅.


폴라 차이 서울 지점 개관을 이끈 글래드스톤 파트너. 갤러리의 전시 프로그램과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베이징 UCCA 현대미술센터의 수석 큐레이터를 역임했으며, 아시아를 중심으로 주요 미술관과 기관, 컬렉터 네트워크를 구축해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정원 갤러리 현대와 크리스티를 거치며 한국 미술의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한 비즈니스 개발과 컬렉터 네트워크 구축을 이끌었다.

정지웅 티나킴 갤러리와 국제갤러리를 거치며 주요 전시와 아트페어를 기획·운영하고, 신진 작가 발굴과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해왔다.


2022년 프리즈 서울 출범을 계기로 글로벌 미술계의 이목이 서울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글래드스톤도 서울에 첫 둥지를 틀었는데요. 지금까지 서울 미술 신에서 체감한 두드러진 변화는 무엇인가요? 폴라 차이 2022년과 비교하면 서울의 미술 생태계가 훨씬 탄탄해졌음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갤러리와 미술관, 작가, 큐레이터, 컬렉터가 각자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움직임을 기민하게 살피며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서울을 ‘새로운 시장’이라는 표현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습니다. 세계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했다고 확신해요. 글래드스톤 역시 서울에 거점을 둔 이후 국내 유수 미술 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업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필리프 파레노Philippe Parreno와 아니카 이Anicka Yi의 개인전,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의 대규모 큐레토리얼 프로젝트, 뮤지엄 산에서 선보인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개인전이 있고요. 올가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매슈 바니Matthew Barney의 작업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8월 말 한남동 새 공간으로 확장 이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술 시장이 신중하게 움직이는 시기에 규모를 넓힌다고 해서 놀라웠어요. 폴라 차이 한남동 이전은 컬렉터, 큐레이터, 국내 기관과 쌓아온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결정입니다. 아시아 관객이 글래드스톤 소속 작가들의 작업을 폭넓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는 뜻도 담겨 있고요. 새 공간은 매스스터디스 건축사사무소와 함께 조성했습니다. 2024년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 전시를 계기로 조민석 건축가를 알게 되었고, 그 인연이 이번 협업으로 발전했어요. 매스스터디스가 국제 미술계와 접점을 넓혀온 스튜디오이기에, 그가 설계한 곳으로 이전하는 일은 설득력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정지웅 한남동은 오늘날 서울 현대미술의 주요 동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갤러리와 문화 공간이 모여 있어 하루 동안 전시를 오가며 저마다의 발견을 쌓아가는 지역이 되었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글래드스톤이 국제적인 전시 프로그램과 서울의 현장을 잇는 새로운 지점이 되길 바랍니다. 확장 이전의 의미는 면적보다 관람 밀도에 있어요. 관객이 작품 앞에 충분히 머물고, 작가의 세계를 천천히 따라갈 수 있도록 동선과 관람 경험을 세심하게 설계했습니다. 개관 후에는 아티스트 토크와 살롱 형식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작품에 관한 논의를 다각도로 나눌 계획입니다.


한남동 새 공간에서 에드 앳킨스의 개인전 <1 day in space>(8월 31일~10월 31일)가 열린다. 위 작품은 ‘15th of May 2026, 16.09′ 55′′(Passive Mech)’.


폴라는 UCCA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한 뒤 글래드스톤에 합류해 현재 파트너로서 아시아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갤러리에서 작가의 커리어를 함께 설계하는 일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작가의 세계를 장기적으로 관찰하고 해석의 기반을 다진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을 것 같아요. 폴라 차이 두 역할 모두 작업을 면밀히 살피고, 그 특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을 찾는 데서 출발해요. 큐레이터로 활동할 때는 관객이 작가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도록 전시의 방향과 서사를 짜는 데 집중했습니다. 글래드스톤에서도 같은 태도로 작가, 컬렉터, 기관과 협력 중이에요. 제 역할은 작품 판매에서 나아가, 한 작가의 예술적 실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적절한 시기에 전시와 기관 협업, 출판, 공공 프로젝트를 연결해 작품이 국제 무대에서 온전히 평가받도록 하는 것이죠. 이런 관점은 앞으로의 서울 프로그램에도 고스란히 녹아듭니다. 올가을 에드 앳킨스Ed Atkins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11월에는 백승아의 전시를, 2027년 1월에는 알렉스 카츠Alex Katz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열린 조앤 조너스의 첫 한국 개인전 <the Wind sings>(2024년 9월 5일~10월 12일) 전경. Photo: Jeon Byung-cheol


