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5월호

매거진 에디터 서재우, 좋아하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움. 모든 것이 소진된 채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그가 맞닥뜨린 것은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즐기는 자유였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가는 서재우의 흥미로운 취향들.

EDITOR 이연우 PHOTOGRAPHER 이기태


서재우  사물과 풍경에 관심이 많은 매거진 에디터. 현재 <매거진 B>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영화, 음악 그리고 여행을 통해 삶을 또렷하게 채색해왔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이름으로 내건 ‘일렉트로닉 에스프레소’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시인, 뮤지션 등과 함께 입체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더 크게, 더 넓게, 더 열심히 좋아하는 것. <매거진 B>를 만들고 있는 서재우 디렉터의 생활을 들여다본다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의 대단함을 헤아리게 된다. 오래전부터 좋아해온 전자음악과 커피를 내건 프로젝트 ‘일렉트로닉 에스프레소’를 시작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더듬어볼 수 있다. “제가 좋아하는, 그러나 모두가 좋아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기호를 바탕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어요. 일렉트로닉 뮤직과 에스프레소처럼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낯선 감각과 또 다른 생각들을 삶에서 찾아보는 거죠. 라는 제호의 ‘진zine’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협업하며 자유롭게 결과물을 만들어요. 종이 매체인 ‘진’은 제가 가장 좋아하고 또 잘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해요. 결국은 제 방식으로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일인 거죠.”

용감하게 그러나 즐겁게,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더욱 활발하게 자신의 애호를 탐구하고 확장해나가고자 한다. 좋아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나누고 함께 누렸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더 커짐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발산하고, 나란히 경험하고, 함께 즐거워하려 한다. 한층 흥미로워질 그의 내일을 기대하며 취향과 스타일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내 스타일의 ‘한 끗’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 눈치 보지 않고 선택하는 용기. 옷 입는 방식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심지어 잡지 지면을 기획하는 일까지 모든 것의 출발점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나를 매료시킨 스타일 아이콘은?

프랑스 영화감독 레오 카락스. 모든 것이 함축적인 시처럼 다가오는 그의 영화 속 대사와 장면을 통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독특한 멋의 선글라스를 쓰고, 늘어난 티셔츠에 무심하게 레더 재킷을 걸친 그의 스타일 역시 좋아한다.



옷장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템은?

매번 옷장을 정리하는데 항상 버려지지 않는 재킷이 하나 있다. 2018년 구매한 옷으로 프레드 페리와 라프 시몬스가 협업한 워크 재킷이다. 인기 모델도, 유명 디자이너의 브랜드도, 가장 비싼 아이템도 아니지만 이보다 내 체형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워크 재킷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단 한 벌만 챙겨야 한다면?

아워레가시 저지셔츠에 아페쎄 청바지를 입고 캠퍼 부츠를 신겠다.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 가장 많이 입는 조합이다.


늘 지니고 다니는 가방 속 필수품은?

작은 크기의 책들. 소설책이나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는 걸 좋아한다.




쇼핑할 때의 기준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재 스타일’을 즐긴다고 말한다. 옷장에서 손이 가는 대로 무작정 꺼내 룩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아저씨들 다 그렇게 입지 않나?(웃음) 물론 정말 아저씨 같은 옷을 입는 건 아니다. 결론은 늘 장르와 영역에 상관없이 다양한 옷을 믹스해 입기 때문에, 쇼핑할 때는 원래의 내 옷과 잘 어울리는 것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전이나 가구 등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구매할 때도 적용된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것은?

공예 갤러리 ‘갤러리 모순’에서 김민욱 작가의 나무 소반을 구매했다. 나무에 난 상처를 그대로 살린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라는 용기를 얻는다.


요즘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속건성과 통기성이 뛰어난 세련된 경량 티셔츠와 쇼트 팬츠. 오는 7월 그리스 아테네에 갈 계획인데 지중해의 무더운 여름을 견디기 위해선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나의 시그너처 향은?

