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게 ‘클래식 투르비용 5367’ 워치의 케이스백. 창립자가 발명한 투르비용을 현대 기술로 가장 순수하게 계승한 모델이다.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과 티타늄 캐리지를 적용한 투르비용은 가볍고 안정적이며, 4Hz 고진동과 80시간 파워 리저브를 구현한다.
무브먼트 주위를 도는 플래티넘 로터 구조는 초박형 케이스 안에서도 투르비용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다.
천재 발명가의 소우주

1793년 프랑스혁명 시기 스위스로
망명한 뒤 제네바와 뇌샤텔, 르 로클을 거치며
스위스, 프랑스, 영국 3개국의 워치메이킹
기술을 모두 흡수한 유일한 워치메이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 특히 ‘크로노미터’의
개념을 정립한 영국 대표 워치메이커
존 아널드John Arnold와 교류해
많은 영감을 얻었다.
투르비용을 이야기할 때 브레게를 먼저 말하는 이유는 그저 ‘최초’라서가 아니라, 이 장치가 브레게의 세계관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브레게 이전에도 시계는 중력 때문에 오차가 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으나, 그 문제를 ‘기계 구조로 해결하자’는 발상을 한 사람은 없었다. 15세에 프랑스로 건너가 베르사유와 파리에서 견습 과정을 거친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마자랭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며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갖춘 시계 천재였다. 그는 중력을 제거할 수 없다면 그 영향을 분산시키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탈진기 전체를 하나의 케이지에 넣고 계속 회전시키는 구조를 만들고, 그 아이디어를 1801년 ‘투르비용’이라는 이름의 특허를 냈다.

(왼쪽) 브레게 ‘클래식 투르비용 5367’ 워치. 다이얼의 비대칭 레이아웃과 5시 방향의 투르비용은 브레게가 처음 제시한 ‘회전으로 중력을 보정하는 철학’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투르비용을 장식이 아닌, 여전히 살아 있는 정밀 레귤레이터로 증명하는 현대적 해석이다. (오른쪽) 1801년 특허를 받은 브레게 투르비용 설계 드로잉.
왜 시계는 중력 때문에 틀어질까?
기계식 시계 안에는 시간을 결정하는 핵심 부품, 밸런스 휠이 있다. 좌우로 일정하게 흔들리면서 1초, 2초를 만들어내는 작은 진자 장치다. 그러나 200년 전 포켓 워치는 항상 주머니 안에서 세로로 서 있는 상태였고 이때 중력이 시계의 아래 방향으로만 작용하면서 밸런스 휠이 미세하게 기울고,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거나 느려지곤 했다. 브레게는 생각했다. “중력을 없앨 수 없다면 중력이 한쪽으로만 작용하지 못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밸런스 휠과 탈진기를 통째로 하나의 작은 우리cage에 넣고 돌려버렸다. 이 케이지가 1분에 한 바퀴 돌아가면, 위쪽에서 생긴 오차, 아래쪽에서 생긴 오차, 옆쪽에서 생긴 오차, 이 모두가 회전하면서 서로 상쇄된다. 마치 치우친 체중계 위에 계속 접시를 돌려 평균 무게를 맞추는 것과 같이. 이것 이 투르비용의 핵심 원리다. 일견 간단한 이론 같지만 개발은 순탄치 않았다. 브레게가 스위스에서 아이디어를 구상한 1793년부터 1795년 사이로 추정되는 시점에서 1801년 마침내 특허를 취득하는 데만 6년 이상이 걸렸다. 그리고 실제 판매까지는 6년이 더 소요되었다. 총 12년 이상 브레게는 투르비용을 안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1802년, 1806년, 1819년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만국박람회에서 투르비용을 홍보했으나, “시계가 똑바로 있거나 기울어지는 등 위치에 상관없이 정확성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아주 간결히 소개했다. 1796년부터 1829년 사이 브레게와 그의 직원들은 40개의 투르비용을 제작했으며, 이 외에도 미완성되거나 기록되지 않은 9개가 더 있었다. 타임피스 한 개를 제작하는 데 5년에서 10년이 걸릴 정도로 까다로운 작업이었고 특허 설명서에는 “케이지가 매분 회전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실제 제작한 35개의 시계 중 절반 이상은 4분 또는 6분마다 1회 회전하는 케이지를 탑재해 설명보다 한참 부족하기도 했다. (그러나 투르비용으로서의 기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투르비용을 향한 현대 시계 브랜드들의 무자비한 열정을 떠올려보면 과거의 투르비용 위치는 꽤 소박하게 느껴진다. 당시 브레게 투르비용의 고객층은 영국의 조지 3세와 조지 4세, 스페인의 페르난도 7세 같은 왕족부터 러시아의 예르몰로프 공주와 가가린·레프닌·데미도프 같은 귀족, 그리고 폴란드의 포토츠키 백작, 이탈리아의 아르친토 백작 등 유럽의 저명인사들이었음에도 40개의 투르비용 중 약 4분의 1이 해상용이었고, 비교적 21세기에 들어서나 연구되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브레게 ‘No. 1176’ 워치는 1800년대 초 브레게가 만든 매우 희귀한 4분 투르비용 포켓 워치로, 당시 최고 수준의 정밀성과 복잡한 구조를 결합한 작품이다.

