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6월호

6월의 복달임, 민어

여름 보양식의 일품 자리는 따로 있었다. 바로 민어다. 
잡자마자 금세 죽어버리는 민어를 한여름에 신선하게 먹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지를 벗어나면 귀해지는 생선, 그래서 더 탐내던 생선.
6월 그믐이 지나기 전, 임자도 앞바다에서 올라온 민어가 상에 오르면 그것으로 여름은 시작됐다.

EDITOR 김민지 PHOTOGRAPHER 김잔듸


“민어는 호박 날 때 먹어야 한다”. 1924년 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남아 있는 문장이다. 바야흐로 호박이 열리는 계절, 6월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지금의 민어를 면어 鮸魚, 즉 ‘큰 물고기’라는 뜻의 한자로 적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다금바리처럼 크고 귀한 물고기라는 뜻의 다금바리 민 鰵을 써서 민어 鰵魚라 표기했지만, 정작 민어는 조선시대 내내 흔한 생선이었기에 ‘백성의 생선’이라는 의미의 민어 民魚로 통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남획과 어획량 감소로 자원이 급격히 줄었고, 한 마리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여름의 귀한 생선이 됐다. 민어가 제맛을 내는 시기는 짧다. 6월에서 8월 사이, 산란을 앞두고 살이 가장 오를 때다. 그중에서도 장마 직전,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바다 위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이 즈음이 절정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저자 이용기는 “특히 6월 그믐 전에 잡은 민어가 가장 맛이 좋다”고 했다. 살은 희고 결이 부드러우며, 지방이 적당히 올라 회로 썰면 단맛이 길게 남는다. 익혀도 부서지지 않고 육질이 촉촉하게 유지되어 탕이나 찜으로도 빠지지 않는다.



버릴 것이 없는 생선

민어는 부레가 특별하다. 콜라겐이 풍부한 이 부레는 먹기도 했고, 가구와 활을 만드는 천연 접착제인 아교로도 쓰였다. 버리는 것이 없다는 민어의 평판은 부레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민어 부레를 귀히 다루는 음식점에서는 살짝 구워 기름장에 내거나, 국물 요리의 깊이를 더하는 데 쓴다. 민어는 서해에서 난다. 그중에서도 전남 신안의 임자도 앞바다가 최고 산지로 꼽힌다. 산란기가 되면 제주도 근해에 있다가 서해 쪽으로 올라오는데, 어부들은 바닷속에 굵은 봉을 꽂고 귀를 대 민어 떼가 내는 소리를 들었다. 부레를 활용해 개구리처럼 울어대는 그 소리로 군체의 위치를 짚었다. 눈보다 귀로 먼저 찾는 생선이었다. 귀한 대접은 오래됐다. 소금에 절여 말린 민어, 암치 巖峙는 궁중 수라상에도 올랐다. 어로와 보관 기술이 지금과 다르던 시절 신선한 민어를 내륙까지 운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민어는 보통 말린 것으로 진상됐고, 그 형태로도 충분히 귀한 식재료였다. 담백한 맛이 일품인 민어의 조리법은 간단할수록 좋다. 두껍게 썬 회 한 점, 뽀얗게 잘 우린 민어탕 한 그릇. 예부터 전해 내려온 구전 문구 중에 복달임 음식으로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는 말이 있었다. 구전은 틀리지 않는다. 일품이라는 자리는 그때가 아니면 낼 수 없는 맛이었기에 붙은 것. 민어를 아는 사람들이 서두르는 이유다.



“되레 저 스스로를 한식의 큰 틀 안에 가두려고 했어요.

누군가는 정통에 기반한 한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충분히 맛있는데 경험해보지 않아서 안 먹게 되는 음식들이 결국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요.”

레스토랑 주은 박주은 셰프


2022년부터 ‘레스토랑 주은’을 이끌고 있는 박주은 셰프. 올해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1개의 별을 받았다.


민어 껍질과 얇게 두드린 민어살 위에 두부, 해방풍, 버섯 등을 올려 돌돌 만 뒤 살짝 쪄낸 민어 어만두. 맑게 우린 민어 육수를 곁들인다.


