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5월호

ANTIQUES, NOW

고미술 상가에 열풍이 불어오기 전부터 우리 것의 진가를 진작부터 알아본 이들이 있다.
남다른 심미안으로 골동을 고르고 자기만의 색깔로 큐레이팅하는 요즘 골동인들의 이야기, 그 첫 번째 시간.

EDITOR 김혜원 PHOTOGRAPHER 김연제

고복희 아틀리에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거치 무늬의 파란 문. 액운을 막아주는 거치 무늬는 톱니바퀴 모양을 띤다. (왼쪽부터) 반닫이, 서탁과 빈티지 소파를 매치했다. 선반 위에 놓인 것은 도깨비 기와(망와), 옆에는 여러 시대 토기들과 책장을 뒀다.


고아하고 아름다운 고미술 세계
언젠가부터 SNS에서 고미술 상가 관련 콘텐츠가 유난히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고미술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또 어떤 까닭에 이토록 ‘유행’하고 있는 걸까. 답십리를 방문하면 그 매력을 가까이서 발견할 수 있다. 오밀조밀 붙어 있는 상점, 빼곡한 옛 물건, 정겨운 상점 주인들까지. 수백, 수천 년 세월을 지나온 물건이 가득한 낯선 광경임에도 어딘가 익숙함이 공존하는 이곳은 희미해진 우리의 미美, 정감까지 다시금 되살린다. 또한 사람의 손맛과 흔적, 우리가 살지 못한 시대와 철학을 품은 고미술의 특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최근 K-컬처가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젊은 세대가 우리 것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달라졌다. 그 배경에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도 클 터. 예로 작품에 등장한 갓은 해외에서 ‘힙’한 아이템으로 주목받았고, 한국 문화와 미감이 재조명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한복, 공예 등 전통적인 시각언어로 번졌고 고미술도 그 연장선에 놓였다. 여기에 유행과 제품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적 경향 역시 자연스레 한국적 빈티지로 시선을 향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취향과 콘텐츠를 찾는 이들에게 획일화되지 않은 형태와 고유한 이야기, 시간의 층위를 품은 고미술은 명쾌한 선택지가 될 테니.

고미술 상가는 1970년대부터 늘 그 자리에 존재해 왔으며 이미 알음알음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요즘 들어 더욱 붐비는 이유는 바라보는 시선과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에 있다. 이에 더욱 힘을 보탠 것은 최근 문을 연 몇몇 상점들. 고미술 상가 2동에는 소품 상점 ‘고복희’를 시작으로 ‘호박포크아트갤러리’, ‘OF’가 들어서며 젊은 바람이 불어왔다. 이들의 공통점은 골동을 진열만 하지 않고 현대의 것과 함께 풀어낸다는 점. 고미술을 각자의 방식으로 큐레이션하는 동시에 이를 어떻게 소유하며, 공간 속에서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 <럭셔리>는 ‘요즘 골동인’에 주목한다. 유행에 앞서 한국적 가치를 발견한 그들은 미감만 좇지 않고 물건이 지닌 이야기를 향유하며 일상에 두고 함께 살아간다. 매달 이들의 공간과 취향을 따라가며, 오래된 것을 오늘의 감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시간의 깊이를 탐미하는 아틀리에

장한평 고미술로에 둥지를 튼 김지은 대표의 아틀리에 ‘고복희’는 한국 고가구의 우아함을 한껏 끌어올린 채 우리를 맞이한다. 자신만의 섬세한 감각과 욕심을 투영해 국내외 빈티지의 하모니를 보여주는 곳.


플로스Flos 조명과 1970년대 이탈리아 빈티지 소파. 가운데 가구는 김지은 대표가 애정하는 강원도 찬장. 소파 테이블처럼 활용한 것은 19세기 해주반으로, 조선 중후기 백자 향로를 놓아두었다.


김지은 장한평 고가구 아틀리에와 답십리 소품 상점 ‘고복희’의 대표. 답십리 고미술 상가 안에 ‘고복희’를 오픈하며 젊은 분위기를 불어넣은 첫 번째 주자이기도 하다.


