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4월호

BE NATURAL

내추럴 와인의 정의는 포도 재배부터 양조까지 와인메이킹 과정 전반에 걸쳐 일절 인위적인 개입이 없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재배뿐만 아니라 양조 과정에서도 인공적인 요소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너무나도 지극히‘자연’스러운 와인인 셈. ‘내추럴 보이’의 정구현 대표에게 내추럴 와인의 지속 가능성과 존재 가치에 대해 물었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염정훈

에글리 우리에 레 비뉴 데 비세이유 프리미에 크뤼  내추럴 와인 양조법을 샴페인에 도입한 선구자 중 하나인 독립 생산자의 거장 에글리 우리에의 샴페인. 순수 피노 뮈니에Pinot Meunier 품종으로 만드는데, 이는 샹파뉴에서 비교적 드문 조합이라 더욱 이색적이다.



내추럴 와인의 와인메이킹 과정 전반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가장 중요한 점은 포도와 함께 자란 ‘자연 효모’로 포도를 발효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포도도 건강해야 하지만 포도 껍질 표면에 하얀 먼지처럼 자라는 자연 효모에도 이상이 없어야 해요. 효모는 흙에서 겨울을 나고 봄과 여름에는 포도나무 줄기와 공기에서, 포도가 열리고 나서는 포도 껍질에서 자랍니다. 전통주 도가에서는 누룩을 띄우는 누룩방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데, 내추럴 와이너리에서는 포도밭이 누룩방인 셈이죠. 상업적 효율을 높이기 위해 대량의 와인을 양조하는 컨벤셔널 와인에서는 모든 배럴의 맛을 똑같이 맞추기 위해 포도의 효모를 모두 살균하고 배양 효모로 와인을 발효합니다. 성분 조정을 거쳐 각 발효조의 와인을 동일한 상태로 만든 뒤 와인 속의 효모도 모두 살균해 병입하죠. 하지만 내추럴 와인은 자연 발효한 그대로의 와인을 담으며 효모를 살균하거나 거르지 않고 그저 와인과 함께 익어가게 합니다.


내추럴 와인 생산에 적용하는 농법도 다양하더군요.

효모가 무사히 겨울을 나게 하려면 밭이 산성화되거나 제초제, 살균제, 살충제 등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내추럴 와인에서는 익히 알려진 유기농의 기준과 달리 자체적인 기준을 적용해 농사를 짓습니다. ‘비오디나미 농법’은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오스트리아 인지학자가 개발한 농법입니다. 유기농법을 독특하게 심화시킨 것으로, 음력으로 날짜를 세거나 별의 움직임에 의거한 점성술식 날짜 계산법을 농업 스케줄에 적용합니다. 한국이 음력의 24절기에 따라 농사를 지어왔듯 분명 전통 농법과 일부 궤를 같이하는 방법입니다. ‘로마네 콩티’, ‘도멘 르루아’ 같은 수많은 명가의 와인들이 비오디나미 농법을 접목한 이후 이전보다 훨씬 더 품질이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죠. ‘자연 농법’은 일본의 농부이자 철학자, 환경운동가인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제창한 농법입니다. 밭을 갈지 않고 제초도 하지 않아 마치 밭을 방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효모가 건강하게 자라고 밭에서 포도와 함께 자란 잡초들이 상호작용해 병충해가 감소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추럴 와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가 마치 하나의 예술 장르 같은 각양각색의 아티스틱한 레이블이 아닐까 싶습니다. 와이너리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법일까요?

내추럴 와인은 처음부터 지역의 토착 품종들과 전통 양조법을 존중하며 잊힌 옛 와인들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와인을 표현하는 상징인 레이블도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해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와인을 함께 테이스팅한 후의 인상을 레이블로 표현하는지라 그 자체로 와인의 설명서가 되기도 했죠. 많은 지역에서 자연적인 방식으로 내추럴 와인을 만들면 원산지 보호 표기 등급을 주지 않고 테이블 와인으로 등급을 강등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빈티지와 품종을 표기하는 것이 불법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이에 대한 나름의 반향적 조치로 레이블을 활용하기도 했기에 내추럴 와인에서 더욱 다채롭고 특색 있는 레이블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 봅니다.


와인은 포도 재배라는 자연환경의 변수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내추럴 와인의 경우,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에 더욱 어려운 점이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물론 예측 불가능성이 내추럴 와인의 매력이라고 꼽는 분들도 있지만요.

내추럴 와인의 신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피에르 오베르누아도 이런 말을 했죠. “아픈 포도에 약을 쳐야 한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아프지 않은 포도에 약을 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진실이다.” 내추럴 와인의 장인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밭을 돌봅니다. 그래서 더 건강한 밭에서 완벽한 포도를 수확하고 결과적으로 훌륭한 와인을 생산해내죠. 내추럴 와인업계에서도 빈티지마다 각 빈티지의 특성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결점 없이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변칙적인 요소들은 각 와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내추럴 와인의 시장은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나요?

