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 출신의 판화 기반 추상 작업 작가인 스베인 마멘Svein Mamen의 리소그래피 작품 ‘Prosess II, I, VIII’. 형태가 생성되고 변형되는 흐름과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안네 카리 한센 오빈ANNE KARI HANSEN OVIND 25년 이상 노르웨이 외교부에서 근무하며 북극, 안보, 러시아 관계, 나토(NATO) 등 핵심 외교 분야를 담당했고, 주캐나다 대사를 역임했다. 2022년부터 주 한 노르웨이 대사로 재직하며 한국과의 협력을 이끌고 있다.
2022년 서울에 부임한 뒤 안네 카리 한센 오빈이 가장 먼저 손에 넣은 일상의 기쁨은 북악산 등산로였다. 하이킹을 즐기는 노르웨이인으로서 도심 한복판에 자연이 이토록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반가운 발견이었다. 노르웨이의 라이프스타일은 균형과 평등 그리고 자연과의 긴밀한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당 평균 약 37시간의 근로시간, 오후 4시면 퇴근하는 일상. 그러면서도 근로시간 대비 생산성은 OECD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시간당 GDP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높은 생산성과 짧은 근로시간이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노르웨이는 증명해 보이고 있다.
노르웨이 외교부에서 경력을 시작한 그녀는 다자 외교와 양자 협력, 개발 협력과 인권 분야를 넘나들며 외교관으로서의 활동 폭을 넓혀왔다. 유엔 제네바 사무소와 노르웨이 외교부 본부를 오가며 국제 협상의 현장을 체득했고, 젠더 평등과 여성 권리 분야에서도 오랜 시간 정책을 다뤄왔다. 이러한 경력은 그녀의 외교 철학의 뼈대를 이룬다. 규범 기반의 국제 질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를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철학은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걸어온 길과도 맞닿아 있다. 노르웨이에서 성평등은 오래전부터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잠재력의 핵심 기반으로 여겨져왔다. 현재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은 약 75%에 달한다. 2015년 보편적 징병제 도입 이후 병력의 약 30%가 여성으로 이루어졌고, 해양과 국방처럼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이던 분야에서도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아버지의 93%가 부모 휴가를 사용하는 나라, 장관이 육아휴직을 쓰고 그동안 직무 대행이 임명되는 나라. 그녀 자신도 남편과 휴가를 나누어 아이들을 함께 돌봤다. 잘 설계된 제도와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 이것이 안네 카리 한센 오빈이 어린 시절부터 직접 목격하며 체득한 신념이다.

노르웨이는 북위 65~75도인 오로라 벨트에 위치해 오로라 관측의 최적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나라지만, 한국과 노르웨이 사이에는 생각보다 깊은 인연이 있지요. 두 나라의 우정은 75년 전 한국전쟁 당시 노르웨이가 의료 지원단을 파견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후 1959년 수교를 맺었고요. 67년 수교 역사 속에서 신뢰 관계가 꾸준히 공고해졌고, 오늘날 한국은 아시아에서 노르웨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파트너 중 하나입니다. 노르웨이 기업들은 해양과 에너지, 수산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최근에는 안보·국방 협력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죠.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작품이 여전히 한국 관객들에게 울림을 주고, 노르웨이 정부가 제정한 국제 입센상을 올해 한국 예술가 구자하 씨가 아시아 최초로 수상한 것 또한 상호 문화적 공명을 잘 보여줍니다.
해양·에너지 분야에서 특히 중요하게 보시는 협력은 무엇인가요? 한국 조선업은 세계를 선도하고,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운국이죠. 현재 약 80개의 노르웨이 기업이 부산과 울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해상 풍력 협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어요. 지난해 세 번째로 개최된 한-노르웨이 해상 풍력 비즈니스 포럼은 양국 업계 관계자들이 장기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효과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에너지 지형을 보면 상호 보완성이 뚜렷합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전체 전력 생산의 약 10%인 반면, 노르웨이는 약 95%를 차지하기 때문이죠.
IN THE LIGHT OF NORWAY
노르웨이의 자연과 빛이 만들어낸 감성과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소장품.

