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형 작가가 정원에 마련한 명상 공간. 때로는 누워서 하늘을 감상하기도 한다.
향기 작가 한서형
“나의 결정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
한서형 다양한 예술 작가와 협업해 향기를 창조해 왔다. 최근엔 8월 31일까지 열리는 제주 유동룡미술관 <이 땅을 여끄다>에 참여한다.
나에게 사유란
향기를 만들거나 글을 쓰는 일은 모두 나 자신을 믿고 결정하며 나아가는 일이다. 글에는 마침표를 찍어야 하고, 내가 상상한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 느낌들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
나만의 사유 방법
고요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야말로 감각을 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명상하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고, 책을 읽거나 정원을 산책하며 식물을 돌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기억에 남는 문장을 노트에 적으면서 그 문장에 대한 느낌을 기록하거나, 나라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떠올리며 써보기도 한다.
향기를 만들기 전
늘 명상을 하는데 행복한 순간에만 향기를 만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나에게 행복은 평온과 동의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할 때 내가 상상하는 향기의 모양을 잘 완성할 수 있더라. 중요한 것은 몸이 먼저라는 것이다.
사유의 선물
모든 작품이 나에겐 선물이지만, 하나만 꼽는다면 나태주 시인님과 함께 2023년에 출간한 향기 시집 <잠시향>이다. 쓸모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나태주 시인님의 의도대로 잠을 잘 못 자는 독자들을 위한 잠언과 시, 숙면에 도움이 되는 향기를 담은 책이다. 만들면서 몇 달 동안 7000편이 넘는 시와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서 깊은 몰입을 했다. 짧은 문장으로 정리하고, 어울리는 시를 고르고, 향기로 만드는 과정 속에서 충만한 행복감을 경험했다. 결국 그 시간 동안 한 뼘쯤 성장했을 나의 의식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일 거다.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사유의 주제
내가 세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큐레이토리얼 기업 H존 대표 이대형
설치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의 프로젝트 준비 과정 모습.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설렘”
이대형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 감독, 글로벌 전시 프로젝트
나에게 사유란
큐레이터로서 단순히 의미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볼 수 있도록 영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두의 시선이 머무는 빛나는 중심에서 한발 물러나 그림자에 눈을 돌릴 때, 그곳에서만 드러나는 진실과 가능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우리의 사유는 종종 우리가 처한 환경, 즉 국적과 나이, 소속된 기관과 사회적 역할 같은 ‘제도적 중력’에 의해 제한되는데, 이러한 중력을 넘어 자유롭게 사고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탈맥락화’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시야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앤터니 곰리와 함께 신안군 비금도의 언덕을 거닐며 새소리와 곤충의 속삭임, 풀잎의 미세한 흔들림을 기록하고 예술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깨닫던 시간, 제임스 터렐과 애리조나의 로든 분화구에서 지구의 그림자가 하늘로 천천히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행성의 장엄한 시간과 마주하며 나의 인식이 우주로 확장되는 듯했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 문화를 초월하는 부지런한 호기심만이 우리의 상상력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든다.
나만의 사유 방법
작은 옥상정원을 마주한 내 집필실 한가운데에는 조선 시대의 단정한 미감을 담은 낮은 책상 하나만 놓여 있다. 의자도 없이 오롯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글을 쓰고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는 이 작은 방 안에서 가장 정적인 상태로 가장 역동적인 사고의 유영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답을 찾기 위한 깊은 사유가 필요할 때, 나는 두 가지 특별한 방법을 실천한다. 첫 번째는 ‘생각의 이어달리기’다. 우선 하나의 키워드를 설정하고, 이 키워드가 연상시킬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위치한, 가장 뜻밖의 키워드를 찾아 연결한다. 다시 그 키워드에서 또 다른 가장 먼 키워드를 연결하며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 이 과정을 반복할수록 처음 설정한 키워드는 그 의미가 무한히 확장되며, 창의적이고 풍성한 답을 찾게 되는 가능성 역시 엄청나게 높아진다. 두 번째 방법은 오히려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다. 나는 이를 위해 일종의 ‘걷기 명상’을 한다.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의 질감,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새소리, 숲이 숨 쉬는 미세한 리듬과 내 몸의 움직임을 하나로 일치시킨다. 이렇게 생각을 비워낸 빈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이 싹을 틔우며 피어난다.
