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7월호

런던 양돈 농장의 변신, 더 메이커스 반

런던 기반 건축 스튜디오 허치Hutch가 런던 외곽 농촌 지대에 방치돼 있던 양돈 농장 건물을 감각적인 주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대지가 지닌 풍경과 기억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흙벽과 영국산 느릅나무, 목재의 결이 남은 콘크리트 굴뚝으로 고요한 공간의 서사를 완성했다.

EDITOR 김민지

석회와 흙을 반죽해 외벽에 바르고, 자연스럽게 은회색으로 풍화되는 낙엽송을 지붕 위에 두른 ‘더 메이커스 반’. 주변 자연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런던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도시의 언어가 사라진다. 산울타리 너머로 초지와 야생화 들판이 펼쳐지고, 그 어딘가에 이 건물이 조용히 서 있다. ‘더 메이커스 반The Makers Barn’은 한때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어진 낡은 양돈 농장이었던 곳이다. 건물 자체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대지는 달랐다. 북쪽으로는 숲이, 남쪽으로는 완만한 구릉과 초원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사유지였다. 대를 이어 이 땅을 가꿔온 부부는 허치를 이끄는 크레이그 허친슨Craig Hutchinson에게 말했다. 이 안에 남아 있는 가능성을 찾아달라고. 허치는 건축과 인테리어, 큐레이션을 하나의 흐름으로 다루는 스튜디오로 매년 소수의 클라이언트와만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공간이어서는 안 되며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정서적으로 공명하고, 삶의 리듬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허치의 출발점이다. “심장이 뛰는 집Homes with a heartbeat”이라는 문장은 자신들의 작업을 설명하는 방식이자, 이 공간이 완성된 방향이기도 하다.


크레이그 허친슨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테리어 및 건축 디자이너이자, 건축 스튜디오 허지Hutch의 설립자다.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를 추구하며, 장인 정신과 소재의 진정성을 중시하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대지의 기억을 짓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허친슨이 던진 질문은 하나였다. “이 건물이 처음부터 여기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근 튜더 양식 농가의 묵직한 지붕 선과 도드라진 굴뚝에서 답을 찾았다. 15~17세기 영국 튜더 왕가 시대에 유행한 건축양식으로 가파른 경사 지붕과 굵은 굴뚝, 목재 골조가 외벽에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기조로 완성한 더 메이커스 반은 경사진 지붕과 낙엽송 외장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낙엽송은 소나뭇과 침엽수로 영어로는 라치 larch라 부른다. 목재가 단단하고 내구성이 강해 외장재로 많이 쓰며,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은회색으로 풍화되곤 한다. 외벽은 석회와 흙을 반죽해 벽면에 직접 바르는 플라스터 마감 벽을 선택했다. 흙의 색감과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바깥 풍경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앞에 자리한 야생화 정원은 덕분에 장식이라기보다 풍경의 연장처럼 건물을 둘러싼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중앙 굴뚝을 축으로 공간을 감아 돌리고, 낮은 벽과 기둥 형태의 벽체로 느슨하게 공간을 나눴다. 문을 통하지 않아도 다음 공간이 슬며시 드러나고, 욕실은 독립된 방이 아니라 전체 흐름의 일부가 된다. 허친슨이 말하는 흐름은 개방감이 아니다. 장면이 이어지는 방식, 시퀀스다. 천창 아래를 파내어 만든 샤워 공간은 빗속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을 전하고, 바닥과 높이를 맞춘 욕조는 건물이 그 주변으로 자라난 듯 놓여 있다. 흙벽은 손의 흔적을 담고, 느릅나무 목가구는 견고하면서 은은한 향을 남긴다. 원목 소재 바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표정을 만들어낸다. 스튜디오는 이를 ‘게잠트쿤스트베르크Gesamtkunstwerk’라고 설명한다. 19세기 작곡가 바그너가 처음 쓴 개념으로, 여러 예술과 장인의 작업이 하나로 녹아드는 총체적 예술 작품이라는 뜻. 집주인 부부의 첫 의뢰는 단순한 휴양 별장이었지만 완성된 집을 마주하고는 이내 마음을 바꿨다. 직접 이곳에서 살기로 한 것이다. 이곳을 설계한 크레이그 허친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거실에 놓인 ‘카멜레온다’ 소파의 곡선이 바깥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처음 이곳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사실 이전 건물은 형편없었어요. 다만 장소가 비범했습니다. 숲과 구릉, 초지까지. 처음 던진 질문은 하나였어요. “이 건물이 처음부터 여기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결국 이 프로젝트는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시작할 때 어떻게 접근하시나요? 항상 깊이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대화와 관찰을 통해 클라이언트의 에너지와 가치관을 파악해요. 일상의 루틴, 어디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지, 삶에서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번 프로젝트에서 감정적인 의뢰는 명확했어요. 놀이와 목적을 위해 지어진, 그 안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