노르웨이 연어 타르타르 신선한 노르웨이 연어 타르타르에 감칠맛이 풍부한 염장 연어알과 상큼한 유자 비네그레트, 딜을 곁들여 마무리한 요리.
대사님께서 2025 여성리더스포럼에서 양성평등을 ‘국가 전략’으로 강조하신 점이 인상 깊었는데요. 이러한 접근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노르웨이에서 성평등은 오래전부터 단순히 권리에 관한 문제가 아닌 국가 잠재력의 핵심 기반으로 여겨져왔습니다.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 약 75%에 힘입어 오늘날 여성들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는 석유·가스 수익을 넘어설 정도예요. 육아휴직도 그 변화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93%가 부모 휴가를 사용하는데, 각 부모에게 배정된 휴가를 서로 양도할 수 없도록 설계한 덕분입니다. 2024년에는 기후·환경부 장관이 부모 휴가를 사용하고 직무 대행 장관이 임명되기도 했어요. 저와 제 남편도 휴가를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제도가 틀을 제공하고, 리더들이 그것을 직접 실천할 때 사회 전반에 강력한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그 경험이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성평등은 여성만의 이슈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회적 목표입니다. 2015년 보편적 징병제 도입 이후 현재 병력의 약 30%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변화는 가장 견고해 보이는 분야에서도 가능합니다. 잘 설계된 제도와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 뒷받침되고 산업 내부의 노력이 더해질 때 가장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왼쪽) ‘Turkis Stakk’, 토르비에른
크바스뵈Torbjørn Kvasbø
노르웨이 현대 도예를 대표하는
작가 크바스뵈의 튜브 구조 시리즈.
단순한 원통을 반복적으로 쌓고
연결하면서 하나의 유기적인
조형 덩어리를 만든다.
(오른쪽) 노르웨이 전통 브로치
대사의 할머니가 직접 제작한 은 브로치로
100년의 세월이 깃들어 있다. 전통 의상을
입을 때 꼭 착용하는 액세서리다.

(왼쪽) 노르웨이 전통 가방, 부나드베스케
노르웨이 전통 의상 부나드Bunad와 함께
착용하는 작은 가방. 노르웨이 텔레마르크
지방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대사의 할머니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오른쪽) ‘Henrik Ibsen’, 닐스 아스Nils Aas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인
헨리크 입센의 청동 동상.
그는 19세기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는다.
영화, 미술, 문학까지 노르웨이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과의 교류 측면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올해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의 〈센티멘탈 밸류〉가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면서 노르웨이 영화 산업이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노르웨이의 정체성 그 자체인 뭉크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2024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에드바르 뭉크 전시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140점이 넘는 작품이 소개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시에 무려 20만 명이 다녀갔어요.
한국과의 문학 교류도 활발한 편입니다. 한강 작가의 모든 작품이 노르웨이어로 번역되어 있고, 한국에서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Jon Fosse)를 비롯해 요 네스뵈(Jo Nesbø), 칼 오베 크네우스고르(Karl Ove Knausgård) 같은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연어는 어느새 한국인의 식탁에서 매우 익숙한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이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정말 기쁩니다. 이는 한국 소비자들이 품질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노르웨이의 높은 기준을 신뢰해주신다는 의미이니까요. 지금 한국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노르웨이 연어 수입국입니다. 많은 분이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실이 있는데, 연어초밥의 세계적 인기가 바로 노르웨이에서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40년 전 시험 프로젝트로 처음 일본에 소개한 것이 한국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지요. 지난해 대사관저에서 노르웨이 수산위원회와 함께 연어초밥 4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에게 다소 생경한 노르웨이의 대표 음식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노르웨이의 음식 문화는 길게 뻗은 해안선, 차가운 바다,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대구, 고등어, 연어 같은 신선한 해산물은 노르웨이 식문화의 중심에 있으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식으로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죠.
노르웨이의 전통 음식인 포리콜(fårikål)은 양고기와 양배추에 후추를 넣어 끓인 스튜입니다. 브라운 치즈로 불리는 브루노스트(brunost) 또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예요. 캐러멜화된 유청 치즈로, 자연스러운 단맛과 약간의 새콤한 맛이 특징입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갓 구운 빵이나 얇은 하트 모양인 노르웨이식 와플 위에 올려 즐기곤 합니다.

‘Garntørk’, 토르비에른 리에-에르겐센Thorbjørn
Lie-Jørgensen 해양수산업이 발달한 노르웨이
어촌에서 어망을 말릴 때 쓰는 건조 구조물
‘가른퇴르크’와 어선을 그린 유화 작품.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전시 포스터 1915년에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전시 포스터로 작가가 직접 그린 작품이다. 거친 선으로 인물과 자연을 뒤섞는 표현 기법이 평소 뭉크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십 년의 외교 경험을 통해 대사님만의 외교 철학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대사님께 외교란 어떤 의미인가요? 결국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 시작은 귀 기울여 듣는 것에서 출발해요. 깊이 듣기 시작하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 다른 역사와 관점을 지닌 사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로 이어집니다. 개인적 관계를 만들고 문화적 감수성을 넓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도구이고요. 공감과 소통이 더 평화롭고 연결된 세계를 만드는 데 얼마나 강력한 역할을 하는지 외교 현장에서 매일 실감합니다.
대사님이 생각하시는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인가요?
깊은 연결감과 마음이 안정되는 순간들에서 찾아옵니다. 야외에서 하루를 보낸 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 신선한 재료로 만든 소박하지만 품질 좋은 음식을 나누는 시간, 긴 하이킹이나 스키 여행 또는 피오르를 따라 카약을 즐긴 후 찾아오는 따뜻한 안도감.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 순간들이 제게는 가장 값진 럭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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