사유의 선물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열한 살 무렵 어느 눈 내린 겨울날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토끼 사냥에서 비롯되었다. 그날 할아버지는 눈 위에 새겨진 토끼의 발자국을 가리키며, “이 발자국은 과거에 토끼가 지나간 흔적이 아니라 앞으로 토끼가 어디로 갈지 알려주는 미래의 단서”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숲속의 한 나무 그루터기를 보여주시며 나이테의 의미를 설명해주셨다. 나이테가 나무의 성장을 기록하듯 우리의 인식 또한 나이테처럼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경계선 안에 갇혀 머물러버린다고 하셨다. “원의 중심에 서면 그 경계 안에 갇혀버리지만, 원의 가장자리에서 밖을 바라보면 무한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은 내게 깊은 깨달음과 함께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이 짧은 일화는 내 삶과 사유의 변곡점이었고, 큐레이터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확장하게 하는 근원적인 통찰이자 영감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사유의 주제
최근 관심을 두는 게 바로 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도래다. 지금까지 예술은 인간의 독창성과 창의성, 그리고 내면의 감정적 깊이를 표현하는 고유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AI가 인간의 인지 능력을 압도하는 시대에, 인간 예술가의 지성은 AI가 지닌 무한한 지식과 창작 능력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현실 속에서 과연 인간의 예술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지, 인간의 존재 의미는 어떻게 재구성될 것인지 연구하고 있다. AI가 만들어낸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들 속에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진정한 예술적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바로 불완전함, 우연성,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감정과 경험에서 비롯될 것이라 믿는다. 인간 예술가만이 지닌 불완전하고 예측 불가능한 창조의 본질은 초지능 시대에도 독특한 가치를 지니며 존재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다. 결국 초지능의 시대에서 예술은 단순히 미적 가치를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를 회복하고 인간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재탄생할 것이다.
화가 김란
가장 좋아하는 오후 4시의 빛이 드리워진 작업실 풍경.
‘To be in Bliss’, 종이에 유채, 39x28cm, 2024
“일상의 풍경에서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는 다정함”
김란 캔버스와 도자 등에 꽃과 식물의 순수성, 그리고 일상의 다정한 순간을 담는다. 시화집 <꽃밭에 선 새벽 여행자>도 출간. 요즘은 10월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나에게 사유란
결국 멈춰서서 바라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우리는 보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라는 말을 늘 마음에 두고 있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리면서 배웠다.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더라. 색과 빛을 오래 응시하고 나서야, 그 너머에 깃든 무수한 층위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천천히 보고, 오래 생각하려고 애쓴다. 어쩌면 사유란 끝내 답을 얻는 거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질문을 계속 품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질문들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 삶이란 경이로운 세계를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다.
나만의 사유 방법
작업실에서 조명을 켜고 책을 펼치는 순간이 사유의 시작이다. 작은 빛만 켜두면 세상과 나 사이에 조용한 거리가 생기는데, 그 안에서 시를 소리 내어 읽거나, 그날 본 장면들을 메모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어 조금 낮아진 햇빛이 사물들을 부드럽게 물들이면, 그 빛을 가만히 보면서 어제의 빛과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해본다. 그 작은 관찰들이 내 사유의 출발점이다. 책을 가까이 두는 것도 사유의 근육을 기르는 나만의 방식이다. 특히 시집. 시 속에는 감각을 예민하게 벼려주는 문장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사유의 선물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눈이다. 사유가 없었다면, 일상의 풍경이 그냥 스쳐 지나갔을 거다. 하지만 오래 보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아주 작은 장면에도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작은 빛에도 눈길이 가고, 소낙비가 지나간 뒤 젖은 흙냄새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그리고 그걸 그림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나에겐 가장 큰 선물이다.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사유의 주제
10월에 있을 개인전을 준비하며, 스스로 묻고 있는 게 ‘환희의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환희는 단순한 기쁨을 넘어 삶의 깊이와 연결되는 감정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아는 것이고, 고통과 슬픔 속에서 발견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하는 마음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는 눈길, 무거운 현실에서도 가볍고 경쾌한 숨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 이러한 사유의 결과를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건축가 구만재
건축이 시적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비워내는 작업을 한다.
