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7월호

나무와 돌, 침묵과 시간의 정원

새들은 죽음을 맞으러 숲으로 가고, 사람은 살기 위해 숲으로 간다 했던가. ‘사유원思惟園’이 바로 그런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구 군위 팔공산 자락, 70만m²의 광활한 땅에 조용히 몸을 누인 이 수목 정원은 단순한 휴식처나 정원이 아니다. 시간과 철학, 감정이 응축된 거대한 ‘사유의 장’인 사유원에서는 나 자신을 또렷하게 마주 보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다.

EDITOR 남정화 PHOTOGRAPHER 이경옥

모과나무에서 시작된 꿈

1989년 겨울, 당시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은 일본으로 밀반출된다는 300년 된 모과나무 네 그루의 소식을 듣는다. 그는 단숨에 부산으로 달려가 네 배의 가격을 주고 그 나무들을 되찾아온다. 그렇게 전국 각지의 수백 년 묵은 모과나무들이 모여들었고, 결국 팔공산 자락에 ‘풍설기천년’이라 불리는 모과나무 정원을 조성하며 사유원의 시작을 알렸다. 처음엔 수목원의 개념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 하나, 돌 하나, 건축물 하나까지도 단순히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서사’로 조형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곳은 단순한 수목원이 아닌, 사람의 미학과 자연의 원초성이 교차하는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소요헌 알바로 시자 건축.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던 이곳은 생명과 죽음의 순환이 새겨진 공간이다.



명정 승효상 건축, 고기영 조명. 현생과 내생의 교차를 담은 건물. 복잡하게 얽힌 통로로 하늘로 오르거나 벽과 마주하거나, 물에 닿을 수 있다.


설계되지 않은 듯 설계된 공간

사유원의 가장 큰 특징은 ‘건축이 있지만, 주인공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곳곳에 들어선 건축물도 용도를 알 길 없는 것이 태반이다. 이곳의 설계에는 세계적인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건축에는 알바로 시자·안드레아 리베라니·승효상·최욱·박창열, 조경에는 정영선·박승진·가와기시 마쓰노부, 조명에는 고기영, 서예는 웨이량 등 각 분야의 장인들이 함께했지만 그들의 개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사유원의 전체적 미학을 조화롭게 이끌어내는 데 집중했다. 해서 사유원에는 건축가나 작업자의 서명이 없다. 이곳 전체가 한 사람, 유재성 설립자의 생각에 따랐기 때문이다. 즉, 사유원의 모든 공간은 설립자의 미감이 직접 투영된 결과물이다. 그의 눈에 들어온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붉은 철판 한 조각이 모여 건축보다 오래 머무는 건축을 만든다. 그가 끝없이 고치고, 지우고, 다시 만든 공간들은 그래서 무겁고, 그래서 깊다. 설립자의 미학적 시선과 집요한 디렉션은 모든 건축적 요소를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만들어냈다.

현암, 사담, 와사, 유원, 소요헌, 소대…. 공간마다 이름도 의미도 다르다. 그리고 각 공간은 계절, 시간, 빛, 소리, 향기와 교감하며 하루하루를 다르게 보여준다. ‘설계되지 않은 듯 설계된 곳’. 그렇게 사유원은 말보다 공간이 먼저 말을 건네는 정원이 되었다.



풍설기천년 정영선과 박승진의 조경, 가와기시 마쓰노부의 돌, 고기영의 조명. 반천 년을 살아온 모과나무들이 쉬는 곳. 


가장 느리게 걷는 산책, 가장 깊이 만나는 나

사유원을 걷는다는 건, 다리로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거니는 일이다. 처음 온 방문자는 지도를 펼쳐 들고 모든 구역을 ‘완주’하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오게 되면 한두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때 비로소, 이 공간의 진정한 이름을 이해하게 된다. 생각의 정원, 사유원. 사유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유원에는 콘크리트와 철, 자연석이 공존한다. 인공과 자연, 고요함과 거침이 어우러진 이질적 조화는 오히려 진짜 자연을 말한다. 어떤 공간에서는 물소리가 흐르고, 어떤 공간에서는 나무의 그림자가 고요한 물 위를 스친다. 계절은 언제나 이곳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게 떠난다.

