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7월호

100년 전과 현대의 시계

1920년대의 시계 형태가 많이 보이는 요즘. 
오랜 시계 역사 가운데서도 100년 전 시계 스타일이 특히 눈에 띄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와 현대 시계 스타일의 비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EDITOR 김혜원 WRITER 이상문

아르데코 양식을 예고한 까르띠에 ‘산토스-뒤몽’ 워치의 배경이 된 파일럿 알베르토 산토스-뒤몽. 그를 위해 루이 까르띠에는 비행 중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계를 디자인했고, 이는 현대적 손목시계의 시초가 됐다.


연중 가장 큰 시계 행사인 워치스앤원더스 현장에서 올해 시계 스타일 트렌드를 살펴보다 한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왔다. 1920년대 시계 스타일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시계업계에서 복각과 헌정은 자주 있는 일이긴 하지만 왜 1920년대 시계 스타일을 차용하려고 할까 궁금해졌다. 무려 100년 전의 스타일을 말이다.


(왼쪽) 1920년대에 처음 소개된 모바도의 ‘에르멘토’ 회중 시계. 여닫을 수 있는 슬라이딩 케이스가 독특하다. (오른쪽)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 아르데코’ 워치. 전면은 3선 고드롱과 직사각형 대조를 활용한 아르데코 양식을 적용했다. 꽃무늬 인그레이빙과 스켈레톤 처리를 한 후면은 아르누보 양식을 보여준다.


시대 흐름 속 시계 변화

1920년대는 세계정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사회 재건에 힘을 싣는 분위기였고, 이는 경제 호황과 소비문화를 확산시켰다. 전쟁 직후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개성을 뽐내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덩달아 시계도 큰 변화를 맞았다. 포켓 워치에서 손목시계로 변화하면서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를 넘어 새로운 생활양식과 계층 감각을 드러내는 ‘근대적 장신구’가 되었다. 재밌는 것은 2020년대의 시대상이 1920년대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꽤 있다는 점이다. 2020년대 초에 발발한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대륙을 강타하며 세계대전 이상의 큰 영향력을 미쳤다.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이동이 제한되고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던 시국 속에서 1920년대 초와는 조금 다른 측면으로 소비가 늘었고, 팬데믹이 마무리되자 긴장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개성을 드러내는 흐름이 등장했다. 이런 현상 속에서 2020년대의 기계식 시계는 스마트 워치와 달리 ‘쓸모’가 아닌 ‘의미’로 여겨지며, 자신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현대적 장신구’가 되었다.



1920년대 브레게 점핑 아워 포켓 워치. (왼쪽) ⓒ Christie’s (오른쪽) ⓒ Phillips



한 세기가 공유하는 세 가지 코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00년 전 시계 스타일과 지금의 시계 스타일은 세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1929년작을 재해석한 오데마 피게의 ‘네오 프레임 점핑 아워’ 워치.


CODE 1 시계는 나를 드러내는 스타일

1920년대는 포켓 워치에서 손목시계로 본격적으로 이동하는 시기였기에 시계는 새로운 스타일이자 의식적인 스타일링의 대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계는 점차 손목뿐 아니라 모든 곳에 적용되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연필, 자동차의 스티어링 휠, 립스틱과 담배 케이스까지. 이 같은 여러 가지 형태가 수십 년간 영향을 미쳤고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진화·발전했다. 이처럼 점점 더 다양한 시계가 나오자 사람들은 그들의 취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시계를 활용했다. 이를 대표하는 시계를 꼽으라면 모바도의 ‘에르메토’를 들 수 있다. 이후 서술하겠지만 아르데코 스타일의 직선적이면서도 대칭적인 고유의 특징이 잘 살아 있고, 가방에 넣을 수 있는 좋은 오브제 형태의 시계였으며 시계를 물과 먼지 등에서 보호할 수 있는 케이스 커버를 갖추고 있었다.

2020년대에도 이전보다 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시계들이 출현했다. 2025년, 파텍 필립 CEO 티에리 스턴Thierry Stern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큐비투스’를 공개하며 “전 세계 시계의 85%가 라운드 형태인 시기”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2~3년 후, 원형이 아닌 정사각형, 직사각형 그리고 마름모나 독특한 형태의 시계들이 전보다 다수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블랙, 화이트 등 뻔한 컬러의 시계보다 화사하고 밝은 파스텔 톤의 시계들도 여럿 출시되면서 자신의 기분을 시계로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리시한 시계들 역시 많아졌다.


(왼쪽) 기하학적 형태와 간결한 디자인의 까르띠에 ‘탱크 상트레’ 워치. (오른쪽) 올해 파텍 필립은 ‘큐비투스’ 퍼페추얼 캘린더 제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고드롱 스타일의 오픈워크 다이얼을 적용한 것이 특징.


