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CREATORS: THE ART OF MAK
디자인하우스가 걸어온 반세기의 철학 위에서 창간 25주년을 맞은 <럭셔리>는 한국 문화에 내재한 ‘막MAK’의 정신을 하나의 미학이자 태도의 언어로 정리하고자 한다. 이에 유연한 막 정 신을 삶과 작업 속에 체화하고 있는 창작자 10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미술가·음악가·배우 백현진부터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아우르는 공민정, 무대와 런웨이를 오 가는 기무간, 다양한 표정을 지닌 배우 옹성우, 음악의 진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그레이코드와 지인,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윤산하, 캔버스에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캐스퍼 보스만스, 다채로운 능력과 독보적 존재감의 대명사 수리, 가구와 공간을 잇는 문승지, 장르를 넘나들며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김아린까지. 이들의 기록은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그레이코드, 지인

그룹명이 참 재미있어요. ‘그레이코드, 지인 GRAYCODE, jiiiiin’으로 지은 이유가 있나요? 그레이코드 ‘그레이코드’와 ‘지인’ 사이에는 꼭 쉼표를 넣어야 하고요. ‘GRAYCODE’는 모두 대문자, ‘jiiiiin’은 모두 소문자에 i의 개수가 5개입니다.(웃음) 그레이코드라는 제 이름을 먼저 지었는데, 지인과 함께하면서 새로 이름을 짓기보다는 서로의 정체성을 함께 가져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쉼표로 두 이름을 연결해 하나의 팀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지인 제 이름이 정진희거든요. ‘진’을 쓸 때 발음을 조금 더 늘리고 싶었어요. 음절이 늘어나는 것을 시각적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i 다섯 개를 붙였습니다. 음악을 해서 그런지 이름을 짓는 방식도 어쩔 수 없나 봐요.
지난 1월 페라리와 협업했던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프로젝트에 대해 가장 먼저 묻고 싶어요. 페라리의 엔진 소리를 작품으로 만들었다고요? 그레이코드 자동차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리, 예를 들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을 때 점점 올라가는 것 같은 소리 있잖아요. 그게 저희의 음악 언어와 비슷해요. 멜로디나 가사보다는 신체적인 울림이나 떨림, 즉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적인 음악을 추구하거든요. 이번에 페라리와 협업하면서 그런 경험을 실제로 했습니다.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트랙에서 페라리 12칠린드리를 직접 시승한 후 엔진 소리를 녹음하고 분석했어요. 엔진이 울릴 때 밑바닥부터 떨려오는 공기의 진동이라든가, 시트에 앉았을 때의 감각적인 울림이 저희의 언어와 맞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협업에서 페라리를 하나의 악기처럼 바라봤어요.
“ ‘막’은 작업을 끝마치기 전 예술가의 직관이자, 저희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GRAYCODE, jiiiiin, Quivering Air, 2025. © Artist
그레이코드, 지인 (왼쪽부터) 조태복(그레이코드), 정진희(지인) 전자음악 작곡가로 구성된 아티스트 듀오. 2018년 독일 카를스루에의 예술 & 미디어 센터(ZKM) 헤르츠랩과 남서독일방송국이 주최한 ‘기가-헤르츠 어워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후, 몽클레르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 및 기관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페라리가 공개한 세상에 단 한 개뿐인 모델,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목받았다.
엔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Music for 12 Lines’(2026)가 리버리 디자인으로 구현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지인 작곡가가 곡을 만드는 행위는 마치 화가가 드로잉을 하듯이 오선지 위에 악보를 그리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작업을 하면서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는 것만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선보는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하나씩 음표를 읽는데,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선형적이지 않거든요. 페라리 V12 엔진의 소리를 음악적인 언어로 변환해서 분석을 하다 보니, 엔진 구조상 필연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배음 구조가 있었어요. 이 음악의 언어를 가져와서 배음 구조에 따른 화음을 갖춘 음악을 만들었고, 그것을 저희가 하던 방식대로 ‘악보’라는 언어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악보를 엔진과 가장 가까운 보닛 위에 얹으니 디자인 언어로 바뀌게 된 거예요.
음악은 오선보 위에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네요.
지인 저희 악보에는 어떤 음이 쓰이는지, 그리고 시작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적혀 있어요. 비록 이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듯 연주할 수는 없겠지만, 음악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 평면도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강렬한 붉은색이 인상적인 초기작 ‘#include red’도 그렇고, 작가님들은 대개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것 같아요. 지인 맞아요. 2016년 그레이코드 작가님과 ‘#include red’라는 작업을 함께하면서 ‘오디오 비주얼’ 장르를 시도했는데, 단순히 소리를 비주얼로 치환하기보다는 조금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나눴어요. 결국 우리가 듣고 보는 것은 모두 ‘진동’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듣는 것도 높고 낮은 진동이 있지만, 보는 것에도 그런 진동이 있죠. 그레이코드 들리는 진동은 귀로 포착하는 거지만, 보는 진동은 눈으로 포착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세상은 다 진동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로 작업을 시작했죠.

