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톤 다운된 벽지 컬러를 선택해 한층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게스트 침실. 침대는 조너선 애들러 제품.
캘리포니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따사로운 햇살과 야자수, 넉넉하게 펼쳐진 부지···. 로스앤젤레스에서 동북쪽으로 차로 20분, 샌게이브리얼 밸리를 따라 자리한 패서디나Pasadena는 19세기 말부터 부유층의 겨울 휴양지로 이름을 날린 곳이다.
이곳에 자리한 의뢰인의 집에 서사를 입힌 것은 타마라 케이-허니가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 하우스 오브 허니House of Honey다. 캐나다 출신으로 패션 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타마라는 2005년 패서디나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여성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이곳은 오래된 것과 새것, 하이엔드와 로엔드, 진지함과 유쾌함을 뒤섞는 방식인 ‘뉴 빈티지The New Vintage’ 스타일로 주목받아왔다.
이번 패서디나 레노베이션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는 크리에이티브 커플이었다. 이 집의 골격은 이미 충분히 훌륭했다. 높은 현관과 넓은 테라스, 2개의 계단, 홈 시어터를 갖춘 지하 공간까지, 모임을 위해 잘 설계된 집이었지만 무언가 빠져 있었다. 바로 이 공간이 어떤 삶을 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개성과 관점이 필요했던 것. 타마라는 잘 만들어진 집에 서사를 심기 시작했다.

화사한 컬러들로 생동감이 넘치는 가족 거실.
소파는 로쉐보보아, 러그는 알렉스 프로바 제품.

수영장 옆에 자리한 야외 파티오 공간.
알록달록한 패브릭 소파는 로쉐보보아, 커피 테이블은 에티모.
스펙터클과 친밀함 사이
먼저 다섯 가지 컬러를 정했다. 핑크와 블루, 버건디, 오렌지, 애시드 그린. 이 팔레트가 3개 층 전체를 관통하며 반복된다. 각 방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전체가 하나의 리듬으로 읽히는 것이 핵심이었다. 곡선적인 형태가 층마다 이어지며, 각 방이 하나의 짧은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거실에서는 클라이언트가 오랜 시간 모아온 아트 컬렉션과 가보들이 조형적인 형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다이닝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분위기가 한층 유쾌해진다. 다이닝 테이블 상판에는 말과 외계인, 가족이 키우는 아프간하운드가 새겨져 있고, 그 위로 로컬 아티스트 제이슨 코해릭Jason Koharik이 만든 샹들리에가 드리워져 있다. 동물들이 뛰노는 벽지가 방을 감싸는 이 공간은 축제의 한 장면처럼 따뜻하다. 아늑한 분위기의 응접실에 들어서면 핑크 패브릭을 입은 스위블 체어 2개가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델프트 타일로 감싼 벽난로와 그 앞에 놓인 커피 테이블까지,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다. 라운지로 내려가면 오렌지 컬러의 대형 소파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장밋빛 벽지가 그 온기를 증폭시킨다. 반대로 키친은 절제의 미학을 시험하는 공간이었다. 기존 캐비닛과 가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커스텀 하드웨어를 더하는 방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아주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가 엘리베이터다. 바나나 패턴이 돋보이는 벽지를 손으로 긁으면 바나나 향이 나는 스크래치 앤드 스니프 벽지를 사용한 것. 이 유쾌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침실로 올라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네 가지 패브릭을 이어 붙인 패치워크 헤드보드가 침대를 감싸고, 소니아 보야지안Sonia Boyajian의 ‘릴리’ 펜던트 조명이 양쪽에서 부드럽게 내려온다. 욕실에는 녹색과 분홍빛 타일이 대비를 이루고 플라밍고 벽지와 커스텀 핑크 유리 샤워 도어가 공간을 완성한다. 3개 층, 수십 개의 방,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디테일이 숨어 있지만 이 집은 결국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장난기와 절제, 장인 정신과 반항적 태도 사이의 균형 속에서 인테리어는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타마라 케이-허니와 나누었다.

타마라 케이-허니Tamara Kaye-Honey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스튜디오 하우스 오브 허니House of Honey를 이끌고 있다. 클래식과 컨템퍼러리, 우아함과 예상 밖의 감각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작업으로 공간에 고유한 밀도를 만들어낸다.

