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과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의 퍼포먼스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를 기록한 사진 앞에 선 켄 하쿠다.
KEN HAKUTA
켄 하쿠다 백남준의 조카이자 ‘백남준 에스테이트’ 대표. 장난감 판매와 TV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며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재 전 세계에 흩어진 백남준의 유산과 저작권을 총괄 관리하며, 그의 예술적 가치를 보존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서울에서 25년 만에 백남준 에스테이트Nam June Paik Estate가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플럭서스 정신에 기반한 작가의 해체적이고 유기적인 미디어 작품들이 극도로 정제된 공간에 놓여 흥미롭습니다. 백남준의 대표작과 미공개작을 그가 태어난 서울에서 선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스테이트로서는 각별한 일입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을 한데 모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백남준의 예술 세계가 어떤 공간 안에서 어떻게 생동하는지를 마주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APMA 캐비닛은 공간 자체가 기획의 일부처럼 느껴져요. 아모레퍼시픽 본사 입구에서부터 로비, 전시장 내부까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맞물리고, 바깥에서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어 거리의 풍경과 작품이 어우러지거든요. 그런 환경 안에서는 백남준의 조형이 명확해집니다. 로비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베이클라이트 로봇Bakelite Robot’(2003)만 해도 고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건물의 인상 자체를 결정하는 존재처럼 보이지 않나요? 관객을 맞이하는 로봇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서로 높이가 다른 비디오 작품들의 시선이 교차하도록 구성돼 있습니다. 천천히 공간을 거닐어보세요. 전시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다가올 거예요.
전시 제목 ‘되감기, 되풀이’를 뜻하는

Nam June Paik, ‘TV Bra for Living Sculpture’, 1969, © Nam June Paik Estate, Photo: Ben Blackwell, Courtesy Gagosian.
2015년 가고시안 갤러리와 손을 잡은 이후 11년째 예술적 동행을 해오고 있습니다. 방금 전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웃음을 터트린, “가끔은 가고시안이 미술관보다 낫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고시안은 정말 일하기 좋은 파트너입니다. 완성도의 기준을 쉽게 낮추지 않아요. 언젠가 백남준의 오브제를 촬영해야 할 일이 있어서 유명한 사진작가를 섭외해 찍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봤는데, 가고시안은 만족하지 않고 전부 다시 찍더군요. 그때 이들에겐 적당히 타협하는 법이 없음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미술관보다 낫다”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에요. 가고시안 전시를 마치고 돌아오면 액자 상태가 더 좋아진 경우가 대표적인 예죠. 또 가고시안은 상업 갤러리임에도 뛰어난 큐레이터와 적극적으로 협업합니다. 작가를 대하는 섬세한 태도, 긴장감이 살아 있는 기획 등의 차이가 결과물의 밀도를 바꾸는 게 아닐까요?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미술관의 ‘100개 보물’ 중 하나로 여겨지는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1995), © Nam June Paik Estate.
‘미디어 샌드위치Media Sandwich’(1961~1964),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TV Bra for Living Sculpture’(1969), ‘골드 TV 부처 Gold TV Buddha’(2005) 등 서로 다른 시기의 작품이 같이 놓여 있습니다. 전시장에 백남준의 작업 세계가 확장되어가는 궤적을 펼쳐 보이고자 했습니다. ‘미디어 샌드위치’는 시각예술에서 비디오아트로 옮겨가는 그의 관심사를 드러내고,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는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과 함께한 퍼포먼스의 정수를 보여주죠. 특히 ‘TV 브라’는 전자 매체를 몸 위에 장착했다는 점에서 웨어러블 아트의 효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연장선에서 이번 전시에는 볼 수 없지만, 미국 워싱턴 허시혼 뮤지엄Hirshhorn Museum이 소장한 ‘TV 안경TV Glasses’(1971)은 구글 글라스보다 50년 앞선 실험입니다. ‘런던과 해외를 위하여(우편함)For London and Abroad(Mailbox)’(1982)도 전시에서 볼 수 있는데, 뉴욕에 거주하던 백남준을 비롯해 여러 한국 예술가를 후원했던 한국인 의사 마태 김정준 Matthew Kim께 헌정한 결과물이지요. ‘베이클라이트 로봇’과 ‘골드 TV 부처’ 같은 후기 작품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1974년 백남준이 제안한 개념 ‘전자 초고속도로’로 귀결되는데, 이는 기술의 과잉과 오용을 경고하는 장면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전자 초고속도로’를 설명하는 대표작을 꼽자면요? 미국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미술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이 소장한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1995)예요. 미국 전역을 잇는 고속도로 이미지를 활용해 전자 네트워크가 사람과 정보를 연결한다는 것을 표현했죠. 흔히 ‘US Map’이라 불리는 작품은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미술관의 ‘100개 보물’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2019년 영국 테이트 모던 전시 때 이숙경 큐레이터가 이 작품을 빌리려 했으나, 미술관 디렉터를 역임했던 엘리자베스 ‘베시’ 브룬 Elizabeth Betsy Broun이 “나를 즈려밟고 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라고 했을 만큼 중요한 작품입니다.
