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7월호

URBAN GLIDE WILDERNESS GRIND

도시의 부드러운 활공부터 야생의 거친 전진까지. ‘그란카브리오 폴고레’와 ‘올 뉴 디펜더 OCTA’를 시승하며 온몸으로 체험했다.

EDITOR 박이현

MASERATI, GRANCABRIO FOLGORE


마세라티의 ‘그란카브리오 폴고레’를 시승하기 위해 이탤리언 럭셔리의 요람 ‘라 빌라 디 마세라티La Villa di Maserati’에 도착하자마자 한여름의 공기가 피부를 에웠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뜨거운 햇살이 아스팔트 위에 번져 아지랑이를 띄울 정도로. 그리고 그곳엔 그란카브리오 폴고레가 루프를 단단히 덮은 채 조용히 그늘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기차답게 기척 없이 미끄러지듯 출발했지만, 차 안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세라티가 전기 시대를 위해 준비한 최상위 모델을 마주하는 설렘은 아니었다. 전통과 기술, 유산과 혁신이 맞부딪히는 경계선 위에 선 그란카브리오 폴고레가, 수십 년간 브랜드가 축적해온 감성과 공학의 결을 새롭게 직조한 한 시대의 전환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도심의 느린 속도를 견뎌야만 했던 시간에는 루프를 열지 않았다. 엔진 배기음 대신 귓가에 들려온 것은 에어컨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바람 소리와 타이어가 도로를 움켜쥐는 미세한 롤링 소리. 내연기관이 뿜어내는 강렬한 사운드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배터리 팩에서 전달되는 묵직한 힘이 만들어낸 속도에서도 동승자와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점은 메리트라면 메리트겠다. 정체가 풀리는 도로에 진입하면서 드디어 루프를 열었다. 버튼 하나로 14초 만에 완전히 개방된 천장은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진짜 달릴 시간이라는 설렘을 동시에 쏟아냈다. 가속페달을 살짝 밟았을 뿐인데 순식간에 100km/h를 돌파했다(제로백 2.8초). 3개의 전기모터(전륜 1, 후륜 2)가 제공하는 778마력의 힘은 날카로웠고, 속도계가 빠르게 올라가도 차체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도로를 파고들었다. 또 고속 구간에서도 풍절음은 잘 제어되었으며,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의 정교한 코너링은 운전대를 잡은 손끝에 짜릿하게 전달됐다. 그렇기에 “마세라티의 예민한 추진력과 전기차의 즉각적인 반응이 만나 탄생한 환상의 하모니”란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닐 테다. 아무래도 이 대목에서 앞서 작성한 문구를 약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묵직한 힘이 만들어낸 속도에 속도를 더해 엄청난 속도에 도달하자(스포트 모드와 코르사 모드) 디지털로 구현한 V8 엔진 사운드는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고대의 오케스트라처럼 절제된 고조를 이뤄 귀를 관통했다. 비록 가상의 엔진음이지만, 공기의 떨림까지 흔들어놓으며 가슴 깊은 곳에 전율을 남겼다. 도착지에서 차를 멈췄음에도 속도의 잔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빠르고, (모드에 따라) 조용한 오픈 톱 GT는 ‘전동화 시대에도 감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경험으로 증명했다. 그란카브리오 폴고레는 한 대의 전기차를 넘어, 마세라티가 써 내려가는 ‘달리는 예술’의 새로운 서막이었다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폴고레

최고출력  778마력  최대토크  137kg·m  최고속도  290km/h  제로백  2.8초




LAND ROVER, ALL NEW DEFENDER OCTA


채석장 입구에 들어선 순간, ‘올 뉴 디펜더 OCTA’는 이곳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위용을 드러냈다. 28mm 높아진 지상고와 68mm 넓어진 스탠스가 자아낸 당당한 자세, 샌드블라스트 처리한 티타늄 디스크와 글로스 블랙 다이아몬드 패턴이 곳곳에서 원초적 힘을 암시했다. 또 전후면 범퍼 아래로 흩날린 흙먼지와 거친 바위 위에서도 단단히 밀착된 ‘275/50R22’ 규격의 타이어(출시 첫해에만 한정 생산되는 ‘OCTA 에디션 원’ 모델의 타이어 규격은 ‘275/60R20’)를 보며, 올 뉴 디펜더 OCTA가 어떤 장소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비포장도로 초입 구간에선 컴포트 모드를 선택했다. 예상외로 정숙하면서 부드러운 움직임은 노면의 상태를 초월한 듯 차체에 흐르는 긴장을 잦아들게 했다. 그러나 거대한 암석이 돌출하고 경사가 급해지자 차체의 앞뒤 좌우 균형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때 스티어링과 브레이크의 섬세하고 정교한 제어가 작동한 덕분에 급경사 구간에서도 동중정의 궤적을 유지하며 운전자에게 안도와 확신을 심어주었다. 안정을 찾고, 스티어링 휠의 투명 시그너처 로고를 눌러 드라이브 모드를 바꿔보았다. 이내 디펜더 최초의 퍼포먼스 중심 오프로드 드라이빙 모드인 ‘OCTA 모드’가 발동했다(로고 버튼을 한 번 누르면, 궁극의 퍼포먼스 중심 온로드 경험을 제공하는 다이내믹 모드로 전환). 그동안 야누스의 얼굴을 어떻게 숨겨왔던 것일까. 즉각 다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페달 입력에 빠르게 대응하는 민첩한 스로틀과 트랙션 컨트롤·오프로드 ABS의 만남은 미끄러운 자갈 위에서도 매끄러운 제동을 가능케 했다. 공도 위에 올라선 올 뉴 디펜더 OCTA는 도시형 플래그십 SUV 그 자체였다. 다이내믹 모드를 활성화한 다음, 페달에 힘을 싣자 4.4리터 트윈터보 V8 엔진의 635마력이 숨을 트며 폭발적으로 힘을 뿜어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단 4초. 그러나 더 큰 감동은 속도를 다루는 감각이었다. 브렘보 캘리퍼를 장착한 400mm 브레이크는 민감하게, 또 부드럽게 감속시켰고, 6D 다이내믹스 서스펜션은 고속 주행에서도 피칭과 롤링을 훌륭히 억제해 차체를 흔들림 없이 지켰다. 채석장의 비정형 구조와 매끈한 포장도로의 대비 속에서 올 뉴 디펜더 OCTA는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미 다음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운전자에게 안정감을 줬다. 올 뉴 디펜더 OCTA는 단순히 강한 SUV가 아니다. 정제된 야성, 우아한 폭발력, 온·오프로드를 모두 지배하는 위풍당당한 존재감. 그날의 시승은 차 한 대가 전할 수 있는 감각의 밀도를 온전히 체험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랜드로버, 올 뉴 디펜더 OCTA

최고출력  635마력  최대토크  76.5kg·m  최고속도  250km/h  제로백  4초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