색깔의 대비가 돋보이는 응접실. 핑크 컬러 암체어는 커프 스튜디오의 암체어에 데다 패브릭을 감싼 것.
클라이언트가 가장 원했던 방향은 무엇이었나요? 처음부터 굉장히 명확했어요. 정해진 트렌드를 따르는 집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집을 원했습니다. 매우 개인적이고, 재미있고, 층위감이 있는 공간이요. 기능적으로는 일상과 파티를 모두 너끈히 소화해야 했지만, 감정적으로는 마치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수집된 듯한 서사를 가진 집이어야 했어요. 실험적인 제안에도 언제나 열려 있었고 덕분에 저희도 마음껏 경계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있는데, 공간 전체가 하나로 읽힙니다. 비결이 있다면요? 응집력은 ‘맞춤’이 아니라 ‘의도된 대비’에서 나옵니다. 팔레트와 소재감, 스케일을 통해 기본 프레임을 먼저 구축하고, 그 위에서 서로 다른 오브제들이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했어요. 리듬을 만든 거죠. 핵심 요소들을 반복적으로 활용해 공간 전체에 흐름을 만든 뒤에는 편집이 중요해요. 아무리 매력적인 아이템도 전체 서사와 맞지 않으면 내려놓아야 하죠.
커스텀 다이닝 테이블이 인상적이었어요. 말과 외계인, 아프간하운드가 테이블에 새겨져 있더군요. (웃음) 이번 클라이언트 부부가 정말 특별했습니다. 삶 자체가 워낙 생동감 있고 개성이 넘치는 두 분이었거든요. 개인적인 서사를 디자인에 녹일 때 중요한 건, 너무 직접적으로 읽히지 않게 하는 거예요. 조용한 언어처럼 스며들어야 합니다. 친밀하면서도 장난스럽고, 세월이 지나도 이야기가 드러날 수 있도록요. 늘 새로 발견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보색 대비가 돋보이는 서재. 핑크 컬러 책상은 레고를 붙여서 커스텀으로 제작한 것.

손으로 문지르면 바나나 향기가 나는 벽지로 마감한 엘리베이터.
제이슨 코해릭과의 협업이 공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면 기성품만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무언가가 생깁니다. 공간을 시각적으로는 물론 감정적으로도 중심 잡아주는 포컬 포인트가 생기는 거예요. 코해릭의 조명이 그렇습니다. 거실과 다이닝룸, 키친의 각 장면을 이끌면서도, 공간 전체를 풍부하고 살아 있는 분위기로 끌어올렸죠.
피에르 프레이Pierre Frey와 데다Dedar, 엘리티스Élitis까지 참 다양한 브랜드의 텍스타일을 사용했던데, 선택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텍스타일은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컬러와 패턴만이 아니라 질감, 무게, 빛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까지 신경을 쓰죠. 클래식하고 정제된 패브릭과 전혀 예상치 못한 현대적인 패브릭을 나란히 두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긴장감이 생기고, 그 긴장감이 공간에 깊이를 주지요. 결국 패브릭은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요소예요.
엘리베이터 벽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긁으면 바나나 향기가 나는 벽지라니요. (웃음) 시각으로만 경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손으로 만지고, 향을 맡고, 기억을 통해서도 경험되는 공간이길 바랐습니다. 엘리베이터는 하루에도 몇 번씩 타는 공간이잖아요. 매번 지나치는 곳에 작은 발견을 심어두면, 사람들은 자꾸 웃게 돼요. 그 유쾌함이 공간 전체를 살아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이되 과하지 않게, 그 선이 중요하죠.

채도가 낮은 컬러들로 조합해 안정감이 느껴지는 메인 침실. 침대 프레임에는 크바드라트, 짐머앤로드 등 다양한 브랜드의 패브릭을 사용해 커스터마이징을 했다. 사이드에 걸린 조명은 소니아 보야지안의 작품.

식물로 장식한 제이슨 코해릭의 조명이 유쾌함을 더하는 주방 전경. 카운터 앞에는 보라색 체어를 배치해 보색 대비 포인트를 주었다.
이케아 의자를 피에르 프레이로 다시 입힌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브제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시나요? 가치는 가격이 아닙니다. 그 오브제가 공간의 이야기에 의미 있게 기여하는지가 기준이에요. 하이엔드와 로엔드를 섞으면 공간이 훨씬 진정성 있고 역동적으로 살아납니다. 너무 귀하게만 구성된 공간은 오히려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어요. 이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느껴지는 공간, 그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입니다.
클라이언트와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으셨나요? 비전형적인 제안에도 언제나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주셨어요. 더블 와이드 욕조를 제안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함께 목욕할 수 있는 넓이로 만들자고 했는데, 처음엔 의아해하셨다가 그림을 보시고는 바로 수긍하셨어요. 결국 이 집이 이렇게 완성된 건 그 신뢰 덕분입니다. 어느 하나도 일방적으로 결정된 게 없었어요. 대화하고, 다듬고, 함께 만들어간 집이죠.

다양한 색감과 소재가 조화롭게 녹아든 다이닝룸. 주방과 마찬가지로 제이슨 코해릭의 샹들리에가 공간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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