해외 작가를 서울에 처음 소개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나요? 폴라 차이 작업이 서울의 관객과 컬렉터, 기관에 유효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살핍니다. 첫인상은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결정되지 않아요. 전시 구성과 작품을 소개하는 언어, 후속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관심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로, 한남동 새 공간의 개관전으로 선보이는 에드 앳킨스의 첫 서울 개인전은 사물과 이미지가 특정한 순간을 보존하면서도 그 순간에 붙들리는 역설을 탐구합니다. 그는 변화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구축하고 신성시해온 구조와 질서를 돌아보는데요. 작가의 문제의식은 한국 관객에게도 울림을 줄 것이라 믿습니다.

정원 현장에서는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한 작가가 장기간 축적해온 세계를 정보처럼 나열하지 않고, 관객이 작품 세계로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찾고자 합니다. 2024년 조앤 조너스 Joan Jonas의 첫 한국 개인전 <the Wind sings>의 경우 백남준과의 연결 고리가 효과적으로 작용했어요. 물론 두 사람의 작업은 다르지만, 조앤 조너스가 백남준 예술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사실은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좌표를 제공했습니다. 핵심은 작가를 쉽게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확장하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에요.


글래드스톤은 하오량 Hao Liang, 황용핑 Huang Yongping,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같은 아시아와 여러 층위로 연결된 작가들과 오랫동안 협업해왔습니다. 이들의 작업을 보면 ‘아시아성’은 국적이나 출신 지역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데요. 동시대 미술에서 지역성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폴라 차이 오늘날 한 작가를 하나의 지리적 위치만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역사와 문화적 교류, 언어, 이동 경험, 개인의 기억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죠. 글래드스톤은 특정 지역의 틀에 작가를 가두기보다는, 각자가 지닌 고유한 감정과 시선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지역적 맥락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에요. 작품이 형성된 문화적 토대를 세심하게 살피면서도, 서로 다른 배경의 관객이 어떤 지점에서 반응하는지 고민합니다. 한 작가의 경험을 존중하되, 그 작업이 동시대 미술의 국제적 논의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게 저희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개최한 이헌정, 김주리, 김대운 작가의 단체전 <Irreverent Forms>(2025년 11월 20일~1월 3일) 전경. Photo: Jeon Byung-cheol


