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 스튜디오 디오리진 정동민·신예진 디렉터
‘디오리진 d-ORIGIN’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질문이 담겨 있나요? ‘de’와 ‘origin’의 결합. 무언가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그 질문에서 출발한 이름입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결과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제품만의 가치를 발굴하는 일입니다. 가치 있는 제품은 더 나은 선택을 만들고, 그 선택들이 쌓여 일상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바꾼다고 믿어요.
아버지가 창업한 스튜디오를 정동민 디렉터가 이어가며 한층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작업 중 베스트 작품을 꼽아본다면요? 샘표식품의 ‘연두’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동글동글한 형태에서 친근함과 세련됨이 함께 느껴지죠. 대중적인 제품인데도 가볍게 소비되지 않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전달합니다. 그 균형감이 좋아요.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톰의 스킨케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1년 설립 이후 15년이 지났습니다. 디오리진이 가장 크게 성장한 시기는 언제였나요? 2023~2024년, 뷰티 프로젝트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포트폴리오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제니에와 트라이브가 있었죠. 모두 신규 론칭 브랜드였고, 단일 제품이 아닌 브랜드 전체 라인업을 처음부터 함께 만들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운 동시에, 디오리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뷰티 클라이언트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최근 1년 기준으로 전체의 50%, 신규 클라이언트만 보면 80%가 뷰티 브랜드입니다. 국내 90%, 해외 10%로 아직 국내 중심이지만, 해외 비중이 매해 늘고 있어요.
뷰티 업계 클라이언트의 요청 방식이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고급스럽게’, ‘트렌디하게’처럼 원하는 방향이 넓었다면, 지금은 용기 하나만이 아니라 그래픽, 패키지, 비주얼 전반이 일관된 톤으로 연결되기를 원하죠. 시장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저희가 답해야 하는 수준도 함께 올라갔습니다. 색조 제품군이 금형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반면 기초 제품이나 다른 카테고리는 아직 프리몰드(범용 금형) 의존도가 높습니다.

러시아 국적의 CEO와 함께 개발한 ‘트라이브 선스틱’.
톰 THOME 프로젝트가 신규 클라이언트들에게 특히 인상적으로 전달됐다고요. 톰이 선보인 ‘G필 프로그램’은 2주에 한 번씩 쓰는 루틴을 제안하는 제품입니다. 사용하는 시간보다 놓여 있는 시간이 훨씬 길죠. 그 사실에서 출발했습니다. 쓰지 않는 순간에도 공간 안에서 존재감을 만드는 물건. 색조나 프레이그런스 계열은 상징적이고 감각적인 존재감이 중요할 수 있고, 스킨케어는 신뢰감과 절제된 무드가 더 잘 어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테고리마다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한 번 더 짚어보게 된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러시아 브랜드 트라이브와의 선스틱 협업은 어땠나요? 트라이브는 CEO가 러시아에서 라이프스타일 앱 82Box를 5년간 운영하며 쌓은 질문에서 출발한 브랜드입니다. 선스틱의 디렉션은 분명했어요. “저건 뭐지?” 하고 시선이 멈추는 존재감. 형태, 컬러, 패키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브랜드만의 오브제로 풀어냈습니다. 첫 제안까지 3주, 양산 팔로업까지 총 10개월이 걸려서 완성되었습니다.

가상의 뷰티 브랜드
ORGN의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며 새로운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상적인 디자인과 양산 가능한 디자인, 그 간극을 어떻게 다루시나요? 초기엔 좋은 디자인을 현실에 맞춰야 하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간극을 ‘줄여야 할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설계해야 할 조건으로 다루는 거죠. 이상적인 디자인과 양산 가능한 디자인의 간극을 좁히는 방법은 디자인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를 먼저 정의하는 것입니다.
디오리진의 자체 프로젝트 ‘ORGN’은 어떤 필요에서 시작됐나요? 비주얼을 보았을 때 판매하는 제품인 줄 알고 열심히 검색하다 ‘가상의 뷰티 브랜드’라는 것을 알고 아쉬웠어요. 디오리진의 포트폴리오가 미니멀하고 정적인 무드에만 고착되지 않도록 스펙트럼을 넓혀보자는 니즈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입니다. 동시에 디자이너 각자가 만들고 싶은 것을 직접 구현하는 장이기도 하지요. 클라이언트 작업에서는 꺼내기 어려웠던 아이디어들이 ORGN에서 먼저 형태를 얻습니다. 결과적으로 ORGN을 통해 기존과 결이 다른 브랜드들의 문의가 늘었고, 특히 해외 문의가 눈에 띄게 증가했어요. ORGN에서는 AI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실물 없이 가상의 콘셉트를 이미지로 구현해야 하는 작업에서 AI는 상상력의 반경을 넓혀줍니다.
HAIR & MAKEUP ARTIST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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