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11월호

그 여름의 항해

지중해 햇살을 벗삼아 이탈리아 나폴리와 프랑스 생트로페를 잇는 여름의 항해. 그 여정의 중심에는 처음 공개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V12 에디션과 라 스페치아에서 직접 경험한 마이바흐 라인업의 정교한 주행이 있다.

EDITOR 박이현


지중해를 종단하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항구는 아침부터 빛이 강했다. 돌바닥은 뜨거웠고, 부두에는 염분을 머금은 공기가 낮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거대한 배가 정박해 있었다. 이름은 ‘시클라우드 스피릿호Sea Cloud Spirit’, 문학적으로 번역하면 ‘바다의 구름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겠다. 길이 138m, 폭 17.2m, 펼친 돛의 면적이 4000㎡인 배는 소음조차 내지 않았다. 선체를 감싼 목재 질감은 잔잔히 빛을 흡수했고, 90명에 달하는 선원들도 말이 없었다. 아마 출항을 앞둔 긴장감 때문이었겠지. 이윽고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이 울리자 밧줄이 풀리는 소리, 파도와 덱의 모서리가 부딪혀 발생하는 파열음이 들려오면서 배는 항만을 벗어났다. 이내 선장 부코타 스토야노비치의 환영 인사와 함께 넷째 날 생트로페 근해에서 돛을 펼칠 거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간략한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샴페인 한 잔을 들고 시 클라우드 스피릿호를 거닐기 시작했다. 도시의 윤곽이 희미해지자 바다의 색이 바뀌었다. 출발 시점에 옅은 회색이던 해수면은 곧 청록으로 변했고, 햇빛이 기울자 바다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갑판에서는 해풍이 일정한 간격으로 옷깃을 스쳤으며, 잔을 들 때마다 손끝에 닿는 유리의 차가움이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만찬을 즐기러 들어선 ‘리도 덱Lido Deck’의 레스토랑에는 잘 닦인 목재와 리넨에서 배어 나온 냄새, 지중해 산해진미가 빚어낸 향이 잔잔히 섞여 있었다. 덕분에 식탁에는 느긋한 온기가 펴졌다. 점심의 웅성거림이 가라앉자 오후는 길게 늘어졌다. 파도는 꾸준한 박자로 외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해가 낮아질수록 접시 표면의 반짝임도 천천히 사라졌다. 저녁 무렵에는 와인의 마지막 향이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그렇게 가볍게 미동하는 배는 하루의 리듬을 매듭지었다.


미켈란젤로 요새에서 열린 ‘메르세데스-마이바흐 V12 에디션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정박했던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 항구.


메르세데스-마이바흐 V12 에디션을 설명 중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글로벌 총괄 다니엘 레스코.


이튿날 기착지는 치비타베키아Civitavecchia였다. 미켈란젤로 요새Forte Michelangelo에서 진행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V12 에디션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새벽에 내리던 세찬 비가 흔적만 남긴 채 그쳐 있었다. 축축하던 공기는 한결 맑아졌고, 요새의 돌벽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행사장 중앙에는 단 한 대의 마이바흐가 놓여 있었다. 전 세계에서 단 50대만 만날 수 있는 깊은 광택의 차체는 주변의 빛을 은근히 담아냈으며, 그 안에는 럭셔리와 혁신, 장인 정신으로 점철된 마이바흐의 유산이 응축되어 있었다. 잠시 후 현악기의 첫 음이 공기를 갈랐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이 비발디의 ‘사계: 여름’을 연주한 것. 그의 선율이 요새 안을 가득 채우자 금빛 햇살이 리듬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렸다. 셋째 날, 마이바흐 차량들을 시승하려 라 스페치아La Spezia에 내렸다. 해상에서 작은 보트로 갈아타고 들어가 선착장에 다다랐다. 너울이 부딪히는 울림과 함께 낮은 부두의 건물들이 가까워졌다. 항구에는 흰 요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계류해 있었다. 라 스페치아에서는 ‘S 680’, ‘GLS 600’, ‘SL 680’, ‘EQS 680’을 순서대로 몰며 주변 풍경을 만끽했다. 아메글리아 마을은 강과 바다가 맞닿는 입구가 넓어 여유가 느껴졌고, 올리브 밭과 석조 담장이 농밀한 표정을 만들었다. 레리치 마을은 언덕 위 성채가 바다를 향해 서 있었으며, 그 아래로 배들이 닻을 내린 포구와 파스텔빛 건물들이 촘촘히 줄지어 인상적이었다. 항구에 돌아오니 바다는 여전히 짙은 푸른빛을 품고 있었 다. 또 도로의 열기가 조금씩 식은 까닭에 공기는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이처럼 셋째 날의 시간도 차분히 지나가고 있었다.


마이바흐 여정의 피날레를 알린 프랑스 생트로페 ‘바가텔 비치 클럽’.


마지막 날, 프랑스로 향한 시 클라우드 스피릿호가 생트로페St. Tropez에 접근하자 돛이 올랐다. 선원들이 로프를 당기자 흰 천이 팽팽해졌고, 갑판에선 짧은 탄성이 터졌다. 이후 몇 시간을 이동하니 육지가 또렷해졌다. 담황색 벽과 종탑이 시야의 중심에 들어왔고, 해안의 보트들은 일정한 궤적을 그렸다. 하선 후 차량으로 약 20분, 종착지인 팜플론 해변의 ‘바가텔 비치 클럽Bagatelle Beach Club’에 닿았다. 흰 천막과 나무 덱, 해변에 길게 늘어선 파라솔이 한낮의 열기를 반사하고 있었다. 이곳은 휴식처를 넘어 마이바흐 여정의 피날레를 알리는 무대였다. 음악과 웃음, 바다의 온도가 한데 섞이고 금빛 바다의 물결을 타고 하루가 흘러가면서 전체 일정이 마무리됐다.



