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5월호

NON-COFFEE plz

어느 순간, 몸이 커피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하루 세 잔에서 한 잔으로, 그러다 디카페인을 거쳐 마침내 ‘대체 커피’로. 
이 환승은 일시적인 타협일까, 아니면 새로운 루틴이 될 수 있을까.

EDITOR 박지윤 GUEST EDITOR 박은아 PHOTOGRAPHER 곽태인

“이제 커피를 좀 줄여야겠어.” 한때는 커피를 세 잔 이상 마셔도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곧바로 잠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몸의 반응이 달라졌다. 밤은 얕아졌고, 아침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피로를 밀어내기 위해 다시 커피를 들이켜고, 그 결과 또다시 뒤척이는 밤을 맞는 루프. 단순한 컨디션 난조라기엔 반복의 밀도가 높아진 30대 후반, 몸이 보내는 신호는 생각보다 명확했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는 나만의 이슈가 아니었다. 주변의 30대 후반 에디터들, 뷰티 브랜드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수다의 주제였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디카페인 커피 수입량은 약 1만 톤을 넘기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반면 카페인을 포함한 일반 원두 수입은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즉 커피를 ‘덜 마시는 것’을 넘어, ‘다르게 마시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디카페인을 넘어 ‘제로 카페인’에 대한 수요까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뉴욕에서 히트를 친 ‘버섯 커피’다. 영지버섯, 차가버섯, 노루궁뎅이버섯 등 천연 원료를 사용해 카페인에 의한 과도한 각성 상태를 완만하게 조절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시애틀에서 시작된 푸드테크 스타트업 아토모 커피(@atomocoffee) 역시 같은 맥락에서 주목받았다. 원두 없이 카카오, 치커리, 보리 등을 블렌딩해 커피 맛을 낸 대체 커피의 총아로 등장한 것. 지금은 뉴욕과 LA를 중심으로 ‘아침 루틴을 교체하는 음료’로 자리 잡으며 D2C(소비자 직접 거래)의 성공적 모델로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투자액만 700억 원을 넘는다.


시애틀에서 대체 커피를 즐기는 아토모 커피 고객들의 모습.


원두를 사용하지 않고 대추씨, 치커리 뿌리, 포도 껍질 등의 재료를 분자 단위로 공정해 커피의 맛과 향을 내는 아토모 커피.


산스 익선 플래그십 스토어의 메뉴 라인업. ‘산스메리카노’, ‘오트크림 라테’ 등 다채롭게 구성돼 있다.


글로벌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한 국내 백화점과 호텔 업계 역시 헬시 플레저를 키워드로 새로운 선택지를 제안하고 있다. 잠실에 위치한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의 카페, ‘쟈뎅 디베르’는 메뉴에 웰니스 커피 카테고리를 별도로 구성했다. 프랑스 대체 커피 브랜드 ‘체리코’로 만든 ‘체리카노’와 ‘치커리 라테’가 그 주인공이다. 체리코는 지난해 열린 제24회 서울국제카페쇼에서 우수 부스에 부여하는 ‘2025 체리스 초이스’에 선정되며, 차세대 제로 카페인 시장의 유력 플레이어로 이목을 끈 바 있다. 국내 브랜드로는 산스가 보다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 흐름을 확장하고 있다. 2024년 익선동에 문을 연 이후, 대체 커피 카페라는 새로운 포맷을 제시하며 시장의 정의 자체를 바꿔가고 있다. 강남 신세계백화점 스위트파크에 문을 연 팝업 스토어 역시 폭발적인 반응 속에 앙코르 운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커피를 사랑하지만 줄여야 하는 사람들이 과연 대체 커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원두 없이 그 풍미를 재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직접 답을 찾기로 했다. 에디터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대체 커피 브랜드 여섯 가지를 체험한 결과, ‘다시 마시고 싶다’는 평가를 내린 브랜드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를 사랑해서 오히려 대체 커피 메이커가 된, 지금 이 신을 이끄는 리더들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체리코 한국 공식 수입사 헬시바이츠 김은지 대표



대체 커피를 먼저 소개하고 싶으셨나요, 아니면 체리코를 경험하며 대체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되신 걸까요? 원래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하루 네다섯 잔씩 마시던 카페인 마니아였죠. 그런데 출산 이후 체질이 바뀌면서 카페인에 민감해졌고, 한 잔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잠을 이루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커피를 줄인다는 건 단순히 음료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익숙하던 하루의 리듬 전체를 바꾸는 일이었어요. 그러다 문득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마시고 있을지 궁금해졌고, 무작정 파리로 떠났어요. 그러다 몽마르트르의 작은 카페에서 우연히 체리코를 발견하게 됐고요. 메뉴판 속 ‘웰니스 커피’라는 메뉴 자체가 신선했고, 마시고 나서 커피와 이별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지금도 가끔 커피를 마시지만, 매일의 루틴은 체리코로 시작합니다. 향이 먼저 다가오고, 그다음에는 몸이 깨어나는 그 감각이 좋아서요.


