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5년 3월호

세계 뮤지컬 양대 산맥의 정복자, 신춘수

브로드웨이를 강타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성공은 그 성취의 서사만으로도 세상을 압도하고도 남을 울림이 있다. 뮤지컬계의 돈키호테, 희망을 향해 맹렬히 달려 결국에는 꿈을 이뤄낸 신춘수 대표의 들끓는 열정과 굳건한 믿음.

EDITOR 이연우 PHOTOGRAPHER 이기태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이자 뮤지컬 프로듀서. 2001년, 당시로서는 생소한 분야인 뮤지컬 제작사를 차렸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오디컴퍼니의 도약은 곧 한국 뮤지컬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인 최초 브로드웨이 정회원이며, 한국 및 아시아 최초 단독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바로 어제까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를 누비다 귀국하셨죠. 숨가쁜 일정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위대한 개츠비>를 향한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직접 확인한 느낌이 어떻습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대단한 성공이다”라며 축하를 해줍니다. 극장 관계자들은 물론 세계적인 프로듀서와 제작자, 투자자들의 관심과 미팅 요청도 이어지고요. 제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과 다음 계획에 대해 궁금해하며, <위대한 개츠비> 이후 활동에 관해 ‘적극 지지’ 의사를 밝힌 이들도 있습니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도 체감됩니다. 객석에서 보면 ‘이 작품이 무척 큰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분위기가 느껴져요. 여러 측면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탄탄한 브랜드로 자리 잡아 앞으로 또 다른 역사를 쓰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봅니다.


지난해 4월 브로드웨이 입성 이후 보여준 <위대한 개츠비>의 성과는 그야말로 굉장합니다. 개막과 동시에 100만 달러 매출을 기록하며 ‘원 밀리언 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연말에는 무려 주당 매출액 260만 달러를 돌파했죠. 이는 공연이 열리고 있는 브로드웨이 시어터의 박스 오피스 기록을 6년 만에 경신한 결과입니다.

트라이아웃 공연을 할 때부터 전석 매진을 이루며 연일 화제를 모았는데요. ‘이번엔 되겠다’는 좋은 예감이 들면서도 결과에 대한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기쁘게도 정식 공연 오픈 이후 매일 많은 관객이 찾아주셨고, 공연을 연장하며 지금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이제는 ‘롱런’할 거란 확신이 조금씩 서고 있습니다.


흥행뿐만이 아닙니다. 제77회 토니 어워즈 뮤지컬 부문 ‘의상 디자인상’ 등 여러 상을 받으며 작품성도 인정받았어요. 어떤 점이 성공을 견인했다고 생각합니까?

완성도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경쟁력은 절대적으로 완성도에서 비롯됩니다. 많은 이가 이 작품을 ‘아름답다’고 평가해요. 실제로 저희를 ‘아름다운 프로덕션’이라고 부르고요. 개츠비의 이야기를 다룬 많은 작품 중에서도 원작이 갖고 있는 주제 의식을 가장 아름답게 펼쳐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어요. 개츠비의 서사를 오늘에 맞게 현대적으로 풀어낸 점도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좋은 요인이었다 생각하고요.


4월에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 진출합니다. 11일, 영국에서 가장 유서 깊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콜리세움 극장에서 프리뷰 공연의 막이 오르죠.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콜리세움은 <위대한 개츠비>의 화려한 무대를 구현하기에 탁월한 공간입니다. 스케일은 크지만 무대에 집중하기 좋은 밀도 높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요. 무엇보다 이 작품을 상연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었어요. 영국 공연은 오리지널의 아름다움과 에너지는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세부적인 것들을 좀 더 현지화해서 더욱 발전된 무대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브로드웨이에서의 성과가 있기 때문에 다들 무척 기대가 높아요. 캐스팅 발표 전부터 티켓이 거의 판매될 정도로요.


