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7월호

클로이 추 CHLOE CHIU: 불확실한 시대의 가치를 고르는 눈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 것에 주목하되, 오래 들여다보고 확인한 뒤 선택한다. 금융시장에서 익힌 분석의 태도는 동시대 미술의 불확실성 앞에서도 하나의 기준이 된다. 감정과 리서치, 직관과 절제 사이에서 클로이 추의 컬렉션은 오늘의 가치를 읽어내는 방식이 된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김연제

(왼쪽부터)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Blue Pink Green Mountain’, 미스터Mr.의 ‘Hiromi – Blue Autumn Sky’(2018)와 ‘Untitled’(2015), 미카엘라 이어우드-댄Michaela Yearwood-Dan의 ‘Chimera’(2024) 앞에 앉은 클로이 추.


클로이 추 홍콩 기반으로 활동하는 컬렉터 이자 ‘온피니티브 아트 재단Onfinitive Art Foundation’의 설립자. 중국 황실 고미술 컬렉터인 아버지의 영향 아래 미술과 경매시장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금융권에서 주식 애널리스트로 일한 뒤 2013년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컬렉팅 세계에 발을 들였다. 어린 시절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었던 경험은 일본 동시대 미술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현재는 일본 작가를 중심으로 여성 작가와 동시대 아시아 미술까지 수집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아버지께서 19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중국 황실 골동품 수집가였다는 건 유명한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고미술 컬렉션이 ‘완결된 역사’를 다룬다면, 당신이 선택한 작품들은 ‘지금도 쓰이는 역사’라 할 수 있죠. 박제된 과거의 미학을 보고 성장한 경험은 동시대 미술 속에서 특정 가치를 찾아내는 일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늘 중국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깊이 평가해왔지만, 저를 동시대 미술로 이끈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동시대 미술이 젊은 세대와 긴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어요. 위작이 만연하고 정보 비대칭이 극심한 골동품 시장의 혼란으로부터 저를 보호하고 싶어 하셨고요. 또 다른 요인은 제 이력에 있습니다. 공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학창 시절에는 역사 수업을 즐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시간을 초월한 ‘완성된’ 작품들 속에서 성장한 경험은 장인 정신과 오래 지속되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배경은 동시대 미술의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데 든든한 길잡이가 됩니다. 저는 금융 분야에서 체득한 리서치 중심의 태도로 미술에 접근하는데요. 이는 역사적 합의에 기대지 않고 오늘날의 감정적 공명과 문화적 관련성을 살핀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 중 마음에 품고 계신 문장이 있나요? “세상에는 좋은 것이 너무 많아서 모든 것을 한 사람이 소유할 수는 없다. 자신만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아버지는 이를 탁월하게 실천하셨습니다. 저 역시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고자 했어요. 모든 것을 좇는 대신 일관된 기준을 세워왔죠. 문제는 미술 분야가 주식보다 훨씬 더 많은 유혹을 동반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내면의 절제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나라 요시토모의 ‘Collage of Previously Unreleased Drawings III’(2024), 후지타 쓰구하루 Foujita Tsuguharu의 ‘Scène de Rue’(1917), 제이나브 살레Zeinab Saleh의 ‘ Slow Undoing’(2024).


금융 분야에서의 커리어를 뒤로하고 미술계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긴 근무시간과 강도 높은 업무 압박, 그리고 몇 가지 개인적인 사유로 주식 애널리스트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가설을 세우고, 리스크를 관리하며, 자신의 판단이 맞았음을 입증하는 투자에서의 분석적 사고방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10여 년 전부터 아버지께서 미술을 탐구해보라고 권유하셔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금융과 미술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두 영역 모두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가치와 타이밍을 평가하고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오랫동안 대체 자산군으로 기능해온 미술품을 두고 자신의 안목이 옳았음을 확인했을 때 느끼는 지적 만족감은 성공적인 투자 판단을 내렸을 때의 쾌감과 매우 닮았습니다.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직관과 감정, 그리고 미래 가치나 투자 수익률 등의 정량적 요소는 어떻게 균형을 맞추시나요? 컬렉팅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과 같아요. 그 순간 끌리는 감정은 순수한 직관입니다. 하지만 표면적인 매력만으로 장기 투자를 결정하지 않듯 컬렉팅도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항상 철저한 실사Due Diligence를 선행해요. 작가 약력, 전시 이력, 경매 기록, 시장 동향 등을 살펴보지요. 마음이 먼저 방향을 정하고, 머리가 그것이 지속 가능한 가치를 지닌 선택인지 확인합니다.


