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7월호

첼로, 세대를 잇는 목소리

거장과 차세대 연주자가 한 무대에서 호흡하며 시대와 세대를 잇는 음악적 대화를 펼쳐온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이 지난 6월 4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에서 열렸다. 올해 페스티벌을 위해 서울을 찾은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을 만나 교육과 멘토십, 동시대 음악을 향한 시선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전의철

고티에 카퓌송 베를린 필하모닉,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 주요 악단과 협연해온 첼리스트. 2022년 ‘고티에 카퓌송 재단’을 설립해 18세에서 25세의 젊은 음악가들이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교육과 멘토십의 역할을 무대 밖으로 확장해왔다.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와 동시대 음악을 오가는 한편, 파리 자선 공연에서 블랙핑크의 ‘Pink Venom’에 첼로 사운드를 더한 것처럼 첼로가 닿을 수 있는 세계를 끊임없이 넓혀가는 중이다.


시대와 세대를 잇는 음악적 대화를 지향하는 올해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에서 한국 관객과 마주하기 전 기대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더 많은 사람이 음악을 경험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중과 직접 호흡하고, 그 안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감이 피어나는 순간을 사랑하기에 그런 자리를 마련할 때마다 늘 행복해요. 그래서 음악회가 전통적인 공연이나 투어에만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하면 평소 클래식과 거리가 있던 이들까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지 매일 새로운 방식을 떠올려요.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야 하며, 따뜻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지켜내야 합니다. 음악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순도 높은 예술의 언어예요. 서로를 잇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 아닐까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Daniel Lozakovich, 피아니스트 엘렌 메르시에Hélène Mercier와 협연한 베토벤 삼중 협주곡은 세 연주자의 호흡이 관건이에요. 첼리스트에게 이 작품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베토벤 삼중 협주곡은 첼리스트에게 남다른 무게를 지닌 레퍼토리예요. 사실상 베토벤의 유일한 첼로 협주곡이라 할 수 있거든요. 이 곡에서 첼로는 선율의 중심축을 잡을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두 독주 악기 사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나아가 기술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연주자에게 큰 도전을 요구하죠. 저는 베토벤 삼중 협주곡이 허락하는 다양한 모험을 즐깁니다. 무엇보다 첼리스트에게는 협주곡 레퍼토리가 풍부하지 않은 까닭에 각별하고 소중하게 다가와요.


음반 <가이아>는 첼로를 ‘지구의 목소리’로 내세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당신에게 첼로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첼로는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악기이자 관능적인 악기예요. 어쩌면 악기와 연주자가 물리적으로 하나가 되는 유일한 악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악기보다 연주자와 악기가 서로의 진동을 살갗 가까이에서 받아들이니까요. 첼리스트가 온몸으로 첼로를 끌어안고 연주할 때 연주자와 악기는 하나의 존재가 됩니다.


고티에 카퓌송의 벗으로 유명한 1701년산 마테오 고프릴러Matteo Goffriller 첼로 ‘람바사되르L’Ambassadeur’는 300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악기입니다. 세기를 건너온 악기의 음색과 호흡은 연주자의 해석에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나요? 이런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제게 큰 영광입니다. 저는 람바사되르를 25년째 연주하고 있는데 정말 놀라운 악기예요. 지금도 매일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해요. 아마 평생을 연주해도 끝까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무궁한 결을 지닌 악기일 겁니다. 25년 동안 곁을 지켜왔기에 저는 이 악기를 아주 잘 알고 있고, 악기 역시 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두 개의 영혼이 하나의 목소리를 빚어간다고 할까요? 이미 서로에게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색채와 감정을 드러낼 또 다른 길을 만나는 과정은 매번 놀랍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청중과의 유대도 결국 감정에 관한 거예요. 감정을 듣는 이에게 전하는 일 말이죠. 그런 방향을 제 악기와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 제게는 커다란 기쁨입니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고티에 카퓌송은 루이 비통 재단과 함께 ‘첼로 엑설런스 클래스’를 이끌며 젊은 첼리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했다. © Fondation Louis Vuitton / Gaël Cornier


2025년 11월 발매한 음반 <가이아Gaïa>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 히사이시 조Hisaishi Joe,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 브라이스 데스너Bryce Dessner 등의 동시대 음악가들이 참여해 첼로를 ‘지구의 목소리’로 내세운 프로젝트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한 메시지를 음악으로 다뤄야겠다고 느낀 결정적 순간이 있다면요? <가이아> 음반 발매는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구상입니다. 코로나 등 여러 이유로 준비에 몇 년이 걸렸어요. 먼저 작곡가들을 선정하고, 그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곡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작곡가들은 오랜 시간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왔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 음반을 준비하면서 훌륭한 작곡가들로부터 지구에 헌정하는 작품을 받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어떤 곡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곡은 생명과 인류를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으며, 또 어떤 곡은 기후변화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들을 동료, 첼로 앙상블 ‘카퓌첼리Capucelli’와 연주한 일은 강렬한 경험이자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특히 몽블랑에서 막스 리히터의 음악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상 현장은 여전히 기억에 선명해요.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영상인데요.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빙하가 녹고 매년 눈이 사라지며 바위가 드러나는 현실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 장면을 직접 마주하니 단순히 숫자나 과학자의 설명으로 들을 때보다 훨씬 크게 다가오더군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루이 비통 재단에서 ‘첼로 엑설런스 클래스Classe d’Excellence de Violoncelle’를 이끌었고, 2022년 1월에는 ‘고티에 카퓌송 재단Fondation Gautier Capuçon’을 설립해 젊은 음악가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페스티벌처럼 거장과 신진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플랫폼이 클래식 생태계에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 역시 어렸을 때 여러 재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를 돕는 일이 아주 자연스러운 순환처럼 느껴져요. 2022년 고티에 카퓌송 재단을 설립한 이래 18세에서 25세 사이의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비올리스트, 첼리스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온 36명의 장학생이 재단과 인연을 맺고 있죠. 저희는 아직 소규모 재단입니다. 단 두 사람이 살림을 꾸리는 작은 조직이지만, 이미 세 가지의 뚜렷한 방향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에요. 지금까지 총 90만 유로(약 16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두 번째는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여는 거예요. 음악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대에서 연주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경험인데, 그런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현재 재단은 매년 100회 이상의 공연 기회를 마련하고 있어요. 세 번째는 워너 클래식과 음반을 제작해 뛰어난 젊은 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파리에서 새로운 오디션을 열고 다음 장학생을 선발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지켜봐주신다면 학생들과 저 모두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프랑스 곳곳의 도시와 마을을 찾아가는 무료 순회공연 시리즈 ‘프랑스의 여름’.


