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1월호

ART NOUVEAU JEWELRY

자연의 선과 에나멜 소재를 택하며 기존 주얼리의 질서를 뒤흔든 아르누보. 
짧지만 강렬했던 당시의 예술과 정신을 담은 이 시대의 주얼리를 찾아본다.

EDITOR 이수연 WRITER 윤성원 PHOTOGRAPHER 박재용

손을 맞잡은 듯한 입체적 링크가 원형으로 이어지는 ‘쟌 슐럼버제 바이 티파니 핸즈’ 브레이슬릿과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순간을 포착한 듯 옐로 골드의 날카로운 선이 방사형으로 뻗친 ‘쟌 슐럼버제 바이 티파니 파리 플레임’ 브로치 모두 티파니.


Gustave Moreau, ‘환영’, 106×72cm, watercolor, 1876


자연이 흐르던 시대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서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환영’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피를 뚝뚝 흘리며 공중에 떠 있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 그 앞에 선살로메의 시선은 한겨울 새벽빛처럼 차가웠다. 도대체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모로가 그린살로메는 성경 원전의 순종적인 소녀가 아니었다. 한 남자에게 광적으로 집착해 파멸로 몰아넣은 여인, 19세기 말 예술가들이 열광한 ‘팜 파탈femme fatale’의 전형이었다. 모로의 그림이 그려진 19세기 말, 주얼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긴 머리를 채찍처럼 휘날리는 관능적인 나체의 여인이 파스텔 톤 에나멜과 금속 조각을 잔뜩 두르고 등장한 것이다. 그전까지 주얼리에 여자가 알몸으로 등장한 적은 없었다. 카메오에 귀부인들의 얼굴이 수없이 새겨졌지만 적어도 옷은 갖춰 입은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복고풍 주얼리에 지친 지식인들이 이 ‘새로운’ 주얼리에 열광하면서, 마침내 아르누보의 시대가 열렸다.


자연을 닮은 곡선의 미학

아르누보 주얼리를 정의하는 단어는 ‘곡선’이다. 식물의 덩굴, 곤충의 날개, 여인의 머리카락···. 자연에서 빌려온 유려한 선이 금속 위에서 흘러내리면서 과거 양식을 답습하던 19세기 복고풍 미학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장인들이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건 덩굴식물이었다. 담쟁이와 포도 넝쿨, 아이리스와 난초의 줄기가 브로치와 펜던트 위에서 자유롭게 휘감겼고, 식물의 생장곡선을 따라 에나멜이 번지고 금속이 휘어지는 형상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떠올리게 했다. 곤충도 빠지지 않았다. 잠자리, 나비, 매미가 단골 소재로 등장했는데, 투명한 날개를 금속 위에 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때 장인들은 플리크아주르Plique-à-jour라는 새로운 기법에서 답을 찾았다. 금속 틀 사이에 에나멜을 채워 넣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이 통과하게 만드는 방식, 아르누보 에나멜 공예의 정점이었다. 그런데 가장 논쟁적인 모티프는 여인의 몸이었다. 르네 랄리크René Lalique의 ‘잠자리 여인’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상반신을 그대로 노출한 여성이 잠자리의 날개와 꼬리를 달고 있는 브로치다.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이 형상은 고대 신화에서 빌려왔지만, 사회적 맥락도 깔려 있었다. 1900년 전후 유럽에서는 코르셋을 벗고 참정권을 외치는 ‘신여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당대 비평가들은 이런 형상을 두고 ‘매혹적이면서도 위협적’이라 묘사하곤 했다. 랄리크의 ‘잠자리 여인’은 바로 그 양가감정을 금속과 에나멜로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왼쪽부터) Georges Fouquet, ‘펜던트’, 1900-1905 ©Albion Art Jewellery Institute. René Lalique, ‘Sylphide Brooch’, 1900 ©Albion Art Jewellery Institute