최근에 자세히 들여다본 옛 그림, 강희안 ‘고사관수도’.
정리하다 보면 생각과 결심을 유도하는 사유의 물건들.
“매일 경험하는 단순한 행위에서조차 다름을 읽어내는 깊이”
구만재 건축, 가구, 조명 디자인을 아우르는 통합적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르 씨지엠’ 대표다.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메타포를 지닌 공간을 추구한다.
나에게 사유란
공간을 만드는 일은 자연과 사람, 사물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조금 느긋하고, 긴 호흡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공간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눈에 쉽게 읽히는 것을 원한다. 결국은 나와 타인의 관계 속 합의점을 찾기 위해 공간의 명료한 설명문이 함축적인 언어가 되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내게 사유란 건축이 시가 될 수 있도록 비워내는 일인 것 같다.
나만의 사유 방법
깊이를 만드는 일은 대부분 반복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걸 좇는 일보다는 지금까지 해오던 일과 행위를 사려 깊게 오래 하려고 노력한다. 커피를 내리는 순간, 화분에 물을 주는 시간, 노트에 몇몇 문장을 적는 짧은 순간을 자주 반복하려 한다. 짧은 몰입과 가벼운 생각이 중첩되면 그것이 종합된 긴 시간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번 도자 수업을, 한 달에 한 번 요리 수업을 듣는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새로운 생각과 결심이 생겨나기도 한다.
사유의 선물
궁극적으로는 초조함을 덜어내고 편안함에 닿는 게 아닐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느긋하게 움직이며 산책을 하거나, 사뭇 진지하게 차를 마시거나 책장을 뒤적이다 보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장소와 시간에서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는 편이다.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사유의 주제
오래된 것과 지금,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다. 그래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혹은 지인의 집에서 마주하는 옛 그림, 글자, 도자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이는 내가 하는 일이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해주며 본질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원사 이대길
부산 달맞이 언덕에 위치한 복합 공간 에케ECKE의 벽돌과 어우러진 정원.
상업 공간 정원에는 환경과 브랜드의 결을 담아 식물을 선정한다.
“내가 아닌 다른 생명체를 돌보고 배려하기 위한 숙고”
이대길 ‘이대길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정원을 만들고 돌보는 일을 한다. 상업 공간부터 공공 기관의 정원을 디자인하고 최근엔 소다미술관 전시에 참여했다.
나에게 사유란
정원사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일 뿐만 아니라 돌보는 일이기도 한 점이 다른 사고를 빚어내는 것 같다. 특정 대상을 진정으로 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나의 경우 식물을 진정으로 돕고 싶다는 일종의 결심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결심을 하고 나니 내가 배우고 행하고 있는 가드닝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식물은 언어로 소통할 수 없기에 내가 해주는 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선배나 선생님으로부터 이유와 원리가 결여된 채 기술을 교육받으면 식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운것을 따라 하기 급급해지곤 한다. 식물이 가위로 잘리기도 하고 오히려 피해를 주고 있는 것 같은 의문이 들자 의심을 거두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했다. 그렇게 행동에 대해 하나하나 올바름의 기준을 고민했던 시간을 가졌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나만의 사유 방법
적당한 조도의 불빛을 켜고, 종이와 연필 같은 적을 거리부터 챙긴다. 사람마다 특화된 감각의 안테나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시각과 청각이 좀 더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어떤 갈피를 잡곤 할 때는, 찍어둔 사진과 평상시에 스크랩한 이미지들을 책을 훑듯이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다 문득 멎게 되는 이미지들로부터 가지를 좀 더 뻗어나가곤 한다. 혹은 관련된 내용의 강연을 즐겨 듣는다. 강단에 선 분께서 정리한 생각을 듣다 보면 생각이 발전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샤워를 할때 생각이 싹트는 일도 많다. 일련의 과정들 모두를 일상 중에 계속 염두에 둔 채 생활한다.
