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7월호

형태로 남은 서사들

지속 가능성, 포용, 조화의 가치를 품은 건축들이 오사카의 바다를 따라 세워졌다. ‘오사카 엑스포 2025’ 현장에서 건축적 서사와 철학이 또렷하게 드러난 5개의 국가관을 들여다본다.

EDITOR 박이현

카타르관, 순백의 돛이 풀어내는 서사


관람객이 투명한 햇살을 머금은 천막 아래로 들어선다. 이들을 감싼 건 유려한 곡선의 목재 프레임. 그리고 주변으로 국가의 해상 경계에서 모티프를 얻은 부드러운 천이 빛과 바람을 받아 흘러간다. 내부 구조는 일본의 장부맞춤(못이나 접착제 없이 나무를 짜맞추는 전통 목공 기술)을 응용했다. 건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누가 카타르관을 건축했는지 알아챌 터. 바로 구마 겐고Kuma Kengo다. 그가 구현한, 카타르의 해양 유산을 떠오르게 하는 세심한 공간 안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건 영상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의 자료를 결합해 만든 영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해안선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관람 동선은 카타르의 주요 해안 지역인 알 와크라, 코르 알 아다이드, 라스 라판 등 12개의 구역으로 확장되며, 각각의 파노라마와 촉각 지도, 유물, 시구들이 국가의 정체성과 바다의 기억을 켜켜이 쌓아 올린다. 전시는 해안선이라는 물리적 경계가 곧 정체성과 미래의 지향점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하고 있다.



블루 오션 돔, 건축이 들려주는 지속 가능성


엑스포 서쪽 관문에 들어서면, 바람에 흔들리는 유기체처럼 보이는 3개의 구조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둥근 지붕은 대나무와 종이, 탄소섬유 같은 가벼운 재료로 만들어져 해양의 흐름처럼 유연한 인상을 준다. 가운데에 자리한 지름 42m 크기의 돔은 기초 콘크리트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CFRP(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철보다 가볍지만 강성이 높다) 구조이며, 종이 튜브를 엮어 만든 돔은 반 시게루Ban Shigeru의 건축적 트레이드마크다. ‘블루 오션 돔Blue Ocean Dome’에선 바다를 주제로 한 전시와 공연, 영상,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돔 A에서는 해류·해양 생태계의 순환이 인터랙티브 미디어로 표현되고, 돔 B의 360도 영상은 플라스틱 오염과 인간의 행동을 예술적으로 전환한 체험을 제공한다. 돔 C는 미래의 해양 기술과 인간의 지혜를 공유하는 아카이브 공간이다. 3개의 돔은 엑스포 동안 지속 가능성과 해양 보호 메시지를 예술과 건축으로 일관되게 전달할 예정. 전시 연출은 디자이너 하라 겐야Hara Kenya가 맡았다.



사우디아라비아관, 모랫빛 미로 뒤에 숨겨진 안뜰


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사막의 음영과 지층을 형상화한 석재 패널이 시야에 들어온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돌담 사이로 빛이 흘러드는 순간 안뜰이 열린다. 그리고 중심부에 도달하면 고요한 정원이 펼쳐진다. 낮에는 명상의 장소로, 밤에는 퍼포먼스 무대로 전환되는 이곳은 건축과 시간의 흐름을 동시에 담아낸다. 사우디아라비아관은 ‘포스터+파트너스Foster and Partners’가 디자인한 국가관으로 전통 도시의 골목 구조, 정원 생활 문화 등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전시는 고대 유적 알 울라의 암각화부터 우주개발,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NEOM까지 사우디의 과거와 미래를 입체적으로 아우른다. 각 구역은 몰입형 영상, 인터랙티브 미디어,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설치 작품으로 이뤄지는데, 이들은 감각의 공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관람객과 교감한다. 그중 감각 과민자를 위한 조용한 공간, 휠체어 이용자를 고려한 동선, 청각 정보의 시각화는 모두가 참여하는 미래를 보여주는 듯해 특히 인상적이다.



바레인관, 바다의 시간을 속삭이다


해안의 염기를 품은 바람이 곡선을 타고 흐르는 공간에 들어서면, 은밀하게 떨리는 목재의 리듬이 귀를 간질인다. 중앙 홀을 감싸는 3000여 개의 빔은 전통 돛단배인 ‘다우dhow’를 닮아 방문객의 호기심을 건드린다. 자연 환기로 유지되는 실내는 기계장치를 최소화했음에도 온도와 공기의 흐름을 섬세하게 조절한다. 이곳을 수놓은 건 바레인의 해양 유산과 수공예 전통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몰입형 콘텐츠다. 진주 채취의 기억은 낮은 주파수의 진동과 은은하게 반사되는 빛으로 환기되며, 진주의 결을 닮은 표면과 음향은 관람객의 감각을 천천히 흔든다. 수공예 구역에선 천연염료로 엮은 직조물이 바람결에 흩날리고, 바레인의 고유한 색채와 패턴으로 가득하다. 진주 목걸이의 제작 과정을 따라가는 인터랙티브 설치와 지역 장인의 손길을 담은 영상은 바레인이 간직한 ‘손의 역사’를 다뤄 흥미롭다. 바레인의 뿌리를 자연스럽고 정제된 목조건축 언어로 표현한 바레인관은 대영박물관 리모델링을 이끄는 리나 고트메Lina Ghotmeh가 설계했다.



이탈리아관, 알칸타라가 직조한 이상 도시


에우제니오 롤리Eugenio Lolli  이탈리아 럭셔리 소재 기업 알칸타라의 대표. 페루자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밀라노 보코니 대학교의 SDA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탁월한 기술적, 감각적, 미적 성능을 자랑하는 독특한 소재를 제조하는 업체일 뿐만 아니라, 럭셔리 세계에 속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 알칸타라에 대한 그의 비전이다.