튜더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가파른 경사 지붕과 굵은 굴뚝, 목재 골조가 외벽에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굴뚝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의도적인 대비예요. 드라마틱한 효과를 의도한 게 아니고, 대비가 있어야 각 재료의 질감이 더 선명하게 읽히기 때문이에요. 낙엽송과 경사 지붕은 ‘나는 여기 속한다’고 말하는데, 굴뚝은 달라요. 거푸집 목재의 결이 콘크리트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건 만드는 행위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굴뚝 안에는 자신을 형성한 모든 판자의 기억이 남아 있죠.


소재를 고를 때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정직함과 시간이에요. 정직하다는 건, 각 재료가 보이는 그대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흙벽은 손의 흔적을 담고, 느릅나무는 견고하고 향기로우며, 원목 바닥은 닳을수록 더 아름다워져요. 시간이란 기준은 나이 들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려면, 재료도 그렇게 늙어야 하죠.


천창을 내 자연을 들인 샤워실 모습.


바닥과 눈높이를 맞춰 안정감이 느껴지는 욕조.


특별히 애착이 가는 디테일이 있나요? 목수가 만든 느릅나무 캐비닛이요. 느릅나무는 결이 성당처럼 웅장하고, 판마다 표정이 달라요. 거기에 대장장이가 단조한 강철 스킬릿이 커스텀 행어에 나란히 걸렸습니다. 목공의 조용한 정밀함과 철공의 날것의 힘. 이 건물이 늘 기다려온 주방이 된 것 같았어요.

가구와 오브제는 어떻게 골랐나요? 큐레이션은 저희에게 건축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입니다. 손으로 만들어졌고, 만든 의도가 있으며, 주목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들을 찾았어요. 아이콘 중 하나인 B&B 이탈리아의 ‘카멜레온다’ 소파는 곡선이 흙벽과 자연스럽게 호응하죠. 칼라트로니Calatroni의 플로어 램프는 서로 다른 문화와 시간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 딱 맞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애착이 가는 디테일로 꼽은 주방의 느릅나무 캐비닛.


독립된 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공간으로 설계한 침실과 욕실.


처음엔 휴양 별장으로 시작했는데, 완성 후엔 부부가 직접 들어와 살게 됐다더군요. 의뢰 자체는 단순했어요. 도시를 벗어나 천천히 요리하고, 잘 쉬고, 자연 속에 머물 수 있는 곳. 그런데 천창 아래 욕조, 초지를 향한 주방 창문 같은 것들이 구체화되면서 두 분이 이 공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완성 후 직접 살기로 했고요. 이보다 좋은 결과가 또 있을까요?


이 집이 제안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면요? 급진적 고요함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공허함도, 미니멀리즘을 위한 미니멀리즘도 아닌, 자기 자신과 바로 주변에 더 예민하게 깨어 있게 만드는 고요함이지요. 흙벽의 무게감, 천창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아침에 느릅나무와 콘크리트에서 나는 냄새. 현대적 삶의 리듬을 늦추고 더 본질적인 감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 건축이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야심 찬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COOPERATION 허치(hutchdesig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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