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1월호

AI가 만드는 K-뷰티의 다음 챕터 '비팩토리 노정석' 대표

지난 몇 년간 K-뷰티는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누구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던 시대를 지나며 늘어나고 있는 건 막대한 재고 상품과 이를 밀어내기 위한 광고다.
비팩토리 노정석 대표는 AI를 중심에 두고 뷰티 산업의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EDITOR 박이현 GUEST 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박용빈


비팩토리 노정석 대표


비팩토리 노정석 대표는 한국 IT 스타트업 신에서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다. 지금까지 일곱 번의 창업을 경험했고, 대부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가 창업한 블로그 개발 기업은 구글이, 모바일 게임 분석 기업은 글로벌 광고 플랫폼 탭조이가 인수했다. 해외 빅 테크 기업에 두 번이나 회사를 매각한 경험이 있는 창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창업에 도전해온 그가 새롭게 옮긴 무대가 ‘뷰티’다. 비팩토리는 현재 스킨케어 브랜드 킵KYYB, 색조 화장품 브랜드 아멜리AMELI, AI 전 성분 분석 서비스 다페라DAPHERA를 산하에 두고 있다. 겉보기엔 뷰티 브랜드지만, 본질은 기술 기업에 가깝다. AI를 기반으로 제품을 설계하고 판매해서다. 평생을 IT에 헌신해온 ‘공돌이’인 그가 뷰티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이렇다. “2010년 무렵에 곧 AI 시대가 도래할 걸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AI 산업엔 구글이나 MS, 아마존 같은 거인들이 있었죠. IT는 승자 독식 구조예요. 중간이 없습니다. 빅 테크 기업과 같은 비즈니스를 해서는 답이 없었죠. 그래서 AI 자체가 아니라, AI와 결합할 수 있는 산업을 찾았습니다. 육체와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닿아 있는 산업을 찾다 보니 뷰티가 가장 적합하더군요.” 이미 존재하는 시장에 새롭게 진입할 때는 기존 시장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뷰티 같은 거대한 시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노 대표는 기존 뷰티 시장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다양한 피부, 환경, 습관이 있는데 제품은 다 비슷하더군요. 표준 처방만 있달까. 개인에게 최적화된 제품을 생산해서 배송할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뷰티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플루언서 마케팅이죠. 하지만 AI가 심화될수록 고객의 눈앞에,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두는 기술이 중요해질 거라고 확신했고, 그걸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창업 초기에는 엔지니어로서 시장에 대한 감각보다 생산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코스맥스와 협력해 만든 ‘스위즐’이라는 맞춤형 화장품 스마트 팩토리가 그것이다. AI 기반의 성분 추천 엔진을 통해 나만의 화장품을 만들고, 포장과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해결해주는 수직 통합 시스템. 테슬라처럼 생산부터 판매까지의 전 과정을 직접 브랜드가 통제하는 것이다.


비팩토리는 bfactory.ai라는 URL을 쓴다. 이미 AI를 주소창에 넣어둔 셈이다. “비팩토리B Factory의 B는 Beauty가 아니라 Bio까지 확장될 개념이에요. AI와 바이오의 융합 로드맵을 그리고 있죠. 화장품은 그 첫 단계입니다.”


“당시 진행이 너무 빨랐어요. 하지만 경험과 기술은 모두 우리 내부의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을 이해할 수 있었죠. 브랜드가 성장하기 위해선 기술도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브랜드 구축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은 잠깐 중단한 상태지만 내년에 다시 재개할 예정입니다.” 이후 그는 뷰티 브랜드 킵과 아멜리를 중심으로 전략을 정비했다. 특히 킵은 카이스트 김철환 박사가 개발한 ‘모아시스Moasis’라는 ‘일자형 고분자 히알루론산’을 핵심 기술로 내세운다. 흥미로운건 이 기술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브랜드 페이지에 들어가면 일반 뷰티 제품 소비자들이 조금 어색하게 느낄 부분이 있다. 화려한 이미지와 수사로 소비자를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대신, 기술의 원리를 쉽게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는 게 그것이다. 브랜딩을 주도한 아멜리 권유미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제품의 효과에 자신 있어요. 하지만 이 과학적 원리를 깊게 설명하면 어렵고, 단순화하면 깊이가 사라지죠. 홈페이지 문구만 수백 번 수정했 어요. ‘정확한 정보를 전하면서도 감성적인 균형’을 맞추는 게 목표였습니다.”


아멜리는 홈페이지 내에 이용자의 질문에 대응하는 챗봇형 시스템 헤바Heva를 운영 중이다. AI와 브랜드를 접목하는 첫 발걸음이다.


노 대표는 “검증되지 않은 건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예컨대 요즘 뷰티 시장을 리드하는 일부 테마는 논리와 데이터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아예 만들지 않았다. 그는 “효율보다 신뢰 를 택했기 때문에 초기 속도는 느렸지만, 이제는 내부에서도 ‘그건 우리답지 않다’는 문화가 자생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는 그 자신이 한때 과학도로서 가지던 윤리처럼 느껴졌다. 노 대표의 말은 단순히 한 기업의 원칙이라기보다 지금의 K-뷰티 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피로감과도 맞닿아 있다. K-뷰티가 영원히 호황을 누릴 수는 없다. 그간 우후죽순 생겨난 많은 뷰티 브랜드가 악성 재고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저도 지금은 K-뷰티 호황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3년간 수많은 회사가 이 판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재고 과잉으로 정리 국면에 있습니다. 이제 ‘진짜 브랜드’만 남는 시기가 올 거예요. 우리처럼 AI로 준비된 회사들이 그다음 시대의 주류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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