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의 참교육이 필요해

이쯤 되면 나화진이나 김부장이 월드컵 그라운드에 파견 좀 와줘야 할 것 같다.

EDITOR 박이현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늘 그러하듯이 축구는 공 하나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공은 가장 늦게 굴러온다. 결과와는 별개로, 월드컵을 앞두고 수많은 의문이 ‘결정’이라는 킥오프에서부터 있었다. 누가 감독을 정했는지, 여기엔 어떤 기준을 들이댔는지, 과정이 얼마나 투명했는지에 대한 물음들. 결과가 좋았다면 어쩌면 잠시 덮였을 것이나, 부끄러운 좌절이 찾아오자 사람들은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애초에 왜 그렇게 했어요?”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출처: FIFA


요즘 사람들이 <참교육>, <김부장> 등의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테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표면적으로는 정반대다. 나화진은 농담을 던지며 여유를 부리고, 김부장은 말을 아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부당한 일과 마주하면 둘 다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러한 활극의 기저에는 비슷한 것들이 깔려 있다. 부조리한 권력,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 말로만 원칙을 외치는 조직 등등. 현실 속에선 대개 그런 부류가 오래 살아남지만, 드라마에서는 누군가 나타나 판을 뒤집는다. 이를 본 사람들은 정의가 실현돼서라기보다, 쉬이 보기 힘든 장면을 마주하기에 통쾌함을 느낀다.


<참교육>. 출처 : 넷플릭스


기실 축구장 밖에서도 낯익은 감각들이다. 사람이 두 명 이상만 모여도 원칙이라는 말은 참 유연하게 쓰인다. 어떤 사람에게는 배려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예외가 되며, 어떤 사람에게는 특혜가 된다. 반대로 같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면 갑자기 규정과 절차가 날카로워진다. 원칙이라는 것이 필요할 때만 출근하는 비상근 존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책임도 마찬가지다. 결정은 어딘가에서 내려오지만, 아귀가 어긋나면 그것은 이상하게도 현장에서 발견된다. 잘되면 통찰, 안 되면 실행의 문제다. 이토록 세련된 책임 분산 기술은 감탄을 자아낸다. 드라마 속에서라면 누군가 그 부당함의 한가운데서 책임을 지는 장면이 나오겠지만, 그런 장면은 이쪽 세계에선 보기 어렵다. 판을 짠 사람은 사라지고, 뛰던 사람만 그라운드 한복판에 남겨지는 이번 월드컵의 풍경과 닮았다.

가끔은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곳이 함께 머리와 마음을 맞대는 곳이 아닌, 누가 언제 어떻게 자연스럽게 사라지는지를 관찰하는 무대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응징 서사에 끌리는 것이겠지. 누군가를 벌하고 싶은 마음도 티끌만큼 있겠지만, 적어도 잘못된 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싶으니까. 불합리는 관행이 되고, 무책임은 노련함이 되며, 침묵은 성숙함으로 포장된다. 그러니 화면 속 누군가가 책상을 치고, 문을 열고, 응어리를 도려내는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리는 안다. 눈앞의 펼쳐진 허구의 세계는 결핍의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을.

월드컵의 실패가 남긴 질문도 결국 같다. 누가 뛰었느냐보다 누가 판을 짰느냐, 누가 졌느냐보다 누가 책임지느냐. 그토록 기다리던 축제는 허망하게 끝났지만, 비슷한 경기는 매일 다른 곳에서 계속된다. 다만 문제는 현실에선 드라마와 같은 참교육이 제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조용히 중계 화면을 끄고, 내일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진짜 월드컵은 거기서 다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김부장>. 출처: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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