바로 옆 나라인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내추럴 와인 붐이 일었고, 내추럴 와인 시장이 몸집을 불려온 반면, 한국은 불과 6~7년 전에야 내추럴 와인 시장의 개척이 꾸준히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불경기와 겹쳐 약간의 조정기를 겪고 있습니다만, 한식과 내추럴 와인의 마리아주는 그간 여러 소비자들에 의해 검증된 만큼 내추럴 와인 시장은 차차 더욱 성숙해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기후 위기 속에서 와인 평가의 기준 역시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와 와인의 상관관계 그리고 공존의 방안에 대해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방향성이 있다면요?

‘도심 양조장’의 경우가 하나의 사례가 되겠네요. 서울에 위치한 머곰 양조장이나 일본 오사카의 후지마루 양조장이 대표적인데요. 자국의 포도를 써서 도심에서 와인을 양조하는 와이너리가 많아진다면 와인의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도 줄어들 테고요. 지역 생산물과의 매칭 역시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이상적이죠.


현재 지속 가능한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행보를 선보이는 내추럴 와인 와이너리를 꼽는다면?

스페인에 위치한 ‘파르티다 크레우스’ 와이너리를 꼽겠습니다. 스페인은 다양한 토착 품종를 재배하며 2000여 년간 고퀄리티의 와인을 생산해왔습니다. 다만, 상업적인 이유로 대량생산을 위한 국제 포도 품종의 사용을 권고하면서 그 역사적 가치가 흐려지고 있는 실정이죠. 파르티다 크레우스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버려진 전통 품종 생산지를 와이너리로 복원해 수십 년이 된 올드 바인 포도나무로 와인을 만듭니다.


현재 가장 눈여겨보는, 혹은 가장 애정하는 내추럴 와인이 있다면요?

프랑스 루아르의 제롬 소리니Jerome Saurigny가 양조한 와인을 선택하겠습니다. 제롬 소리니의 와인을 너무나 사랑해서 딸 이름을 소린이라 짓기도 했죠. 그는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가장 엄격한 자연 농법과 가장 자연적인 양조법으로 생명력 넘치면서 장기 숙성도 가능한 아름다운 와인을 생산해냅니다.



정구현  내추럴 와인 숍 ‘내추럴 보이’의 대표이자, 국내에서 손꼽히는 내추럴 와인 전문가. 내추럴 와인의 계보와 역사, 내추럴 와인 농가 등 방대한 정보를 담아 ‘내추럴 와인의 교과서’라 평가받는 <내추럴 와인; 취향의 발견>의 저자이다. 까브드뱅, 레뱅드매일, 비노킴스 등 여러 와인 브랜드에서 일했으며, 국제 와인 교육 기관인 WSET를 수료했을 만큼 와인메이킹에도 관심이 많다.



PICK IT!

내추럴 보이 정구현 대표가 직접 고른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내추럴 와인 추천 리스트.



(왼쪽부터) 러브 앤 핍  부르고뉴의 전설로 불리는 얀 뒤리외의 올드 바인 알리고테 화이트 와인. 부르고뉴의 알리고테 품종 포도를 사용해 가볍고 여린 듯한 미네랄이 인상적이며 미세한 염분기와 적당한 무게감으로 처음 입을 대는 순간 산뜻한 느낌을 선물한다.

막셀 라피에르 모르공  보졸레 최초의 내추럴 와인메이커 중 하나이자, ‘보졸레의 로마네 콩티’라 불릴 만큼 보졸레 내추럴 와인 1세대 중 최고 대표작으로 꼽힌다. 탄탄한 구조감과 부케 실크를 연상케 하는 타닌감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와인 중 하나이기도.

에브리씽 이즈 오케이, 메이비 유얼 익스펙테이션스 알 투 하이  ‘네 기대는 아마도 아주 진한 와인이겠지만…’으로 해석되는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 캘리포니아 레드 와인은 진하고 무겁다는 편견을 이겨내고 레드 와인이지만 로제 와인에 가까운 무게감을 보여준다. 로다이 지역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픽풀 품종으로 만들었다.

그레이프 리퍼블릭 베일리 A  일명 ‘머루포도’라 불리는 MBA 포도로 만드는 일본의 내추럴 와인. 마치 생포도알을 씹어 먹은 듯 터져나오는 향이 강렬한 첫인사를 전한다. 향은 강하지만, 무게감이 가벼운 편이라 데일리 와인으로도 추천한다.

공크 언더 프레셔  전설적인 록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오마주한 레이블이 시선을 끈다. 슬로베니아 대표 내추럴 와인메이커 공크의 오렌지 와인으로, 풍성한 버블과 오렌지, 레몬, 효모 향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감칠맛이 마치 여러 악기가 어우러진 록 음악 같은 인상을 준다.

레스티냑 블래스트 2009+2019  스위트 오렌지 와인으로, 보르도 남부 지역인 베르주라크Bergerac의 대표 내추럴 와인메이커 레스티냑이 딱 한 번만 생산한 리미티드 와인. 배럴에서 숙성 중이던 2009년산 세미용에 2019년산 프티 망셍을 넣고 한 달 동안 침용한 후 숙성을 거쳐 탄생했다. 블래스트의 뜻처럼, 머금는 순간 폭발하는 듯한 강렬한 임팩트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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