CODE 2 스타일은 아르데코 양식으로

아르데코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유행했던 디자인과 인테리어 양식으로 비대칭보다는 대칭을, 곡선보다는 직선을 지향하고 단순화한 선과 직각 디테일의 특징을 지닌다.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유행했던 예술 사조인 아르누보와 단절하고 새로운 모더니즘 미술로 나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에서 등장한 게 아르데코다. 아르누보는 화려한 장식이 많고 대량생산이 아닌 수공예의 진수를 담고자 했던 예술 사조. 식물과 꽃, 덩굴과 파도 같은 자연 요소를 모방한 구불구불하고 흐르는 듯한 곡선 형태가 주를 이뤘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질서는 기계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도시화가 진행된 데다 세계대전까지 발발해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와 함께 장식적인 요소를 지양하고, 보다 기하학적인 형상을 선호하는 아르데코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기존의 전통적 수공예 양식과 산업 시대 대량생산 방식의 절충점이기도 했다. 이러한 아르데코 디자인을 적극 수용해 탄생한 손목시계 중 하나가 바로 1921년 등장한 까르띠에의 ‘탱크 상트레’다. 당시 흔치 않은 직사각형 케이스에 직선과 대칭을 활용한 다이얼 배열, 비즈 형태의 용두에 사파이어 또는 루비 카보숑을 세팅한 것은 아르데코 특유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지점은 2020년대 역시 아르데코의 시대라는 것이다. 물론 아르누보에 반대 개념으로 등장한 과거와 달리 요즘의 아르데코는 대량생산 방식에서 아르누보로 회귀하려는 경향에 대한 절충점으로 보인다. 대량생산은 가능하지만 수공예와 인간적 감성에 목마른 현대인이 찾을 수 있는 형태가 바로 아르데코 방식의 시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의 아르데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 워치는 직사각형 케이스에 회전하는 기능성과 더불어 다이얼의 기요셰 등을 통해 수공예의 화려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대 아르데코 시계로 활약 중이다. 이 외에도 올해 선보인 파텍 필립 ‘큐비투스’ 퍼페추얼 캘린더 ‘Ref-5840P-001’ 워치는 고드롱 스타일의 오픈워크 다이얼을 채택했고, 까르띠에 ‘프리베’ 컬렉션 역시 아르데코 느낌의 여러 시계를 공개했다.


사각형 케이스가 상징적인 태그호이어의 ‘모나코 크로노그래프’ 워치. 세계 최초의 사각 방수 크로노그래프다.


전통적인 기요셰 장식 기법으로 구현한 물결 형태의 패턴이 돋보이는 루이 비통의 ‘땅부르 컨버전스’ 워치.


CODE 3 디자인뿐 아니라 기술의 혁신

1920년대는 근대화에 따라 기계문명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시기이자 시계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던 때였다. 퍼페추얼 캘린더와 그 이상의 복잡한 시계들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등장한 시대였으며 전통적인 시간 표시 방식이 아닌 색다른 디스플레이 방식의 혁신도 덩달아 일어났다. 특히 점핑 아워 & 원더링 아워 모델들도 이 시기에 여럿 출시됐는데 브레게, 오데마 피게, 까르띠에 등에서 멋진 모델들을 선보였다.

한편 2020년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기술의 혁신이 펼쳐지고 있다. 디지털과 AI라는 블랙홀 속에서 시간을 통제하기보다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인간다움을 발견하는 수단으로 시계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훨씬 더 뛰어난 기술이 있음에도 절제와 통제 안에서 전통을 살리고 휴먼 터치를 느낄 수 있는, 오브제로서의 기계식 시계가 각광받고 있는 것. 이런 관점에서 기본에 충실한 투 핸즈 심플 워치가 다시 인기를 얻는 듯 보인다. 독특한 디스플레이로 시간을 표시한 1920년대 시계들의 복각 모델 또한 다수 출시되고 있다. 오데마 피게의 ‘네오 프레임 점핑 아워’, 까르띠에의 ‘탱크 아 기쉐’, 루이 비통의 ‘땅부르 컨버전스’와 같은 모델들 모두 1920년대 빈티지 시계들을 재현해 당시의 감성을 살리는 동시에 현대적인 기술로 안정성과 기능성을 높였다.


시계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1920년대 후반 대공황과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시계 스타일을 바꾸었듯이 2026년은 여러 전쟁들과 AI 광풍이 다시 한번 시계 스타일에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시계를 통해 사회를 바라볼 수 있으며 반대로 원하고 바라는 사회를 먼저 디자인할 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회를, 아니 어떤 시계들을 맞이하게 될까?



COOPERATION 까르띠에(1877-4326), 루이 비통(3432-1854), 오데마 피게(543-2999), 태그호이어(3479-6021), 파텍 필립(6905-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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