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1월호

요트로 그려낸 삶의 항로

작은 고무보트 한 척의 소박한 추억. 여기에서 시작된 한 남자의 항해가 누군가의 로망이 되고 도시의 꿈이 되었다.
요트를 사치의 상징이 아닌,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생활의 일부로 바라보는 남자. 
한성마린 안경민 대표의 이야기다.

EDITOR 박이현 GUEST EDITOR 김선관 PHOTOGRAPHER 박상국

안경민 유럽 프리미엄 요 트를 통해 국내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레저 문 화를 제안하는 요트 전문 기업 한성마린을 이끌고 있다. 그는 바다에 대한 순 수한 열정을 발판으로 요 트업계에 입성해 국내 레 저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 투 중이다. 요트 수입부터 투어 프로그램 기획, 마리 나 운영 등 요트에 대한 다 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처음 요트를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집이 해안가에 있어 어릴 때부터 저의 놀이터는 늘 바다였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오륙도 인근에서 낚시를 하면 꼭 모험왕이 된 것 같았죠. 바다는 단순한 물리적 풍경을 넘어 저에겐 생활이고 쉼터였어요. 스물다섯 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지셨습니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하던 덕트 회사의 대표를 맡게 됐죠. 당시만 해도 회사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혼자 고무보트를 끌고 아버지와 함께 갔던 바다로 나갔는데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더라고요.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틈만 생기면 바다로 나갔던 게. 그러면서 욕심도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모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속도가 더 빨랐으면 좋겠는데?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공간이 여유로웠으면 좋겠는데?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니 지금의 제가 있더라고요.


요즘도 머리가 복잡할 때면 키를 잡고 바다를 나선다. 바다만큼 그에게 안정을 주는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프랑스 브랜드 ‘실버 웨이브’의 모듈형 보트. 기본 선체와 제트스키 같은 모듈 키트를 결합해 필요에 따라 레저, 낚시, 크루즈 등 다양한 용도로 변형할 수 있다.


취미와 취향이 직업으로 연결되긴 쉽지 않은데요, 특히나 요트 같이 국내에선 대중적이지 않은 취미는 더욱더 그럴 것 같아요. 고무보트로 시작해 지금의 요트까지 오면서 대여섯 단계의 보트와 요트를 거쳤습니다. 국내외 제품을 막론하고 직접 제 손으로 가져와 엔진 수리나 관리, 계류장 확보 등 요트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알아보고 진행했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요트 구매뿐 아니라 사후 서비스까지 한 번에 배울 수 있었어요. 또이런 과정을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알려줄 건 알려주고 배울 건 배우고 그랬죠.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도 좋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느끼는 감흥도 상당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저 같지는 않을 거예요. 과정이 복잡하고 정보도 한정적이라 보통 사람이 업계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는 그래서 뛰어들었습니다. 저에게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는 이거예요.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걸 해라.


내 것을 사는 것과는 다르게 사업 시작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요트라는 게 가격대가 높잖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커다란 요트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버렸어요. 사업자 등록을 하고 초기에 팔았던 건 주로 중고 보트였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부담이 적으니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았죠. 중고 보트 거래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요트 수입을 시작했습니다. 글과 사진, 동영상으로만 보기에는 믿을 수가 없어 캐나다, 이탈리아 등을 다니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죠. 그러다 한 대를 수입하게 됐고, 운 좋게도 그 한 대가 바로 팔렸어요. 요트라는 게 라이프스타일, 가족과 친구들과의 경험, 그리고 감성적 요소들이 엉켜 있다 보니 자신과 딱 맞는 제품을 고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수입하면 판매하는 데 보통 짧게는 3개월, 길게는 몇 년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저희는 운이 좋았죠. 그렇게 한 번 물꼬를 트니까 그다음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게 흘러가더라고요.


150년 이상 된 이탈리아 대표 요트 브랜드 ‘크란치’의 67 코르사Corsa. 안경민 대표의 ‘최애’ 요트다.


현재 한성마린에서 주로 취급하는 제품은 무엇인가요? 특정 제품을 판매한다기보다 우리나라 상황에 맞고, 사업적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브랜드 중에 ‘실버 웨이브Sealver Wave’라고 있어요. 제가 주목하는 게 이 실버 웨이브의 보트예요. 일반 보트와는 다르게 제트스키를 결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듈형 보트인데, 한 대의 제트스키로 보트의 모든 성능과 속도, 즐거움을 그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10명까지 탑승이 가능해서 가족들과 즐기기에도 정말 안성맞춤이죠. 요트는 ‘크란치Cranchi’ 제품을 취급하고 있어요. 150년 이상 된 이탈리아 대표 요트 브랜드죠. 보통 20m 이상으로 규모도 크고 들어가는 소재도 모두 하이엔드라 비즈니스를 위한 용도로 주로 사용됩니다. 사실 크란치는 제가 좋아하는 요트 브랜드인데 2022년 이전에는 한국에서 판매하는 곳이 없었어요. 개인이 구매하려면 이탈리아 본사에 연락해서 직접 구매할 수밖에 없었죠. 좀 안타깝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요트라고 해도 사람들이 모르니까. 그래서 2022년 이탈리아로 직접 넘어가 국내 공식 총판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많은 브랜드예요.