향수가 필요할 때 기분에 따라 향을 선택하는데,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이솝의 ‘마라케시 인텐스 오 드 퍼퓸’이다. 실제로 마라케시의 혹독한 여름을 경험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더위가 잔향처럼 따라다닌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집에서 혼자 들을 땐 대부분 전자음악을 듣는다. 단, 동일한 비트와 소리가 반복적으로 흐르는 전자음악은 더는 찾지 않는다. 타악기 소리, 파도 소리, 새소리, 각종 소음이 뒤섞인 전자음악을 좋아한다. 요즘은 컴필레이션 앨범인 과 스웨덴 전자음악 듀오 파트네스Phatness의 앨범을 가장 많이 듣고 있다.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요즘은 의도적으로 편하게 읽고 넘기는 책만 읽기에 오래전 본 책이지만 ‘바이블’처럼 아끼는 고故 정기용 건축가의 <사람, 건축, 도시>를 언급하고 싶다. 건강한 건축이 무엇인지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브루탈리즘 건축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브루탈리스트>. 늘 건축을 좋아했다. 독일, 시카고, 텔아비브를 여행한 이유도 바우하우스 출신들이 세운 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건축물이 주가 된 영화는 아니었지만, 성공한 건축가의 명과 암을 소설(혹은 연극)처럼 풀어낸 연출이 정말 흥미로웠다.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도널드 저드. 그가 만든 스테인리스스틸 선반에 소설책들을 두서없이 채워 넣고 싶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아름다움과 완벽한 비례감에서 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라’가 담겨 있다.


내 인생의 스타를 꼽는다면?

언젠가부터 특정한 한 명을 꼽는 것이 어려워지더라. 꼭 답을 찾아보자면 나와 깊이 관계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제는 스타를 선망하기보다 함께 스타가 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 나이가 된 것 같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동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커피 메이커로 커피를 내린다.




잠들기 전 하는 일은?

아내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짧은 대화를 나눈다.


절대 빼먹지 않는 자기 관리법은?

예전엔 헬스장도 다니고 러닝도 했는데, 점점 일에 쏟는 시간이 늘어나며 운동 같은 관리를 잘 못하고 있다. 그나마 유산균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정도랄까.


냉장고 속 필수품은?

닭가슴살. 집에서 혼자 하루를 보낼 때, 점심은 닭가슴살로 해결한다.


평생 하나의 음식만 먹는다면?

너무 가혹한 질문이다. 혹시 ‘무화과가 들어간 음식’이란 답변도 가능할까? 무화과 파스타, 무화과 샐러드 등 이런 식으로 먹다 보면 평생 지겹지 않을 것도 같다.


나만의 의미 있는 장소는?

아내와 40일간 여행한 리스본. 그곳에서 본 구름과 노을을 영영 잊기 싫어서 떠나기 며칠 전, 오른팔에 타투를 새겼다.


최고의 여행 기념품은?

베를린과 리스본에서 받은 타투. 베를린은 내 가치관에 변화를 준 도시이고, 리스본은 아내와 처음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도시다. 타투를 볼 때마다 그날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 최다함이 결혼 선물로 보내준 라는 제목의 작품.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베를린의 벚꽃 사진 시리즈의 일부로, 10장의 에디션 중 첫 번째 에디션을 받았다. 영원히 지지 않는 벚꽃을 움켜쥔 셈이니 이보다 완벽한 결혼 선물은 없을 것이다.


요즘 내가 가장 집중하며 빠져 있는 것은?

작년 겨울부터 백패킹을 시작했다. 등산을 다니다가 자연과 좀 더 가까이하고 싶어서 백패킹 장비를 구매했다. 어떤 기계음도 들리지 않는 자연에서의 하룻밤이 안겨주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바람 소리와 새소리만이 존재하는 산속을 경험해보면 그 ‘무엇’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100% 동감할 것이다.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은?

아내와 하루 종일 같이 TV를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시간도 없다고 느낀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조언은?

“Better Together We Can.” 우연히 본 문구인데,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됐다.


만약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다양한 도시를 나만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사진가의 삶을 살고 싶다.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는?

제출한 원고 확인이 끝났을 때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때만큼은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나의 영감의 원천은?

나의 작은 서재. 수십 번 펼쳐본 잡지와 사진집, 시집과 소설책, 인문학책 등 서재에 있는 모든 책은 내 영감의 원천이다.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 온전히 나의 삶을 들여다보고 꾸려가는 때가 오길 바란다. 또한 처음 경험하는 감정을 기억하며 사는 것 역시 ‘럭셔리’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덜 감흥하고 덜 만족하게 되지 않나? 처음 느낀 설렘과 감각을 영원히 간직하고 사는 것이야말로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럭셔리’라는 생각을 한다.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