‘마리오 쿠치넬라 아키텍츠Mario Cucinella Architects’가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 도시 개념을 재해석했다. 목재를 주축으로 한 친환경 구조물은 자연광을 극대화하는 열린 아트리움과 함께 전통과 지속 가능성을 드러낸다. 전시는 ‘예술은 삶을 재창조한다Art Regenerates Life’라는 주제 아래, 공예·예술·기술이 교차하는 다층적 체험을 선보인다. 이탈리아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공식 파트너사로 참가한 이탈리아 럭셔리 소재 기업 ‘알칸타라Alcantara’의 활약이다. 일본의 전통 가리개 ‘노렌noren’에서 영감을 얻은 텍스타일 파티션과 극장형 공간을 감싸는 붉은 커튼으로 동서양의 미감을 연결했기 때문. 이러한 알칸타라의 소재적 개입은 이탈리아관에 촉각적 밀도와 상징적 깊이를 더하며,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체성을 건축적 언어로 번역했다. 다음은 이탈리아관의 핵심 역할을 한 알칸타라의 CEO 에우제니오 롤리와의 일문일답.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소재 브랜드 알칸타라는 어떤 방식으로 ‘재생’의 가치를 이탈리아관에 형상화했나요?

‘예술은 삶을 재창조한다’라는 오사카 엑스포 2025 이탈리아관의 주제는 소재에 대한 알칸타라의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기술 혁신과 창의적 표현, 전통과 아방가르드 디자인을 결합하려는 시도이자, 알칸타라가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일관되게 실현해온 접근 방식과 궤를 같이하죠. 이번 전시에서 알칸타라는 재생을 친환경적 복원이나 순환의 의미로 한정 짓지 않고, 전통을 존중하면서 디자인과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형태와 언어를 갱신하는 창조적 행위로 재정의했어요. 이탈리아관의 설치물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공간의 정체성과 감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내는 구성의 중심축으로 기획됐습니다. 소재는 그 안에서 감각을 일깨우고 사유를 유도하는 능동적 주체로 기능하고요.


이탈리아관의 ‘노렌’과 ‘극장 커튼’ 디자인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일본의 상징성과 이탈리아의 미학이 조우하는 장치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궁금합니다.

서로 다른 문화적 상징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했어요.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입구에 드리우는 천 형태의 구조물인 노렌을 새롭게 풀어낸 반투명 패널과 무대를 연상케 하는 커튼은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해 시야와 감각을 세심하게 조정합니다. 패널의 배열 방식, 표면 질감의 미묘한 변화 등은 시각은 물론, 촉각과 내면의 정서에까지 닿는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고요. 그 결과 이탈리아관은 전통과 현대가 호흡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말씀하신 모든 내용은 알칸타라만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지난 50여 년간 장인 정신과 기술 혁신, 지속 가능성을 결합해온 알칸타라는 소재 그 자체로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한 드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알칸타라는 고급스러움에 머무르지 않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촉각적 만족, 공간의 분위기, 감정의 여운을 고려한 브랜드적 체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도 일관되게 반영됩니다. 알칸타라는 자동차, 인테리어, 패션, 테크놀로지 등의 분야에서 브랜드 특유의 언어와 스타일을 녹여내고 있어요. 수작업의 섬세함과 첨단 기술의 정밀함 사이의 균형은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죠. 알칸타라만의 고유한 품질과 감성이 탄생하는 건 두 축이 서로를 보완하는 덕분이에요.


알칸타라는 B2B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엑스포 같은 대중적인 무대에 설 때 내부적으로 어떤 전략을 세웠나요?

알칸타라의 본질, 즉 감각적인 아름다움과 다채로운 활용 가능성을 관람객에게 직관적으로 전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부드러운 촉감, 세련된 질감, 감성을 자극하는 표현력은 브랜드를 ‘이해’의 대상이 아닌, ‘체감’할 수 있는 존재로 전환시켰고요. 내구성, 기능성 등 기술적 특성은 디자인과 예술이라는 언어로 구현했습니다.


“Alcantara is Alcantara”라는 선언이 이제야 와닿네요. 문장에 담긴 본질을 다시 한번 짚어주신다면요?

“Alcantara is Alcantara”, 간결하지만 강렬한 이 문장은 비교 불가능한 존재, 즉 유일함이 곧 가치라는 신념을 담고 있습니다. 알칸타라는 하나의 소재에서 나아가 브랜드 자체로 완성된 세계예요. 엑스포 현장에서는 저희의 신념을 관람객이 감각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과 긴말하게 협업했지요. 이는 알칸타라라는 이름이 미적 기준이자, 철학과 감성을 아우르는 체계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오사카 엑스포 2025 이후 알칸타라는 어떤 새로운 무대를 꿈꾸고 있나요?

이탈리아 고유의 미학과 기술력을 세계와 나누는 브랜드로서 여정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저희가 꿈꾸는 미래는 시장 확대에 그치지 않고, 아름다움과 디자인, 창의성, 그리고 문화적 연대를 바탕으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가치를 오늘의 언어로 서술하는 것이에요. 손을 맞잡고 브랜드 서사를 직조하는 파트너로서 역할을 다지는 것이죠. 감각의 깊이와 미적 밀도를 근간에 둔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이너, 브랜드, 문화 예술계 인물과의 협업, 장인 정신과 품질에 대한 철학, 우아함과 창의성을 나누는 파트너들과 함께 다음 시대의 풍경을 그려나가고자 합니다.





COOPERATION  알칸타라(alcant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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