첫 소장품이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매한 나라 요시토모Nara Yoshitomo의 캔버스 콜라주 작품이었다고요? 처음 미술계에 들어서기로 결심했을 때 상하이 롱 뮤지엄의 설립자인 왕웨이Wang Wei 여사가 친절하게 미술관을 안내해주셨어요. 그곳에서 나라 요시토모, 구사마 야요이Kusama Yayoi,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의 작품을 접하고 나서 이내 강하게 끌렸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저에게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제 컬렉션의 핵심을 차지할 정도로요. 기실 그 무렵에는 갤러리가 1차 시장으로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경매를 통해 컬렉션을 구축했기에 자연스레 저도 입찰에 참여했죠.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은 감정적 유대, 대담한 표현, 개인적·문화적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가라는 컬렉션 기조를 세우는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피아 크라옙슈키Pia Krajewski, ‘Drinking Buddy’, 2023.


섀러 휴즈Shara Hughes, ‘Brighter Light Ahead’, 2026.


수장고에서 볼 수 있는 가토 이즈미Kato Izumi, 로카쿠 아야코Rokkaku Ayako 등의 작품은 동시대 아시아인이 공유하는 감정이나 사회적 현실을 어떻게 반영한다고 보시나요? 이들은 단순한 표면적 귀여움을 넘어 오늘날 아시아 전역에서 공명하는 정서의 흐름을 파고듭니다. 순수함과 불안을 결합하고, 성취를 강하게 요구하는 사회의 압박, 급속한 근대화가 낳은 소외, 전통과 동시대적 삶 사이의 긴장을 포착하죠. 나아가 정체성, 감정의 절제, 기쁨에서 조용한 반항에 이르는 복합적인 내면 상태도 세밀하게 탐구합니다. 당신도 친밀하지 않나요?


일본 팝아트 외에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나요? 작품들은 특정한 주제나 감수성 아래 모여 있나요? 컬렉션에서 여성 작가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된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해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진 것이죠. 처음에는 일본 작가들의 강한 시각언어와 즉각적인 감정의 에너지에 끌렸다면, 차츰 다양한 지역과 세대의 작가들을 시야에 두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작업은 또 다른 울림을 줍니다. 조용하거나 사적인 방식일 때도 있지만, 그 안에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밀도 높은 감정이 있어요. 하나의 뚜렷한 테마로 묶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컬렉션은 젊은 컬렉터였을 때의 취향, 금융계에서 익힌 판단 방식, 그리고 엄마가 된 이후 달라진 시선이 겹겹이 쌓여온 아름다운 궤적이라 생각합니다. 제 관심사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소장품을 모아둔 랙. 앞에 나와 있는 작품은 크리스티 M 찬Kristy M Chan의 ‘Every Remedy for Loneliness Merely Postpones It’(2023).


가토 이즈미, ‘Untitled’, 2008.


현재 주목하고 있는 한국 작가가 있나요? 안타깝게도 아직 시야를 충분히 넓히진 못했지만, M+에서 진행 중인 이불의 전시 (~8월 9일)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최근에 컬렉팅한 작품은요? 지난 3월 ‘아트바젤 홍콩 2026’에서 구매한 섀러 휴즈Shara Hughes의 회화 작품 ‘Brighter Light Ahead’(2026)입니다.


