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3월호

디자이너 김진식, 간결함으로 이룩하는 풍요

의미 없는 장식을 더하는 것보다 본질만을 남기는 일이 어려운 법이다. 김진식 디자이너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존중과 순수한 물성에 대한 탐구, 명료한 쓰임을 통해 디자인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경옥

김진식  2013년 스위스 로잔 국립예술대학교에서 마스터 디자인 럭셔리 & 크래프트맨십 코스를 졸업한 뒤, Studio JINSIK KIM을 열어 산업 디자인과 공예를 잇는 파인아트 퍼니처를 선보이며 독보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바카라, 에르메스를 비롯해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했고 디자인 마이애미, 밀라노 가구박람회, 국립현대미술관,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 등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최근에는 가구 브랜드 트루 투 타입(True to Type)과 크리에이티브 레이블 텍스트 샌드위치Text Sandwich를 함께 이끌고 있다.



인공 물질이 제작 공정에서 갖는 편의성은 분명하다. 그러나 긴 시간 사용하고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보내는 전 과정을 고려했을 때 석재, 목재 등 자연물에 마음과 손길이 가는 것이 사실. 김진식 작가는 할머니 댁에서 나뭇가지와 돌멩이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감각을 바탕으로 초기부터 지금까지 자연물에 근간한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그의 작품들은 다른 행성에서 뚝 떨어진 듯 초현실적인 자태를 지녀 도시의 차가운 감각을 보다 야생적으로 채우는 맛이 있다. 10여 년간 이어져온 그의 개인 작업은 석재나 메탈을 두툼한 원통, 반원 형태 등으로 구현한 강인함이 특징이다. 높은 완성도를 지니되 자연물의 가공을 최소화한 디자인 기법으로 생산과 사용, 폐기 전의 공정에서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 김진식 작가의 작업 원칙이다. 그는 자연의 흔적을 최소한으로 남기되 시대성이 녹아 있는 작업에 대해 늘 고민한다. 동시대의 사물이나 서비스, 공간을 사물에 담아내는 것이 산업 디자이너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라 생각하기 때문. “사라져가는 무언가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의미가 깊지만, 대중과 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를 디자인에 녹이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어요.”




이러한 마음은 지난해 크리에이티브 레이블, 텍스트 샌드위치를 열고 활동 방향을 결정하는 데도 담겼다. “매년 연말이면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즐기는데 공연장마다 환경의 차이를 느껴요. 관객석 의자에 앉을 때부터 과거로 돌아간 듯한 유럽의 공연장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아쉬운 국내 공간들도 있죠. ‘동시대의 다양한 문화적 태도를 견지한 사물들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아래 텍스트 샌드위치를 운영하고자 해요. 레이블이라는 표현이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디자인에 국한하지 않고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가려고 이런 이름을 지었어요.” 동시에 김진식 작가는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디자이너로서 달라진 책임감과 확장된 역할을 느낀다. 단순히 기능과 아름다움, 메시지에 몰두하는 것을 넘어서 모두를 아우르는 맥락에 관심이 깊어졌다. 이러한 생각은 텍스트 샌드위치의 결과물로 표현됐다. “이전까지는 디자인에 포커스를 맞춰 퀄리티나 기능을 높이는 데 굉장히 집중했어요. 그것 하나만으로도 공간의 오라가 바뀌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죠. 그래서 이따금 저의 작업을 조형미술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었고요. 이제는 사물이 놓이는 주변의 상황, 어우러짐까지 고려해 10% 정도는 비워진 디자인을 추구해요. 어느 공간이든 제 작업물 하나만 놓이는 건 아닐 테니까요.” 텍스트 샌드위치는 이러한 절제된 태도를 담아 음반 유통 및 제작사 웨이브 샌드위치와 협업해 음악 애호가의 심미적 일상을 돕는 컨테이너를 선보였다. 컨테이너는 언뜻 단순한 생김새 같지만 김진식 작가의 꼼꼼한 성미가 깊이 담겨 있다. 그는 LP, CD를 비롯해 다양한 스펙의 음향 기기를 보관하기 좋은 사이즈를 고민했고, 리스너의 수집 욕구를 보필하는 모듈 가구를 구현하기 위해 리벳 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 그만큼 사용자들의 뜨거운 만족도를 이끌어냈다. “제 작업은 물론, 일상적으로 소비할 때도 핵심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해요. 디자인 곳곳에 당위가 있어야 하죠. 제 디자인이 간결한 이유입니다. 형태가 너무 단순해서 허술함을 숨길 방법이 없어요. 수고가 들더라도 최선을 다해 사물을 완성하는 수밖에 없죠.” 텍스트 샌드위치의 경계 없는 활동과 작은 디테일에도 진심을 다하는 태도는 동시대 문화에 새로운 결을 더한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김진식 작가가 생각하는 럭셔리다. “문화적 풍요로움이 진정한 럭셔리라고 생각해요. 효율이나 물질적 성공을 넘어 개개인의 다양한 애티튜드, 라이프스타일이 엮어갈 때 문화적 풍요라는 고차원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겠죠.”



INSPIRATION IN LIFE

동시대 가치를 섬세히 채집하는 김진식 작가의 감각을 자극하는 사물들.



작곡가 겸 유튜버 프로듀서 DK는 자연의 물성을 깊이 탐구하던 작가에게 음악 애호가의 세계를 일러주었다. 그가 운영하는 웨이브 샌드위치와 텍스트 샌드위치가 만나 뮤직 컨테이너를 완성할 수 있었다.



김진식 작가는 동시대 아티스트에게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특히 박신영 포토그래퍼가 촬영한 텍스트 샌드위치의 사진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서사 위주로 영화를 즐기던 그에게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2017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관람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커다란 공감각적 자극을 주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송민호와 협업해 완성한 ‘넘버스’ 코스터.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알루미늄에 새겼다.



간결하지만 여린 선과 여백, 적층의 아름다움 등 디자인 전반에서 건축적 태도를 견지하고자 한다.



어떠한 사물을 디자인하든 모듈 작업을 통해 완성도와 비율을 눈으로 꼭 확인한다.



오래된 건축 도서들을 읽으며 인간이 공간을 감각하고 디자인을 경험하는 방법들을 탐구한다.



1800년대 후반 지어진 공연장 안에서 지휘자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리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로얄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공연을 잊을 수 없다. 마치 100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한 깊은 감상에 빠졌기 때문.



스니커즈 디자이너 살레헤 벰버리 Salehe Bembury와 뉴발란스가 협업한 ‘574 유르트Yurt’ 컬렉션. 언뜻 맥시멀한 디자인이지만 조난 시 구출을 위해 자신을 알리는 뒤축의 호각 디테일 같은 명료한 아웃도어 콘셉트가 마음에 쏙 든다.



WRITER  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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