기념 메달·숫자 12·12개의 황금 원으로 둘러싸인 마이바흐 엠블럼.


실내 센터 콘솔에는 차량의 희소성을 나타내는 ‘1 of 50’ 배지가 있다.


마이바흐 V12 엔진의 전통을 기념하는 에디션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의 미켈란젤로 요새에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V12 에디션이 첫선을 보였다. 이 에디션은 럭셔리, 혁신, 장인 정신이라는 브랜드의 유산을 응축한 모델로 단 50대만 생산된다. 초청된 고객과 미디어 앞에서 장막이 걷히는 찰나, 정적을 깬 건 레이 첸의 바이올린이었다. 그는 비발디의 ‘사계: 여름’ 연주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의 악기는 1727년 스트라디바리Stradivari가 제작한 바이올린입니다. 악기를 특별하게 하는 건 장인 정신만이 아니에요. 연주자와 악기의 유대감이 필수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자동차의 영혼을 채우는 건 운전자의 손끝이에요. 그리고 바로 여기서 예술이 탄생하죠.” 예술가의 생각에 공감해서였을까. ‘사계: 여름’ 3악장이 공기를 정리하자 메르세데스-마이바흐 V12 에디션은 한음의 여운처럼 조용한 힘과 균형으로 현장을 감싼 듯했다. 뒤이어 수석 엔지니어 올리버 폴라트Oliver Vollrath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V12 에디션의 성능을 설명했다. V12 엔진은 1930년대 초 ‘마이바흐 제플린Maybach Zeppelin’에 탑재한 최초의 양산형 마이바흐 12기통에 뿌리를 둔다. 제플린의 유산을 승계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V12 에디션의 엔진은 5980cc의 배기량을 자랑하며, 최고출력은 612마력, 최대 토크는 약 91.8kg·m, 최고속도는 250km/h, 제로백은 4.5초다. 디테일은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개인화 프로그램인 마 누팍투어MANUFAKTUR를 통해 정교하게 다듬었다. 특히 올리브 메탈릭과 옵시디언 블랙 메탈릭 투톤에 하이테크 실버 메탈릭 색상의 핀 스트라이프를 더한 외장과, 차량의 희소성을 나타내는 실내 센터 콘솔의 ‘1 of 50’ 배지, 기념 메달·숫자 12·12개의 황금 원으로 둘러싸인 마이바흐 엠블럼에는 마이바흐의 장인 정신이 오롯이 새겨져 있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V12 에디션은 국내에 10대가 들어올 예정이며, 오는 11월 말 프리뷰 행사에서 그 자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SL 680’을 타고 이탈리아 라 스페치아 도로 위를 달렸다.


움직이는 조각 SL 680

지난 7월 ‘마이바흐 브랜드센터 서울’에서 다니엘 레스코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브랜드 최초의 전동화 모델인 ‘마이바흐 EQS 680 SUV’와 첫 2인승 오픈 톱 ‘마이바흐 SL 680’을 콕 짚어 언급했었다. 그래서 이번 시승에서 (V12 에디션이 제외돼 아쉬웠지만) S 680, GLS 600, SL 680, EQS 680 SUV를 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S680과 GLS 600은 물론 절대적 정숙성과 매끄럽고 편안한 주행 감성으로 대표되는 EQS 680 SUV도 매력적이었지 만, 지금도 주행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는 건 SL 680이다. 브랜드 역사상 가장 다이내믹한 차량인 SL 680은 두 번째 C 필러를 제거하고 더블 스쿠프를 적용한 독창적 실루엣, 로봇 프린팅 후 장인이 수 시간 샌딩과 클리어 코팅을 반복해 만든 후드의 마이바흐 엠블럼 등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운전석에 앉아야 체감할 수 있다. 스티어링휠은 묵직했고, 페달을 깊이 밟을수록 4리터 V8 엔진의 호흡이 달라졌으며(585마력), 회전수가 오를수록 밀도 있는 토크 (약 81.6kg·m)가 차체를 단단하게, 그러나 주저 없이 밀어냈다. 반응은 즉각적이지만 절묘하게 억제돼 있었고, 고요함과 폭발의 경계선에서 차체는 오히려 단단해졌다. 라 스페치아의 도로 위에서 SL 680은 단순한 주행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조각처럼 세밀하게 다듬어진 움직이는 구조물 같았다. 차체는 언덕의 굴곡을 타고 오르내리며 응축된 힘을 전했고, 미세한 조향에도 민첩하게 반응했다. 이렇게 SL 680은 화려함보다 정제된 남성성의 결을 따른다. 즉, 강인함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 힘을 분출할 여지를 감춘다는 의미. 치밀한 반복과 조율된 호흡으로 완성된 SL 680은 마이바흐가 지향하는 ‘조용한 힘’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1930년대부터 마이바흐의 상징으로 이어져온 V12 엔진은 오늘날에도 많은 고객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물론, 마이바흐는 전동화도 병행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 대목에서 전기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요. 핵심은 극도로 유려하고 정숙한 주행입니다. 결정권은 고객에게 있습니다.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브랜드의 철학이니까요. 마이바흐 고객층은 기업가부터 팝 스타까지 폭넓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철학을 세련되게 드러낸다는 것이에요. 마이바흐는 절제된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고객 요청 시 투톤 같은 대담한 스타일로 개성과 취향을 표현할 수 있게 합니다.”

_ 메르세데스-마이바흐 글로벌 총괄 다니엘 레스코Daniel Lescow



COOPERATION 메르세데스-마이바흐(51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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