다행히도 유지연 회장은 설립자의 뜻을 잇되, 사유원의 문턱을 조금 낮췄다. ‘이 공간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든 살롱’, ‘가든 다이닝’, ‘재즈 콘서트 LOSA(Last Day of October in Sayuwon)’ 등은 단순히 이벤트가 아니라 이곳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숨결이다. 매달 새로운 예술가들이 이곳을 방문해 창작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어떤 이는 책을 쓰고, 어떤 이는 음악을 만든다. 누군가는 한 계절 머무르며 전시를 준비한다. 이렇게 사유원은 공간이자 예술가의 작업실이자 삶의 이정표가 된다. 지금 사유원은 또 하나의 긴 호흡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숙소 프로젝트다. 50실 규모의 자연 속 스테이는 2026년을 목표로 조성 중이다. 숙소와 함께 어우러질 식당, 라운지, 창작 공간까지 포함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숙박’이 아닌 ‘머무는 사유’를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사유원은 낮의 정원을 넘어 ‘밤의 정원’까지 품게 된다.

사유원을 떠나는 길은 늘 아쉽다. 다 보지 못한 것, 더 머물고 싶은 감정이 발끝에 묻어 따라온다. 하지만 그것이 이 공간의 본질이다. ‘다 채우기보다 조금 남기는 것’. 그래야 다시 올 이유가 생기고, 그사이 우리의 삶은 또 다른 사유를 품게 된다.



풍설기천년을 눈앞에 두고 펼쳐진 ‘사유원 가든 다이닝’에는 ‘리북방’의 최지형 셰프, ‘몽몽마방’ 변선희 셰프가 참여했다.



한국식 정원인 유원에서 팔공산을 차경 삼아 펼쳐지는 차회. 가야금 연주가 함께해 운치를 더한다.


주소  대구시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운영 시간  화~일요일 오전 9시~오후 5시 (마지막 입장 오후 3시,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운영 후 다음 영업일 휴관)

관람료  성인 평일 5만 원, 주말 및 공휴일 6만9000원 학생 평일 4만5000원, 주말 및 공휴일 6만2000원

문의  054-383-1278




사유는 자연 속에서 온다

설립자의 철학을 잇고, 사유원을 더 많은 이가 경험해보길 바란다는 사유원 유지연 회장과 나눈 짧은 대화.



사유원을 조성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유원은 설립자인 아버지께서 40년 전부터 품어온 꿈이었습니다. 철강업에 오래 몸담으셨지만 예술, 미학, 자연에 대한 관심과 감각이 남다르셨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정원을 만들겠다’는 오랜 의지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죠. 전 세계 정원을 둘러보시면서 ‘왜 한국에는 우리만의 정원이 없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든 게 출발점이었습니다.


철강과 정원이라는 상반된 물성이 오히려 더 인상 깊었습니다.

맞습니다. 산업과 자연이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사유원 안에서는 조화를 이룹니다. 공간 하나하나가 수십 년간 준비되고, 20년에 걸쳐 조성된 결과물이에요. 완성되기 전까지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만큼 고집과 철학이 담긴 공간이죠.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하신 과정도 궁금합니다.

건축가 승효상, 조경가 정영선 선생님과 함께했고, 일본 조경가 가와기시 씨도 초기부터 함께했습니다. 단순히 유명세가 아니라 설립자의 미학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택했죠. 설립자께서는 건축물 하나를 지을 때도 설계 도면을 현장에 맞게 직접 수정하셨고, 조경과의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운영자로서 회장님이 맡으신 이후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2021년 정식 개장 이후 제가 대표로 합류하게 되었고, 지금 3년 차입니다. 설립 취지에 따라 사유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소수의 애호가를 염두에 둔 공간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간을 경험하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입장 제한도 완화하고 ‘가든 다이닝’, ‘가든 살롱’, ‘재즈 콘서트 LOSA’와 같은 시즌별 기획 프로그램을 폭넓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설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가장 큰 프로젝트는 ‘스테이’입니다. 숙박 시설을 통해 사유원의 밤과 새벽까지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예요. 약 50실 규모로 내년 하반기 오픈을 계획 중이고, 숙소에 맞는 식사 공간도 함께 조성 중입니다. 이 공간을 24시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사유원에서 꼭 경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설립자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데요. 처음엔 넓은 공간을 빠짐없이 둘러보려는 강박이 들지만, 두 번째 방문부터는 자신만의 장소를 찾고 진정한 ‘사유’를 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자연 속에서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COOPERATION  사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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