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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이사장.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K-컬처가 지닌 참된 가치를 문화와 정서를 아우르는 섬세하고도 단단한 교류로 확장해가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이자 한불클럽 사무총장도 역임하고 있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최정화 이사장이 받은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 레지옹 도뇌르의 오피시에 훈장. 한국 여성으로는 최초다.
지난 5월,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를 수훈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2003년 슈발리에 훈장에 이어 두 번째 레지옹 도뇌르 수훈이었죠.
더없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껏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잇기 위해 힘써온 많은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그 모든 시간에 대한 격려처럼 뜻깊게 다가왔어요.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응원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동시에 단순한 영예를 넘어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품는 계기가 되었죠. 두 차례 모두 ‘한국 여성 최초’라는 점에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이번 수훈은 구체적으로 어떤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였나요?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관계 증진과 문화 교류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특히 프랑스 문화를 국내에 널리 알린 점을 높이 평가해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적인 문화 강국인 프랑스의 문화를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소개해왔고,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하 CICI)에서 주관한 여러 행사를 통해 양국 인사들의 교류도 활발해질 수 있었지요. 이런 점들을 인정받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파리 제3대학 통역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하신 뒤,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해오셨어요. 수많은 중대한 외교적 순간에 함께하며 체감한 통역사의 역할과 소통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통역사는 상대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기 위해 그 속내까지 꿰뚫어본 뒤 말을 전해야 하지만, 동시에 투명 인간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치 당사자 둘이 직접 이야기하는 듯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죠. 그렇기에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통역이란 단순히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닌, 문화적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고 원어민의 입장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봅니다. 때로는 말보다 제스처가 더 효과적일 때도 있고요. 많은 분이 외국어만 잘하면 통역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어는 요리에서 칼과 같은 도구에 불과해요. 결국 중요한 건 언어가 일대일로 치환되는 것을 떠나 메시지와 메시지가 서로 ‘등가교환’되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최정화 이사장이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을 받는 모습.
‘문화소통포럼 CCF 2025’의 ‘지속 가능한 K-스타일 영상 & 소통 공모전’에서 숏폼 부문 대상을 받은 오상우의 ‘K-스타일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공유할수록!’과 롱폼 부문 대상을 받은 강예령의 ‘K-스타일 미래를 짓다’.
‘문화소통포럼 CCF 2025’의 ‘지속 가능한 K-스타일 한국어 소통 경연’에서 대상을 받은 추이 메이링의 ‘화려함 넘어, K-정情’.
통역사로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다양한 국가와 언어를 넘나든 경험이 CICI 설립으로 이어진 건가요?
2003년 CICI를 창립하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 국제적 이슈가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북핵 문제가 대두되며 한반도에 대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로 그 관심이 더욱 고조됐죠. 흔히 ‘쇠는 달궈졌을 때 두드려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지체 없이 CICI를 설립했죠. 개인적인 경험도 작용했는데, 인도네시아 유적지에서 만난 외국인이 저를 보며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헷갈려하는 대신 단번에 한국인인지 묻더라고요. 그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희열을 느꼈죠. 그렇게 크고 작은 상징적인 사건들이 쌓여 한국을 더 널리 알리고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CICI를 통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계신 활동이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대표적인 연례행사 세 가지를 꼽고 싶어요. 첫 번째는 지난 6월 ‘지속 가능한 K-스타일’을 주제로 열린 ‘문화소통포럼’입니다. 이 포럼은 매년 AI, 지속 가능성 등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죠. 이번에는 특별히 한류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한 담론의 장을 마련했어요. 또 하나는 국위 선양과 한류 확산에 기여한 분들의 공로를 기리는 ‘한국이미지상’ 시상식으로, 연초에 열리는 가장 규모 있는 행사입니다. 올해는 펜싱 국가대표 오상욱 선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로 주목받은 에드워드 리 셰프, 그리고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 선수가 수상하며 자리를 더욱 빛내주었어요. 마지막으로 매달 진행되는 ‘CQ(Culture Quotient) 포럼’의 경우, 국내외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여 문화 소통을 주제로 다양한 인사이트를 나누는 자리예요.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세계 각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배우는 귀한 기회죠.
서로 다른 문화가 한데 모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소통의 원칙이나 자세가 있다면요?
항상 ‘배움’, ‘편안함’, ‘재미’를 우선순위로 둬요. 배움을 통해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 하고, 소규모 모임이라도 통역을 제공해 누구든지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다룬다 해도 너무 심오하기만 하면 금세 지치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세 가지 요소가 고루 갖춰질 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요. 덕분에 사람들에게 ‘다시 보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바람이기도 하고요.
CICI가 주최한 ‘제21회 한국이미지상’ 수상자로 선정된 셰프 에드워드 리와 탁구 선수 신유빈.
프랑스와 인연이 각별하신 만큼 한불 간 문화 교류에서 오는 가능성과 과제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실 것 같아요.
한국과 프랑스는 정열적이고 감성적인 민족성뿐 아니라 문화 강국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요. 이제는 문화 예술 분야에서 양국이 함께 아이디어 단계부터 콘텐츠 제작까지 하나의 프로덕션처럼 협업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또한, 프랑스는 원천 기술이 뛰어난 과학 선진국이고, 한국은 이를 실용화하고 상업화하는 데 강점을 가진 나라예요. 양국이 서로의 장점을 살려 협력한다면 분명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의 여러 활동을 토대로 전하고 싶은 한국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해외에서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인식이 주요했어요. 그런데 불과 20여 년 사이에 한국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셀 수 없이 다양해졌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은 한국의 모습은 바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동시대적인 흐름’이에요. 그 예로 2025 문화소통포럼에서 대상을 받은 중국 유학생의 발표 내용을 언급하고 싶어요. 가장 지속 가능한 K-스타일의 핵심으로 ‘정情'을 꼽으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과 마음을 통하게 하고, 나아가 글로벌 공감대까지 형성하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점을 강조했죠. 산업적 관점이 아닌 정서적 차원에서 접근한 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오늘날 한류는 한국적 감성과 독창적 스토리텔링, 그리고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절묘하게 결합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이런 조합이야말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강력한 힘이라고 믿고 있어요.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통역을 맡은 최정화 이사장.
이사장님의 오랜, 그리고 다방면에 걸친 활동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지적 호기심이 큰 원동력이에요. 또 부모님께 물려받은 건강함 덕분에 지금까지 꾸준히 움직일 수 있는 것 같고요. 공부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매일 아침 5시부터 7시까지 여러 신문과 방송, 뉴스를 통해 세계의 흐름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배워나가고 있죠. 때로는 혼자 큰 소리로 불어 뉴스를 따라하며 실력을 갈고닦는데, 그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아침 루틴은 통역사 시절부터 이어온 것으로, 오감으로 세상을 읽는 일이 매일의 일과이자 즐거움이에요. 이처럼 꾸준한 호기심과 배움이 오늘의 저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준비 중인 계획이 궁금합니다.
각기 다른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로서 문화소통포럼이 더 큰 의미를 갖기 위해선 그 토대가 더욱 단단해져야 해요. K-컬처가 이제는 자생력을 갖춘 만큼 무작정 한국을 알리기보다는 한층 더 깊이 있는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때죠.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린 건 아니지만 언어를 배울 때 맞고 틀리고를 따지기보다는 계속 발화하는 것이 중요하듯, 저 역시 매일 긍정적인 자세로 생각을 거듭하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더욱 품격 있는 한국의 이미지를 전할 방법을 모색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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