컬렉팅 과정에서 갤러리와 협상할 때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2022년 ‘온피니티브 아트 재단Onfinitive Art Foundation’을 설립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재단’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단지 나은 이름을 찾지 못해 사용할 뿐입니다. 재단은 1차원적 수집 활동보다 막중한 책임을 내포해요. 재단의 시작은 대다수가 PDF만 살펴보고 작품을 구매할 만큼 시장이 과열됐던 코로나 시기였습니다. 당시 갤러리들은 극도로 선별적인 성향을 보였는데, 제게 작품 소장 내역을 끊임없이 요구하더군요.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일에 지쳐서 저의 컬렉션을 담은 웹사이트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죠. 갤러리들은 “하나를 사면 하나를 기부하라”는 기조를 밀어붙였는데, 저는 그들의 전략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갤러리들이 제게 작품을 팔지 않았던 점에 오히려 감사해요. 팬데믹 시기의 과열은 상당 부분 식었고, 작품을 직접 보지 않고 구매하는 일은 리스크 관리에 현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홍콩의 치열한 교육 환경에서 재단이 말하는 ‘어린이를 위한 예술적 자극’은 단순한 미술교육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위해 홍콩 아트 센터에서 학생 미술 전시를 열 수 있도록 후원했습니다. 전문적인 공간에 자신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진정한 예술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실제 중학생들의 작품 중 일부는 이미 상당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고요. 다만 이것이 제가 학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홍콩에는 M+와 타이쿤 같은 세계적 수준의 기관이 있음에도, 소규모 학교 견학을 조직하는 것은 의외로 문턱이 높았습니다. 앞으로는 공공 미술관이 어린 관객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를 바랍니다.



카우스KAWS, ‘Time in Two Places’, 2022.


남편이자 작가인 리우 빈Liu Bin이 클로이 추 뒤에서 작업하는 모습. 리우 빈은 일상 속 문득 찾아오는 비현실적 찰나를 포착해 인간 본성의 모순과 불확실성을 기묘하고 강렬한 유화로 풀어낸다.


작품을 소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경우가 있나요? 논의는 대부분 갤러리와 합니다. 인기 있는 작가들의 경우 묶음 구매나 “하나를 사면 하나를 기부하라”는 식의 흔한 전략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기예요. 그때 제가 얻은 교훈은 인내심입니다. 당장 갤러리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추후 비슷한 작품이 경매에 등장하는 경우가 잦고, 결과적으로 수수료를 포함한 전체 비용이 이전보다 합리적인 조건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계속해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끌림이 유효하다면, 다시 갤러리를 찾아가 대화를 이어갑니다. 감정적으로 소모적이고 휘둘리는 기분이 들 수 있으나, 흔들리지 않으려면 작가를 바라보는 기준이 단단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기에 과도한 주목을 받았던 많은 작품이 이후 열기가 식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를 거절했던 갤러리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버지의 고미술 컬렉션은 희소성과 역사적 무게를 지닌, 세대를 넘어 전해질 수 있는 자산입니다. 반면 당신의 컬렉션은 동시대 미술을 중심으로, 지금 이 시대를 읽는 감각 위에 세워져 있죠. 훗날 자녀들이 두 유산을 마주하게 될 때, 그 안에서 발견하기를 바라는 가장 고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물리적 오브제로서의 작품 자체일까요, 아니면 시대를 읽고 보석 같은 것을 알아보는 심미적 통찰력일까요? 아버지의 고미술 컬렉션에서 비롯된 희소성과 역사적 무게는 분명 특별합니다. 제가 중국 동시대 미술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지만, 우리는 중국인이고 그런 유물들은 진정한 세대 간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 아이들은 이미 제가 구매를 고려하거나 집에 전시하려는 작품들에 대해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다섯 살에서 열 살 사이에도 취향이 눈에 띄게 변했습니다. 물론 제가 바라는 것은 그들이 심미적 통찰력과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그것이 훨씬 값진 유산이 될 테니까요. 제가 조금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이 홍콩에서 자라며 국제학교를 다니다 보니 중국어가 상당히 약하고 중국 역사에도 관심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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