체리코는 왜 치커리에 주목했을까요? 치커리는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약 200년 전부터 커피 대용으로 마셔온 전통적인 음료의 재료예요. 그 역사는 18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으로 영국과의 교역이 금지되면서, 커피를 간절히 원하던 프랑스인들이 대체 음료를 찾기 위해 땅에서 나는 온갖 구황작물을 로스팅한 게 시작이죠. 보리, 치커리 뿌리 등 여러 재료를 시도했는데, 그중 치커리 뿌리가 커피의 풍미와 가장 유사했다는 것이 역사적 문헌에도 남아 있어요. 그렇게 프랑스인들은 200년 넘게 치커리 뿌리를 커피 대용으로 마셔온 거예요. 그래서 프랑스 소비자들에게 체리코는 낯선 문법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할머니 커피’가 세련된 카페 메뉴로 다시 등장한 거죠. 지금 프랑스 내 400여 개 카페와 호텔, 레스토랑에서 메뉴로 선보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아코르 그룹의 선택을 받은 게 인상적입니다. 부티크 호텔의 조식 테이블에서도 체리코를 만날 수 있고, TGV 열차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프랑스와 한국 소비자가 대체 커피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한국에서는 “이게 커피인가요?”라는 의구심 가득한 질문이 먼저 나옵니다. 새로운 카테고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 번 경험한 이후의 반응은 오히려 더 빠르고 강합니다. 커피를 줄이고 싶은 니즈는 한국이 훨씬 크거든요. 한국 직장인들이 하루 평균 2.5잔을 마신다고 하죠? 저도 커피를 좋아해서 많이 마시기도 했지만, 없던 에너지까지 끌어올려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생긴 ‘업무 리추얼’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반면 프랑스인들은 커피를 쉼과 휴식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그래서 커피에 집착하지 않고, 몸에 더 잘 맞는 대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죠. 최근 유럽에서는 과라나처럼 보다 완만하게 작용하는 에너지 원료를 찾는 흐름도 늘고 있어요. ‘나를 소진시키는 에너지’가 아니라 ‘편안하게 채우는 에너지’로 이동하는 흐름이죠. 한국도 그 변화의 초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대체 커피 브랜드 체리코. 치커리를 주재료로 새로운 스타일의 대체 커피를 선보인다.


체리코 고객들의 리뷰를 보면, 특히 ‘라테’로 즐겼을 때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노르망디, 브르타뉴 등 유럽 최고의 낙농 지역을 보유한 프랑스인들은 와인처럼 우유도 산지별 풍미를 즐기는데, 체리코가 바로 그 카페오레 문화 위에서 태어난 제품이거든요. 체리코는 우유와 만났을 때 풍미가 잘 살아나고 향도 훨씬 부드럽게 다가와요. 이 경험을 통해 치커리 맛에 익숙해지면, 이후에는 오히려 물에 타서 마시는 분들도 많아집니다. 다만 ‘향’을 기대하고 오신 분들에게는 그 차이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디카페인보다 대체 커피를 선택하게 만드는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이 카테고리는 마케팅보다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 번 마셔본 분들이 주변에 자연스럽게 추천해 주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마흔을 전후로 여성들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는 생각보다 일상에 큰 영향을 줍니다. 커피의 대체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밸런스를 되찾는 선택. 체리코의 브랜드 철학인 ‘의존 없는 진정한 자유’가 제 경험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어요. 카페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게 제가 체리코에서 느낀 가장 큰 가치였습니다. 그 경험이 계기가 되어 수입 유통 경험이 전혀 없는 평범한 워킹맘으로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5월이면 체리코를 한국에 소개한 지 꼭 1년이 되는데, 천천히 입소문으로 성장하고 있고, 이렇게 <럭셔리> 매거진에 소개된다는 것 자체가 그 확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고 느낍니다.


대체 커피는 단순한 카페인 대체재를 넘어, 몸의 리듬을 정돈하는 웰니스 티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각 재료가 지닌 기능성에서 비롯된다. ‘시나몬’은 혈당 균형 유지에 기여하고, ‘보리’는 베타글루칸을 통해 장 건강을 부드럽게 돕는다. ‘차가버섯’은 항산화 작용으로 면역 밸런스를 지지하며, ‘치커리’는 이눌린이 풍부해 장내 환경과 콜레스테롤 관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또한 ‘히비스커스’는 산뜻한 산미와 함께 혈액순환을 돕는다.


(왼쪽) 1840년 설립되어 세계 최대 규모의 치커리 기업으로 성장한 르루의 커피 대용 차. 프랑스 유기농 치커리 뿌리 100%로 만들며 디카페인이 아닌 무카페인이다. 르루. (오른쪽) 커피 원두 없이 열두 가지 이상 천연 재료를 블렌딩해 완성한 액상 타입 대체 커피. 산스.


