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네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정원 속에 자리한 하겐 빌라.

경쾌하면서 편안한 분위기의 거실 전경.
1층 벽 하단부는 머스터드 옐로 컬러로 통일하고, 직접 개발한 테라초 바닥을 적용했다.
소파는 피에르 오귀스탱 로즈Pierre Augustin Rose, 커피 테이블은 아주체나Azucena 제품.

기스베르트 푀플러 베를린 기반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역사성과 현대성을 결합한 절제된 절충주의 스타일로 주목받는다. 프로젝트마다 가구와 디테일까지 맞춤
설계하는 비스포크 접근을 통해 공간에 개인의 서사와
깊이를 정교하게 구현하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정원과 맞닿아 있는 전실 개념의 가든 룸.

다채로운 컬러와 포근한 소재가 조화로운 아이 침실. 침대 위에 올린 패브릭은 직접 제작한 것이다.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하겐Hagen이라는 도시가 있다. 철강과 금속 산업으로 번성했던 이 지역은 20세기 초 전혀 다른 이유로 유럽 건축사에 이름을 새기게 됐다. 그 중심에는 카를 에른스트 오스타우스Karl Ernst Osthaus가 있었다. 섬유산업으로 큰 부를 쌓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예술과 문화에 깊이 매료되었고, 하겐을 단순한 공업도시가 아닌 예술과 건축이 살아 숨 쉬는 실험의 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오스타우스는 당대 가장 전위적인 건축가들을 하겐으로 불러들였다.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부터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 앙리 반 데 벨데 Henry van de Velde까지. 훗날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들이 이 작은 도시에 모여 ‘호엔하겐 전원도시Hohenhagen Garden City’를 함께 그려나갔다. 이들의 공통된 화두는 하나였다. ‘급격한 산업화로 기계가 손을 대신하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예술과 장인 정신을 다시 삶 속으로 불러올 수 있는가.’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의 정신이 그 바탕에 흘렀고, 하겐은 그 이상이 건물과 거리로 구현된 살아 있는 실험실이 되었다.
이 빌라는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다. 1921년 루트비히Ludwig 형제가 지은 저택으로 오스타우스가 주도한 건축 단지에 속한다. 불규칙하게 구운 벽돌로 완성한 파사드와 고목들이 우거진 드넓은 정원이 지금도 당시의 기품을 전하고 있다. 파사드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지만 내부는 오랜 세월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완전히 전소되었고, 1980년대에 개보수된 내부는 이 집이 품었을 원래의 이야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베를린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기스베르트 푀플러Gisbert Pöppler가 처음 이 집의 문을 열었을 때 감탄과 실망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한 이유다. 하지만 그 실망은 이내 가능성으로 바뀌었다. 건축주 가족과 긴밀히 협력하며 시작한 레노베이션은 처음의 소규모 의뢰를 훌쩍 넘어, 이 집의 역사와 정신을 현대의 언어로 다시 쓰는 야심 찬 여정이 되었다.

책을 읽거나 편히 쉴 수 있도록 고안한 리딩 룸.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첫인상이 어떠셨나요? 이 집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었기에 기대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벽돌 소재 파사드는 개성이 넘쳤고, 무성하게 자란 정원은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주었죠.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실망이 컸습니다. 빌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내부가 완전히 전소되었고, 1980년대에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친 상태였어요. 다행히 파사드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손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내부는 DIY 매장의 폴리스티렌 몰딩과 금색 매립 스포트라이트로 가득했고, 1980년대에 설치한 계단은 1층과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발을 헛디딜 위험이 있는 구조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내부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레노베이션의 범위가 처음부터 이렇게 컸던 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원래 클라이언트는 색채 계획과 가구 배치 정도만 의뢰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진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전된 거예요. 저희가 느낀 인상을 솔직하게 말할 용기를 냈고, 다행히 건축주 가족이 즉각적으로 이해해주었습니다. 마침 난방과 전기, 창문도 어차피 완전히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그렇게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각 분야 최고의 장인들과 협력해 이 빌라의 옛 영광을 되찾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거실 한켠에 배치한 클래식한 은 식기들.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실을 터널 구조로 마감해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더했다.
빛을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장치를 고안하셨다고요. 남향임에도 방들이 꽤 어두웠습니다. 거실에 최대한 많은 빛을 들이기 위해 창문의 경사면을 비스듬히 깎아냈어요. 언뜻 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디테일이지만,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온실과 리빙 홀 사이에는 타원형 창을 냈고, 증축 부분에는 천창을 설치해 높은 나무들의 잎사귀를 올려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일은 단지 ‘아름다운’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안무’를 짜는 것에 가까워요.
입구에서부터 계단까지 공간의 흐름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의도로 설계하셨나요? 입구와 통로의 높이를 거의 1m 정도 높이고, 이 집의 특징적인 요소가 된 둥근 아치를 적용했는데, 덕분에 공간감이 훨씬 커졌어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핑크 리놀륨으로 마감해 마치 터널처럼 보이게 구성했습니다. 원래는 다소 평범하고 개방된 계단이 있었는데, 2층은 가족들의 프라이빗한 휴식 공간이기 때문에 터널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역을 구분했습니다.