한성마린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부산이라는 해양 도시의 인프라와 지리적 이점이 요트 사업을 하기 좋은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요트의 특성상 배를 정박할 수 있는 계류지가 많아야 관리가 손쉬운데 부산은 다른 도시보다 그 수가 많죠. 수영만 요트 경기장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규모로서는 가장 큰 마리나가 있고, 해양 축제나 요트 대회 등이 꾸준히 열리고 있어 다른 지역보단 요트에 대한 접근성이 좋습니다. 가장 좋은 건 요트를 타고 나갈 곳이 많다는 거예요. 연안 항로 및 크루징 루트가 잘 구축되어 있어 단거리, 장거리 크루저 모두 부담 없이 운항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강원도, 옆으로는 전라도 넘어 서해까지 갈 수 있죠. 심지어 대마도도 갈 수 있어요. 수영만에서 출발하면 불과 60km밖에 되지 않습니다. 거제도보다 가깝죠.


한성마린을 운영하면서 개인적으로 뿌듯하던 순간들이 있을까요? 요트를 판매하고 나면 고객들이 가족들과 함께 요트 위에서 낚시를 하거나 바다 한가운데서 수영을 하는 사진을 보내줄 때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 고객뿐만 아니라 고객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한 분야 더 확장시켜드렸다는 자부심을 느끼곤 합니다. 사실 보트나 요트 문화는 특정 세대가 주도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전체적인 규모를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고 그 문화는 고립이 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누구나 쉽게 요트를 접할 수 있게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어린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부모님 세대들도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표정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더라고요. 가족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라면 시장의 지평을 더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탈리아 감성의 ‘시 쿠페Sea Coupé’ 스타일이 강조된 럭셔리 스포츠 요트. 길이 20m, 3개의 넓은 객실과 고급스러운 실내, 그리고 오픈형 콕핏이 특징이다.


대표님이 추천하거나 자주 가는 요트 코스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거제도 쪽을 자주 갑니다. 거제도 근처에 섬이 400개가 있어서 매번 새로운 항로로 갈 수 있어요. 보통 비진도를 시작으로 그 주변을 다니는데 연화도는 물이 너무 예뻐서 잠깐이라도 꼭 들르고, 식사는 욕지도에서 해결하죠. 일종의 섬 투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섬은 어항이 갖춰져 있어서 어민들에게 양해만 구하면 정박할 수도 있습니다. 가끔 무인도에 갈 때도 있는데, 항이 따로 없으니까 근처에 닻을 내리고 작은 배로 갈아타거나 수영으로 들어가죠. 아무도 없는 섬에 혼자 있다는 짜릿함은 아무나 경험할 수 없을걸요.


앞으로 국내 요트 산업의 미래는 어떤가요?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까요? 최근에 서울도 그렇고, 이곳 부산도 그렇고 마리나가 많이 생기고 있어요. 마리나가 크든 작든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계류지가 있어야 요트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계류지가 포화 상태면 신규 요트가 들어오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는 만큼 마리나가 늘고 있다는 건 희소식이죠. 다만 계류지의 수가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긴 합니다. 일본 같은 경우 계류지가 한국의 10배 정도 되거든요. 요트 시장의 규모가 달라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요즘 구체적으로 오고 가는 방안들도 몇가지 있어요. 활동이 미비한 어항을 활용해 계류지로 확보하는 것이 그중 하나죠. 보트나 요트를 타고 이곳저곳 다녀올 장소를 만들어야 관광 상품이 만들어지고, 그 지역 역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나온 방안 중에선 가장 현실성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요트업계에도 친환경 에너지, 전동화 등과 같은 새롭게 주목받는 기술들이 있는데요. 이런 변화들이 한국 요트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독일 보트 쇼나 프랑스 요트 쇼를 갈 때마다 요트의 전동화 같은 내용을 많이 보고 듣습니다. 하지만 아직국내 사정과는 거리가 있더라고요. 속도라든지 주행 가능 거리라든지···. 그리고 전기차 산업과 비슷하게 충전 인프라 문제도 상당히 큽니다. 현재 국내에 충전 인프라를 마련한 마리나는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친환경 에너지나 전동화 같은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기에 개발은 상당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에서 소형 레저용 선박을 위한 전기 추진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고, 하이브리드나 수소 선박에 대한 연구도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죠. 정확하게 언제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전기차가 우리 생활에 조용히 스며들었듯이 전기 요트도 그렇게 다가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한성마린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소위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지던 요트 문화를 우리의 놀이터로 만들어야 합니다. 부자들만의 취미가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고, 특정 나이대가 아닌 전 연령층이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 되며, 마리나가 진입을 막는 장애물이 아닌 오히려 부흥의 매개체가 되면 요트 문화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국면을 맞이할 겁니다. 이건 한성마린의 목표이자 인간 안경민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저 혼자 혹은 작은 회사 하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저부터 실행한다면 못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요트 관련해서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풍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돛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부지런히 돛의 방향을 바꾸면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요트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오래 걸릴 겁니다.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그날은 반드시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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