(왼쪽) 시애틀에 본사를 둔 푸드테크 스타트업 아토모에서 선보인 대체 커피. 아토모 커피. (오른쪽) 오리지널 무카페인 치커리 100% 음료. 프랑스 유기농 치커리로 만든 파우더 타입 대체 커피로 파리 150여 개 카페에서 사용 중이다. 체리코.


(왼쪽) 크라스탄의 유기농 커피 대용 차. 1870년부터 현재까지 이탈리아 유기농 보리 100%로 생산하는 카페인 제로 음료다. 오르조. (오른쪽) 보리, 호밀, 치커리 뿌리를 블렌딩해 구수한 풍미를 살린 대체 커피 ‘슈퍼 보리’. 1회분씩 포장된 간편한 포켓 타입과 파우치 타입으로 선보인다. 슈퍼말차.



산스SANS 김경훈 대표



‘원두 없이 커피를 만든다’는 도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전환점이 있었나요? 산스는 단 한 번의 ‘유레카’로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에요. 2019년, ‘원두 없이 커피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로 투자를 유치했지만 초기 R&D에서는 그 불가능성부터 마주했습니다. 그래서 접근 방식을 바꿨어요. 원료를 찾는 대신 ‘커피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고, 바리스타, 센서리, 로스팅을 공부하며 위스키, 막걸리, 맥주 등의 양조 현장까지 찾아다녔습니다. 전환점은 ‘발효’였어요.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음료의 중심에는 늘 발효가 있었고, 커피 역시 그 구조 안에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했습니다. 특정 효모와 조건이 맞아떨어지던 순간, 향과 질감, 여운이 하나로 이어지는 경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익선동 본점을 찾는 고객 중 외국인 비중이 70%에 달한다고 들었어요. 어떤 경로로 산스를 알게 되고, 실제 방문까지 이어지는 걸까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브랜드였어요. 그래서 매장 위치도 단순히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는 동선을 기준으로 선택했죠. 익선동은 한국적인 분위기와 글로벌 감각이 동시에 느껴지는 공간이라 산스의 방향성과도 잘 맞았고요.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산스가 가진 ‘희소성’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론칭 당시만 해도 대체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오프라인 매장은 외국에서도 거의 전례가 없었고, 지금까지도 유일한 형태에 가깝죠. 그래서 외국인 고객들에게 산스는 단순한 ‘한국의 카페’가 아니라,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 번 방문한 고객은 음료뿐 아니라 공간과 스토리를 자신의 SNS에 기록하고, 그 콘텐츠를 본 다른 이들이 이를 저장해두었다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다시 찾는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페 산스’ 익선동 본점 내부.

주소 종로구 수표로28길 30 인스타그램 @sans.foundry 문의 070-7779-1806


작년 10월 뉴욕 팝업 행사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올해 실리콘밸리를 다음 챕터로 준비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산스는 ‘웰니스’와 ‘지속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커피 문화를 함께 제안하는 브랜드인데, 이러한 가치가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소비되는 시장이 미국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웰니스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은 트렌드에 가까운 측면이 있어요. 반면 미국은 무엇을 먹고 마실지, 그것이 자신의 몸과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스스로 질문하고 선택해온 시장입니다. 특히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기준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는 곳이기도 하고요. 작년 10월 뉴욕 팝업 이벤트는 그 확신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준 경험이었습니다. 3일 내내 다시 찾아와주신 고객들이 있었고,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경험을 깊이 있게 받아들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저희에게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산스의 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검증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깊이 사랑해오신 만큼, 하루 루틴 안에서 커피와 산스를 어떻게 나눠 즐기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즐겨 드시는 산스 레시피는 무엇인가요? 저는 여전히 커피를 좋아합니다. 산스를 만든 이유도 커피를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오래 즐기기 위해서였어요. 예전에는 커피를 좋아하니까 별생각 없이 여러 잔을 마셨다면, 지금은 어떤 순간에 커피가 필요하고 어떤 순간에 산스가 더 잘 맞는지를 의식적으로 판단해 고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하루 안에서 커피와 산스는 서로를 밀어내는 관계라기보다, 각자의 역할을 가진 두 가지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는 커피를, 조금 더 편안한 리듬을 원할 때는 산스를 찾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산스 조합은 ‘오트크림 라테’입니다. 산스 특유의 발효 베이스와 오트의 지방이 만나면서, 기존 커피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부드러운 보디와 긴 여운을 만들어냅니다. 지금 이 인터뷰를 작성하는 시간은 밤 11시 55분이고, 지금도 제 옆에는 산스 슬립이 있는데요. 이제 인터뷰를 마치고 산스도 마셨으니 꿀잠을 자보려 합니다.



머지않아 동네 카페에서도 ‘대체 커피’를 자연스럽게 주문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단일 원두만 선택하던 시절에서, 고소한지 산미가 있는지 취향에 따라 고르는 시대로 넘어왔고, 스페셜티 메뉴가 확장됐으며, 디카페인 원두가 일상에 자리 잡았다. 그다음 순서는 이미 예고되어 있다. 대체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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