Ferrari 12Cilindri Tailor Made, 2026.
© COOL HUNTING

Ferrari 12Cilindri Tailor Made, 2026. © COOL HUNTING
지난 1월 공개한 페라리의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협업 작가로 선정된 그레이코드,
지인은 엔진 소리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Music for 12
Lines’(2026)를 선보였다.
음악의 악보는 리버리
디자인으로 옮겨 담았다.
그런 이야기를 전시뿐 아니라 출판, 콘서트 등 여러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레이코드 작업이 저희에게 다양한 방식을 요구해요. 어떤 방향과 의식을 가지고 작업물을 만들지, 이 작업이 가장 잘 번역될 수 있는 매체는 무엇인지 항상 생각합니다. 지인 30일 동안 진행하는 개인전을 연 적이 있어요. 전시장에서 틀 수 있는 720시간 길이의 음악 ‘Time in Ignorance, ∆T≤720’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음악을 하고 싶으면 30일 동안 열리는 전시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렇듯 작업이 요구하는 상태로 결과를 계속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업물이 요구하는 것을 ‘막’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나요? 그레이코드 그럼요. 저희의 작업 방식은 감성을 자아내는 음악을 만들기보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타일이거든요. 컴퓨터로 작업하다 보면 오히려 저희가 생각하거나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알려줄 때가 있어요. 그런 시도는 정말 ‘막’ 해봐야 해요.
데이터에 기반하는 작업인 만큼 계획적일 줄 알았는데, 신기하네요. 작가님들은 평소 작업할 때 직관에 많이 기대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지인 작곡가에 뿌리를 두다 보니 직관보다는 구조를 만들고 조직화하는 데 더 익숙한 것 같아요. 하지만 작업물을 완성하기 직전에는 창작자의 관점에 따라 조금 더 직관에 따르고 있어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여러 가지를 막 시도해보는 편이죠.


그렇기 때문에 작가님들의 작품이 한층 더 신선해지는 것 같아요. 혹시 지금도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있나요? 그레이코드 오는 3월 서서울미술관이 개관하는데, 저희 작품이 개관작으로 초대받았어요. 이번에는 준비 과정을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감상할 수 있도록 열어두려고 합니다. 작품이 완성되기 전 우리의 몸과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도 하나의 퍼포먼스로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작가님들에게 ‘럭셔리’는 무엇인가요? 지인 시간을 많이 가지고, 오래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는 것이 럭셔리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완성한 후에도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 내가 만든 것이 무엇인지 깨드는 과정 자체가 럭셔리한 것 같아요. 그레이코드 저는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제안이나 상황에서 ‘아니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태도,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럭셔리다운 것 같습니다.
HAIR & MAKEUP ARTIST 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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