한국 관객이 해외 작가의 작업을 해석하고 질문하는 방식에서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무엇인가요? 정원 이제는 작가의 전시 이력, 비엔날레 참여 경력, 미술관 소장 여부 같은 정보를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관객이 묻는 것은 오히려 그 바깥의 이야기예요.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작업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문학이나 음악, 철학, 다른 예술가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등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사고의 배경에 관심을 보입니다. 한국 관객은 이처럼 사고의 층위까지 파고드는 편이에요. 때로는 예상 밖의 해석 덕분에 저희 역시 작품을 새롭게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최근 컬렉터들은 작품을 구입하기 전 방대한 자료를 살피고, 전시와 작가의 배경을 오랫동안 탐색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새로운 세대의 아시아 컬렉터, 그중에서도 한국 컬렉터에게서 어떤 특징을 발견하나요? 폴라 차이 이전 세대보다 훨씬 주도적입니다. 아트 어드바이저의 조언이나 경매 결과에만 의존하지 않고 디지털 플랫폼, 소셜 미디어, 미술관 프로그램, 비엔날레, 동료 컬렉터와의 대화를 통해 직접 작가를 발견하죠. 시장 평가를 좇는 대신 작업의 의미와 배경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들이고요. 특히 한국 컬렉터에게서는 신중한 태도가 돋보입니다. 작품을 구입하기 전에 작가를 충분히 연구하고, 갤러리와 미술 기관의 의견을 경청하며 자신의 컬렉션 안에서 어떤 흐름을 형성할지 숙고합니다. 결정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선택의 기준이 분명해 결과적으로 일관되고 견고한 컬렉션을 구축합니다.
정지웅 한국 컬렉터들은 국내 전시, 해외 미술관, 아트페어, 비엔날레를 적극적으로 찾아갑니다. 직접 보고 비교하며 한 작가의 변화와 궤적을 꾸준히 살피는 분이 많아 대화도 매우 구체적이에요. 이제 구매를 좌우하는 기준은 가격이나 이력에서 “왜 이 작가여야 하는가?”로 옮겨갔어요. 기량이 뛰어난 작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매슈 바니나 에드 앳킨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잘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조형적 문법과 문제의식을 확립했기 때문입니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완벽한 기교로 노래하는 가수는 많지만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색깔로 하나의 세계를 만든 아티스트라는 거예요. 따라서 대화의 초점도 작가의 독자성으로 모입니다. 동시대 미술에서 작가가 차지하는 위치와 지금 주목해야 할 근거가 구매 판단을 좌우합니다.


1991년 10월 19일부터 11월 16일까지 글래드스톤 뉴욕에서 개최했던 매슈 바니의 개인전 전경. ⓒ Gladstone Gallery


이러한 작가 중심의 태도는 바버라 글래드스톤이 세운 갤러리의 철학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 같아요. 그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뚜렷한 철학과 안목을 남긴 인물입니다. 1991년 매슈 바니의 초기 뉴욕 개인전을 선보인 일은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작가적 언어를 발견하고 지지하는 태도를 보여주죠. 그의 별세 이후 갤러리는 새로운 파트너십 체제 아래 다음 장을 열고 있는데요. 바버라 글래드스톤이 남긴 철학 가운데 반드시 이어가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요? 폴라 차이 글래드스톤의 프로그램은 흥미롭고 도전적인 가능성을 좇아왔고, 일관되게 국제적 관점을 견지했습니다. 이는 앞으로도 유효합니다. 지난 1년여 동안 갤러리에 새롭게 합류한 로버트 콜스콧Robert H. Colescott, 포프Pope. L, 프레셔스 오코요먼Precious Okoyomon, 브룩 슈Brook Hsu, 캐런 킬림닉Karen Kilimnik, 조지프 예거Joseph Yaeger는 그런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지요. 장기 파트너로 작가 곁을 지킨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달라져야 하는 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작가의 작업을 만나고,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어떤 언어와 형식을 시도할지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그래서 늘 기존의 관습에 머무르지 않으려 하고 매번 적절한 해법을 찾고자 해요.


한남동 새 공간을 계기로 글래드스톤 서울의 활동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까요? 정원 서울에 공간을 둔 만큼, 한국 미술계와 꾸준히 관계를 맺고 기여하는 것 역시 저희가 맡아야 할 중요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국제적으로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잠재력을 지닌 뛰어난 작가가 많고, 최근에는 해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 디아스포라 작가들도 세계 미술계에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양한 한국 작가를 소개하고 함께 전시를 만들어가는 일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전속 작가들의 프로그램이 갤러리의 중심축이라면, 한국 작가들과의 협업은 이곳의 미술 현장과 더욱 폭넓게 소통하는 또 하나의 창구입니다.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고 함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은 갤러리에도 의미 있는 경험이며, 장기적으로 한국 미술 생태계와 한층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왼쪽부터) 8월 말 이전하는 한남동 새 공간에 선 글래드스톤 서울 정지웅 디렉터, 글래드스톤 폴라 차이 파트너, 글래드스톤 서울 정원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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