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9월호

‘피치스’ 대표 여인택, 피치스, 움직이는 세계

엔진이 켜지는 순간, 피치스의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동차를 매개로 예술과 음악, 패션과 커뮤니티가 스며드는 장면들을 만들어온 여인택 대표. 그가 그려온 궤적은 뮤직 페스티벌에서 주유소, 그리고 곧 완성될 새로운 사옥으로 이어진다. 태어나고 자란 집에 깃든 기억 위에 미래를 덧입히며, 그는 속도와 취향이 만나는 순간을 오늘도 다시 쓰고 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비전이 겹치는 지점에서, 또 하나의 무대를 완성해간다.

CONTRIBUTING EDITOR 조혜나 PHOTOGRAPHER 이창화


여인택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스트리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피치스Peaches’의 창립자이자 총괄 디렉터. 아티스트 그룹으로 시작해 영상, 음악, 패션, 공간까지 다양한 문화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펼쳐왔다. 그는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로컬과 글로벌을 잇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작업은 자동차 문화 속에 새로운 경험과 취향을 불어넣는 데서 출발한다.



낮게 깔린 음악이 도로의 진동처럼 공간을 울린다. 옛 방직공장을 개조한 700평 규모의 건물 안에는 광택이 살아 있는 튠업 카, 금속성 그래픽, 자동차 문화를 번역한 각종 오브제가 숨 쉬고 있다. 2021년 문을 연 성수동의 ‘피치스 도원(D8NE)’은 단순한 쇼룸이 아니라, 자동차·예술·패션·음악·커뮤니티가 한 장면 안에 공존하는 무대다. “대중이 자동차 문화를 토론하며 어울릴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여인택 대표의 말처럼 이곳은 취향과 속도가 만나는 거점이 됐다. 피치스는 본래 자동차를 매개로 한 아티스트 그룹에서 출발했다. 영상·그래픽·음악·의류·공간을 넘나드는 창작을 이어왔고, 드롭하는 제품마다 완판을 기록했다. 차량 데코 스티커 하나마저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왔다. 이 문화를 이끄는 여인택 대표는 올해로 3년째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서울을 전 세계 시선이 머무는 무대로 바꿔왔다. 지난 8월 15일과 16일에는 찰리 XCX, 찰리 푸스 등 핫한 아티스트를 헤드라이너에 세우며 모두를 열광케 했다. 그뿐만 아니다. 과거 ‘오렌지족’의 터전이던 도산공원에는 자유로운 모임 공간 ‘피치스 도산’을 9월 오픈하며, 10월에는 한국에서 열리는 F1 쇼런의 주최를 맡는다. 부산을 시작으로 확장 중인 주유소 사업 ‘피치스 스테이션’은 하반기 약 10개 매장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프로젝트에 들떠 있다.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집을 피치스의 새로운 사옥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개인의 기억과 브랜드의 현재가 겹치는 이 공간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피치스의 또 다른 챕터가 될 것이다. 피치스는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다. 감각이자 태도이며, 스스로 선택한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자동차라는 도구를 통해 태도를 공유하고, 공간을 통해 취향을 설계하는 일. 여인택 대표가 만든 피치스의 세계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내 스타일의 ‘한 끗’은?

속도입니다. 차를 탈 때 느껴지는 물리적인 속도이자,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결정의 속도죠.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오래 묵히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깁니다. 빠르게 달려야 그 순간의 에너지와 공기를 그대로 담을 수 있으니까요.


나를 매료시킨 스타일 아이콘은?

한 사람으로 정하긴 어렵습니다. 시대나 기분, 그날의 상황에 따라 마음을 빼앗기는 대상이 달라지거든요. 어떤 날은 뮤지션의 무대 위 카리스마가, 또 어떤 날은 길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의 무심한 태도가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중요한 건 고정된 아이콘이 아니라, 그 순간의 울림입니다.


옷장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템은?

오래된 걸 간직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구입하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이세이 미야케의 ‘옴므 플리세’ 블랙 팬츠와 릭 오웬스의 ‘미드탑’ 블랙 스니커즈가 그렇죠. 낡아지면 낡은 대로 신고, 동시에 새 제품을 미리 사두기도 합니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주는 안정감이 좋습니다.


단 한 벌만 챙겨야 한다면?

이세이 미야케의 ‘옴므 플리세’를 선택하겠습니다. 하루 종일 입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고 여행, 촬영, 회의 어디서든 어울립니다. 옷이 편하면 생각도 움직임도 자유로워집니다.



각진 모양이 다른 자동차와 다른 특별함을 주는 ‘벤츠 W202 C43 AMG’. 클래식한 멋에 반해 구입했다.


늘 가지고 다니는 가방 속 필수품은?

아내가 연애 시절에 선물해준 몽블랑 만년필입니다. 이 펜으로 서명한 계약들 중에는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꾼 순간이 많았어요. 잉크를 채울 때마다 그 시절의 설렘이 되살아납니다. 저에게는 마치 부적 같은 존재입니다.


쇼핑할 때의 기준은?

요즘은 제 물건보다 아들 물건을 더 자주 삽니다. 다만 제 물건을 살 땐 ‘이야기’가 있는지 먼저 봅니다.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가 가격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피치스가 인수한 한국 최초의 자동차 잡지 <자동차생활>. 뜯어질 것만 같은 표지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것은?

