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ART> 2025년

HUGO MARCHAND 발레계의 아름다운 반항아

23세에 파리 오페라 발레단 에투알로 발탁된 무용계의 아이콘 위고 마르샹이 드디어 한국을 찾는다. 프리즈 서울 아트위크의 밤, 그는 해나 오닐과의 파드되 무대로 한국 관객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EDITOR 박이현


위고 마르샹  프랑스 낭트 출신의 발레리노이자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23세라는 이례적인 나이에 최고 등급에 오른 세계적 아티스트다. 클래식과 현대를 넘나드는 감각적 해석으로 발레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패션 및 예술계와의 다양한 협업으로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3세라는 이른 나이에 ‘파리 오페라 발레단Paris Opera Ballet’의 에투알Étoile(수석 무용수)로 발탁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위고 마르샹. 클래식 발레의 문법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아름다운 반항아’라는 수식어를 얻은 그가 드디어 한국을 찾는다. 오는 9월 1일, 프리즈 서울 아트위크의 대표 행사 중 하나인 ‘파라다이스 아트 나이트’ 무대에서 같은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해나 오닐Hannah O’Neill과 파드되Pas de deux(두 사람의 춤)를 선보이는 것. 지난해 퍼렐 윌리엄스와 지드래곤이 손을 맞잡아 화제를 모았던 파라다이스 아트 나이트는 올해 위고 마르샹의 첫 한국 공연으로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설 전망이다. 위고 마르샹은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나 아홉 살 무렵 처음으로 발레를 접했다. 14세 때 가족과 떨어져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에 입학해 혹독한 수련 과정을 견디며 실력을 쌓았고, 도쿄 무대에서 단 23세의 나이에 에투알로 승급한 후에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았다. 또 빼어난 신체 조건과 독보적인 분위기로 여러 패션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했으며, 디올 등 세계적인 하우스들의 러브 콜도 꾸준히 받고 있다. 그런 그를 지난 6월 파리 패션위크 기간, 파라다이스 그룹과의 협업 소식이 발표되는 현장에서 직접 만났다.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소감이 어떤가요?

평소 자연의 촉감이나 변화에 민감한 편이에요. 나무, 땅, 흙을 만질 때 각기 다른 진동을 알아챌 정도로요. 최근 호주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경험했는데, 한국에서는 어떤 공기와 땅의 울림을 느끼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프랑스 발레의 전통과 한국 미감의 만남은 분명 시너지를 일으킬 거예요. 그 과정에서 저도 성장할 것이고요. 또 한국에 다녀온 지인들 모두가 서울의 미술관을 칭찬해 꼭 방문하려고 해요. 참! 한국 음식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지라 현지의 맛도 제대로 체험할 계획입니다.


발레를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적에는 서커스와 체조를 먼저 접했어요. 그러던 아홉 살 어느 날, 큰 공 위에서 체조 동작을 연습하다가 옆 공간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이끌려 들어가보니, 소녀들이 그동안 본 적 없던 동작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당시 내 삶의 방향이 정해졌다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어요. 바로 부모님께 발레를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죠. 체조는 평소에 하지 않는 동작을 할 수 있어 좋았지만, 음악이 없어 아쉬웠는데요. 발레를 시작한 뒤로는 어릴 적부터 갈망하던 신체적 도전, 음악, 관객과의 교류가 맞물릴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의 교육 방식이 엄격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K-팝 스타를 양성하는 한국 시스템이 떠오르더군요.

안타깝게도 K-팝을 잘 모르지만, 스타를 키워내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익히 들었어요.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는 매년 성적으로 상위 두 명만 다음 단계로 진학하는 구조예요. 오랜 시간 경쟁과 압박을 견디고, 인내와 끈기를 쌓아야만 비로소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수석 무용수로 올랐습니다.

도쿄 공연 당시 예상치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어요. 주연 무용수가 갑작스럽게 부상을 당하면서 저에게 그 무대가 주어졌거든요. 에투알이라는 타이틀은 제 경력의 정점이라기보다,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여정의 출발선으로 다가왔습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레퍼토리가 다양해서 새로운 안무가와 만날 때마다 발레의 언어가 확장된답니다.


당신의 스승은 “스스로 의심하는 태도가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요. 지금도 그런 면이 있나요?

네. 자기 의심은 여전히 제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저를 불안하고 연약하게 하지만, 그러한 감정이 있기에 아름다운 무대를 꿈꿀 수 있다고 믿어요. 연약함을 드러내는 일이 오히려 관객과 정서적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곤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의심은 창작의 원동력이자 타인과 소통하는 창구가 됩니다.


