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모프 안데르손 주한 스웨덴 대사 부인 이자 스웨덴에서 공인된 임상 심리치료사. 예 술가와 창작자, 그리고 불안과 번아웃으로 소 진된 개인들과 함께하며 회복과 관계의 언어 를 탐구해나간다. 현재 서강대학교 전인교육 원 초빙 교수로 활동하며, 인간의 내면과 관계 를 성찰하는 교육과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미셸 모프 안데르손 왼쪽에 자리한 책거리 작품은 이네즈 길Inez Gil 작가의 작품. 뒤편에 걸린 그림은 그녀가 애정하는 중국 작가 굴리스탄Gulistan의 작품이다.
불안과 번아웃, 관계의 단절이 일상이 된 시대에 ‘치유’를 말하는 방식 역시 달라지고 있다. 이제 치유는 더 이상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억과 관계, 환경과 문화가 얽힌 구조 속에서 인간을 다시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셸 모프 안데르손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심리치료, 교육, 예술을 연결하며 인간 치유의 구조를 설계해온 인물이다. 현재 그녀는 주한 스웨덴 대사 칼-올로프 안데르손Karl-Olof Andersson의 배우자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성은 외교관의 배우자라는 호칭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위치는 그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문화 간 관계, 이동과 정착, 기억의 층위를 일상의 차원에서 확장시키는 하나의 현장이 된다. 개인과 공동체, 국가와 문화 사이를 오가는 삶은
그녀의 심리적 세계관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그녀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공공 정책으로 석사과정을 마치며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관심은 점차 정책과 제도를 넘어,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상처를 기억하고 다시 삶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한다. 이후 시애틀 대학교에서 취득한 목회학 박사과정은 그녀의 심리적 관점을 한층 확장시켰다. 그는 박사 논문에서 한국전쟁
이후 세계 각지로 흩어진 재외 한인 디아스포라를 인터뷰하며 전쟁과 이주, 단절이라는 집단적 트라우마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각인되고 이후 문화 예술을 통해 어떻게 화해에 이르는지 분석했다. 이러한 연구는 그녀가 과거 유엔개발계획 국제 전문가로 평양에서 근무하며 위기 상담사로 활동했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이 시기는 그녀의 커리어에서 매우 중요했지만, 그 경험을 에피소드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 시간은 제 삶에서 매우 소중했지만, 저는 전문적 비밀 유지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신뢰와 윤리는 그녀에게 결코 타협되지 않는 기준이다. 이 태도는 고통의 현장에서 일해온 심리치료사로서 그녀가 지켜온 윤리를 조용히 드러낸다.

Photo: Niclas Nordlund (Å Ålä änningen tidningen)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성장해 스웨덴에 정착하기까지, 이주민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늘 저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기반입니다. 미국으로 이주해 가족을 위한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면서도 가톨릭 신앙과 전통을 지켜온 조부모님에 대한 자부심은 늘 제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 분은 대공황 시기에 작은 가구 보수 업체를 시작했고, 그 일은 결국 가족 사업으로 이어져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가구 제조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한국에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셨죠. 이런 가족의 이야기를 안고 자란 저는 오늘날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슬픔과 회복, 기쁨과 상실을 마주할 때마다 인간의 회복력에 담긴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자기 안에 있는 믿음과 용기, 무엇보다 모든 인간이 지닌 존엄을 발견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2024년 10월부터 주한 스웨덴 대사 부인으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전문적인 개인 활동과 공적 역할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나요? 저의 공적인 역할은 비교적 제한적입니다. 스웨덴에서는 전문적인 삶과 공적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문화가 강하거든요. 공적인 인물은 제 남편이고, 저는 가끔 초대를 받아 동행하거나 공식적인 저녁 자리에 참석하는 정도입니다. 대신 저는 제가 진심으로 뜻을 두고 있는 활동에는 시간을 내려고 합니다. 여유가 있을 때면 ‘안나의 집’에서 노숙인을 위한 급식 봉사를 하곤 합니다.
한국에서 목회 상담가이자 심리치료사로서의 활동은 어떻게 이어가고 계신가요? 일주일에 며칠은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에서 ‘영성, 문화 그리고 예술’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며 학생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학생들과 함께 인간을 전인적 존재로 바라보면서 예술과 문화, 그리고 각자의 내면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에요. 대부분의 오후에는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의 다른 지역과 중국, 미국에 있는 내담자들을 위한 온라인 상담과 임상 심리치료에 집중합니다. 많은 분이 오랜시간 저와 함께하면서 깊은 유대감을 쌓고, 아주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저는 늘 그분들을 마음에 품고 신뢰 안에서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해오면서, 좋은 소통을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이 평가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경쟁 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확신을 가질 때 비로소 대화는 열립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호기심과 경청이에요. 상대가 무엇을 말하는지뿐 아니라, 그들의 말 뒤에 숨겨져 있는 맥락과 문화, 그리고 말투와 몸짓에 귀 기울이는 태도죠.
한국에 거주하시며 문화 예술적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간송미술관의 소장품과 기획 전시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미인도’는 제가 지역 커뮤니티 센터에서 고전 한국무용 수업을 듣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작품 속 인물의 태도와 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감각을 몸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제가 머무르고 있는 성북동에 자리한 길상사입니다. 기생 김영한과 북으로 떠난 그녀의 연인, 시인 백석의 이야기는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더불어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사이의 우정은 종교 간 대화에 대한 제 관심을 더욱 확장시켰습니다. 문화 보존과 기억, 그리고 용서의 필요성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전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죠.
현재 대사관저에서 진행 중인 프라이빗 전시를 직접 기획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에게 진정한 럭셔리는 자유입니다. 그 자유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이죠. 또 하나는, 늘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게임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는 신뢰와 용기입니다.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제게 럭셔리는 결국, 스스로의 삶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남북이 하나로 이어지는 지점을 상기하게 하는, 해금강을 연상시키는 그림. 그곳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는 그녀에게 이 작품은 바다와 하늘, 파도와 갈매기에는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마음에 남길 것인가
주한 스웨덴 대사 관저에서 발견한 미셸 모프 안데르손의 수집품들.

주얼리 디자이너 팔로마 산체스Paloma Sanchez가 디자인한 바로크 진주 팔찌는 바다와 신의 창조, 그리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스웨덴의 역사와 지역 정체성,
삶의 태도를 응축한 민속 상징인
달라헤스트.

책거리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옹정제의 12 미인도’.
청나라 시대 중국 베이징에 있던 황실 정원 단지, 원명원을 설계한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상담하는 공간 뒷벽에 늘 걸려 있는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그림.

중국 작가 굴리스탄의 작품 ‘Former Glory’. 미셸 모프 안데르손이 가장 사랑하는 두 예술가, 조토 디 본도네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중세의 여인을 그렸지만 동시에 오늘날의 여성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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