브로드웨이에 이어 웨스트엔드까지, 세계 뮤지컬 시장의 양대 산맥인 두 곳에서 동시에 상연하게 됐습니다. 놀라운 행보의 중심에 서 있는 기분은 어떻습니까?

이번에 만난 브로드웨이 ‘파워 맨’들이 그러더군요. “대단해, 자랑스러워 해도 좋아!”라고요. 그런데 저는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그런 마음보다는 그저 ‘해냈구나’ 정도로 만족하고 있어요. 일을 시작할 때부터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인정받는 날을 그려왔습니다. 이제 목표로 했던 것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죠. 지금은 또 다른 목표에 다가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또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충만한 에너지가 가득해요.


<위대한 개츠비>의 성공은 ‘7전8기 정신’의 위대함을 시사합니다. 사실 꿈의 무대, 브로드웨이의 문이 쉽게 열린 건 아니었죠.

그렇습니다. 3전4기의 결과죠. 2009년 한미 합작 뮤지컬 <드림걸즈>로 미국 시장을 두드렸고, 2014년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와 2015년 <닥터 지바고>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지만 다 잘 안됐어요. 막대한 빚을 지고 이후 팬데믹까지 겪으며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어요. 쇼 비즈니스의 기본인 자본의 역학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게 됐고요.


거듭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저는 한 번도 ‘실패’란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어요. 그 또한 큰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이유로 현실의 힘듦 앞에서 크게 실망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내적으로 단단히 쌓아가는 계기가 되었죠. 앞선 경험이 있기에 분명 지금의 성과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역시 높은 목표를 향해 가는 단계 중 하나고요. 원래 성격 자체가 ‘해낼 수 있다’는 긍정 마인드와 꿈에 대한 열정이 큰 편이에요. 당장 힘이 들더라도 하고 싶은 것이 더 많기에 멈추지 않고 달려온 것 같아요.


엄청난 ‘일 중독자’이자 완벽주의자라는 평도 듣습니다. 이렇게까지 혹독하게 자신을 밀어붙이는 건 어째서일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요?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습니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길게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시도하는 스타일이고요. 젊은 시절, 세계적인 뮤지컬 프로듀서로 성공하는 것이 확고한 목표이자 제 존재의 이유라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생을 헤쳐왔어요. 덕분에 지금 이렇게 꿈꾸던 모습으로 살고 있고요. 다만, 최근 들어 조금 고민이 생겼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로 성공을 거둔 지금, 오히려 빛나는 결과 뒤편의 감정들을 느끼고 있어요. 적막함이랄까, 무게감 같은 것들요. 처음에는 이 낯선 감정들이 행여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는데, 문득 이러한 마음까지도 잘 다스리고 견뎌내야 하는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삶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제작자로서의 삶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습니까? 원래는 영화감독을 꿈꿨다고요.

그랬죠. 아니, 과거형이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꿈꾸고 있습니다. 마침 어제는 시차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아서 밤새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겨우 눈을 붙였는데요. 봉준호 감독님 신작 관련 내용을 읽어서인지 비슷한 작품을 만드는 꿈을 꿨습니다.(웃음) 지금의 모습도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만, 언젠가는 꼭 영화를 만들 겁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멋진 작품을 내놓을 거예요.


제작사 ‘오디컴퍼니’는 설립 20년이 넘었습니다. 그간 한국 뮤지컬계에 유의미한 족적을 새겨왔는데요.

탄력성이 좋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앞장서서 ‘사고’를 많이 쳤어요. 과감하게 도전하며 나름의 길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제 안에 항상 도사리고 있던 ‘결핍’이 저를 여기까지 이끈 것 같기도 합니다. 작품을 완성하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나면 늘 부족하고 모자람을 느꼈어요.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더라고요. 그 결핍이 자극이 되어 계속해서 새로운 성취를 이루게 한 것 같아요.




무대의 어떤 점이 여전히 당신을 가슴 뛰게 합니까?