IWC ‘인제니어 블랙 세라믹 42mm’ 워치입니다. 이 시계를 구입한 날이 피치스가 F1 한국 쇼런을 주최하기로 계약한 바로 그날이었어요. 마침 제가 데리고 올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이 IWC의 후원을 받는 팀인데… 아니, 이런 걸 운명이라 하는 건가 싶고 기분이 참 묘하게 좋았어요.


요즘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물욕은 줄었지만, 좋은 신발에는 여전히 마음이 갑니다. 요즘은 프라다 ‘아메리카컵’ 스니커즈에 관심이 많아요. 기능과 디자인, 그리고 브랜드 맥락이 잘 맞물린 아이템입니다. 일부 모델은 사놓고 감상만 했죠.


나의 시그너처 향은?

향수를 자주 쓰진 않지만, 쓰게 된다면 푸른 나무 향이 좋겠네요. 드라이브할 때 느낄 수 있는 숲속 바람 같은 기분을 일상에 불러오고 싶거든요.



요즘엔 아이와 함께 형형색색의 장난감 다이캐스트를 모으는 재미에 빠졌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출연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자주 듣습니다. 원 유니버스 라인업의 주요 명분은 ‘자동차 문화와의 관련성’이거든요. 특히 카사블랑카Kasablanca의 노래는 차 안에서 들으면 도시의 풍경과 묘하게 어울립니다. 리듬이 일상에 속도를 더해준다고나 할까요.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마블의 <썬더볼츠>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화려한 액션 속에서도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 있었죠. 최근엔 회사 동료들과 시장조사 겸 F1 관련 영화를 봤는데, 업과 맞닿아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블랙 컬러가 매력적인 전기 ‘G바겐’. 공교롭게도 여인택 대표의 차는 모두 블랙이다.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프리즈 서울 기간에 열리는 아마노 요시타카 선생님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어요. 방황하던 시절 즐기던 ‘파이널 판타지’와 <독수리 오형제>의 원작 일러스트레이터죠. 특히 <캔디걸> 작품은 언젠가 꼭 제 공간에 두고 싶습니다. 단순한 소장품이 아니라 제 청춘의 한 조각을 되찾는 기분일 겁니다.


내 인생의 스타를 꼽는다면?

가족!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보다 강한 빛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힘든 순간에도 웃게 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건 언제나 가족이죠.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들을 찾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고 싶은 얼굴이죠. 아이가 생기고 나서 하루의 시작이 그렇게 정해졌네요.


잠들기 전 하는 일은?

아내와 드라마를 보다가 잠듭니다. 하루의 긴장을 풀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잠드는데 이 시간이 하루 중에서 가장 힐링이 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지난해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을 기념하며 베어브릭과 협업으로 탄생시킨 400% 한정판 스피커.


절대 빼먹지 않는 자기 관리법은?

저녁 식사 후 30분에서 1시간 정도 유산소운동과 가벼운 웨이트트레이닝을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면 복잡했던 생각도 단순하게 정리되더라고요. 이 시간 덕분에 다음 날 저의 속도도 달라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냉장고 속 필수품은?

얼음이에요. 시원한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얼음을 넣은 음료 한 잔이 주는 ‘딱 깨어나는 순간’이 좋습니다. 여름엔 더위를 식히고, 겨울엔 그 차가움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주죠. 마치 하루를 새로 시작하게 만드는 작은 버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평생 하나의 음식만 먹는다면?

샤부샤부를 고르겠습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음식이라서가 아니라, 매번 다른 조합과 변주를 즐길 수 있는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육수의 깊이, 채소와 고기의 비율, 마무리로 고르는 면이나 죽까지 그날의 컨디션에 맞춰 조율할 수 있죠. 자동차를 튜닝하듯, 한 번의 식사 안에서 여러 장면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익숙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경험을 주는 점이 제 작업 방식과 닮아 있기도 하고요.


나만의 의미 있는 장소는?

현재 공사 중인 피치스 역삼동 사옥입니다. 다음 주쯤 완공될 예정이에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레노베이션하고 있는데,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이 될 겁니다. 제 개인사와 브랜드의 역사, 두 축이 맞닿는 상징인 셈이죠.


요즘 가장 집중하며 빠져 있는 것은?

피치스 스테이션 프로젝트입니다. 단순한 주유소가 아니라 자동차 애호가들이 모여서 경험을 공유하는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양산업을 되살리고 있다는 도전이 저를 뜨겁게 만들기도 했어요.



물욕은 줄었지만, 좋은 신발에는 여전히 마음이 간다. 실루엣이 예뻐서 모으는 프라다 ‘아메리카컵’ 스니커즈.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은?

무모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수습하는 과정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때 느껴지는 아드레날린은 진짜 엄청나게 중독적입니다. 하하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조언은?

“부모님 말 하나 틀린 것 없다.” 어릴 땐 몰랐지만 커보고, 또 아이를 키워보니 절절하게 와닿는 말입니다.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는?

집에 있을 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이 가장 편안합니다.



최근에 구매한 ‘IWC 인제니어 블랙 세라믹 42mm’ 워치. 피치스가 F1 한국 쇼런을 주최하기로 계약한 바로 그날 구입해 더 운명적으로 느껴진다.


나의 영감의 원천은?

속도감, 감성, 차 안에서 듣는 음악. 아내와의 실없는 대화, 아들의 눈빛 속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저에게 영감의 원천은 편안한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저는 물건을 구매할 때 가격표보다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보려고 합니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진짜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럭셔리는 결국 ‘이야기를 품은 경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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