(왼쪽) 브레게 연구 개발 부서의 신기술이 집약된
‘익스페리멘털 1’ 워치. (오른쪽) 일반 투르비용보다 4배나 빠른
브레게 ‘익스페리멘털 1’의
자성 이스케이프 10Hz 투르비용.
브레게 시계 없이 바다에 나가는 해군은 없다
당시 선박 소유주와 항해사들은 항해와 경도 계산을 위해 브레게의 투르비용을 사용했고, 아프리카 탐험가들 역시 같은 이유로 브레게를 선택했다. 일례로 19세기 초 영국군 장교이자 천문학자인 토머스 브리즈번Thomas Brisbane은 (당시 신식 식민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할 때 1816년 브레게에 주문한 투르비용 시계와 함께했는데, 6분마다 회전하는 대형 투르비용은 16개월을 항해하는 동안 오차가 1.5초에 불과할 정도였다고. 이런 이유로 브레게가 파리경도국에 선임되고 루이 18세로부터 프랑스 왕정 해군의 공식 워치메이커 칭호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브레게조차 투르비용을 “일반인을 위한 워치메이킹”이 아닌 “과학적 활용을 위한 워치메이킹” 카테고리로 분류한 사실도 재밌다. 1801년 투르비용 특허를 공개했을 때, 파리와 런던의 많은 워치메이커들이 그의 공방에 찾아와 구조를 보려고 했을 때 그는 “이건 고객을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중력을 이기기 위해 만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당시 ‘더 얇게, 더 예쁘게, 더 싸게’가 시계 시장의 경쟁 포인트였기 때문에 이 말은 업계에 충격을 남겼다. 그러나 특허 기간은 단 10년에 불과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투르비용 제작이 워치메이킹 업계 전체로 확산하는 계기가 된다. 그중 한 명이 바네 보닉센Bahne Bonniksen이다. 그는 ‘카루셀Carousel’이라는 유사 메커니즘을 고안했는데 이름도 ‘회전목마’라는 뜻인 데다 브레게의 회전 개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즉, 경쟁자조차 브레게의 언어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브레게 없이 투르비용을 말하는 것은, 아인슈타인 없이 상대성이론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투르비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가? 모든 뱃길과 하늘길이 디지털화된 지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미 과거의 투르비용도 오차 범위가 크지 않았으며, 회중시계가 아닌 손목시계는 좌우, 상하로 움직임이 많은 손목 위에서 중력이 자연스럽게 분산된다. 그런데도 투르비용이 인기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브랜드가 얼마나 미친 수준의 기술력을 가졌는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바로 투르비용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부품 수십 개를 정밀하게 움직이면서 흔들림 없이 회전시킨다. 조금만 오차가 있어도 멈추거나 시간 정확도가 무너진다. 그래서 투르비용을 만든다는 건 ‘우리는 물리적으로 가장 어려운 기계를 아름답게 작동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 대표적 브랜드로 로저드뷔를 꼽겠다. 제네바 브랜드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과감한 혁신을 추구하는 철학 아래 투르비용의 가능성을 여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그 중 더블 투르비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개의 투르비용을 다른 각도로 배치해 중력을 더 효과적으로 상쇄한다는 개념의 더블 투르비용에 그치지 않고 쿼드러플 투르비용까지 개발했다. 4개의 투르비용이 복잡하게 작동하는 이 메커니즘은 워치메이킹의 정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브레게가 200년 전 시작한 중력과의 싸움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투르비용이 많을수록 정확도도 더 좋아지는 걸까? 답은 ‘글쎄’다. 오히려 부품수가 두 배 이상 늘고 조율 난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즉, 이론적으로는 더 정밀하지만, 안정성 관리는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더블 투르비용의 진짜 의미는 정확도보다 기술력의 증명에 있다. 그럼에도 투르비용의 미래는 밝다. 특히 브레게가 창립 250주년을 맞아 출시한 ‘익스페리멘털 1’ 워치는 ‘두 번째 투르비용’이라 부르고 싶다. 기념 모델을 넘어, 투르비용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압도적 기술 선언이라 할 정도이기 때문. 초경량 소재, 마찰을 극단적으로 줄인 구조, 고진동 안정성을 고려한 밸런스와 케이지 설계. 특히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구동계와 정밀하게 제어되는 회전 메커니즘은, 투르비용이 여전히 ‘정확성을 위한 장치’라는 브레게의 정의를 고집스럽게 증명한다. ‘익스페리멘털 1’은 투르비용의 시작과 미래가 모두 브레게에 있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더블 투르비용’ 워치. 188피스 한정판으로 출시되었다.
COOPERATION 로저드뷔(3479-1403), 브레게(bregu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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