저는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합니다. 일이 재미있고 뮤지컬이 좋다고요. 제가 만든 게 아니더라도 좋은 작품을 만나면 뿌듯하고, 관객들이 행복한 얼굴로 공연장을 나서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흐뭇하고,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여 연습하는 현장에 함께하는 것도 기쁩니다. 매일 열리는 공연은 매일 저를 새롭게 만들어요. 꾸준히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요.


지난해 국내에서는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젊은이들의 여정을 그린 작품 <일 테노레>를 선보였죠. 연장 공연까지 이끌어낼 정도로 관객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평단으로부터는 창작 뮤지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높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일 테노레>는 세계적인 창작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고자 기획한 작품입니다. 극적인 서사를 매우 담백하고 세련되게 풀어낸 수작이에요. <일 테노레>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 배우들이, 우리나라 말로,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좀 더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갈 거예요. 잘 만들 자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브로드웨이와 한국 뮤지컬 제작자들의 협업이 눈에 띕니다. 확실히 한국 뮤지컬 작품, 산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진 것 같아요. K-뮤지컬의 시대를 예견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위대한 개츠비>의 경험이 국내 뮤지컬의 해외 진출에 가속을 붙일 수 있겠죠. 세계적으로 통하는 작품이 되려면 우선 작품의 완성도를 최대로 끌어올려야 해요. 체계적인 선진 시스템을 도입하고 자본이 결합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이 진행되어야 하고요. 남다른 비전과 넓은 시야를 지닌 제작자가 더욱 많이 발굴되고 또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계를 설정하지 말고 확실한 목표와 경쟁력을 갖춰야 해요. 그러면 한국 뮤지컬은 ‘K’를 넘어, 그 이상으로 충분히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오는 7월에는 한국 관객들도 <위대한 개츠비>를 만납니다. 오리지널 리드 프로듀서로서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뉴욕, 런던, 서울에서의 동시 상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전 세계 관객들이 동시에 같은 경험,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거죠. 작품을 무대에 올린 지 1년여 만에 이렇게 좋은 결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더욱 기쁘고 또 설렙니다.


새롭게 꿈꾸는 또 다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우선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내 투어 공연을 계획하고 있고 새로운 나라로 진출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어요. 그리고 앞서 말한 세계 대상 한국어 작품 개발을 비롯해 새로운 창작 작품 발굴도 함께 진행해야죠. 뮤지컬 작업 외에도 많은 분이 깜짝 놀랄 흥미로운 계획도 품고 있어요. 이제는 더욱 멀리 바라보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감흥을 주는 일들을 하겠다는 목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대표님을 ‘뮤지컬계의 돈키호테’라 부르더군요. 지금껏 무대에 올렸던 작품 중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있는지요? 그리고 거침없는 도전이 어느 정도 결실을 이룬 지금, 스스로에게 어떤 별명을 선사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돈키호테 그리고 개츠비 아닐까요? 명확한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집중력, 희망을 품고 돌진하는 순수함이 닮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다른 별명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저는 돈키호테로 불리는 게 좋습니다. 어떤 이들은 돈키호테의 무모함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가 무모하다기보다는 올곧고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동굴 속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밝은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돈키호테의 뒷모습을 늘 떠올립니다. 그 너머에 반드시 휘황찬란한 미래가 약속된 건 아니라 해도, 그렇게 계속해서 빛을 찾아나갔으면 합니다. 좋은 프로듀서로, 그리고 나아가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끝까지 잘 걸어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 문화 산업을 이끄는 리더 중 한 사람으로서 ‘럭셔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문화 산업은 어제보다 한걸음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가치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질을 높여가는 그 과정에 ‘럭셔리’가 필요하겠죠. 일관적인 완벽함으로 우리에게 미학적 경험을 선사하고, 현존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열어가는 ‘럭셔리’한 걸음을 저 역시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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