사유의 선물
어디까지나 스스로에게 필요했고, 나에 대해 알아가며 삶의 주체가 되기를 희망한 시간. 사유의 과정으로 인해 생각과 태도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무가 커가면서 흙 속 뿌리를 굳건하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영희
역사 소설 <리심>에서 영감을 얻어 프랑스 위세 성에서 진행한 화보.
예술적 의상과 오브제로 호평을 받은 국립무용단 <미인>.
“보고, 듣고, 읽고, 내가 경험한 감각을 상상으로 그려보는 즐거움”
서영희 패션뿐 아니라 음식, 공간, 무대 등 영역을 넘나들며 메세지를 시각화하는 전방위 크리에이터다. 그의 작업엔 언제나 한국 정체성이 깃들어 있다.
나에게 사유란
비주얼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일을 잘하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묻고 또 묻는 시간을 가져왔다. 남들과 다른 비주얼을 만들려면 어떤 걸 내놓아야 할까?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는 사람으로서 지닌 책임감이 끊임없는 사유의 동력이었다. 병 하나를 놓더라도 이쪽에 놓는 것과 저쪽에 놓는것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까, ‘이러면 아침 햇살에 신비한 느낌이 날 수 있겠구나···.’ 이런식으로 다양한 장면을 상상한다. 최근엔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으며, 소설 속 마을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하고, 실제로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결국 나에게 사유란, 나의 상상을 현실로 펼쳐내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는지. 매번 촬영을 하면서도 ‘과연 그 그림이 나올까?’ 걱정이 되다가도, 그 그림이 나오면 ‘맞아, 바로 이거야!’ 하는 순간의 희열 때문에 30년 넘는 시간 동안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다.
나만의 사유 방법
어떤 한계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 현대미술을 보면서 사고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설치, 색감, 공간을 보면서, 이런 공간에서 찍어도 되겠구나, 이렇게 매치해도 좋겠구나 하는 식으로 답을 얻는다. 일상 속에서는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끝없는 홈질을 하는 시간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다 내 안에 채워진 것들 중에 필요한 것을 꺼내어 정리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는 내 방, 내 책상에 정자세로 앉는다. 또 피아노곡을 자주 틀어놓는 편인데, 알프레트 브렌델Alfred Brendel, 비킹구르 울라프손Víkingur ólafsson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 이것저것 생각들 끄집어내서 키워드를 만든 다음, 하나하나 정리해나가며 여기서는 누구와 협업하고, 기승전결을 어떻게 만들고, 피날레에서는 무엇을 써야겠구나 하면서 하나씩 답을 찾아간다.
사유의 선물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일을 시작했지만, 단지 모델에 옷을 입히는 작업을 넘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5년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열린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전 <코리아 나우>다. 당시 나와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 ‘이것이 정말 최선일까?’, ‘이렇게 보여주는 게 맞나?’ 스스로 재차 묻고 답하는 시간들이었다. 또 기억에 남는 작업은 <보그>의 ‘희망’ 화보다. 정말 멋지게 늙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다. 멋지게 꾸미고 치장한 모델이 등장하는 건 가짜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 나이 든 모습을 담고자 했고 곡성, 순창, 고창, 담양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순수한 표정을 포착했다. 기존의 ‘멋지다’라는 사람들의 개념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랐고, 많은 공감을 얻어서 기뻤던 작업이었다.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사유의 주제
지금은 또다시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하게 됐다. 갈수록 일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번엔 최첨단 기능을 탑재한 공기청정기를 ‘프리즈’ 전시 공간에서 연출하는 일이다.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의 일을 시작하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것 같다. 사물이지만, 인간다움과 편안함이라는 키워드로 연결해서 표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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