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를 통해 이어지는 본질

로에베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인 듀오 잭 맥콜로Jack McCollough와 라자로 에르난데스Lazaro Hernandez와 변화의 계절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거창한 선언보다 묵묵하고, 은밀하며, 조용한 결의에 가깝다. 하우스는 수십 년간 브랜드의 영혼을 담아온 자신들의 로고의 형태를 흔들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작은 굴곡, 미세한 비율, 눈에 머무는 순간에만 느껴지는 긴장감으로 새 시대의 문을 열고 창조의 미학을 이어간다.

Editor 손소라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는 로에베가 오랫동안 조각해온 조형적 언어를 해체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언어를 살짝 비틀고, 한 겹 얇게 덧칠하며, 때로는 빛의 결을 따라 조금 다른 그림자를 드리운다. 변화는 마치 오래된 호흡을 다시 정돈하는 일처럼, 본질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브랜드의 심장박동을 한 템포 더 앞으로 밀어낸다. 이 애너그램 로고의 변주는 새 시대를 알리는 깃발이라기보다, 로에베가 오래전부터 써 내려온 문장의 ‘다음 쉼표’에 가깝다. 익숙함 속에서 낯선 울림을 찾고, 전통의 무게 위에서 새로운 균형을 세우는 일. 이로써 로에베는 자신들의 DNA를 더 짙게, 더 오래 지속되는 형태로 남기려 한다. 조용하지만 선명한 변화. 바로 그 미세한 숨결이 로에베의 다음 챕터를 연다.




그 중심에 지난 2026년 S/S 런웨이에서 새롭게 데뷔한 ‘아마조나 180’이 존재한다. 브랜드의 상징적 아이콘인 아마조나 백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해 완성한 작품인데, 새출발과 연속성을 동시에 품은 이 백은 로에베 창립 18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로, 하우스의 근간을 기린다. 이는 지난 50년간 메종의 가죽 공예를 대표해 온 에센셜 실루엣을 오늘의 시대감에 맞춰 새롭게 정의하며, 브랜드가 구축해온 장인정신의 계보를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스페인이 거대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맞이하던 1975년, 시대의 공기를 가장 예민하게 감지하던 순간 탄생한 애너그램을 입은 아마조나 백. 진일보한 사회로 발걸음을 내딛던 세대의 여성을 위한 이 백은 과도하게 장식된 구조를 벗어나, 도시의 하루와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제안했다. 골드 스웨이드와 브라운 가죽 파이핑, 그리고 비센테 벨라Vicente Vela가 완성한 애너그램 엠보싱으로 이루어진 오리지널 아마조나는 로에베 최초의 소프트 백이자, 선구적 컬렉션 ‘안테 오로Ante Oro’의 결정적 아이콘으로 자리했다. 시간이 흐르며 컬러와 소재, 비율은 변화했지만, 편안함과 우아함이라는 아마조나의 본질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새롭게 등장한 아마조나 180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되,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감도를 더한다. 이 백을 위해 개발된 소프트 카프스킨은 실크처럼 유연한 촉감과 은근한 광택을 지니며, 하나의 토론 탑 핸들이 완성하는 실루엣은 여유롭고도 구조적이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자석 잠금장치는 절제된 미니멀리즘 속에서 기능성을 강화하고, 아마조나 특유의 무심한 우아함을 지켜낸다.

이 백의 핵심은 여전히 장인 정신에 있다. 두 개의 수납공간과 정교한 가죽 바인딩, 그리고 양 측면의 시그너처 스퀘어 디테일은 구조감과 유연함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준다. 내부 플랫 포켓과 취향을 더할 수 있는 측면 D 링에 이르기까지, 모든 디테일은 기능성과 미학을 동시에 고려한 로에베의 태도를 반영한다.

아마조나가 처음 등장한 1975년의 시대정신이 변화의 에너지였다면, 아마조나 180은 로에베가 이어온 시간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정의하는 순간이다. 과거의 유산과 오늘의 감성이 조용하게 교차하는 곳, 그 지점에서 로에베는 다시 한번 자신만의 우아함을 완성한다.




지난 가을, 로에베가 공개한 2026년 S/S 캠페인 이미지는 단박에 에디터의 시선을 붙잡았다. 젖은 푸른 티셔츠 위로 드러난 신체 굴곡, 물방울을 머금은 칵테일 체리의 선명한 빛, 거품 아래 잠긴 꽃잎, 그리고 도발적인 힙 라인까지. 그 어떤 장식보다 솔직하고 생생한 감각으로 여름날의 관능과 위트를 포착해낸 것. 예술적 유산과 장인정신을 강조하던 기존 캠페인과는 분명 결이 다른, 전에 없던 파격적인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다. 2013년 예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 체제 이후 12년 동안 공예적 헤리티지를 견고히 다져온 로에베는, 새 수장과 함께 더욱 뉴욕적인 감각, 현대적 실험 정신을 품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개인적 취향을 넘어 폭넓은 문화와의 연결을 모색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로에베는 늘 소재와 제작 방식에서 풍부한 표현력을 추구하며, 예술과 문화 전반과 깊이 호흡하는 환경 속에서 디자이너들의 자유로운 실험을 지지해왔다. 이러한 철학은 이번 시즌에도 여실히 이어진다. 스포츠웨어의 전형적 요소에서 출발해 가죽 공예를 거쳐 조형적 실루엣과 원초적 컬러를 구현했다. 살아 있는 듯한 텍스처, 로에베의 뿌리인 스페인의 생동감과 쾌활함은 작품 곳곳에 스며들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개인적 낙관주의를 상징한다.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선 로에베. 그들이 던지는 새로운 언어는 하우스의 또 다른 시대를 향한 문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열고 있다.


자료 및 이미지 제공 로에베(@LOE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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