남들과 다른 신체 조건에서 비롯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키가 크고, 체격도 일반적인 남성 무용수와 달리 남성적이에요. 발레리노로서 이상적인 혹은 전형적인 체구가 아니라서 처음엔 이것이 콤플렉스로 다가왔지만, 춤을 향한 열망 덕분에 결국엔 저의 개성이 무대 위에서 하나의 색채로 표현됐습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역시 스테레오 타입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매력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발레계 안팎에서 더욱 다양한 목소리와 몸짓이 환영받기를 바라요.




과민함도 당신을 옥죄게 한 요소라고요?

예민한 성향은 여전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를 이해하고 다루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어릴 때는 몸매를 완벽하게 가꾸고 싶어서 엄격한 잣대와 집착에 빠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부족함조차 저만의 개성으로 품으려 노력하다 보니 점점 나아지더군요.


사람들은 클래식 발레에 반항적으로 접근하는 위고 마르샹에게 열광해요. 예를 들어 1841년 제작된 지젤의 남자 주인공 알브레히트를 오래된 동화 속의 왕자처럼 그리고 싶지 않다고 한 선언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전 작품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정서와 언어로 구성해야 관객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50년, 100년 전에 탄생한 작품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과연 관객이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까요? 재해석은 예술 작품을 영원하게 만드는 열쇠입니다. 모든 고전은 사랑, 배신, 증오, 절망 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감정을 다룹니다.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이를 오늘의 감각으로 번역하는 일이에요. 당연히 원작의 안무는 존중해야 하고요.


관객과의 유대는 어떻게 형성되나요?

관객은 무용수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나러 온다고 생각합니다. 늘 이를 기억하며 무대에 올라요. 발레는 동작의 나열을 넘어 인생의 여정을 담아내는 예술입니다. 무용수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무용의 언어로 풀어낼 때 비로소 무대와 객석이 진정한 울림으로 연결되지 않을까요?


프랑스의 문화 환경은 예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정평이 났습니다. 당신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순회공연을 기획했고요.

프랑스는 문화 예술이 일상에 스며들어 있어요. 시골 마을에서 자란 저 역시 부담 없이 발레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공연을 보기에는 티켓이 비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공연 자체가 드물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 간극을 메우고자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동료들과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매년 세 차례씩 공연을 접하기 힘든 지역을 찾아가 아이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오래된 공간에서 펼치는 공연은 영화 한 편 가격의 티켓(13유로, 약 2만1000원)으로, 1300명 넘는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올여름에는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과 아비뇽에서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8월 초, 아비뇽의 교황청 ‘팔레 데 파프Palais des Papes’에서 오토니엘의 대형 전시 <오토니엘 코스모스 또는 사랑의 유령OTHONIEL COSMOS ou les Fantômes de l’Amour>과 연계해 ‘한밤중의 영혼Midnight Souls’이라는 공연을 이틀간 선보였습니다. 벽돌, 유리, 진주 등을 활용해 구축한 오토니엘의 신비로운 미적 세계를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일은 저에게도 흥미로운 도전이었어요. 분야를 넘나드는 아티스트와 만나 교감하는 일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일 거예요. 이번 공연은 즉흥적인 만남과 상상력이 더해져 예기치 못한 장면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해나 오닐과는 안젤름 키퍼의 작품 앞에서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습니다. 이번 파라다이스 아트 나이트에서 준비한 무대에 관해 소개해주세요.

사랑의 기운과 육체적 교감을 강조한 열정적인 파드되가 될 거예요. 비록 일정상 한국 아티스트와 한 무대에 오르는 일은 어렵겠지만, 언젠가 다시 한국을 찾아 그들과 호흡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증이 있습니다. 무대 밖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발레리노로 살아가지만, 삶의 균형과 시야를 넓히는 일이 저에겐 중요합니다. 발레에만 몰두하다 보면 자칫 세상과 단절될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간으로서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려고 하죠. 무대 밖에서 배운 모든 것은 제 춤과 예술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여러 활동을 병행하는 것은 저를 유연하고 성숙한 사람이자 예술가로 성장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배지영  런던 기반의 PR 전문가. 2012년 설립한 ‘피오나 배’를 통해 건축가, 디자이너, 아티스트, 문화 기관,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또 글로벌 기업 및 에이전시가 한국이라는 문화 수도를 이해하고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WRITER  배지영(PR 에이전시 ‘피오나 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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