호암갤러리 전시 이후 25년 만에 국내에 공개된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에 얽힌 이야기가 재밌더군요. 샬럿 무어먼이 당시 18세였던 선생님께 ‘TV 브라’를 입고 벗는 걸 도와달라고 했는데, 삼촌께서 화를 냈다고요? “어린애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내셨어요. 꽤 엄격하셨거든요. 전 괜찮았는데···.
예전부터 백남준을 “미친 삼촌”이라고 부르곤 하셨잖아요. 삼촌께서 어머니께 “켄에게 TV를 빨리 사줘라”라고 한 일도 있죠. 제가 모든 걸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삼촌은 저를 자유롭게 사고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줬습니다. 덕분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무언가를 살펴보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열 살쯤 되었을 때 사고 싶던 잡지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비싸기도 하고 어차피 제대로 읽지 않을 거라며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삼촌은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보를 얻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백남준다운 발상이었지요. 뉴욕 차이나타운에서의 식사 장면도 떠오르네요. 옆자리에 지저분한 행색의 남자가 앉아서 얼굴을 찌푸렸던 적이 있어요. 그걸 본 삼촌은 그렇게 반응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지구에 사는 수십억 명 가운데, 지금 네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결속이 생긴 것이다. 친구가 아닐지라도 분명 어떤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이므로, 그를 두려워하거나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도 덧붙였죠. 그 말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듣는 매체와 보는 매체의 경계를 흔든 ‘미디어 샌드위치’ 앞에 선 켄 하쿠다.
그때 구매한 잡지를 백남준이 실제 작업에 활용하기도 했나요? 아니요. 조카가 가진 고가의 잡지잖아요. 그런데 그 잡지는 미국에선 널리 유통되던 대중 잡지였고, 일본에서는 수입지였기 때문에 비쌌던 것이에요. 이를테면 오늘날 <타임 Time>지라고 할까요? 제가 샀던 것은 아니더라도, 그 잡지 자체는 이후 작업과 관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잡지와 음반으로 이뤄진 ‘미디어 샌드위치’는 듣는 매체와 보는 매체의 경계를 흔드는 것처럼 다가와요. ‘미디어 샌드위치’는 백남준 작업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초에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는 게 놀랍지 않나요? 작품 안에서 여러 문화권의 음반과 출판물이 겹치면서 다학제적인 구조를 띠죠. 어떤 선택 기준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기술이 대중에게 퍼져 나가던 시기를 반영한 듯해요. 실제 백남준은 미국에서 공학 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 Popular Electronics>을 통해 기술을 익혔거든요. 결국 작품은 기술과 미디어가 대중과 만나는 장면을 응축한 셈입니다.
이러한 백남준의 미학적 실험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시를 개최할 때마다 젊은 관객층의 호응이 뜨거웠다는 평가가 잇따르잖아요. 오래된 장치와 화면이 빈티지한 매력으로 읽히고, 그런 시각적 감수성을 트렌디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예로, 테이트 모던에는 젊은 방문객을 추적할 수 있는 멤버십 프로그램이 있는데, 다른 전시에서는 2% 정도에 머무르던 비율이 백남준 전시 때는 10%까지 올라갔습니다. 특별전은 유료인 까닭에 그런 데이터를 정확히 알 수 있지요. 결국 젊은 세대가 백남준의 작업이 가진 미학적 가치와 기술적 감각에 공감하고, 그것을 쿨하다고 느낀다는 방증 아닐까요?

Nam June Paik, ‘Gold TV Buddha’, 2005, © Nam June Paik Estate, Photo: Paula Abreu Pita Courtesy the Brooklyn Museum and Gagosian.
개인적으로 이은주 사진가와 그가 기록한 백남준 사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제가 백남준의 꾸밈없는 모습에서 예술가적 진실함이 묻어난다고 말했었는데요. 사진에서도 드러나는, 가공되지 않은 ‘인간 백남준’의 모습이 에스테이트가 유산을 관리하는 방식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궁금합니다. 에스테이트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백남준이 너무나 확고한 방향을 가진 천재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떤 길이 옳은 방향인지 판단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그가 제시한 방향만 이어가면 되는 거예요. 가끔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주변 사람들의 욕심에서 기인합니다. 백남준이라는 사람 자체는 매우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TV를 위한 선 禪(Zen)’ 자체였죠. 그래서 정치와 예술이 섞일 때 발생하는 문제를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백남준: Rewind / Repeat>에 방문한 관람객들, 그리고 10년 뒤, 20년 뒤 혹은 100년 뒤의 사람들이 백남준을 어떤 작가로 기억하면 좋겠나요? 언제나 신선하고 독창적으로 사고한 사람, 낡은 방식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롭게 발상한 인물로 남기를 바랍니다. 이와 더불어 그의 아이디어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는 사실 역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기술을 인간화하려는 그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오히려 더 절실합니다. 기술은 점점 더 비인간적이고 무표정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남준의 산물은 과거에 묶여 있는 유산이 아니라, 현재와도 깊이 공명하고 미래에도 계속 새롭게 읽힐 수 있는 예술로 남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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