2020년 창설한 ‘프랑스의 여름Un Été en France’은 프랑스 곳곳의 도시와 마을을 찾아가는 무료 순회공연 시리즈입니다. 여러 지역을 돌며 관객과 젊은 음악가들을 만나는 방식은 당신의 음악 활동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프랑스의 여름’은 직접 청중을 찾아가는 여러 프로젝트 중 규모가 큰 여름 순회공연이에요. 때로는 500가구도 살지 않는 작은 도시로 연주자들이 찾아가는데도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모든 공연은 무료로 진행되고, 그중 관객의 90%는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이들입니다. 벌써 일곱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네요. 처음에는 코로나 시기 모든 공연이 취소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때 청중과 음악을 다시 연결하기 위한 일회성 시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깊은 감동을 모두에게 남겼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어요. 많은 분이 저희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회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뜻깊은 결실을 본 여정이라고 자부합니다. 덕분에 제가 각별히 아끼는 활동이 되었죠. 이런 무대에서 처음 클래식 음악을 접한 사람들이 이후 스스로 공연장을 찾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오랜 시간 협주곡과 실내악, 동시대 작품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해오셨습니다. 젊은 연주자에게 하나의 관문처럼 다가온 작품도 있었을 것이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른 얼굴로 보이는 레퍼토리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당신은 한 시즌의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나요? 한 시즌에는 대략 15개 정도의 서로 다른 협주곡 프로그램이 있고, 이 외에 실내악과 리사이틀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늘 마음에 두는 기준은 새로운 작품을 위촉해 연주하는 일이에요. 살아 있는 작곡가와 협업하며 아직 세상에 없던 음악을 무대 위로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특권이고 무척 풍요로운 경험입니다. 더불어 우리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음악가의 의무예요. 동시대 작곡가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연주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한편, 작곡가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실현해줄 연주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요 첼로 레퍼토리 외에 매년 새로운 위촉작을 연주하고, 이전에 의뢰했던 작품들도 다시 무대에 올리곤 해요. 레퍼토리를 선택할 때 제 욕심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휘자, 오케스트라, 그리고 우리가 어떤 작품을 함께 탐구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매 시즌 그 기준과 방향은 조금씩 달라요.



파리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협연 등 전 세계를 누비는 방대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럭셔리> 독자들은 당신의 품격 있는 연주만큼이나 철저한 자기 관리가 궁금할 텐데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당신만의 ‘절제의 루틴’이 있나요? 일상 루틴은 운동선수와 비슷합니다. 잘 자고,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거의 매일 달리기를 합니다. 달리기는 정신과 몸을 단단히 붙들어주는 습관입니다.


5월에도 베를린과 쾰른을 비롯해 여러 투어 일정을 소화하며 세계 곳곳을 다니셨더군요. 5월은 무척 분주한 달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울에 오기 전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Berliner Philharmoniker과 유로파 콘서트Europakonzert,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연주를 진행했고요.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Andrés Orozco-Estrada가 지휘한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Gürzenich Orchestra Cologne 공연, 다니엘레 가티Daniele Gatti가 수장으로 있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Sächsische Staatskapelle Dresden와의 투어도 이어졌습니다. 영감을 주는 음악가들과 한 공간에서 소리를 빚다 보면, 매 순간 매 장면이 평범하게 지나가지 않습니다. 그런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게 에너지를 안겨줍니다. 다만 하루하루가 너무 짧아 아쉬울 따름이에요.


‘첼로 대사’로서 연주, 교육, 사회 공헌까지 전방위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공연을 기억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고티에 카퓌송이라는 예술가가 남기고 싶은 궁극적인 유산legacy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저는 그런 것을 크게 염두에 두고 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음악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감정을 전하는 것입니다. 음악은 평화를 위한 최고의 ‘대사ambassador’라고 믿어요. 음악은 우리를 치유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음악가들을 통해 이루어지고요. 바로 여기에서 음악가의 책임이 생겨납니다. 저는 연주자로서 악기를 다루며 음악 속 감정을 가까운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음악가가 아니면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그것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음악 애호가뿐 아니라 아직 클래식 음악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과도 말입니다.



COOPERATION 신라호텔(2233-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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