아틀리에와 소품 상점 ‘고복희’를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죠? 아틀리에는 큰 가구를, 소품 상점은 작은 소품류를 선보이는 공간이에요. 기존에 제가 갖고 있던 빈티지 가구와 고가구의 멋진 합을 보여주는 곳이 아틀리에라면 소품 상점은 워크인으로 편하게 들러 작은 기물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죠. 장한평과 답십리 고미술 상가 모두 정말 좋아하는 곳이라 아틀리에는 장한평에 자리를 잡았고, 이후 답십리에 작은 소품 상점을 열었습니다.


‘고복희’라는 이름의 뜻을 알려주세요. 길상무늬 중에서도 특히 조선 후기에 길한 기운을 지닌 한자를 가구에 새겨 넣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한자가 복 복 福 자, 쌍 희 囍 자였어요. 여기에 옛 ‘고 古’를 붙여 ‘옛것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 탄생했어요.


그 의미가 곧 고미술의 매력인 듯해요. 기물이 살아 있던 시대의 흔적을 공유하고 같이 호흡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워낙 빈티지를 좋아하던 터라, 서양의 빈티지 가구를 먼저 수집하다가 자연스레 한국 고미술품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급여를 받으면 갖고 싶던 고미술품을 사 모았는데 가구들의 덩치가 점점 커져서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고, 그 후 본격적으로 큰 가구를 수집하는 계기가 됐어요.


일제강점기 무렵 만들어진 횃대와 보기 드문 사이즈의 3층 서탁.


골동의 경우 어떤 제품을 위주로 고르는지 궁금한데요. ‘고복희’만의 눈으로 물건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기존에 소장한 것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현대 가구와 자연스레 어울리는 물건을 고릅니다. 장식이나 색이 강한 것보다 현대적 관점에서 ‘모던한’ 가구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그렇다면 손님들에게 선보일 때는 어떤 기준이나 이야기를 담아 큐레이션하나요? 상점을 운영하기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이 물건이 누군가의 집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더 고민하게 됐어요. 제 소장품을 구입할 때보다 더 까다롭게 보기도 하고요. 아, 예상하지 못했던 장점이 있는데 정말 다양한 물건을 접하고 거래하면서 점차 보는 안목이 높아진 것이 큰 수확이었어요.


고미술 상가 2동 안에 감각적인 공간을 열면서 주목받았어요. 고미술 열풍의 한가운데 있는 주인공으로서 변화를 더욱 실감할 것 같습니다. 주말 소품 상점을 작년 1월 오픈한 뒤로 9월까지는 하루에 4~8팀 정도 방문했던 것 같은데요. 올해 초부터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분이 답십리를 찾는 느낌이에요. 다만 전 이게 갑자기 일어난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엄격한 기준으로 한국 골동을 수집하고 지켜온 1세대·2세대 골동 어르신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 토대 위에 가능했던 변화라 믿어요.


(왼쪽) 곱돌로 된 거북이 촛대와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찬장, 검은 개다리소반(구족반). (오른쪽) 지금의 침대 프레임과 비슷한 19세기 후반 평상. 19세기 백자 기름받이 등 여러 시대 고미술 소품을 올려두었다.


특히 애정하는 골동을 꼽는다면요? 7년 전에 발견한 뒤로 꼭 갖고 싶었던 강원도 찬장이요. 가격대가 높아 바로 데려오지 못하고 무려 4년에 걸쳐 비용을 마련했답니다. 그리고 3년 전에 드디어 품에 안았죠. 이걸 팔면 다른 가구를 살 자금이 생기겠지만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계속 갖고 있어요. 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오더라도 지금으로선 가장 애정하는 가구입니다.


골동의 세계는 선뜻 발을 들이기에 고민되는 부분도 많은데요. 먼저 여러 시도를 해본 선배로서 팁이 있을까요? 중요한 건 내 취향을 아는 거예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주변에 자문을 구하거나 컨설팅을 받아봐도 좋아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물건을 들이다 보면 나중에는 결국 버리거나 금방 바꾸고 싶어질 테니까요. 골동을 ‘잘’ 수집하려면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할 만한 작은 것부터 시작하길 권해요.


<럭셔리> 독자들에게 고미술품을 추천해주세요. 조선 후기 백자 굽 높은 원형 접시와 사각 편대.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고 나와 가족의 복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쓰인 기물이라 의미도 좋은데요. 무엇보다 작은 물건을 올려두면 재질도 시대도 다른 데에서 발생하는 이질감이 재미있어요.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히 멋지고요.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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