(왼쪽부터) 알폰스 무하, ‘지스몽다’ 포스터, 1894. 알폰스 무하가 디자인하고 조르주 푸케가 제작한 ‘사라 베르나르의 뱀 팔찌’, 1899


다이아몬드를 거부한 사람들

모티프만 달라진 게 아니라 소재도 뒤집혔다. 당대 주류였던 벨 에포크 주얼리가 플래티넘 세팅에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부를 과시할 때, 아르누보 장인들은 정반대 방향을 택했다. 눈부신 광채가 오히려 창의력을 방해한다고 여긴 것이다. 이들이 주목한 건 은은한 빛을 내는 보석들이었고, 그중에서도 오팔이 첫손에 꼽혔다. 보는 각도에 따라 무지갯빛이 일렁이는 오팔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제격이었고, 문스톤의 영롱한 청백색 광채도 장인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르누보를 진정 아르누보답게 만든 건 에나멜이었다. 파스텔 톤의 에나멜이 꽃잎과 날개 위에 물들면서 회화적인 효과를 냈고, 심지어 동물의 뿔이나 거북 등딱지, 상아까지 주얼리 소재로 쓰였다. 캐럿이 아니라 장인의 손끝이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 르네 랄리크, 조르주 푸케Georges Fouquet, 앙리 베베르Henri Vever 같은 완벽주의자들은 에나멜로 덮인 앞면만큼이나 주얼리 뒷면까지 정교하게 마무리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상관없이, 손끝이 닿는 모든 곳에 정성을 쏟았다. 지금도 경매장에서 아르누보 피스의 뒷면을 살펴보면 그 집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들에게 주얼리란 몸에 착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눈으로 음미하는 작품에 가까웠다. 에나멜과 뿔, 오팔처럼 섬세한 소재는 넓은 면적을 필요로 했다. 반지나 귀고리로는 이 새로운 미학을 담아내기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장인들의 시선은 브로치와 머리 장식으로 향했다. 아르누보는 브로치의 시대였다. 잠자리나 나비 형태의 브로치는 날개를 활짝 펼친 채 가슴 한복판에 내려앉았고, 여인의 얼굴을 형상화한 브로치는 길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프레임을 대신했다. 조르주 푸케의 용 브로치를 모니터 속 사진으로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확대 버튼을 몇 번이고 눌러댔다. 금과 에나멜, 이끼 마노, 에메랄드 등의 디테일은 볼수록 신화 속 존재가 살아나는 듯했다. 한편 브로치만큼이나 사랑받은 건 머리 장식이었다. 사교 모임에 참석하는 귀부인들은 다이아몬드 티아라 대신 아르누보 스타일의 머리빗을 착용하곤 했다. 물소 뿔을 세공해서 만든 커다란 빗 위에 에나멜 꽃이 피고, 금속 줄기가 유려하게 뻗어나갔다. 알폰스 무하Alfons Mucha가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를 위해 디자인한 백합 왕관은 연극무대 위에서 객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짧지만 영원한 유산

이토록 도발적인 주얼리를 과연 누가 착용했을까? 아르누보에 생명을 불어넣은 건 무대 위의 여배우들이었다. 그 중심에 프랑스의 사라 베르나르가 있었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배우의 등급을 나열하면서 맨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형편없는 배우, 괜찮은 배우, 잘하는 배우, 대단한 배우, 그리고 사라 베르나르.” 바로 그 ‘사라 베르나르’가 아르누보 주얼리의 아이콘이 되었다. 계기는 알폰스 무하가 디자인하고 조르주 푸케가 제작한 뱀 팔찌. 연극 <메데이아>의 포스터 속 디자인을 바탕으로 1899년에 완성한 이 팔찌는 반지와 체인으로 연결되어 손등에서 팔뚝까지 세 번 감겼다. 뱀 머리에는 사라의 탄생석인 오팔이 박혔고, 비늘 문양의 에나멜이 뱀의 금빛 몸통을 뒤덮었다. 무대 위에서 이 팔찌를 착용한 사라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화제가 이어졌다. 현재 이 팔찌는 일본 사카이시Sakai City의 알폰스 무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아르누보라는 이 찬란한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1890년대에 혜성처럼 나타나 1910년경 유성처럼 사라졌고, 비평가들은 꿈틀대는 선을 두고 ‘촌충 양식’, ‘국수 양식’, ‘마카로니 양식’이라며 비웃기도 했다. 그런데 그 비아냥이야말로 이 양식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스무해 남짓한 생이었지만 아르누보는 주얼리의 역사를 영원히 바꿔놓았다. 보석의 가치가 캐럿이 아니라 예술성으로 측정될 수 있다는 사실, 자연의 곡선이 장인의 손끝에서 금속과 파스텔 색채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다만 에나멜이나 뿔처럼 연약한 소재는 깨지기 쉽고 세월을 버티기 어려워, 오늘날 온전한 상태로 남은 작품이 드물다. 그러나 미술관 유리 케이스 안에서 여전 히 빛을 머금은 그 조각들은 한 세기 전 공방의 숨결을 기억하고 있다.


나비 모티프가 공중을 유영하듯 이어지며 아래로 흩날리는 ‘파베 버터플라이’ 컬렉션의 ‘라운드와 마르키즈 다이아몬드’ 네크리스는 그라프. Alfons Mucha, ‘Documents Décoratifs 30’, 1901


공작새의 깃털에서 착안해 잔가지처럼 섬세한 다이아몬드 장식이 흐르는 ‘플륌 드 펑’ 라지 이어링과 라지 네크리스, 핑크 골드 소재의 스몰 링 모두 부쉐론. Alfons Mucha, ‘Documents Décoratifs 33’, 1901


뱀이 가진 부활, 불멸의 에너지를 재해석한 ‘세르펜티 바이퍼’ 브레이슬릿과 ‘세르펜티’ 네크리스 모두 불가리.


두 줄의 아코야 진주에 카틀레야 꽃잎 모양이 매듭과 끝을 장식하며 우아하게 늘어지는 ‘카틀레야’ 네크리스는 타사키.


날개를 펼친 박쥐의 실루엣을 정교하게 구현해 다이아몬드가 날개 결을 따라 촘촘히 빛나는 ‘플라이 바이 나이트’ 스몰 이어링은 스티븐 웹스터. 골드 플레이트를 미세하게 뚫어 다이아몬드로 나뭇가지와 잎사귀 실루엣을 완성한 ‘라마지’ 펜던트와 이어링 모두 부첼라티. 무당벌레의 둥근 보디 위에 루비를 도트처럼 세팅한 ‘해피 다이아몬드 무당벌레’ 펜던트는 쇼파드.



WRITER 윤성원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 교수.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등을 집필했으며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등 모든 분야를 융합적으로 다루고, 나아가 보석업계의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COOPERATION 그라프(2256-6810), 부쉐론(080-822-0250), 부첼라티(6905-3490), 불가리(6105-2120), 쇼파드(6905-3390), 스티븐 웹스터(2231-1592), 타사키(3461-5558), 티파니(1670-1837)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