직접 디자인한 ‘벨레누스Belenus’ 테이블을 배치한 다이닝룸. 의자는 까시나, 오른쪽 벽에 걸린 조명은 드라가 & 아우렐Draga & Aurel, 플로어 램프는 폰타나 아르테 제품.
공간 곳곳에서 색채가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색채 선택에는 당연히 저희의 시그너처가 담겨 있습니다.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자칫 엄숙해질 수 있는 공간에 유쾌한 생동감을 불어넣죠. 먼저 리빙룸의 라이트 블루, 드로잉 룸의 레드, 굽도리의 옐로가 통로 측면에서 한데 만납니다. 도장 전문가가 처음 페인트 통들을 보고는 적잖이 당황했다고 해요. 그런 배색은 본 적이 없다면서요.(웃음) 붓질을 시작하기도 전에 건축주에게 전화를 걸어 색상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였죠. 온실의 스벤스크트 텐 Svenskt Tenn 패브릭으로 만든 암체어와 수제 캐시미어 담요, 거실의 옐로와 라이트 블루 ‘바바 Baba’ 암체어까지. 마스터 욕실 세면대는 이탈리아 에트나산 용암석을 깎아 라이트 블루 유약을 입히고, 레드 래커 가구와 조합했습니다.
가구와 마감재 하나하나에 장인의 손길이 담겨 있더군요. 이 부분에서 저희는 카를 에른스트 오스타우스와 앙리 반 데 벨데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독일공작연맹 회원으로, 예술과 장인 정신을 삶 속으로 불러오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리스에서 공수한 ‘골든 스파이더 Golden Spider’ 대리석 블록을 직접 깎아 세면대와 벽 패널을 만들었는데, 그 자체로 하나의 걸작입니다. 다른 요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실의 바바 암체어는 파리의 펠리포 Phelippeau에서 업홀스터리 작업을 했고, 문손잡이는 벨기에의 베르블뢰 Vervloet에서 니켈 도금 황동으로 주조했습니다. 캐시미어 담요는 네팔의 작은 공방에서 한 땀 한 땀 손으로 짰고, 정원 설계는 독일 로열 가든 아카데미의 마누엘 베를레 Manuel Wehrle에게 맡겼죠.

옐로 컬러가 돋보이는 주방 전경.
의자의 패브릭은 스벤스크트 텐
제품이며 앞쪽에 놓인
테이블웨어는 기스베르트 푀플러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정원의 수변 공간은 연못이 아니라 수영장이라고요. 식물이 물을 정화하는 자연 수영장입니다. 지속 가능성은 건축주 가족에게 중요한 가치였거든요. 여름이 되면 채소밭에서 오리 두 마리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매일 신선한 채소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정원 전체도 곤충 친화적으로 설계했어요. 꽃이 피는 초원 곳곳에 벌통을 두고, 양봉가가 정기적으로 꿀을 채취하기도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건축주 가족의 태도에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호기심이 넘치고, 아름다움을 향해 끊임없이 배우고 나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집이 완공되었을 때 그들은 지붕 수리공부터 도장공, 정원사, 청소업체까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이를 한자리에 초대했습니다. 함께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감사를 표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에요. 그리고 바로 그 정신이 이 프로젝트 전체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정원을 바라보게 배치한 아웃도어 암체어는 보나치나Bonacina 제품.
COOPERATION 가비 헤르초크Gaby Herz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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