주은이 지키고 싶은 것
서울 경희궁 옆, 골목길 자락에 ‘레스토랑 주은’이 있다. 한식의 대모인 조희숙 셰프가 이끌던 한식공간 출신의 박주은 셰프가 2022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 레스토랑이다. 올해로 오픈 5년 차,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처음으로 1개의 별을 받았다. 한식의 오래된 조리법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덧입힌 주은의 음식은 단순히 ‘양식을 기반으로 한 요즘 한식’과는 조금 다르다. 셰프가 말하는 것은 그 반대에 가깝다. “되레 저 스스로를 한식의 큰 틀 안에 가두려고 했어요. 누군가는 정통에 기반한 한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충분히 맛있는데 경험해보지 않아서 안 먹게 되는 음식들이 결국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요.” 그 철학은 주은의 음식 전체를 관통한다. 레스토랑의 플레이팅은 현대적이지만 맛의 구조만큼은 의도적으로 전통의 경계를 세웠다. 버터나 치즈, 트러플처럼 풍미가 강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금씩 섞이다 보면 결국 음식의 중심이 바뀌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은이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반상’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이다. 많은 파인다이닝 한식당이 효율과 서비스 문제로 반상을 포기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감각을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여러 개의 따뜻한 음식이 동시에 올라가는 반상을 내려면 인력도 많이 들고 훨씬 어렵다. 하지만 셰프에게 반상은 단순한 구성 방식이 아니라 한국인이 공유하는 정서에 가깝다. “향수 같은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생일상에 잡채도 있고, 불고기도 있고, 생선도 있고···. 그 푸짐한 한 상의 기억이 참 좋게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주은의 코스는 섬세한 요리들 뒤에 직관적이고 투박한 반상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게 주은은 오늘날 가장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한식의 근간을 지켜가고 있다.



한국화를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 월을 설치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더한 레스토랑의 전경.


제철 반찬들과 국을 끓여 디저트 전 마지막 코스로 내는 반상. 여름이 되면 뽀얗게 우린 민어 육수에 고추장과 각종 채소, 민어를 넣고 끓인 민어 감정을 올린다.


여름의 민어, 한식의 기억

한국에서 민어는 오래전부터 여름 보양식의 상징처럼 여겨져왔다. 주은에서도 거의 매년 여름이면 민어를 사용한다. 특히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에서 올라오는 민어가 아주 맛이 좋다. 그가 말하는 민어의 가장 큰 매력은 ‘담백함’이다. 지나치게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깊은 감칠맛과 구수함이 있다는 것. 특히 뼈를 오래 끓여 만든 뽀얀 민어 육수는 사골처럼 진하면서도 훨씬 맑고 섬세한 풍미를 낸다. 셰프는 이 육수로 ‘민어 감정’을 만든다. 감정은 궁중 음식에서 유래한 조리법으로, 찌개와 국의 중간쯤 되는 형태의 음식이다. 민어 육수에 고추장과 애호박, 무, 표고버섯, 고추, 감자를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민어살을 넣어 살짝 익힌다. 즐겨 선보이는 또 다른 요리는 민어 어만두. 일반적으로 어만두는 얇게 포 뜬 생선살로 만드는데, 주은에서는 민어 껍질까지 함께 사용한다. 얇게 두드린 민어살 안에는 두부와 해방풍, 버섯, 민어살을 다져 넣은 소를 채우고 이를 말아 쪄낸 뒤 맑은 민어 육수와 함께 낸다. 같은 민어라도 감정이 투박하고 직관적인 여름의 맛이라면, 어만두는 훨씬 섬세하고 정교한 결을 보여준다. 셰프가 말한 “파인다이닝 한식과 반상의 공존”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박주은 셰프에게 가장 좋아하는 민어 요리를 묻자 민어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두툼하게 썬 민어에 계란물을 입혀 촉촉하게 부쳐낸 단순한 음식. 그에게 민어는 거창한 재료가 아니라 한국인이 오래도록 즐겨온 여름의 익숙한 맛에 가깝다. 결국 주은이 만들고 싶은 한식도 여기에 닿아 있다. 컨템퍼러리라는 수식보다 먼저 한식의 기억과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곳. 여름의 민어 한 그릇 안에서 주은은 오늘날 한식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COOPERATION 레스토랑 주은(540-8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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